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시간이 제법 흘렀다.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반 시체가 되어간다는 감각을 지나, 누런 고름의 비린내를 남긴 체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3년의 시간을 넘어 마주하고 확인을 했다. 그리고 싫든 좋든 나는 또 한 번 피할 수 없는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지막은 신주쿠 교엔이였다. 그날로부터 인간으로서 나를 이루는 중심 혹은 나라고 하는 인간의 축이 변한 세 번째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의지나 바램따위와 상관없이 네 번째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이것은 도망칠 수도 피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피할 수 있다면, 도망칠 수 있다면 제법 댓가를 치러도 좋겠다는 마음이다. 이 정도 횟수를 반복하면 익숙할 법도 하지만, 무엇이 어떻게 될지 예측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은. 나에겐 두려운 것이다.
출발하기 불과 수일 전에서야 여권의 10년 유효 기간이 지난 것을 알게 되었다. 발급에 일주일이 걸리는 경우도 있는 터라 어마어마한 귀찮음을 감수하며 구청에 신청했다. 다음날 서울 출장을 갔다 남은 시간에 오랜 친우를 만나서 한강을 제법 걷고 담배를 피우고 매점에서 파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맛이어서 웃음이 터지는 커피를 길게 그리고 맛있게 마셨다. 연락할까 싶은 여자 몇 인가 머릿속을 잠시 돌았지만 관두었다. 바로 저녁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터미널에 도착하여 새까만 밤 속에 있던 하얀 목련을 몇 장 찍었다. 작업실에 도착하니 밤 12시가 되었다. 그리고 도쿄에서 개인전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의 서류 뭉치가 담긴 항공 우편을 받았다.
깊고,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무척 길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종류의 기쁨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무척 지쳤기 때문일 것이다. 서류를 주의 깊게 세 번 더 읽고, 잠시간 그대로 의자에 깊숙이 파묻힌 채 불 꺼진 작업실에서 불 꺼진 모니터를 어둠 속에서 응시했다. 커피를 아주 진하게 내리고 담배를 피우고 이상하리 만치 배고프지 않았음에도, 한참 시기를 놓친 저녁 끼니를 억지로 꾸역꾸역 밀어 넣고 긴 밤을 견디다 잠이 들었다.
타이밍이 좋았다면 좋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정신적 도살장으로 끌러가는 것 외엔 도쿄에서는 딱히 가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해야만 하는 것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번 도쿄행과 전시 결정의 시기가 겹친 덕에, 해당 전시장 조명 특성을 계측하는 것만으로도 조금 의미가 있을 것이다. 사사롭지만 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하면 좋고 하지 않아도 그리 문제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나에게 있어서 마음이 옥죄는 느낌을 완화 시켜 줄 것이다. 안 해도 그리 문제가 없는 일을 한다는 일련의 흐름은 나에겐 그런 것이 되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몸을 짓누르는 중력이 목 뒷부분을 뻐근하게 한다. 가속도를 내고 있는 비행기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오르는 순간을 나는 좋아한다. 일상에선 거의 느낄 일이 없는 중력에 잡혀있던 나의 몸이 엄청난 힘으로 탈출할 때,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리에서 관성과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중력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랜딩 기어를 집어넣을 때 꺼꺽거리는 정상적이지만 불길한 소리. 기류를 올라타고 내려 타며 흔들거리는 느낌, 기체 전체가 오른쪽으로 롤을 할때 몸 전체가 쏠리는 일련의 이륙 시퀀스 그 자체를 좋아한다. 맛대가리 없는 싸구려 기내식을 밀어 넣고 잠시간 눈을 감았다.
비행기의 오른편으로 후지산이 지나갈 때 즈음의 외벽 온도계는 영하 48도를 가리켰다. 공항에 도착해서 1박에 만 오천 원이라는 믿기 힘든 가격의 저렴한 숙소가 있는 신주쿠까지 갔다. 원래라면 조그만 사무실 용도의 방 하나에 2층 침대를 우악스럽게 우겨 넣어 16명을 수용하는 어떤 종류의 시설 느낌이다. 하지만 나무관과 같던 이전 캡슐 호텔에 비하면 가격도 그렇고 여러모로 낫다. 어디선가 딸기 캬라멜과 흑설탕이 녹을 때 냄새와 싸구려 화장품과 싸구려 버터와 사과잼 들을 한꺼번에 섞은 다음에 유통기한이 지나고 살짝 발효되기 바로 직전의 향기가 난다든가, 소위 정상적인 게스트 하우스처럼 라운지 같은 곳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여자에게 작업을 건다든가 술을 같이 마신 다던가 하는 정겨움 같은 건 전혀 없다. 하지만 나에겐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동생을 만나고 밥을 먹고 담배를 조금 피우고 잠시 헤어진 뒤 약속했던 사람과 9년 만에 만났다. 여러 가지 것들을 기억해주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얼굴을 보니 문득 세월의 거대한 흐름이 한차례 이상 지나간 흔적이 남은 얼굴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원칙이 대단히 중요한 사람임에도, 여러 가지 배려를 받았다. 무척이나 고마웠다.
9년이라는 것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너무나 긴 시간이다.
다시 동생과 합류해 저녁을 먹고 간단히 맥주를 마시고 유통기한이 몇 년은 지난 카라멜 향이 나는 숙소에 몸을 뉘었다. 한 것은 거의 없었지만 몸이 고단했다. 중간에 두어 번 깼지만 이층 침대의 무척 낮은 천장을 물끄러미 보다가 다시 잠들길 반복했다. 겨우 잠에서 깨어 일어나니 거울을 보지 않아도 확연히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이 퉁퉁 부어있었다. 미지근한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바로 길에 올랐다.
아직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 이대로 그 장소에 갈 것인지 아니면 긴자에 가서 사전에 처리하고 확인해야 할 것인지. 일기예보를 살펴보니 오후부터 비 소식이 있고 다음 날은 날씨가 좋다고 한다. 내가 가야 할 그곳은 날씨가 좋아야만 했다. 그래서 긴자에 가기로 하고 마루노우치 선에 몸을 실었다. 몇 정거장 가던 중 신주쿠교엔앞 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대로 내릴까 말까 하다가 관두었다. 만약 간다고 하더라도 그 장소에 간 다음 필요로 할 때 가면 될 일이다. 딱히 예정된 일도 급한 일도 정해진 일도 없었다.
긴자에 도착해서 일부러 조금 걸었다. 돈의 자리라는 지명 그리고 버블시대때 어마어마한 돈을 꿀럭 꿀럭 들이마시고 동시에 만들었던 역사와 달리,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지하철에서 지상까지 나는 길은 무척이나 낡고 오래되어 금이 간 곳과 보수 흔적을 보며 지상으로 나왔다. 긴자에서 처리해야 할 일을 마치고 밖을 나오니 날이 우중충하다. 적당히 길을 걷다가 아키하바라에 가기로 했다. 하지만 막상 보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뭘 사고 싶은 것도 전혀 없었다. 문득 배가 고파 460엔짜리 싸구려 가츠동을 먹었는데 참 맛이 없었다. 묵묵히 밥을 밀어 넣고 다시 거리로 나서서 걸었다. 단 한 컷도 촬영을 하지 않았고, 단 한 컷도 찍지 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봐왔던 아키하바라 중에서 가장 메마른 느낌이었다. 아는 동생을 불러내어 저녁 시간을 같이 보냈다. 조금 걷고 저녁을 먹고 다시 조금 걸어 시부야에서 후식으로 스트로베리 밀푀유와 훌륭한 맛의 커피를 먹었다. 둘의 궁합이 너무나 훌륭해서 적잖게 기분이 풀렸다.
갑자기 비가 엄청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맞으며 촬영을 하는데 등 뒤에서 슬쩍 우산을 받쳐다 주었다. 걸으면서 백여 컷 정도를 촬영했다. 시간이 너무 늦어 숙소로 돌아가서 잠을 자고 일어났다. 이스트를 넣은 반죽처럼 몸과 손가락과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다. 내일은 기필코 날씨가 청명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날씨가 좋았다. 두렵다. 카메라와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 억지로 길에 올라 목적지를 향했다.
플랫폼에 내려 길에 오르니 명확한 악의와 저주를 품은 햇살이 비열하게 웃으며 내 심지 속 단단한 얼음을 기분 나쁘게 핥는다. 불쾌하다. 우에노 역까지 이동하는 전철 안에서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평온함을 느꼈다. 일종의 포기라고 해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에노 공원에 도착하여 묵묵히 계단을 오르니 평일임에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꽉 들어찬 풍경이 나를 압도했다. 갑자기 숨이 가빠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도망가면 될 일이다. 도망가도 아무 상관이 없을 것이다. 마침 근처 구석 자리에 흡연 장소가 눈에 띄어 담배 한 개비 분의 두려움을 태워내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부드럽게 감싸는 시원한 바람과 티 없이 맑은 따스한 햇살과 분홍색 꼭지가 살짝 보이는 개화 직전의 봉우리 절반과 활짝 핀 벚꽃 절반이 한 그루 나무에 있었다. 그것은 겨울과 봄 사이의 엷디엷은 찰나의 경계였다. 그런 것들이 끝이 보이지 않게 늘여져 있었다. 수많은 노란 머리의 사람들, 많은 중국 사람들, 막 사귀기 시작한 선명한 빛의 커플들, 느긋한 중년 커플들, 노인들,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부부들. 그리고 문자 그대로 평범한 하루일 뿐인, 평일 이 시간에 여기에 올 수 있는 직업 혹은 상태의 사람들이 각자의 조그만 공간을 가지고 걷고 앉고 먹고 마시고 사진을 찍고 찍히고 웃었고 때론 무표정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을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드문드문 촬영을 하기도 하고 병신 같은 벚꽃을 찍기도 하고 그 병신 같은 벚꽃을 찍는 사람들을 찍기도 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 걸었다.
아름다운 봄 이였다.
3년의 밀도를 가진 조그만 총알이 아릿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나의 뇌를 뚫고 지나가는 감촉이 느껴졌다. 조깅을 하듯 숨이 조금 가빠오기 시작했지만 멈추지 않고 걸었다. 수많은 벚꽃이 굵은 비계 덩어리처럼 나의 옆을 지나간다. 걸어도 내가 걷는 것이 아닌 나는 멈춰있고 풍경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어지러웠다.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지만 침착하게 진정을 하고 마침 근처에 보이던 큰 나무 그늘에 앉아서 담배를 한 대 태웠다. 정신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가 어디인지, 얼마나 걸어 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아까와 똑같은 사람들의 풍경이 눈앞에 보였다. 며칠째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땀이 났는지 왼쪽 어깨의 살갗이 벗겨진 것 처럼 쓰라리고 따갑다. 그것이 나를 진정 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담배 한가치를 더 태우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길 중앙으로 들어서 몇십 걸음을 옮겼다. 분명 진정 했을 터이다.
메마른 전조조차 없이 눈 뜬 채 그대로 눈꺼풀에 물이 조금 맺혔다. 몇 번인가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지만, 억누르려 하면 할수록 어떻게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다. 가다가 잠시 멈추고 사람들을 조금씩 보고 진정이 된 것 같으면 다시 걷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쏟아지듯 눈물이 터졌다. 대로에서 벗어나 옆으로 몸을 피했다.
온 사방이 햇볕이었다. 태양 아래서 누런 카메라 가방과 검은 카메라를 �タ㈇플� 회색 옷을 입은 내가 콧물까지 흘리며 울고 있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몇 시간이고 울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동시에 빨리 끝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했다. 평생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우는 것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멈춰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콧물을 풀고 그자리에서 그대로 담배를 두 개비 피우고 높다란 쓰레기가 일사불란하게 쌓여 있는 것을 보고 할머니와 늙은 여자와 중년의 여자와 젊은 여자와 어린 여자들의 수다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와 늙은 남자와 중년의 남자와 젊은 남자와 어린 남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
기린이 무척 보고 싶었다.
그대로 우에노 동물원까지 입구를 찾아 입장료를 치르고 멍청할 정도로 넓은 동물원에서 기린을 찾았다. 두 시간 가까이 찾았지만 결국 기린을 보지 못하고 뒷출입구로 나왔다.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30분 정도를 빙 돌아 다시 우에노 공원에 갔다. 희한할 정도로 아까와 풍경이 다르지 않다. 다시 걷고 사람들을 봤다. 그리고 같은 풍경임에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래. 이거면 된 거다. 이 짓거리를 하기 위해서 나는 온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우에노 공원을 빠져나오니 그제서야 해야 할 남은 일들이 생각이 났다. 모조리 해치운 다음 약속 장소인 신주쿠에 가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키치조지의 이노가시라 공원에도 갔다. 질척한 봄의 어두운 밤 검은색 호수 위에 떠 있는 오리 보트를 찍었다. 담배를 좀 피웠고 좀 걸었고 좀 마셨다.
다시 혼자가 되어 가부키쵸를 천천히 걸었다. 많은 젊은 남자와 많은 젊은 여자와 캬바쿠라에서 여자가 나와 손님을 배웅하는 모습과 흑인 삐끼들 그리고 토에이 극장 앞 광장이 휑하니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허무한 광경을 보았다. 온갖 욕망이 들끓는 최대 환락가라고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침잠한 느낌이다. 그 일대를 네 번 돌며 촬영을 하고 마지막엔 골든가로 향했다. 쇼와시대에서 그대로 멈춰 버린듯한 어둑신하고 꿉꿉한 간판과 좁은 골목과 사람들을 보고 달팽이 위에 나팔을 부는 소년의 청동상을 찍었다. 이 또한 봄이었다.
숙소에 가는 길을 일부러 빙글 돌아서 멀게 멀게 걸었다. 도착하니 거의 밤 3시쯤이 되었다. 숙소의 문을 여니 한국 여대생 한 명이 족짜 만한 테이블에서 컵 신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약간의 농담을 하고 자신 몫의 컵 신라면을 나에게 권했다. 사양하지 않고 먹었다. 고향의 맛이 나지 않느냐는 여대생의 말에 네, 그러네요. 라고 말했다. 별 감각 없이 기계적인 신변잡기를 예의를 갖춰 잠시 나누고 나는 내일 귀국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정말 아무래도 상관 없을 이야기를 몇마디 나누고 안녕히 주무세요라는 말을 들은 후, 다시 숙소에서 나가 담배를 몇가친가 태웠다. 당장 변한 것은 없었다. 그리고 딱딱한 카스테라 같은 외로움이 발목 복숭아뼈 정도까지 잠겼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지만 바로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고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돌아갈 채비를 하고 아침을 먹는 뒤, 귀국을 위한 사사로운 절차를 빈틈없이 클리어 해나갔다. 작업실의 철문을 열고 도착하니 저녁 8시 가까이 되었다. 카메라 가방과 배낭과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동안 몸을 의자에 길게 뉘인 체 눈을 감았다. 무척 피로했다. 얼만가 지난 후 먼저 고개를 들고 뻐근한 뒷목을 풀고 몸을 일으키고 다리에 힘을 줘 일어나서 카메라 가방을 정리하고 렌즈와 카메라를 정리하고 배낭을 정리해서 넣어두고 빨래를 하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고 달라지지 않았다. 동시에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 변해버렸다. 9년 혹은 3년이라는 것은 순간이기도 하지만 당연하게도 너무나 긴 시간인 것이다.
전등을 끄고 몸을 침대위에 던져놓고 어둠속에서 천장을 잠시간 보았다. 새벽의 창문 밖에서 세어들어오는 불빛이 천장에 묻어서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했다. 꼼짝도 하지 않고 몇분인가 보다가, 그대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