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월동 준비.

조금 느즈막히 일어나서 국제시장엘 나갔다.

제일 먼저, 500ml 위스키 한병을 샀다. 고급은 아니지만 매년 겨울 한병씩 구입해두는 위스키다. 원래는 750ml를 사려고 했지만 작년에 비해 엄청나게 오른 가격에 망연자실 하고 500ml의 가격을 물어봤는데 그 가격도 실은 작년에 구입했던 750ml의 가격보다 약간 싼 정도였다. 왜이리 올랐냐고 정말 놀라서 물어봤지만 주인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다. 비쌀때 들여놔서 어쩌고 라고 했지만, 안주인으로 보이는 분께서 밥을 먹으며 밉지 않게 웃는 모습을 보자 거짓말은 아닌가 보군, 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나 또한 먹고 사는게 힘들고 한데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보시를 할만큼의 형편은 못되지만, 다른곳에 들리는 수고는 그렇다 치더라도 괜스레 그 웃는 모습때문에 발걸음이 다른곳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정직하게 느껴지는 편안한 웃음은 그런 힘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 쪽도 나의 그런 느낌을 알아챈건지 어쩐진 모르겠지만, 잠시 머뭇거리는 듯 하다가, 편안하게 \’에이 모르겠다\’라는 듯 말하지도 않았는데 선뜻 약간의 돈을 깎아주었다. 비록 750ml용량의 위스키를 구입하진 못했지만 이렇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라는 소박한 자괴감 같은것이 잠시 스쳤다.

가다랭이 맛의 후리카케 5봉지를 샀다. 인터넷에서는 한봉에 2,500원에 팔리고 있는 모양이지만 우리의 국제시장은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다. 한봉에 천원. 인터넷에서 2봉을 살 가격으로 5봉을 샀다. 운송비 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저렴하다. 처음 부터 5봉 정도 살 마음이였지만 일본에서 수입되어 오는 가격을 생각했을때 정직한 가격이다. 단순히 싸기 때문에 좋다기 보다도, 받을 만큼만 받는다는 상도가 느껴진다. 이런 기분은 밥먹을때도 이어져 기분좋은 식사를 할 수 있게 된다.
따끈한 밥에 후리카게를 적당히 뿌린 후 참기름을 약간 넣고 먹어도 좋고 아니면 생계란을 그때로 넣어서 살짝 풀어 먹어도 좋다. 노른자는 터트리지 말고 주위의 것부터 차근히 먹어나가면 특히 좋다. 어느정도 먹은 후에 노른자를 살짝 터트려 흘러나오는 그것을 지켜보며 먹는 것도 훌륭하다. 식성에 따라 아주 간장을 몇방울 흘려줘도 좋다.

다시 몇블럭을 지나 문풍지를 3개 정도 샀다. 문풍지는 두가지 종류가 있었는데 하나는 일반적으로 보는 장미표 문풍지(3단으로 나눠있는)가 있고 하나는 검은색의 문풍지가 있는데 그냥 봐도 검은색 문풍지가 질이 조금 더 좋아보인다. 가격도 같지만 그래도 혹시나 해서 상인에게 물어본다. 어느쪽이 더 좋은가? 라고 물어봐도 사실 문풍지가 더 좋아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것을 나도 알고 상인도 안다. 하지만 자신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야기해준다. 길이를 물어봤는데 잠시 기억이 안나는듯 했지만 장미표 쪽이 0.5미터 정도 더 길다고 이야기 해준다. 검은색이 더 마음에 들긴 하지만 어짜피 커텐을 달 생각을 하면 미관적인 부분에 있어선 별 문제가 없을듯 하여 결국 장미표 문풍지를 선택한다. 값을 치르고 나온다.

길을 가다가 포목사들이 모여있는 곳이 기억이 안나서 근처 상인들에게 물어보던 중 길가던 행인이 \’일루 따라오슈\’라는 말에 물어보던 상인에게 급히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흘려내듯 남기고 쫄래쫄래 쫒아갔다. 몇번인가 코너를 지나니 확실히 뭔가 보이기 시작한다. 게다가 그 근처에 있는 포목사들의 위치를 블럭단위별로 듬성 듬성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잘 듣지도 않은듯 자신의 갈길을 재촉하는 듯 하지만 분명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그 분의 귓가에 들렸을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소위 경상도 남자다.

근처에 있는 포목사에 들어가 몇가지 옷감을 보고 색깔을 보고 촉감을 보고 두께를 봤었다. 제법 괜찮은 느낌, 이라는 것은 있었지만 확실히 이것! 이라는 느낌은 없었다. 그래서 애초부터 구입하기로 한 광목천을 알아보았다. 몇가지 종류가 주욱 있었는데 개중에서 제일 두껍고 촉감이 거친것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확실히 품질이 좋았다. 질기고 촉감이 거친듯 하지만 부들부들한 맛이 있어서 딱 이라는 느낌이다.

가격을 물어보니 예산 초과다. 그래서 그것보다 한단 아래의 것을 보여달라고 해서 만져보았더니 어딘가 김이 빠진다. 확실히 가격을 생각한다면 이것이 적정이라고 봐야 옮겠지만 그래서는, 돈을 쓰지 않는게 낫다. 원래의 목적을 생각한다면 그 두께로는 힘들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길이를 생각하고 가격을 계산하며 고심하던 중에, 상인이 이런 말을 한다. 가격이 고민이라면 한단 오천원에서 오백원씩 갂아서 사천오백원이면 어떄요? 라는 말을 한다. 여덟단 이니까 사천원이 빠진다. 역시 예산초과지만 광목천의 품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결정을 한다. 항상 그렇지만 물건이라는 것은 그 나름의 돈 값만큼 한다는게 나의 기본적인 생각이다. 그리고 이번에 본 광목천은 확실히 마음에 쏙 들었다.
솜씨좋게 포를 펼치더니 프로페셔널 하게 길이를 재고 한치의 망설임 없이 천을 시원하게 잘라낸다. 실제 주인장으로 보이는 할머니께서 나에게 한마디 한다.  \’그림 그릴껀가보네?\’

이제 이것을 가지고 우풍을 막아주고 내부의 온기가 실내에 남을 수 있도록 해주며 햇살이 들어올떈 부드러운 빛으로 내려올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비록 이리저리 예산을 많이 초과하게 되었지만 나름의 작업실 월동 준비는 끝이 난 셈이다. 올해 겨울은 작년보담 조금 더 따뜻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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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어를 처음 먹은 건 누구냐?
계란을 처음 먹은 건 누구냐?
어쨌든 아주 배가 고팠던 모양이구나

– 이상

겨울.

책을 읽다 영문도 없이 쿠키가 몹시, 그것도 몹시 먹고 싶어졌다.
우려낸 커피는 진작에 차디차게 식어있었고 어슴푸른 밤의 냉정함이 내 몸을 휘감았다. 몹시 추웠다.

따뜻한 커피와 함께 쿠키가 너무 먹고 싶었다. 정말 너무나도 먹고 싶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대강 걸치고는 양말은 신지도 않은체 아무거나 대강 신고 타박타박 걸어서 슈퍼엘 가선 쿠키를 두개 사고 돌아왔다. 그 사이 커피는 다시 따뜻해졌다. 종이박스를 열어 재활용 박스에 던져넣고 비닐을 벗겨 커피와 함께 먹었다.

아… 이제야 좀 살것 같다. 라는 기분이 든다.

쿠키를 먹고 커피를 다 마신후, 담배를 한대 피우고 시간이 잠시 흐르자, 쿠키가 먹고 싶어지게 되었던 그 상황의 전 단계로 다시 돌아갔다. 한가지 다른것은 더 이상 쿠키와 따뜻한 커피를 마신다고 해도 바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젠 술을 마시러 가야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지만, 혼자서 마음을 온전히 풀고 조용히 마실 수 있는 술집따위 몇년 전에 다 사라졌다. 돈도 없는 상황에서 잘 되었다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술이나 쿠키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계절이 오고 있다.

가끔은 그 우연한 소리를 녹음해서 듣고 싶을때가 있다.

어제와 오늘
컵을 하나씩 깼다.

물론 그것에는 합당한 이유 같은것 이라던가 당위성 같은건 존재하지 않음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것이 그 위치에 있었고 그것에 부주의(혹은 인식을 하지 못함)에서 오는 우연성에 의해 때마침 컵이 깨졌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컵이 깨질때 마다 난 생각한다.
깨졌다 라는 것은 당위성이라던가 합당한 이유를 뛰어넘는 무엇이 있다고 말이다. 그 컵을 인식하지 못함이라는 것이든, 그 컵에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의 유무와는 관계없이 깨져버리는 컵의 무상함은 때론 나를 소스라치게 공포감과 비슷한 것을 느끼게 만든다.

물론 바라보는 눈은 언제나 무색한 빛일 뿐일테지만.

특수한 것.

특수한 것을 잘 이해하면 이해 할수록 보편성에 접근 할 수 있다.

– 리제트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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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대단히 공감했던 것 중 하나다. 맥락적으로 봐도 다이안 아버스의 스승답다.
마찬가지로 결국 같은 말이 되겠지만, 반대 되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포컬 플레인 셔터막

포컬플레인 셔터의 유래가 길로틴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계적 연관성에만 관련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론 그렇게 셔터막이 잘라낸 흔적은 언제나 나에게 남겨지고 만다.
어떤 경우, 그것을 볼때 대단히 가슴 아픈 경험이 생기고 만다.
흔한 이야기지만, 세삼 느끼게 되는 상황은 여러번 반복 된다고 하더라도
견디기가 수월하다던가 하진 않다.

그래도 눈 앞에 보였던 것을 가로지르며 셔터의 길로틴이 잘라낸 것을
똑똑히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의무이며 권리다. 견뎌야 하는건 어쩔 수 없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똑똑히 그것을 보고, 그리고 보는 것이다.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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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아주 예전의 일이다.
아주 라곤 하지만 대강 10년 전 즈음의 일이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보건데 아주 오래전은 아니다.

당시에 사진학과 라는 것은 자신만의 개인 암실이 당연했고 필수라고 생각했던, 어떤 의미에선 정말 당연한 분위기라고 기억하고 있다. 난 암실이 없었다. 하지만 프린트는 해야만 했다.

여차저차 해서 한평조차 되기 힘든 통풍도 안되는 작은 암실에서 여름에 땀으로 샤워를 하면서 프린트를 했던게 기억이 났다. 현상액의 온도를 맞춘다는 건 당연 꿈 같은 일이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서 땀 흐르는걸 막고 손과 팔에 흐르는 땀을 그걸로 닦아내곤 했다.

프린트가 끝나고 나면 정말 옷을 입은체 샤워기의 물을 맞은 것 처럼 말라 있는 곳이라곤 거의 없을 정도가 되고나서 그것이 견디기 힘들면 샤워를 하고 아에 알몸으로 프린트를 하기도 했었다.

대부분 그렇듯 여차저차 해서 사용하게 된 암실은 역시나 여차저차 해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선배집을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당시 동기들은 대부분 자신의 프린트를 하기에도 시간이 넉넉치 못하였기 때문에 그 쪽은 아에 고려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동기들과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였다. 툭 하면 선배들이 각목 나무랭이나 대걸레 나부랭이를 들고 \’빠다\’를 때리는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기였고, 선배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보는것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시기였다. 붉은 깃발 아래 \’사상\’이 엇갈리면 간단하게 패거리가 분리되는 시절 이었다. 간간히 교문 앞에 최루탄이 터지기도 하고 데모하는 모습도 낮설지 않았다.

학과가가 있었는데 난 그 노래가 굉장히 싫었다. 치졸하고 졸렬하며 음율마저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어눌함에, 무엇보다 참기 힘든건 옛 선배들이 만든 학과가에 목적 자체가 당시 느껴기기론 마지 너덜너덜 해진 유령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면 나도 왠지 유령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당연히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몇번인가 불려가서 주의를 받기도 하고, 과의 분위기를 흐트린다는 명분 아래 각목이라던가 대걸레 따위에 맞기도 했다. 반항을 한 적도 있었고 어떤 경우엔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사상적인 부분에 진지한 의문을 느껴 질문을 해본 적도 있다. 어떤 선배는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각목을 손에 때지 않은 선배도 있었고 어떤 선배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며 나와 대화를 하기도 했었다. 이미 그 쯤이 되자 과내에서 난 거의 고립이 되었다.

혼자 밥 먹는게 익숙해졌고 불편하다던가 외롭다던가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난 그런 상황이 편했고 고마웠다. 그런 중에도 어떤 선배와 무슨 시시껄렁한 이유로 또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을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했다. 그나마 소위 대화 자체가 가능한 선배였다. 이야기가 끝날때 즈음 손에 잡혀 있던 각목은 창고 안으로 던져 지고 \’소주 한잔 하러 가자\’며 같이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난 사진을 너무나도 찍고 싶었고, 정말 갈증이 났다. 애가 타고 미칠것 같은 갈증이 아니라, 묵묵히 보고 그것을 다시 묵묵히 보고 그것이 어느 임계점에 닿으면 칼로 짖이겨 발기발기 찢어내듯 사진을 찍어나갔다. 언제 부터인가 단순히 과제 따위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필름으로만 담아두기엔 이것을 프린트 함으로서 토해내야 한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도무지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예의 그 선배를 찾아갔다. 비교적 반갑게 맞이 해 주었고 암실이라고 하는 곳을 안내 받았다. 하지만 기대 했던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암실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모든게 흐트러져 있었다. 거실 마루바닥에 확대기가 있었고 트레이는 청소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요즘 프린트 안하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커머셜 쪽으로 할 생각이라서 관둔지 제법 되었다고 했다. 커머셜을 하면 어쨰서 흑백사진을 관두게 되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애써 물어보진 않았다.

트레이를 씻어내고 약품을 올리고 필름 캐리어에 원고를 끼우고 확대기의 노광을 넣을때의 그 빛덩어리가 쏟아지는, 서글프고 거칠며 갈곳 없는 에너지 덩어리를 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몇번인가 선배내 암실로 가는 길목 앞 슈퍼에서 항상 고민을 했다. 알량한 지갑을 열어보고 지폐를 세어보고 쥬스를 사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몇번의 방문 동안 처음과는 다르게 점점 쌀쌀맞아진다.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약품도 모조리 선배의 약품을 쓰고 있었고 인화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이틀치 밥값을 치르고 쥬스를 샀다. 쥬스를 사왔다고 해도 태도가 달라진다던가 반긴다던가 하는 것 따위는 애초에 전혀 바라지도 않았다. 최소한의 염치 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난 이틀치 밥값을 쓴건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바보 같은 일이고 한편으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은 그 뒤로 더 이상 선배네 암실을 사용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프린트한 사진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길에 몸을 올렸다. 육교를 건너던 중간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선명한 네이비 블루의 카메라 가방이 어깨뒤로 미끌어져 바닥에 떨어졌고 그대로 서서 쥐고 있던 사진이 손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조금씩 구겨져 갔다. 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육교 위 바닥에 주저 앉아 서럽게 울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고 군대를 다녀 오고 지금의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생각 한 것은, 나의 암실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 보다도, 다른 사람이 이 암실을 사용할땐 최소한 프린트 할때 사용 하는 약품 만큼은 그냥 주리라 결심 했던 것이다. 그 결심이 서고 나서야 나의 암실이 만들어 진것에 진심으로 기뻐 할 수 있었다.

내 작업실 이름은 DummyFactory 이다.
전산학 쪽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Dummy가 무슨뜻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Dummy의 뜻은 의외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속임수, 거짓, 쓰레기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 공장이라는 뜻이다.
최소한 쓰레기 같은 사진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후 강산이 절반정도 변했고, 작업실은 주위에서 농담반 진담 반으로 말하듯 1년안에 망하진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한편으론 내가 사진 이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던 기회를 모조리 놓쳤다는 이야기도 된다. 십여년전에 비해 지금은 모든 것이 훨씬 좋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프린트는 언제든 할 수 있고, 냉정하게 봤을때(대강 봐도) 최고라고 할 순 없지만 제법 훌륭한 작업실이 되었다. 응접실엔 에어콘이 없지만 암실엔 에어콘이 달려 있다.(선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약품 온도 때문에 씁쓸해 하지 않아도 되고 수건을 머리에 싸매지 않아도 된다. 응접실엔 출력 좋은 석유난로가 없지만 암실에는 있다.(역시 선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약품의 온도 유지가 된다. 두꺼운 옷을 입고 둔하게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우여곡절 끝에 현상기도 구입 할 수 있었고, 내가 만든 사진을 판매 할 수 있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중성 프린트 워셔도 구입하게 되었다. 상당한 고가의 4×5 대형 확대기도 얻을 수 있었고 20×24 초대형 이젤도 구입 할 수 있었다.

현금 보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항상 빠듯하고 한끼 밥값에 고민을 해야되고 필름값이 모자라면 노가다 뛰는게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을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행복하냐고?
물론 행복하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잘 모르겠다.

한가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사진을 왜 찍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 할순 없어도

사진 찍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

아주 평범 했던것, 혹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

그것이 어느날 조금식 커져가고 밀도가 높아 진다는 것은
결국 그 이후의 시간을 생각 했을때 좋지 않은 징조다.

선택은 몇가지가 있다.
무시하던가, 담담하게 몸을 투명으로 만들어 통과시키던가, 약한 산성액에 단백질이 흐물거리며 괄태충이 녹아나듯 그렇게 알게 모르게 녹아나던가, 혹은 가만히 응시를 하던가, 전면적으로 받아 들이던가, 그것도 아니면 또 반복하던가.

누구나 겪고 있지만 타인에게 쉽사리 이야기 하기 어려운 것들, 설령 이야기 한다고 한들 실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임에 조막만한 위로 한줌 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가장 편안한 것은 입술을 부드럽게 닫은체 매일 창문을 열고 이빨을 닦고 차를 타고 종이를 읽고 청소를 하고 뭔가를 먹고 일기를 쓰고 잠을 자는 것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알랴, 도처에 쉴곳이 있지만 쉴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게 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한 시작이 아닐까.. 그것은 지옥도 천국도 현실도 아니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에 찬사를.

공포

작업실에 혼자 남은 후,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음악을 듣다가
오랜만에 체호프의 단편들이 읽고 싶어졌다. 헤르만 헤세처럼
무겁고 진중한 느낌과는 다르지만, 다 읽고 나면 명치와 목 뒷덜미가
아린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자주 읽고 싶지 않은 소설중 하나다.
내용이 짧아도, 오히려 짧기 때문에 다가오는 임팩트라는 것은.
특히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정황을 표현해내는 부분에 있어선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단편들 중에 ‘공포’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부분을 읽었다. 항상 그렇지만
메마르고 곁가지가 당장에라도 부러질듯한, 하지만 그 근저에는
끈적하고 습하고 날카로운 웃음이 남겨져 버린 느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대단히 직접적이며 비유적인 제목이라고 세삼 생각한다.

다 읽고 나선, 언제나 그랬듯 명치와 목 뒷덜미가 아릿하다.

이제 책을 덮고 필름 현상을 하러 가야 하고, 사진 셀렉트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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