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지루한 단순 반복 노동의 연속이다.
하루 종일 단 한 번도 목소리를 내지 않은 채 그저 잉크와 종이의 데이터를 뽑고, 형광 증백제의 영향으로 일어나는 시각적 색 왜곡을 한계 안에서 중성화하고, 농도와 컬러를 확인하고 또 다시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시간은 그야말로 순간이라, 한 달이 거의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기기를 조율 중이다. 꽤나 성과도 있었고 때론 만족할 만한 지점까지 닿기도 했고, 어떤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 남기도 했지만 어찌 되었든 지금은 계속해 나갈 뿐이다. 이럭저럭 절반 정도는 온 것 같다. 데이터를 잡기 위해 지금까지 사용한 용지는 약 81제곱미터 정도다. 기기가 바뀌면서 이전과 다른 사소한 몇 가지 동작의 차이로 인해 귀중한 용지를 날려 먹은 것이 의외로 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나의 나쁜 버릇 중 하나가 튀어나온다. 그레이스케일이 부동소수점으로 쪼개진 다음 반올림되는 것이 싫어서, 51 스텝으로 나눠 정수로 움직이는 계산을 처음부터 다시 하다 보니 결국 시간과 돈은 더 들어간다. 그래서 결과물 차이가 드라마틱하게 다르냐 하면 들인 수고에 비하면 그렇지 않다. 하지만 그 차이가 작업 전체의 어조를 결정하는 경우는, 경험상 흔하게 있다.
흑백도 어느 정도 성과를 얻었다. 용지 특성에 따라 적절한 계조 선형성을 갖되 쉐도우 디테일의 뭉개짐을 최대한 방어하면서 선형성을 찾아가기 좋은 시작점을 찾는 것부터 살펴본다. 용지 자체의 색조가 있고 이에 따라 흑백의 색이 어느 정도 따라간다. 이것을 캐릭터로 인정하고 적절하게 맞춰갈 것인가 아니면 한계까지 밀어붙여 중성화시킬 것인가도 고민하던 부분이다. 최근엔 되도록 용지의 캐릭터를 존중하되 기본적으로 달성해야 할 구간을 닿도록 하고, 너무 삐쳐나간 것을 살짝 정돈하는 정도의 범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거의 20여 년 가까이 해왔던 암실 작업에서 필름과 인화지의 데이터를 뽑고 나서, 그 이후엔 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작업하던 것과 별로 다를 게 없다. 그 암실이 지금은 명실로 바뀐 것뿐 근본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지만 그중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옛날 암실에서처럼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처음 뭔가를 배우고, 익힌 만큼 세계가 넓어지는 감각이 컸던 청춘의 차이일까, 익숙한 정도의 차이일까, 아니면 이런 노력의 결과 끝에 내가 닿을 수 있는 것에 대한 미지의 기대가 있고 없고의 차이일까. 아니면 그저 검붉은 암등 아래서 현상 트레이에 담궈진 하얀 인화지 위에, 유령처럼 올라와 현실이 되어가는것을 목도하며 미동없이 올라오는 반복된 고동의 차이 일까.
다만 그래도 이렇게 흑백 프린트에서 농도가 정돈된 걸 보면 프린트 때문에 짜증 날 일이 없다는 것과, 그렇기에 주변의 것은 주변으로 두고 그저 작업에 오롯이 집중하면 될 뿐이라는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것을 말해주는 농도 데이터의 비포/애프터를 보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쉬어야겠다고 생각 했다.
다음 순서는 면화지 기반의 형광증백제가 들어 있지 않은 화이버 베이스를 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아주,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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