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부산 촌놈, 당일치기 서울 마실.

새벽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시간쯤에, M군이 한가지 제안을 한다. 서울가자, 전시회도 보고 당일치기로 마실다녀오는 기분으로. 라는 느낌의 이야기였다. 처음엔 망설이다 (마실치곤 비용이 제법 크다고 생각하니까) 이리저리 신경써준덕에 마음을 어느정도 결정 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몇시간이나 달리고 달려서 청담동 L갤러리에 갈 수 있었다. 브루스 데이빗슨. 정직히 말하자면 내 취향의 사진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 중 한사람이다. 특히 SUBWAY의 경우 아주 예전에 사진집으로 봤을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오리지널 프린트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로도 상당히 흥분되는 일 이었다. 또한 서울의 상업 사진 갤러리의 전시장 전시 방법과 관련된 기타 여러사항을 참고하기 위한 심산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언젠가 기분 내키면 따로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시장을 나서고 저녁을 먹고, 수원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고속도로와 휴게소들를 드문드문 찍으며 예상보다 제법 늦게 부산에 돌아왔다. 커피를 마시고 고속도로 우동 한사발을 들이키고, 차안에게 이야기를 하며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사진가 김종길님과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비록 사진의 방향성이나 작업방식 자체는 다를런진 몰라도 그런것과는 관계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통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즐거운 일 이었다. 부산에 도착했을 즈음 상당히 지쳐있는듯 보여서 걱정이 되었다. 중앙동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그 길로 또 김해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큰일이야 없겠지 싶지만서도 괜히 걱정이 된다.

40계단을 터벅터벅 올라와 작업실에 도착하니, 비록 쓰레기 통 같은 작업실이라도 괜히 마음이 안정된다. 내 작업실.

잘 채비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몇가지 꿈을 꾸었던것 같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어나서 온몸이 뻐근했지만 어제 다녀온 서울의 실루엣의 단면이 끈적끈적 몸에 남아있는듯만 하다.

작업실의 창문을 열자, 영도다리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내음이 여기까지도 들어오는 듯 하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바위틈에 고인 물은 봄을 예고하는듯
잔잔한 바람에도 살랑댄다.

힘찬 대지의 고동은 강한 파문을 낳고
그들의 부딪힘은 더 큰 파문을 낳지만
그것은 생명을 위한 준비.

조화로운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그늘에 우뚝 선 버찌나무는 가지를 힘차게 뻗어내고
물의 리듬에 맞춰 가지의 굴곡을 정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변화가 심하다 해도

버찌나무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The Legend of 1900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와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던 맥스 투니에게 이런 말을 한다.

\”피아노를 봐.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건반들로 만드는 음악은 무한하지. 그건 견딜 만해. 좋아한다고. 하지만 배에서 막 내리려고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개의 건반… 그것으론 연주할 수가 없었어. 피아노를 잘못 선택한 거야. 그건 신이나 가능한 거지.\”

이런 독백을 들으니, 난 갑자기 미칠듯 바다로 가고 싶어 졌다. 데낄라 한병, 레몬과 소금과 같이.

오늘 촬영하고자 했던 계획은 나의 복통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끙끙거리며 하루종일 침대위에서 아르마딜로 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놓은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굉장히 우울하다.

Bwv1079중 제1곡 Ricercare – Bach

차가운 공기가 일고 있는 어느 희뿌연 오전에

창문으로 흰빛이 찌르는
성당의 한 가운데 조용히 앉아서
아무 말 없이
미동도 하지 않은체
가만히 들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런 기분이다.

마법.

마실을 나갔다.
딱히 큰 일도 없거니와 겸사겸사. 얼굴도 볼 겸. 그렇게 겸사 겸사.

팩토리에서 맛보는 원두커피 냄새가 중단된건 제법 오래전 일이다.
여차 저차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거겠지만. 항상 그렇듯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가지다.

몇개월 전부터 팩토리에서 커피를 마셔야지 마셔야지 했지만,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 날은 왠일인지. 나갈때 부터 원두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찌되었건 내 자금 사정상 상당히 사치를 부리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와서 오랫만에 혼자 오도카니 커피 마실 생각을 하니, 가끔은 이런 사치를 부린 자신을 책망하는게 조금은 누그뜨려졌다. 그런데, 한가지 잊은게 있었다. 드립핑 페이퍼가 한장도 없다.

왠지 김이 팍 세어버렸다.

다음날 느즈막이 나가서 페이퍼를 샀다.
커피 냄새가 제법 좋다. 게다가 원두도 상당히 고급이다.
물맛도 좋지 않고, 천천히 드리핑 하는것도 아닌 메이커에서 뽑아내는거라 제대로 된 커피맛이 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좋은 기분이다. 오랫만이라서 그런지 맛도 괜히 좋게 느껴진다.

약 2년간 고장난체 그대로 방치해둔 전기스탠드가 있다. 디자인은 아주 단순해서 특별히 멋있다던지 하는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70~80년대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쇠로된 갓전등. 그런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고장난 뒤론 고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계속 그렇게 방치해둔체 먼지만 폴폴 쌓여간다. 그렇게 쌓이면 쌓이는데로 손대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아마 앞으로도 고칠 날은 없을듯 싶은 느낌이다. 솔직히 이 전등은 나에게 있어선 조그만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가만히 놔두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전조도 없이 전자부품상에 들려서 220v 토글 스위치 하나를 구입했다. 그렇게 부품만 구입하고 또 몇일을 보냈다. 어쩐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 \’스위치\’는 책상위에 가만히 누워만 있다.

오늘 잠시 밖을 나가서 시금털털한 바닷내음을 느끼며 거리에 나섰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를 울러메고. 언제나 그렇듯 귀에는 이어폰이 울린다. 타박 타박 타박…

서점에 들려서 책 두권을 샀다. 와아. 완전 거지다.

테스터기로 저항을 체크하고, 전기줄 역시 끊어진 곳은 없는지 세심하게 체크를 했다. 그리고 전등을 뜯고, 인두기의 열을 미리 올려놓고, 배선을 새로하고 납땜을 깔끔하게 다시 해주었다.

불이 들어온다.

잠들기 전.

비가 한참 오는 봄날, 벚꽃이 만개한 나무 밑에서 비와 떨어지는 차가운 벚꽃을 맞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늘을 올려다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랫만에 밥을 하다가.

아주 간만에 쌀을 이용한 밥을 했다.

밥솥에 적당량 쌀을 넣고 씻기고 물을 떠내고 약 10~20분 정도 불린다음
전원을 올린다.

밥할때는 생각 못했었지만, 막상 냉장고를 열어보니 슬라이드 필름만 몇개 남아있고, 찬거리가 될만한게 거의 없었다. 남은건 계란 몇알 정도. 그나마 정말 다행스럽다.

낡은 프라이팬과 조금 남은 소금과 조금 남은 후추와 식용유를 들고 나왔다. 불을 올리고 식용유를 뿌리고 살짝 달구어질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 없었다. 계란을 깨고 투명한 액채가 하얗게 변해갈때 즈음, 왠지 기분이 아주 조용히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럴땐 무표정이다.

익어하는 계란을 멀겋게 바라보며 갑자기 떠올랐다.
\’죠제와 호랑이와 물고기\’ 왠지 그 영화는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계란은 이미 익을대로 익어서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스크램블 에그로 하고 싶었는데…

밥그릇과 젓가락을 가지고 와선 밥을 펐다.
그리곤 밥을 입으로 옮기고 타들어간 계란도 입으로 옮겼다. 조용히 계속 반복했다.

마지막 생선굽는 장면이 계속 맴돈다. 그리고 노래가 나온다.

\’내가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는 대강 백가지정도 있어\’
로 시작하는..

몹쓸 영화다.

KodaChrome

– Kodachrome – Simon & Garfunkel

When I think back
On all the crap I learned in high school
It\’s a wonder
I can think at all
And though my lack of education
Hasn\’t hurt me none
I can read the writing on the wall

Kodachrome
You give us those nice bright colors
You give us the greens of summers
Makes you think all the world\’s a sunny day, oh yeah!
I got a Nikon camera
I love to take a photograph
So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If you took all the girls I knew
When I was single
And brought them all together for one night
I know they\’d never match
My sweet imagination
And everything looks worse in black and white

Kodachrome
You give us those nice bright colors
You give us the greens of summers
Makes you think all the world\’s a sunny day, oh yeah!
I got a Nikon camera
I love to take a photograph
So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Leave your boy so far from h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푸훗…

나도 니콘카메라 가지고 있는데 코다크롬을 직접 써본일이 없다.

자위

요즘엔 사진을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는게 한두번이 아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들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진은 나의 숨통을 조여온다. 단순히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사진 그 자체가 사신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고통인것은 이미 오래전 부터 이야기다.

좀더 살아보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나이도 모자라고 생각과 마음이 모자라서고 모자라고 부족한 인간이어서 그런지, 하면 할수록 더더욱 힘들고 고통스럽다. 예전엔 객기에 사진을 찢고 필름을 태우고 카메라를 집어던졌지만, 지금은 그런걸로 잠시간의 갈증이나마 해소될리 따위 없다. 묵묵한 무표정의 얼굴만이, 견딜 수 있고 대항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말로 그만두자. 두눈 질끔 감고 그만두는거다. 어느 영화에서도 그러지 않았는가, 1분마다 새로운 선택의 인생이 있는거라고. 나쁘지 않은 거래다. 사진이라는 지옥에서 탈출하여 나 자신을 다독여주고 싶다. 하잘때기 없는 사진따위에 나 자신을 먹히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난 상상만해도 내가 사진에게 먹히는 그 느낌과 촉감을 분명히 똑똑히 느낄 수 있다. 그래 그간 수고했다. 고생많았다. 라고 해주고 싶다. 아직까진 그대로 썩 늦은 나이는 아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는 것도 배우 보람찬 일 일것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도 왠지 좋은일 일지도 모른다. 현명하고 총명한 아내와 나와 아내의 핏줄기를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물론 그만큼의 노력과 댓가는 필요하겠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것을 막아주는 일들이 있으니, 천상 팔자 탓으로 돌리는게 속이 편할지도 모른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지금껏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사진이다. 난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난 도대체 얼마나 앞으로 더 살아가야 얼마나 더 많은 경험과 노력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사진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진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너무나도 아득하다.

이별했다.

난 그녀에게 2년 4개월 동안 꼭 전해주고 싶은게 있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지 아닐진 모르겠지만.

그 동안 작업실에 있던 그녀의 물건을 돌려주며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진심으로 마지막 남아있던 힘을 쥐어짜며 전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녀는 헤어지는 순간에도 나를 두번 죽였다. 나의 죄값중 일부다. 당연히 슬프다.
아직까지도 어떤 부분은 철부지 같은 모습이 보이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믿는다. 2년 4개월 동안 내가 봐오고 느꼈던 그녀는 충분히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녀가 나선 작업실 검은 철문이 작은 쇳소리를 내며 닫히고 계단 내려가는 소리를 들을때.
그녀가 삶을 행복하게 살아 갈수 있길 진심으로 축원했다.

그리고 나에겐 그간의 죄를 갚아야 할 시간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이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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