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그로부터 딱 한 달이 지나는 날이다.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진정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 달이 지난 나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과 복수에 물이 가득 찬 것처럼 혹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의 가쁜 호흡 같은 감정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일상을 조금 바쁘게 지내면 일시적 마취 효과라도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당장 쓸 때는 없지만 예전부터 간간히 해왔던 비생산적이며 반복적인 것들에 조금 더 몰두했다. 덕분에 관련 기술들은 조금 더 단순해지고, 조금 더 결과가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도피처에서 영원히 있을 순 없기에, 결국 다시 땅 끝에 발이 닿고 나면 오히려 그간 도망쳤었던 시간 만큼의 분량을 더하고 거기에 이자까지 더해서 나를 깔아뭉갠다. 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점점 악화되었다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친구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가 복잡하여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순진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복잡하다고 말하는 그가 잘 이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복잡하다는 관점으로 다시 보기로 했다.
복잡한 것은 단지 복잡하기에 잘 이해 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이 이야기가 복잡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적 준위 차이 혹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하면 끝날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중 한 가지가 있다. 이해 되지 않는 모든 것은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복잡하다고 해서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니듯.
다시 혼자로 돌아왔다. 언제부터였을까, 걷고 있다고 생각 했지만 사실 땅도 하늘도 바람도 꽃도 별도 달도 없는 공간이라는 개념 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그저 걷는다는 동작 혹은 행위의 형식만 반복 했을 뿐, 실제로 걷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을 일평생 해왔던 것은 아닐까.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명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마치 무한한 자유는 그 자체로 자유가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혹은 무한의 확률은 확률 그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오직 확률에 의해 발생한 사건과 사건의 중첩이 세계를 이어가듯 말이다.
산소가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다.
실제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힘들다. 신문지의 잉크를 졸여놓은 듯한 들숨과 날숨이 시커멓게 내려앉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죽을 리는 없다.
여행을 다녀오라는 말을 들은 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느낌이다. 분노와 허탈과 까만 들숨과 날숨, 엉킨 뇌수와 호흡이 가쁜 몸은 내가 원하고 바란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발버둥을 친게 아니다.
찰나의 시간차를 관통하여, 죽음으로 완성한 당신의 저주는 꽤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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