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우주라는 건 조그마 했어
분명 갖자기 고민이나 답이 없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말야
이 세상에 우주의 일부가 아닌건 없고
나 조차도 그 우주의 일부야
그러니 비로소 우주라고
왠지 그러면 된듯 싶었어
말로는 잘 못하겠는걸
그래도 타나베도 그걸 말하고 싶은게 아니었어?
이 세계는 전부 연결 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걸 연결하고 있는건..
플라네타스 中
담배 피우려 창문을 여니 오후 한시의 햇살이 너무나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닫혀있던 귀가 열리면서 많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한모타리 삼천원 한다는 풋사과를 파는 수래차 소리에서부터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자동차의 크락숀과 엔진소리
수업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마지막 남은 여름의 한 끝자락 발악하듯 소리 지르는 햇볕의 소리
기계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그러던 중 내 속에서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이상한 소리
물끄러미 담배를 다 태우고 창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니
세상이 고요하다.
그러다 들리는 여자 꼬마 아이의 떠드는 소리와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섞여들였다.
여전히 창밖엔 햇살이 꾸역꾸역 뭔가를 토하고 있었고
그만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비가 내린후 그치고난 아침엔
잠자리가 눈에 띄이곤 한다.
중앙동의 평지를 기준으로
40계단을 포함한 작업실의 높이는 약 6층 정도 되는데
그 높이에 잠자리가 바람에 몸을 맡기곤 하며 나른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계속 그렇게 셈을 하다가 9마리 까지 셈을 하고 나선
관두었다. 눈에 초점이 흐려진다. 아홉마리 이상은 나에겐 많다.
당장에라도 어딘가 달려가고 싶다가도 햇볕이 변덕스러워
순간 순간 햇볕이 주눅 들면 나도 같이 주눅드는 느낌이 든다.
바람도 같이 변덕 스럽다. 100미터 즈음에서 들리는 자동차의
배기음과 크랙숀 소리와 쇠가 갈리는 소리도 그렇다.
일주일 전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여름을 알리는 기점으로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왠지 안심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로 부터 오늘까지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괜히 불안스럽다. 물론 당연하게도 매미 소리가 다시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난 다시 안심 할 수 있을테다.
무엇으로 부터 안심을 하는 건진 나도 모르겠지만.
올해 여름은 기이한 느낌이다.
몇일 동안 계속 비가 내리면서
바다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바다의 냄새는 저마다 달라서 마알간 청량감이 드는 냄새가 있는가 하면
그 냄새의 두터움이 너무나 커 질식할것 같은 냄새도 있다.
행정구역상 부산 중구 중앙동이라 불리우는 곳에는 쾌쾌하고 거무죽죽한 마치 코끼리 시체의 거죽같은 냄새가 감돈다. 비내 우루룩 내리는 동안은 그나마 덜하지만 빗발의 힘이 누그러질땐 요상스럽게도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 마치 오래된 이불 같다.
작업실에서 몇발자국 되지 않는 곳에 바로 바다가 있고 영도 다리가 있어서 그런걸까, 영도 앞바다는 이미 오래전 썩은 바다가 되었으니 세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썩은 것이였다면 빗물때문에 냄새가 덜해야 할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걸 보면, 바다속 깊이 썩었거나 아니면 사실 썩은건 아닌데, 마음대로 썩었다 단정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바다의 삶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냄새는 분명 다르게 와닿을 것이라 생각해봤다. 뭐, 당연한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거기에서 문득 신기함을 느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겪어왔고 그래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더 이상 흥미로울 것도 더 이상 재미있을 것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상처에 충격에 둔감해져서 좋다고도 이야기들 하곤 한다.
일상의, 삶의, 하루 하루의 관성이 만들어내는 괘적은 그것이 괴롭고 힘들고 불행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괘도가 되어버린다. 그러한 괘도는 하루의 관성을 더욱 가속화 시킨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감동스러울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 속엔 분명 신비한 것이 자리 잡고 있다.
비가 내리는게 신기했고
냄새가 나는게 신기했고
소리가 신기했고
무엇보다 신기한것은 이것들은
정해놓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이런것마저도 신비로울게 없는 일상이고
당연한 이야기라 할 지라도.
그건 그렇고,
바다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이 냄새는 어떻게 와 닿을까.
빛이 엷은 어둠이 깔려
깊은 물속 같은 감촉이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을터인데.
무언가를 하다 갑자기 맥이
풀려 몸이 흐물해질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목탁 소리다.
일요일밤이 끝나고 월요일이 된지 막 1시간 30분이 지난 참이다.
목소리가 들렸다. 엷지만 분명한 울림이 되어 먼길을 돌아,
꼭꼭 닫아놓은 작업실 창문을 훑어 나에게 들어왔다.
정확한 발음을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언듯 반야심경으로 들렸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묵상하고 있는 느낌이다.
단지 묵상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여름이라곤 하지만 아직 매미가 울지는 않는 그런 날이다.
10여분이 지난 후에 목탁 소리가 멈추고 갑자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무엇이였던걸까.
그로부터 몇분 지나지 않아 다시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아무런 소리도 없다. 무척 조용하다.
아마 그렇게 다시 몇분인가 앉아있었던것 같다.
담배가 무척 피고 싶었는데도 몸은 내 마음과 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몇분 후, 정적을 깨고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를 세번 들었다.
이제서야 겨우 몸을 움직여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요상하면서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긍되어진 일이다.
제1조. 사회의 목적은 공동의 행복에 있다. 정부는 인간에게 그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들의 향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설립된다.
제28조. 국민은 언제나 자신의 헌법을 재검토하고 개정하고 변화시키는 권리를 갖는다. 한 세대가 미래의 세대들을 자신의 법에 구속할 수 없다.
제35조. 정부가 국민의 권리들을 침해할 때, 봉기는 국민과 국민의 각 부분에게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가장 불가결한 의무이다.
어떤 사소한 이유로 사진이 한장 필요하여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훑어 보는데. 끝까지 보는게 힘들었다.
이런 감각은 이제 익숙해질때도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그렇게 스스로가 봐도 무감해질만 하다고 생각 했건만.
나이먹는것과는 상관없이 가슴 아픈건 가슴 아픈건가 보다.
무한에 가까운 시간 속에 엷고 반투명한 절편처럼 쌓여있던 사진들은,
내가 무엇을 향해 누른 셔터들이었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여전히 나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나는 셔터를 누른다.
그것은 따뜻한 눈길과 몸짓이였던, 울고 있는 것이였던간에 말이다.
그렇게 사진은 무섭다.
그렇게 묵묵히 지켜 보는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였다.
이야기 중에 문득 그녀가 말했다.
날씨가 좋아요.
….
그래, 날씨가 좋네.
….
응. 날씨가 좋아요.
그러내. 날씨가 참 좋구나.
짧은 공백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서로를 본듯한 느낌이였다.
많이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