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옷, 아스팔트, 부서진 하얀 횡단보도 페인트.

아침 9시 30분.
전화소리에 잠을 깼다.

두세시간 잤을까, 일어나서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아침의 햇볕속에는 봄내음이 뭍어나고 있다.

차에 탔다.
내 옆에 있는 남자는 어딘지 모를 세월에 냄새가 났다.
좀더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썩어갈때의 그런 중년 이후의 남자 냄새다.

그 냄새 때문인지, 수면 부족때문인지. 그래 둘 다 일 것이다. 뒷 정수리가 아릿하고 머리가 아프다. 그가 뭔가를 자꾸 물어본다. 머릿속으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설명 혹은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않겠냐, 라곤 하지만, 왠지 난 조금은 짜증이 담긴것을 억지로 자제하려는 것이 역력한 말투가 되어버린다.

나는 점점 침잠해지고, 말수는 거의 없었고, 혼은 반쯤 나가있는 상태가 되었다.

지독스레 햇빛은 밝아서, 마음을 더욱 더 우울하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작업실 앞에 차를 세우고 그 남자에게 작업실 열쇠를 쥐어주고 먼저 올라가 기다리라고 했다.

도시락 2개를 받아들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는 길 횡단보도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멍하게 바닥을 보고 있는데, 바싹 말라붙은 아스팔트에 두껍게 칠한 흰색의 갈라진 횡단보도 페인트 위로 부서지는 은빛이 보였다. 시큰한 냄새가 아무런 자극 없이 느껴진다. 신호가 바뀐것도 모른체 멍하게 계속 보고 있었다.

작업실로 돌아오는 계단 위로 길 앞에서 뒷 트렁크 정리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혼자 들어가기가 어색한것 일까. 나와 같이 들어가고 싶어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아무말도 못한체, 왼손엔 도시락이 들어있는 비닐봉투만 바람에 사각거린다. 트렁크 정리가 다 끝나고 난 말했다. ‘먼저 올라가시지 그랬어요’ 그러자 그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

올라가서 자리에 앉고 도시락을 먹는다. 이 정도에 이 가격이면 제법 먹을만 하지 않나요? 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괜찮네.’ 라는 짧은 대답을 한다. 이런 저런 조곤조곤한 짧막한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탈까 하다가 전화가 온다. 남아있던 사이다에 눈길이 간다.

이거라도 마시지 뭐. 라는 말과 함게 그는 몇 모금을 마신다.
또 가야 할 곳이 있는 것이다.

갑자기 생각났다. 도시락을 사러 가는길에 담배를 샀었던 것이다.
물어본다. 담배 요즘도 태우시죠? 요즘은 안피워 라고 그는 대답한다.

하지만 난 상관없이 신발을 신고 있는 그에게 어줍잖게 담배 한개비를 권한다. 무슨 담배냐고 묻자 88 골드라고 대답한다. 덧붙여. 진한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난 담배불을 붙여드렸다.

그냥 보내기가 왠지 아쉬워, 유치한 남자들의 소년적 의기를 애써 꺼낸다. 그와 난 하이파이브를 했다. 첫번째는 어쩐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두번째는 어쩐지 만족감이 떨어졌다. 묘하게도 그와 난 그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번째 시도를 했다.

잘 맞는 느낌.

어쩌면 그는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느꼈던 무한에 가까운 3초간의 침묵을.

그는 나의 아버지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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