Mutter

매화

꽃 피는 춘삼월
것도 반 이상이 지났다. 윗쪽은 아직 눈이 오기도 하지만 남쪽엔 유채꽃도 피고 벚꽃도 피기 시작했다. 올해는 매화를 보지 못해 한켠으론 마음이 쓰리기도 하다.

매화, 그것도 백매화를 볼때면 항상 냉하게 시리곤 하는데 그런것을 느끼고 나면 다시 얼마간 삶을 견뎌갈 수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서럽고 그렇게 아름다운데 추위속에서 피어나는 것도 소리도 없이 사라지는 묵묵한 아른거림을 몇분이고 몇십분이고 가만히 서서 바라보게 되곤 했다.

현실 시간으로 몇년간 만에 나 자신은 겨우 한살을 더 먹었다. 좀더 현명하고 싶었고, 좀더 지혜롭고 싶었다. 죽을때 까지 끝나지 않을 일이겠지만 이런 걸음의 속도로는 앞으로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야만 할지를 생각할땐 가슴을 무릎에 얹어놓은체 웅크리고 짐승처럼 울고 싶을때가 있다.

이젠 그러기에도 시간이 흘러 그러한 것을 생각한다 할지라도 웅크린다거나 짐승처럼 운다던가 하는 일은 없다. 단지 익숙하고 담담해서 라기 보다는, 애초에 내것은 없다 라는 것을 약간이나마 느꼈기 때문에 아닐까 싶다.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고 사라져 가는 것이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라고 느꼈기 때문 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 속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계속 품고 살아 갈 수 있길 바란다.

허나 이런 저런 것에도 불구하고 봄이 오면 언제나 몸과 마음이 움츠러 든다. 나름 이것을 극복하려 많은 생각을 하고 행동했지만 매년 이 시기가 될때마다 나는 견뎌내기 수월치 않다.

언제까지 나는 이 봄을 증오 해야만 하는 것일지, 얼마나 더 많은 시간들을 보내야만 이것들을 묵도 할 수 있을지.
소리도 없이 빛도 없이 공기도 없이 쌓여가는 증오의 무게를 내가 얼마나 더 견뎌 낼 수 있을지. 이 먼지를 털어내려 무던 애를 쓰는 것도 제법 지친 느낌이다. 이젠 무엇으로 이 먼저들을 치워야 하는지 품어야 하는지도 알기 어렵게 되었다. 분명 예전엔 알고 있다고 느꼈는데..

올해 봄은 그저 인내 하는 것 외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느꼈다.

매화를 보지 못해 서럽다.

빨리 여름이 와서 해바라기를 볼 수 있으면 한다..
뼛속의 냉기가 모두 빠져나가 버리게..

위장의 상태가 좋지 못해 병원엘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2~3주치 정도 받아왔다. 다 먹었지만 썩 좋아질 기미는 없다. 의사가 말한데로 결국 내시경을 받아야 할 듯 하다.

아르바이트 삼아 일요일에 일을 하러 갔다. 오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일이 끝난 밤 10시 까지도 비는 쉴세 없이 계속 내렸다. 비옷을 입는다던가 하는 호강은 생각도 할 수 없었고 그냥 계속 일 했다. 끝나고 뒷정리를 하며 짐을 옮기다가 모레인지 유리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것이 내 왼쪽 눈에 들어갔다. 침착하게 눈을 잠시 감고, 눈물이 흐르는 것을 놔두었다. 단순히 눈에 들어간 것 뿐이라고 생각 했기 때문이였다. 평소 같으면 이내 사라질 통증이 쉬이 가시지 않는다.

점점 고통이 심해지면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지기 시작한다. 흐르는 물에 씻고 물을 담아서 그 속에서 깜박거려보기도 했지만 역시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때야 알아차렸다. 동공쪽에 박혀버렸다. 어쨌든 일을 하고 있는 중이였기 때문에 한쪽 눈을 감고 일을 하는데 깊이감이 사라진 상태라 그런지 몇번인가 작은 실수를 했고 한번은 사고가 날뻔 했다.

겨우 겨우 일을 마치고 작업실로 돌아와 모조리 다 젖어버린 옷을 벗어 던지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그러고 보면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이다. 전에 누군가 그랬다. 자신에게 있어서 최소한의 사치라고 한다면 뜨거운 물로 목욕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재차 그 말의 감촉을 느꼈다.

왼쪽 눈엔 계속 짠물이 흐르고 흰자위는 이미 붉은색으로 가득차서 더 이상 흰자위로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이미 늦은 밤이였으므로 안과에서 치료를 받는다던가 할 수 없다.
자고나면 괜찮겠지 싶어서 잠에 들었다. 아주 늦게 일어났는데 몸에 몸살기운이 돌았다. 할 일도 있었는데 모조리 엉망이 되었다. 병원 문 닫을 시간 40분을 남겨두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빠른 걸음으로 한쪽 눈을 감고 거리로 나섰다.

눈을 다친날 부터 병원을 가는 그날까지 입체감각을 상실해버린 상황에서 왼쪽 눈을 계속 감은체 거리를 걷고 움직인다는 것은 몸의 반을 세로로 잘라 남은쪽 몸뚱아리의 밀도가 낮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박힌것을 빼내고 세균에 감염이 되었으며, 이런 상황에서 늦장을 부리고 오지 않았다면 실명이 될 수 도 있었음을 이야기 했다. 그러고 보면 요 몇주 전에도 왼쪽 눈이 자꾸만 뻑뻑하고 아리고 아파서 안과에 갔었다. 안압 검사와 조정을 하고 몇가지 약을 넣고 역시나 꾸준히 약을 먹고 나니 괜찮아 졌었다.

생각해보면 어째서 매번 왼쪽 눈 인 것일까..

예전에 어딘가에서 들은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사진을 찍을때 한쪽 눈을 감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보기 위한 것이라고. 좀 유치하고 졸렬한 이야기 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최소한 사진을 만들어 갈때에 대한 하나의 마음 가짐에 대한 이야기 이기도 하기에 그냥 쉬이 흘려 들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면 난 사진 찍을때 대체로 양눈을 다 뜨고 찍는 편이고 가끔 몇가지의 이유로 왼쪽 눈을 감고 찍는 경우가 있다. 유독 나의 왼쪽 눈만 이런 저런 이유로 감기게 되는 것을 보면, 그 무엇인가가 나에게 좀더 마음에 눈으로 보라고 채근하기 위함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나선 피식 웃었다.

오늘 하루를 보내고 작업실에 돌아와 아무말 하지 않은체 시들어 있는 꽃을 잠자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대형 카메라를 꺼내서 찍었다. 그것은 무척이나 아름다웠고 비어 있었으며 강인했고 무상했다.

음…

메트로놈 없이 정박자를 맞출수 있는건 흑인 밖에 없다.

라는 말이 왠지 와 닿았다.
실제 그렇든 아니든 말이다.

untitled.

가득찬 어둠속에 한 줄기 빛이 있길.

가득한 빛 속에 한 줄기 어둠 있길.

오바

태어난지 몇년 후의 일 이였는지 쉬이 기억나진 않는 일이다.
아마 다섯살 혹은 일곱살. 그 즈음 이였는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았다. 어린 마음에 안에 내용물이 뭔지는 상관 없이
단지 크리스마스였기 때문에 좋았고 단지 선물을 받았기 때문에 좋았다.

한편으론 조숙했던 것이였는지 아니면, 소위 유년 시절의 설익은 꿈이 이미 깨진 탓이였는지 산타의 존재는 이미 내 가슴속에서 사라진 그 때 즈음이였다. 그런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건지 어떤진 모르겠지만, 산타로 위장하지 못한 아버지 혹은 어머니께서 나에게 직접 선물을 주셨던 것이다. 리본까지 묶여있던 상자였던 걸로 난 기억한다.
그리고 그 리본은 요즘 처럼 리본모양으로 미리 만들어진 것을 양면테잎 따위로 붙인게 아니라 끈을 이용해 제대로 묶은 리본이였다. 어째서 이런 쓰잘때기 없는 것까지 좁살영감 처럼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지..

상자를 열고나니 파란색의 커다란 박스가 보였고 영어가 커다랗게 몇줄 인쇄되어 있었다. 읽을 수 있을리가 없다. 분명한 것은 박스에 인쇄된 노오란 색의 워키토키가 들어 있다는 것 이였다. 박스를 열고 내용물을 집어들었다. 사각형 모양의 12볼트 전지가 하나가 들어가는 타잎의 것이다. 은색의 빛나는 안테나를 길게 길게 주욱 뽑고 그 자리에서 시험해봤다. 어쩐지 시큰둥해졌다.

시험 상대는 아버지였는데 내가 시큰둥 해진것을 눈치 챘는지 저기 방 끝으로 가서 해보자고 재촉했고 난 군말 없이 그렇게 했다. 그런데 어쩐지 조금 재미 있는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달랐다. 갑자기 신이 나서 계단을 내려가 집 밖에서 해보았다. 된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 거린다. 특히 말이 끝나고 나서 붙여주는 \’오바\’ 라는 말은 어디서 줏어들었는지 빼먹지 않고 꼬박 꼬박 잘도 붙인다.

왜 그렇게 두근 거리고 신이 났던 것일까.
멀리 떨어져서도 중간에 아무런 연결 없이 목소리가 전해진다는 것이 경이롭게 느껴졌던 것인지 아니면 그때 즈음 이미 외로움이 남기고 간 자국 냄새를 맡아버렸던 것인지. 어쩌면, 어렸을적 가정불화로 인해 몇가지 일들이 있었고 누군가 항상 옆에 있다는 안도감 같은것을 이미 기대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느꼈던 것일지.

누군가 눈앞에 보이지 않고도 연결 되어 있다는 느낌은 어린 나에겐 불가사의에 가까운 놀라운 일 이였다. 물론 전화가 있긴 했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 닿는다. 그래서 그토록 \’오바\’ 라는 말을 빼먹지 않고 열심히 붙였던 것일까.

가슴에 어떠한 것들이 파도가 되고 물살이 되어 가슴에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 들었다.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는 중에도 뭔가를 이야기 하고 계단을 오르는 중에도 뭔가를 이야기 하고 끝에 항상 \’오바\’를 붙였다.

하지만 워키토키 놀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워키토키 놀이도 몇번했지만 어쩐지 그때의 감흥과는 다른 거리감이 느껴졌다. 분명 신나야 할텐데, 분명 가슴 두근거려야 할텐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런 느낌은 점점 엷어지기 시작했고 조금 더 시간이 흘러 아무런 감흥이 없어졌다. 얼마 뒤 워키토키는 장난감 따위가 모여있는 소쿠리에 쳐박히게 되었고 다시 몇개월이 흘러 어느날 부셔졌다. 아무 생각없이 걷다가 발에 밟혀서 부서지게 되었던 걸로 난 기억한다.

부셔 졌다고 한들 별 감흥은 없어 부서진 잔해를 치우고 튀어온 12볼트의 사각형 건전지 역시 버렸다. 그 이후로 얼마간 시간이 흘러서 집에 최초로 무선전화기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많은 시간이 흘러 내 개인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이야기를 한 뒤에 \’오바\’라는 말은 붙이지 않았다. 당연하지 않은가. 붙일 수 있을리 따위 없다.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흥은 어렸을 적 워키토키로 처음 느꼈고 아마도 몇몇 소소한 것을 제외하면 그토록 강렬한 느낌은 그때가 마지막이 아니였을까 라고 생각한다.

\’오바\’ 라고 말하는 것이 난 참 좋았다. 이상 이라는 뜻이지만, 끝났다 라는 느낌도 있다. 자, 내 할말이 끝났으니 너도 말해봐. 라는 느낌은 상대편이 나에게 무엇인가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살아가면서 끝나게 되는 경우는 참 많다. 무엇을 시작하는 것이 많은 만큼 끝내야 하는 것도 많은 것이다. 무엇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그 종국엔 \’끝\’으로 완결되거나 완성되기 나름이다. 변화되고 변화하는 것은 있을지언정  끝나지 않는 것은 전쟁과 매춘 외엔 거의 없을 것만 같다. 그래 사랑도 시대를 관통하며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지속 되겠지.

시간이 훌쩍 흘러 삼십대가 되어버린 지금
갑자기, 뜬금없이 부셔져버린 노오란 워키토키가 생생히 생각 난 것일까..

그는 생각했다.

산이 있었다.

그는 걷고 걷고 걸었지만 정상은 얼마나 더 가야 하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힘들었지만 가끔은 휘파람을 불면서 혹은 혼자 떠들기도 하고, 아무 말 없이 침묵을 녹여낸 그대로 걸어가기도 했다.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을 되돌려 보는 것도 무의미가 되어버렸다. 단지 계속 걸을 뿐이였다. 그렇게 걸어가면서 가끔 길손들과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함께 걸어가면서 좀더 힘을 내는 경우도 있었고, 서로 감미주를 나누는 때도 있었다. 주위의 꽃들과 나무, 야생초와 하늘, 바람을 나누기도 했다. 때론 실망을 하거나 상처를 주거나 받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것도 몇백번이고 반복되고 나자 그는 예전 보다 눈매가 부드러워졌다.

단지 계속 걸을 뿐이였다.
그리고 그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생각한 정상이라는 것은 높은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였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은 산이 아닌 기울어진 끝 없는 평지를 걷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는 슬퍼하지 않았다.
슬퍼할 이유 또한 없었다.

그것이 산이였는지 아니면 기울어진 끝없는 평지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삶을 택한 자신의 방식이였다.
강한 마음은 부드러움 앞에 천진난만 할줄 알게 되었고, 지독한 심장의 열기를 관조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자신은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건 실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느끼는 순간과 동시에 그는 태어나 세번째로 아픈 고통을 겪어야 했다.

실로 변한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스스로 인정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였다. 그는 그만 지금껏 쉬지 않고 걸어왔던 자신을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처음 출발했을때와 다른게 없었다. 심지어 계절마저 그대로 였다. 그는 오열할 힘도 없었다. 단지 다른게 없다는 것을 조금 더 자각 했을 뿐이였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다시 일어섰다. 왜 일어섰는진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순간 그는 다른 것을 한가지 느꼈다. 예전엔 산으로 보였던 것이 기울어진 평지로 보였던 것이, 이젠 단지 자신이 걸어가는 길로서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는 생각했다. 난 행복하다고.

그리고 겨울이 시작 되었다.

확대기.

대형 카메라로 촬영한 것을 프린트 할 일이 있어 확대기에 필름을 걸었다. 예전에 아주 급히 프린트 한다고, 포커스가 나간걸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식의 일 처리는 정말 마음에 안들지만 시간의 제약이 원망스러웠다.

덩치가 정말 큰 대형 확대기를 싸메고 4시간 넘게 끙끙거렸다. 덕분에 나사 하나하나의 위치와 그리고 왜 그곳에 그 나사들이 있어야만 하는지를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확대기 라는 것은 본디 원리 자체가 대단히 심플하기 때문에 딱히 복잡할 것도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예를 들어 카메라의 기본 원리가 간단하다고 해서 모든 카메라가 간단하지 않은것과 마찬가지다. 특히나 대형 확대기는 그 크기와 무게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의 스테빌리티가 대단히 중요하다. 때문에 그에 따른 부가장치들이 설계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35mm나 120포맷용 확대기의 경우 베셀러 급은 확실히 섹션이 구분되어 있어서 이것은 콘덴서 렌즈의 집광을, 저것은 렌즈부의 포커스 틸트 조정을. 이라는 식으로 구성 되어 있어서 한눈에 보더라도 직관적으로 파악이 가능하지만, 오메가의 D시리즈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결국 최종에는 헤드 모듈을 뜯어내고 샤시를 처음부터 끝까지 면밀히 검사하며 나사들을 하나 하나 풀어가며 각 기능과 역활을 직접 익힐 수 밖에 없었다. 메뉴얼 따위 없었기 때문에 이런 고생을 하게 된다.

게다가 제대로 된 공구도 거의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건 롱로즈 플라이어, 일자 드라이버, 포켓 형광등 밖에 없었다. 이전에 사용했던 십자 드라이버는 날이 무디어 제대로 쓸 수 없었고, 너트를 조이고 풀기 위한 렌치도 사이즈가 맞는게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확대기의 조정이 다 끝날때 즈음엔 손가락 끝이 너덜너덜 해졌다.

결국 수시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마침내 전 이미지 영역에 있어서 고른 포커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결과가 어쨌던 좋았으니 괜찮다 라는 생각이 안드는건 아니지만, 역시나 만반의 사전 준비를 한 후에 필요한 공구들을 주루룩 늘어놓고 차근 차근 해나아가는 일련의 흐름을 만끽하는 즐거움에 비한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너덜너덜 해진 손가락은 그렇다 치더라도 반복되는 짜증은 위장에도 좋지 않다.

이제 남은건 다이크로익 필터부의 가동을 정상화 시키는 것과 확대기 렌즈를 제대로 된 것으로 구하는 것이다. 지금 쓰고 있는 렌즈는 조리개의 유악현상이 엄청나고 렌즈부 또한 육안으로 봐도 뿌옇게 보일 정도로 상처가 많다. 조리개를 조인다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실컷 대형 카메라로 고생스럽게 촬영해놓고 막상 프린트가 샤프하지 못하면 이게 무슨 고생인가.

어쨌든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을 한번쯤 생각해보자 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월동 준비.

조금 느즈막히 일어나서 국제시장엘 나갔다.

제일 먼저, 500ml 위스키 한병을 샀다. 고급은 아니지만 매년 겨울 한병씩 구입해두는 위스키다. 원래는 750ml를 사려고 했지만 작년에 비해 엄청나게 오른 가격에 망연자실 하고 500ml의 가격을 물어봤는데 그 가격도 실은 작년에 구입했던 750ml의 가격보다 약간 싼 정도였다. 왜이리 올랐냐고 정말 놀라서 물어봤지만 주인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비쌀때 들여놔서 어쩌고 라고 했지만, 안주인으로 보이는 분께서 밥을 먹으며 밉지 않게 웃는 모습을 보자 거짓말은 아닌가 보군, 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 또한 먹고 사는게 힘들고 한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보시를 할만큼의 형편은 못되지만, 다른곳에 들리는 수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괜스레 그 웃는 모습때문에 발걸음이 다른곳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정직하게 느껴지는 편안한 웃음은 그런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쪽도 나의 그런 느낌을 알아챈건지 어쩐진 모르겠지만,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다가, 편안하게 \’에이 모르겠다\’라는 듯 말하지도 않았는데 선뜻 약간의 돈을 깎아주었다. 비록 750ml용량의 위스키를 구입하진 못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소박한 자괴감 같은것이 잠시 스쳤다.

가다랭이 맛의 후리카케 5봉지를 샀다. 인터넷에서는 한봉에 2,500원에 팔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의 국제시장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한봉에 천원. 인터넷에서 2봉을 살 가격으로 5봉을 샀다. 운송비 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처음 부터 5봉 정도 살 마음이였지만 일본에서 수입되어 오는 가격을 생각했을때 정직한 가격이다. 단순히 싸기 때문에 좋다기 보다도, 받을 만큼만 받는다는 상도가 느껴진다. 이런 기분은 밥먹을때도 이어져 기분좋은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
따끈한 밥에 후리카게를 적당히 뿌린 후 참기름을 약간 넣고 먹어도 좋고 아니면 생계란을 그때로 넣어서 살짝 풀어 먹어도 좋다. 노른자는 터트리지 말고 주위의 것부터 차근히 먹어나가면 특히 좋다. 어느정도 먹은 후에 노른자를 살짝 터트려 흘러나오는 그것을 지켜보며 먹는 것도 훌륭하다. 식성에 따라 아주 간장을 몇방울 흘려줘도 좋다.

다시 몇블럭을 지나 문풍지를 3개 정도 샀다. 문풍지는 두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일반적으로 보는 장미표 문풍지(3단으로 나눠있는)가 있고 하나는 검은색의 문풍지가 있는데 그냥 봐도 검은색 문풍지가 질이 조금 더 좋아보인다. 가격도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상인에게 물어본다. 어느쪽이 더 좋은가? 라고 물어봐도 사실 문풍지가 더 좋아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나도 알고 상인도 안다. 하지만 자신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야기해준다. 길이를 물어봤는데 잠시 기억이 안나는듯 했지만 장미표 쪽이 0.5미터 정도 더 길다고 이야기 해준다. 검은색이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어짜피 커텐을 달 생각을 하면 미관적인 부분에 있어선 별 문제가 없을듯 하여 결국 장미표 문풍지를 선택한다. 값을 치르고 나온다.

길을 가다가 포목사들이 모여있는 곳이 기억이 안나서 근처 상인들에게 물어보던 중 길가던 행인이 \’일루 따라오슈\’라는 말에 물어보던 상인에게 급히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흘려내듯 남기고 쫄래쫄래 쫒아갔다. 몇번인가 코너를 지나니 확실히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 근처에 있는 포목사들의 위치를 블럭단위별로 듬성 듬성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잘 듣지도 않은듯 자신의 갈길을 재촉하는 듯 하지만 분명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그 분의 귓가에 들렸을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소위 경상도 남자다.

근처에 있는 포목사에 들어가 몇가지 옷감을 보고 색깔을 보고 촉감을 보고 두께를 봤었다. 제법 괜찮은 느낌, 이라는 것은 있었지만 확실히 이것! 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구입하기로 한 광목천을 알아보았다. 몇가지 종류가 주욱 있었는데 개중에서 제일 두껍고 촉감이 거친것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확실히 품질이 좋았다. 질기고 촉감이 거친듯 하지만 부들부들한 맛이 있어서 딱 이라는 느낌이다.

가격을 물어보니 예산 초과다. 그래서 그것보다 한단 아래의 것을 보여달라고 해서 만져보았더니 어딘가 김이 빠진다. 확실히 가격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적정이라고 봐야 옮겠지만 그래서는, 돈을 쓰지 않는게 낫다. 원래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 두께로는 힘들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길이를 생각하고 가격을 계산하며 고심하던 중에, 상인이 이런 말을 한다. 가격이 고민이라면 한단 오천원에서 오백원씩 갂아서 사천오백원이면 어떄요? 라는 말을 한다. 여덟단 이니까 사천원이 빠진다. 역시 예산초과지만 광목천의 품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정을 한다. 항상 그렇지만 물건이라는 것은 그 나름의 돈 값만큼 한다는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에 본 광목천은 확실히 마음에 쏙 들었다.
솜씨좋게 포를 펼치더니 프로페셔널 하게 길이를 재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천을 시원하게 잘라낸다. 실제 주인장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나에게 한마디 한다.  \’그림 그릴껀가보네?\’

이제 이것을 가지고 우풍을 막아주고 내부의 온기가 실내에 남을 수 있도록 해주며 햇살이 들어올떈 부드러운 빛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비록 이리저리 예산을 많이 초과하게 되었지만 나름의 작업실 월동 준비는 끝이 난 셈이다. 올해 겨울은 작년보담 조금 더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

장어를 처음 먹은 건 누구냐?
계란을 처음 먹은 건 누구냐?
어쨌든 아주 배가 고팠던 모양이구나

– 이상

겨울.

책을 읽다 영문도 없이 쿠키가 몹시, 그것도 몹시 먹고 싶어졌다.
우려낸 커피는 진작에 차디차게 식어있었고 어슴푸른 밤의 냉정함이 내 몸을 휘감았다. 몹시 추웠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쿠키가 너무 먹고 싶었다. 정말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대강 걸치고는 양말은 신지도 않은체 아무거나 대강 신고 타박타박 걸어서 슈퍼엘 가선 쿠키를 두개 사고 돌아왔다. 그 사이 커피는 다시 따뜻해졌다. 종이박스를 열어 재활용 박스에 던져넣고 비닐을 벗겨 커피와 함께 먹었다.

아… 이제야 좀 살것 같다. 라는 기분이 든다.

쿠키를 먹고 커피를 다 마신후, 담배를 한대 피우고 시간이 잠시 흐르자, 쿠키가 먹고 싶어지게 되었던 그 상황의 전 단계로 다시 돌아갔다. 한가지 다른것은 더 이상 쿠키와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고 해도 바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젠 술을 마시러 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혼자서 마음을 온전히 풀고 조용히 마실 수 있는 술집따위 몇년 전에 다 사라졌다. 돈도 없는 상황에서 잘 되었다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술이나 쿠키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계절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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