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 ProArt 모니터 감상기

내가 원하는 것은 단순했다.

30-32인치급
패널 균일도 보상 기능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100cd~160cd 범위의 안정적 밝기
장기적으로 믿고 쓸 수 있는 안정성

그 이상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밝기가 1,000cd 라던가, 명암비가 1,000,000:1 이라던가, 픽셀 응답 속도가 4ms 이하 라던가, 해상도가 5K, 6K 라던가, 주사율이 240Hz 라던가, 최신의 Mini LED 라던가, 텐덤 OLED 같은 건 생각하지도 않았다.

전부, 나에겐 필요 없는 것들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EIZO 였지만 CS 제품 라인업에는 30~32인치급 제품이 없다. 남은건 CG 계열이지만 현실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은 가격대라 선택지로 놓기에는 부담이 컸다.

몇 가지 대안을 훑어보다가 ProArt 계열이 눈에 들어왔다.
ASUS의 전문가용 모니터 라인업이었다.

32인치 4K
ProArt 라인업
넓은 색역 지원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균일도 보상기능
그리고 EIZO보다 접근성이 좋은 가격

스펙만 놓고 보면 내가 찾던 조건에 꽤 가까워 보여 매력적으로 보였다.

물론 스펙만 보고 결정하진 않기에 리뷰와 측정값을 찾아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눈여겨보던 모델의 깊이 있는 리뷰를 찾기 어려웠다. 내친김에 다른 제조사의 제품들도 이리저리 찾아봤지만 요즘 리뷰 흐름이 유튜브 중심으로 옮겨간지 오래라 심도 있는 리뷰를 찾기 어려워진것 같다.

그래도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 평균 델타 1 이하 공장 교정, 균일도 보상기능까지 들어갔다면 아무리 그래도 기본은 하지 않을까. 그 정도 기대는 합리적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물건을 받고 나서, 그 기대는 빠르게 흔들렸다.

처음 이상하다고 느낀 것은 균일도 보상 기능이었다.
균일도 보상을 켜면 화면이 더 좋아져야 한다. 적어도 나빠지면 안 된다. 그런데 이 모니터는 균일도 보상을 켜자 오히려 화면이 더 이상해졌다. 얼룩이 심해지고, 네 면 가장자리 쪽으로 전체 면적의 상당 부분에서 편차가 육안으로 바로 보였다. 계측기 측정조차 필요 없었다.

지금까지 균일도 보상 기능이 들어간 모니터를 여럿 봐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이건 ‘엄밀하게 보면 조금 아쉽다’의 문제가 아니다. 내가 뭔가 설정 같은 걸 빠트렸나?

공장 초기화도 해보고, 설정도 바꿔보고,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그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균일도 보정을 끈 상태가, 사실은 켜진 상태로 잘못 설정된 게 아닐까. 혹은 패널별로 개별 측정한 보정값을 넣은 것이 아니라, 어떤 공통 보정값을 일괄로 때려 넣은 것 아닌가.

물론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싶었다. 공장에서 델타 1 미만의 개별 캘리브레이션과 감마 보정을 거쳐 나온다는 제품이 그렇게까지 말이 안 되는 일이 있겠어?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다음 문제들을 겪고 나자, 그 ‘설마’라는 말도 힘을 잃었다.
바로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이었다. 제조사에서 제공하는 전용 프로그램인 ProArt Calibration을 사용했다. 캘리브레이션 자체는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측정이 끝나고, 결과값을 모니터 내부 LUT에 저장하고 프로파일도 생성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일련의 절차를 끝낸 뒤 색이 이상해졌다.

원인을 한참 찾던 와중, 서브 모니터의 색이 좀 미묘하게 달라져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macOS의 모니터 프로파일 설정을 확인했다. 컴퓨터에 연결된 ‘모든 모니터’의 프로파일이 sRGB로 바뀌어 있었다.

결국 ProArt Calibration이 만든 프로파일을 직접 ColorSync 폴더에 옮기고, 수동으로 해당 모니터에 연결해야 했다. 서브 모니터의 프로파일도 원래 들어가야 할 것으로 설정을 바꿔주었다.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모니터에서 전용 소프트웨어는 그냥 부가 기능이 아니다. 그 장비를 믿고 쓰기 위한 중요 통로다. 그런데 그 통로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Custom 슬롯 관리도 이상했다.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을 지원하는 대부분의 모니터가 그러하듯, 이 모니터 또한 내부의 Custom 슬롯에 캘리브레이션 LUT를 저장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1번 슬롯에 HDR 캘리브레이션을 저장했다가, 나중에 같은 1번 슬롯에 Display P3로 다시 캘리브레이션하면, 1번 슬롯에는 Display P3 LUT가 있어야 한다.

실제로 Display P3로 캘리브레이션했고, 작동도 확인했다.
그다음 2번 슬롯에는 Adobe RGB를 넣었다.

그런데 순서가 마음에 들지 않아 1번 슬롯에 다시 Adobe RGB를 넣으려고 OSD에서 선택했더니, 갑자기 예전에 넣었던 HDR 모드가 호출됐다.

분명히 Display P3로 다시 저장했던 슬롯에서, 그 이전에 했던 HDR 캘리브레이션이 다시 튀어나온 것이다. 삭제된 파일 복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이쯤 되면 사용자는 묻게 된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모드는 정말 내가 저장한 그 모드인가. 이 슬롯에는 지금 어떤 LUT가 들어 있는가. 방금 저장한 값은 실제로 저장된 것인가. 아니면 UI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가. 이런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치명적이다.

또 다른 부분으로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와 외장 캘리브레이터의 매개변수를 동기화하는 기능도 개념적으로는 좋았으나, 실제로는 과정 중에 멈춰버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혹시 macOS 문제인가 싶어 Windows에서도 시도했다. Windows 10과 Windows 11 클린 설치 환경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연결 방식도 USB-C DP Alt Mode에서 DP 포트와 업스트림 USB 조합으로 바꿔봤다. 그래도 ProArt Calibration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났으면 그나마 나았을지도 모른다.
DisplayWidget Center도 마찬가지였다. 제조사의 안내 페이지를 보면 꽤 편리해 보였다. 일상에서는 오히려 이 프로그램을 더 자주 쓸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반긴 메세지는 DDC/CI 문제가 있다는 알림이 떴다. 권한 설정을 살펴봤지만 문제는 없어 보였다.
같은 환경에서 다른 모니터는 DDC/CI로 밝기 조절도 되고, 1D LUT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도 잘 되었다. 물론 ProArt 모니터 OSD에 DDC/CI는 켜져 있었다.

그나마 macOS에서는 실행이라도 됐는데 Windows에서는 아예 실행조차 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단순 버그라기보다, 장비를 둘러싼 운용 체계 전체에 대한 의심으로 번진다.

균일도 보상 기능 이상, 캘리브레이션 소프트웨어도 불안, 슬롯 관리도 믿기 어렵고 DDC/CI 통신도, 제조사 유틸리티도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도 처음에는 침착하려고 했다.
이 정도로 엉망인 것 자체가 문제이긴 하지만, 펌웨어 업데이트로 해결되는 경우도 있으니까. 그런데 같은 제조사의 다른 모니터들은 홈페이지에서 펌웨어를 찾을 수 있었지만, 이 제품은 펌웨어 업데이트를 찾을 수 없었다.

발매된 지 대략 1년 가까이 된 제품인데, 이런 문제를 방치한 채 펌웨어 업데이트 없이 놔두었다는 현상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혹시 홈페이지 관리자가 실수로 누락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제조사는 국가별 드라이버나 펌웨어 페이지가 다르게 운영되는 경우도 실제로 종종 있으니까. 그래서 다른 모니터의 펌웨어 페이지 구조를 기준으로 관련 태그를 바꿔 불러보기도 했으나 역시 없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제품 시리얼 넘버가 제대로 표시되지 않았다. 제품 등록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서 시리얼 넘버가 깨져 나왔고, 제품 등록이 불가능했다.

이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모니터는 패널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펌웨어, 소프트웨어, 보증, 등록, 캘리브레이션 이력, 프로파일 관리까지 하나의 운용 체계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본적인 식별 정보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이쯤 되자 마음은 거의 정해졌다. 사실 어지간하면 이 모니터를 쓰려고 했다. 사용자가 지뢰 루트를 피하고, 그 사이 펌웨어 업데이트가 나오면, 말도 안 되는 문제들은 사라질 가능성도 있다고 봤다. 균일도 보정을 켰을 때 오히려 얼룩이 생기는 문제도, 그냥 그 기능을 끄고 쓰면 꽤나 나쁘지 않았다. 패널 자체의 기본기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문제가 겹겹이 쌓인 와중에 이 정도 까지 되어버리니 더 이상 믿기 어려웠다.
결국 반품 접수 후, 수거일도 잡혔다.

그런데 중간에 상황이 한 번 더 꼬였다.

이틀 동안 위의 모든 문제를 겪고 포기한 뒤, 반품 접수 다음날 다시 Windows 컴퓨터에서 문제의 그 프로그램들이 작동했다.

어제까지 안 되던 것이 오늘 갑자기 된다. 원인은 모른다. 실패 조건도 모른다. 성공 조건도 모른다. 이건 안심이 아니라 더 큰 불안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간헐적 정상화는 전문 작업 장비에서 안정성이 아니다. 어제 안 됐던 원인도 모르고, 오늘 된 원인도 모른다. 다음에 다시 안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금 작동한다고 해서 장비가 정상이라는 뜻이 될 수 없다. 그 와중에 굳건히 일관성을 유지한 것도 있었다. 시리얼 넘버는 여전히 정상 표시되지 않았고, 내장 전동식 캘리브레이터와 외장 캘리브레이터 사이의 매개변수 전달도 안 되었다.

짜증이 배어나왔다.
물건에 문제가 있으면 반품하면 된다. 절차상으로는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척거릴 정도로 짜증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작업 기준으로 삼을 장비를 찾고 있었고 판단과 결정을 하기 위한 환경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오롯이 집중한 시간을 사고 싶었다. 그런데 이 모니터는 계속 나에게 장비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이 경험 이후 자연스럽게 NEC PA가 떠올랐다. 하지만 NEC PA 라인업은 더 이상 없다. Dell은 애매하고, LG는 내 기준에서는 장기 기준기라기보다 임시 장비에 가깝다. BenQ SW의 32인치 라인업은 너무 오래되었고, BenQ의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소프트웨어가 아직까지도 macOS에서 Intel 바이너리만 지원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EIZO와 NEC를 둘 다 사용했던 경험으로, 둘 다 단순히 패널이 좋은 모니터가 아니라 색을 판단하고 결정하기 위한 시스템에 가까웠다. 여기에 더해 비슷한 스펙이면 EIZO보다 NEC의 가격이 더 접근성이 좋은 가격인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도 제품의 품질과 기능 신뢰성은 매우 좋았다.

NEC의 SpectraView 캘리브레이션 구조, MultiProfiler, 내부 LUT, 색공간 에뮬레이션, 유니포미티 보정 강도 조절, 전원 켜고 3분 만에 목표 휘도까지 자동보정하는 기능 등 나열하면 길지만, 핵심은 기능의 수가 아니었다.

그 기능들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작업자가 장비를 믿고 쓸 수 있게 하고, 캘리브레이션과 색공간 에뮬레이션의 논리와 작동이 명확히 분리되어 워크플로우에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소프트웨어가 장비의 부속물이 아니라 장비 철학의 일부로 작동한다.

NEC PA는 좋은 모니터라기보다, 작업을 거듭하며 수많은 판단을 받쳐주는 하나의 체계였다. 그런 NEC Display가 Sharp로 넘어간 뒤, 모니터계의 근본인 MultiSync 브랜드의 최상위 컬러 크리티컬 라인업인 PA 시리즈가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NEC PA가 겨냥했던 시장은 전체 모니터 시장에서는 매우 작은 전문 니치 시장이었다. 고객 수는 작고, 개별 판매가는 높고, 요구 품질은 매우 높고, 지원 비용도 높았을 것이다.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패널 선별, 공장 보정, 보증, 장기 지원까지 생각하면 운영 부담도 컸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이런 제품을 사는 사람은 2~3년마다 바꾸지 않는다. 7년, 10년씩 쓴다. 좋은 제품을 만들수록 오래 쓰이고, 오래 쓰일수록 반복 매출이 줄어든다.
그게 시장의 역설이다.

제품은 훌륭했지만, 시장 구조가 그 훌륭함을 유지할 만큼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EIZO가 살아남은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고 느꼈다.

EIZO는 일반 모니터 회사라기보다, 의료, 관제, 산업, 보안, 크리에이티브 분야를 겨냥하는 고신뢰 디스플레이 회사에 가깝다. RadiForce, CuratOR, DuraVision, ColorEdge가 모두 같은 논리 안에 있다.

‘우리는 판단과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장소의 화면을 만든다.’

NEC PA도 품질은 훌륭했지만, Sharp/NEC Display 통합 후 회사 전체의 중심이 컬러 크리티컬 데스크톱 모니터에 남아 있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EIZO는 ColorEdge가 회사 정체성과 더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이것은 고신뢰도로 브랜드를 더욱 강화했다.

NEC PA는 훌륭한 제품군이었지만 회사 전략 안에서 보호받지 못했고, EIZO ColorEdge는 EIZO라는 회사의 정체성과 강하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성능, 품질, 신뢰성, 가격, 철학적 접근이 경쟁사보다 좋아도 제품은 사라진다. 이런 경험은 한두 번이 아니다.

품질이 더 좋은 제품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철학이 더 깊은 제품이 반드시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가격 대비 가치가 더 좋아도 사라질 수 있다.
좋은 제품이 반드시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

진짜 필요한 사람은 적다.
그 사람들은 오래 쓴다.
오래 쓰면 교체 수요가 느리다.
기능이 깊을수록 설명이 어렵다.
설명이 어려우면 마케팅에서 불리하다.
지원 비용은 높다.
시장은 깊이보다 회전율을 선호한다.
경영진은 기술적 완성도보다 반복 매출, 자본 효율을 본다.

이런 구조에서 NEC PA 같은 제품은 불리하다.

또 하나의 문제는, 좋은 제품의 가치는 때론 써본 사람만 알게 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다.

스펙표에는 넓은 색역, Delta E, HDR, USB-C, 공장 캘리브레이션, 하드웨어 캘리브레이션 같은 문구가 적힌다. 하지만 그 문구들이 실제 작업에서 신뢰 가능한 체계로 묶이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전문 장비가 주는 신뢰는 스펙표에 드러나기 힘든 부분이다. 이런 신뢰성은 사용 중에 드러난다. 그래서 작업자가 장비를 의심하는 피곤한 일 없이,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이런 것들이 진짜 차이다.

이런 건 직접 써보기 전엔 잘 안 보인다. 시장도 잘 측정하지 못한다.
요즘엔 리뷰도 영상 형식으로 넘어가면서 잘 다루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얕은 스펙 경쟁이, 깊은 제품 철학을 밀어낸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이 살짝 냉소적으로 된다. 새 제품을 봐도 설레기보다 먼저 의심하게 된다. 리뷰를 봐도 ‘그래서 제대로 측정은 했고?’ 부터 묻게 된다. 제조사 설명을 봐도 ‘이 문구가 실제로 뭘 의미하지?’ 하고 파고들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조사 설명 자체가 의도적으로 애매한 경우도 있다.

‘제대로 만든 물건’ 감소에 대한 감각.

이번 ProArt 경험에서 실망한 지점도 사실 이 부분이었다.
ProArt는 스펙상으로는 전문가용 모니터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운용에서는 그 언어를 끝까지 책임지는 느낌이 너무나 약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결합은 느슨했고, 문제가 생겼을 때 원인 추적은 어려웠다.

NEC PA는 시스템을 만든 느낌이었다.
ProArt는 스펙 좋은 모니터에 전문가용 기능을 끼얹은 느낌이었다.

둘 다 ‘Pro’라는 말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의미는 달랐다.

NEC의 Pro는 반복성, 예측 가능성, 장기 운용성에 가까웠다.
ProArt의 Pro는 스펙, 기능 목록, 브랜드 포지션에 가까워 보인다.

이 차이는 아주 사소한 곳에서도 드러난다.

모니터 베젤과 로고에서 이런 부분을 볼 수 있다.
컬러 크리티컬 모니터의 전면부는 그냥 외관이 아니다. 판단 환경의 일부다.

모니터 앞에 앉았을 때 보는 것은 화면 이미지뿐이 아니다. 화면을 둘러싼 베젤, 하단 로고, 버튼 표식, 표면 반사, 화면과 베젤 사이의 경계, 전원 LED, 주변 시야까지 모두 함께 들어온다.

좋은 장비는 이 모든 요소가 조용해야 한다.

중립적이어야 하며, 로고가 튀지 않아야 한다. 하단부가 시선을 끌지 않아야 하며, 제품이 아니라 작업할 이미지가 주인공이어야 한다. NEC PA는 이 점에서 명확하다.

NEC 로고는 왼쪽 상단 구석, MultiSync 제품명은 오른쪽 상단에 배치하고 작고, 얌전한 무광 그레이로 차분하게 안착해 있었다. 사용자의 시선을 훔치지 않고 거의 사라지는 방식으로 처리되어 있다. MultiSync라는 유구한 이름을 가지고도 NEC는 그것을 과시하지 않는다.

그건 겸손이라기보다 정확한 이해였다.
이 장비의 주인공은 브랜드가 아니며, 사용하는 사람이 보는 화면 안의 이미지다.

반면 ProArt의 이 모델은 전면 하단 중앙에 큼지막한 회사 로고가 광택 입체 금색 양각으로 로고가 박혀 있다. 사실 처음 봤을 때 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이 조합은 컬러 크리티컬 장비에서는 도움 될 일은 전혀 없다.

프린트 작업에서는 흰 여백, 회색 톤, 암부, 미묘한 색온도, 중립성 판단이 중요하다. 그런데 그 바로 아래에 금색 광택 로고가 있으면, 그것 자체가 불필요한 색 자극이 된다.

따라서 컬러 크리티컬 모니터의 전면부는 광고판이 아니라 판단 환경의 일부다. 물론 ProArt의 금색 로고 하나만 보고 제품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나중에 겪은 일들과 겹쳐놓고 보면, 그 로고는 이상하게 정직했다.

전면 중앙의 금색 로고, 유니포미티 보정의 이상한 동작, 불안정한 캘리브레이션 소프트웨어, 원인 모를 간헐적 정상화, 시리얼 미표시. 전부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장비는 진짜 판단 및 결정 도구로 끝까지 정렬된 물건이 아닐 수 있다.

물론 제조사가 의도적으로 속였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의미에선 오히려 더 피곤한 이야기 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정말 이것을 ProArt라고 믿고 팔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내가 모니터에 요구하는 Pro의 의미와, 그들이 제품화한 Pro의 의미가 달랐다.

내게 Pro는 조용함과 반복성이며 예측 가능성이다. 또한 시각적 중립성과 장기 안정성이며, 최종적으로는 해당 카테고리의 모니터를 주로 사용할 작업자에 대한 이해다.

ProArt에서 내가 본 Pro는 스펙, 기능, 브랜드, 디자인, 마케팅 언어, 크리에이터 시장 포지션에 가까웠다. 둘 다 Pro라는 말을 쓰더라도,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이번 경험은 단순히 이러한 장비와 만났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NEC PA 같은 장비가 왜 좋았었는지, EIZO가 왜 계속 마음에 걸리는지가 정리 되었다. 여기에 더해 리뷰 시장이 실제 운용 신뢰성을 얼마나 깊게 다루지 못하는지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장비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만들었다.

내가 원한 것은 단순했다.

화면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 반복 가능한 기준 환경.
작업자가 자신의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조용한 장비.

그런 장비는 드물다.
그리고 점점 더 드물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과거가 전부 좋았던 것은 아니다. 예전에도 엉성한 물건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제대로 만든 물건이,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시절의 감각은 분명히 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한다.

NEC PA가 그리운 것은 단순한 추억 미화가 아니다. 사소한 것들까지 작업자를 방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렬되어 있었으며 장기 운용성까지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그런 장비가 사라졌고,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더 비싸거나, 덜 믿음직하거나, 임시방편에 가까운 선택지들이다.

그래서 짜증이 났고 조금은 허허로웠다.

제대로 된 물건은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안다.

컬러 크리티컬 모니터가 파는 것은 패널도, 스펙도, 브랜드도 아니다.
작업자가 화면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리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내 앞에 놓여진 대상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함이다.

결국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NEC라는 브랜드 하나가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팔고 있는지 아는 제품이다.

스펙표의 문구가 아니라, 사용자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한 물건. 자기 존재 과시보다 사용자의 작업 뒤로 조용히 물러날 줄 아는 장비. 문제가 생겼을 때 미로에 빠뜨리지 않는 시스템.

좋은 전문 장비는 사용자의 시야에서 사라질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남겨야 할 유일한 것은, 신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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