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미에선, 나름 시절 좋았던 한때 한국에서도 오디오를 의욕적으로 설계 생산하던 때가 있었다. 그 중에서 한국 스피커에 있어서 나름의 자존심이라 불리웠던 동양 마샬의 M-104 스피커가 있다. 기본형은 당시 유행했던 4웨이 페이퍼 콘 시스템으로 네트워크의 주파수를 설정 할 수 있었고 슈퍼 트위터까지 달린 구성으로 지금 다시 봐도 나름 호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어딘가 JBL이라던가 야마하의 향기가 적당히 섞인 이도 저도 아닌 어떻게 보면 지극히 한국적 정서의 모습이였는데, 이 조합이 의외로 좋았다.
이 스피커와 함께 한 시간은 15년은 족히 넘었지 싶다. 절망의 끝에서 언제나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듯 없는듯 항상 나를 지켜봐주었다. 기분이 좋을때, 혹은 외로움의 심지가 딱딱해져 화가난 듯한 웃음이 터질때도 항상 묵묵히 나와 함께 있어 줬다. 정말 많은 음악을 들었다. 크기가 제법 있는 편이였기에 쎄멘 보로꾸를 밑에 고여놓고, 가로로 눕혀서 의자처럼 사용하기도 했다. 거기에 귀여운 여자 아이를 앉혀놓고 일부러 베이스가 크게 울리는 음악을 틀어놓고는 표정이나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보기도 하고 촬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아에 천장 위에 달아놓고 음악이 위에서 쏟아질듯한 위치에 놓고 사용한 적도 있었다.
어떤 식으로 놔두어도,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언제나 항상 묵묵히 그 자리에 있는듯 없는듯 나를 지켜봐주었다. 어쩌면 이 녀석 때문에 나도 인식하지 못한체, 목숨을 구제 받았었던 일이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소리 자체는 대단치 않았다. 적당히 뭉글하고 적당히 공기감이 있고 적당한 심지가 있었고 적당한 따뜻함과 적당한 위안과 적당한 적적함이 있었다.
시간이 흘러 네트워크 조정 노브에 탄소가 끼고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음에도 일부러 딱히 손대지 않았다. 제일 먼저 슈퍼 스위터가 침묵했다. 점점 고역대의 소리가 뭉글어지면서 뭉툭하게 익은 홍시 처럼 소리가 변했다. 나는 이것이 좋았다. 문자 그대로 24시간 음악을 틀어놔도 피곤 하지 않았다. 라운지 음악의 BGM처럼 들릴때가 있는가 하면 때론 아무런 예고 없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다. 굳이 고치고 싶지 않았고 더 좋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럭저럭 십-사오년을 함께 지냈을때, 일년 반 동안 벼르고 벼르던 새 스피커를 들였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만듦새가 무척 뛰어나며 포커스, 스테이징, 다이나믹스, 콘트라스트, 리스판스, 토널레인지 그 어느 것 하나 이 가격대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인 톨보이 스피커였다. 대단히 만족 하였다. 게다가 나는 톨보이를 좋아한다. 비열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앰프 였다. 오랜 친구와 후배의 호의로 간만에 닥치는데로 포식을 했다. 다양한 앰프를 물리고 감을 다시 찾아갔다. 흥분되고 흥미로우며 즐거운 시간이였다. 그렇게 몇개월의 시간이 따끔거리며 지나갔다.
어느 한날, 문득 생각이 들어 무척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던 스피커의 네트워크 주파수 노브에 끼어있던 탄소를 털어내었다. 오랫동안 반쯤 뜨고 있던 눈을 하고 있던 부드러운 표정의 스피커가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듯 했다. 그것에는, 그 어떤 슬픔도 없었다. 적잖이 가슴이 뭉클해졌다. 이 초연함에 순간 마음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언제나, 늘 나를 지켜봐주고 있었다. 수 많던 일들이 나를 덮쳐오고 뚫고 지나가고 스쳐 지나간들 그는 있는듯 없는듯 항상 나와 함께 있었다. 그 어떤 슬픔도 없는 초연함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음악을 듣고 공간을 들었다. 한 동안 눈을 감고 또 감고 또 감았다.
어제 이 스피커를 장터에 내놓았다. 진작 장터에 내놔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을 실제로 실천에 옮기기 까진 거의 반년을 소모해야 했다. 단순히 정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아직 새로운 스피커와 공간이 서로 충분히 녹아들지 못했다라는 느낌이 있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하다 못해 다시 도망칠 익숙한 장소를 마련해두고 싶다는 나름의 합리적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내놓은지 몇시간 되지 않은 오늘 바로 팔렸다. 약속 시간이 되자 다대포에 살고 있는 슈트를 입은 남자가 작업실에 왔다. 테스트라는 명목하게 마지막으로 팔리기 전, 이 소리를 다시 가슴속에 담아두었다. 탄소를 털어내었다 한들 그래서 겨울 잠에서 깨어났다 한들, 결국 이런 버릇, 저런 버릇이 여전히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의 물살 만큼 숱하게 변해왔지만, 결국 가슴속에선 변하지 않는 것이다. 몇가지인가 음악을 계속 들었고 볼륨을 조금씩 높여갔다. 그리고 이 녀석이 제일 힘들어 하는 음악을 큰 볼륨으로 몇곡인가 들었다.
구매하려 하는 중년의 남자에게 커피를 내주고 몇 가지인가 이야기를 하고 음악을 몇곡 더 들었다. 갑자기 팔기가 싫다. 저 안팔겠습니다.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 그 순간 ‘이제 됐습니다. 무척 마음에 듭니다.’ 라고 남자가 말했다. 나는 다행입니다. 라고 화답을 하고 상대방에게 약간의 부담을 주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 스피커는 이럭저럭 이십여년 가까히 저와 함께 했던 스피커 입니다. 부디 잘 사용해주세요.
스피커를 차에 태우고 마지막으로 그릴과 몸체를 손에 대고 잠시간 온기를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새로운 주인은 이 스피커를 잘 사용해줄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시 한번 남자에게 이야기 했다. 모쪼록 잘 사용해주세요.
작업실에 돌아와서 몇개월 정도 지난 새 스피커로 다시 음악을 들었다.
포커스, 스테이징, 해상력, 다이나믹스, 콘트라스트, 리스판스, 토널레인지 그 어느 것 하나 이 가격대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인 톨보이 스피커다. 일년 하고도 반년 동안 고민했던 결정체라 할만 하다. 대단히 만족 스럽다. 그 바로 옆, 옛 스피커가 있는 자리가 유난히 크게 비어 보인다.
왼쪽 아래 가슴에서 ‘우-웅’ 거리며 멍울이 지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