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부터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많은 고민 속에 결국 최종결정은 하지 못한체 종이에 먹이 물들듯
자신도 모르게 조막조막 준비를 해왔던 저를 발견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었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좋으신 분들께서 힘을 합해 주시어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부산에 아트 프린트 공방을 오픈 했습니다.
이름은 VueLoom입니다.
Vue는 ‘보다, 바라봄, 관점, 의견, 의도, 목적’의 뜻.
Loom은 ‘씨줄과 날줄을 엮어 천을 만드는 베틀’이라는 뜻을 합쳐 만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사진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저 나름의 능력을 현실적으로 활용 할 수 있는 부분 중에 큰것이
아트 프린트 쪽인듯 합니다.
사진 그리고 미술 등의 작업하시는 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밀도는 일반적인 프린트 샵에 비해, 좀더 용이하지 않을까 생각 해봅니다.
아, 그리고 실질적인 프린트의 퀄리티는
꼭! 직접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12월 초에 막 발매된 따근따끈한 프린터가 공방에 들어온 뒤로
바로 테스트를 하고 프로파일링 한다고 몇일 동안 실제 출력 이미지를 보질 못했지만,
기본적인 프로파일링 절차를 충분히 마치고 약간의 튜닝을 한 후에 나온 프린트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리고 실크같이 부드럽게 떨어지는 컬러와 톤을 보며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였습니다.
웹 페이지 주소는 http://VueLoom.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다녔던 단골 화방에 들려 콜크가 발린 있는 두터운 보드를 한장 샀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라기 보다는 내가 콜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골고루 압력을 받아 평면도가 높은 가공이 잘 된 콜크는 손끝으로 스쳐지나가는 느낌도 좋지만, 햇볕을 받았을때 보여지는 아주 엷은 표면의 질감은 때론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업실 입구 벽면쪽 (내가 항상 앉아있는 맞은편)에 콜크 보드를 붙이고 나니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빈 평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기엔 뭔가가 조금씩 채워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채워졌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단순히 돈으로 해결 될 수 없는, 시간이 충분히 들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시간이 흘러 한장의 콜크보드는 다 차버렸고 이어 두번째 콜크보드를 그 위에 붙였다. 공간이 한결 넓어졌고 답답한 느낌은 조금 사라졌다. 그래, 공간이 더 생겼으니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주 가끔 암실에서 미스 프린트가 난 조그만 내 사진들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체취가 남겨져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 연결 되어 나에게 와준 것들이며 그것들은 그렇게 나의 일부로 녹아내려갔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느덧 제법 시간이 흘러 남아 있건 공간이 거의 다 차버렸다. 한장을 더 구입해 세번째 콜크 보드는 아에 입구 문쪽에 붙였다. 다시 공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동안 붙어 있었던 것들의 배치를 다시 하였다. 전체적으로 너무 꽉 차보이지 않도록, 그러나 너무 비어 보이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조정하고 아무렇게나 붙인듯한 느낌이 들도록 비뚤비뚤 붙이기도 하였다. 한결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저렇게 다섯번째 콜크 보드까지 왔다. 처음 붙였던 날로 부터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보드에 붙었다. 더 이상은 붙일 장소가 없어서 콜크 보드를 더 붙일 수 있는 곳을 생각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리곤 몇 몇 것들은 보드에서 떼어지고 나선, 휴지통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새벽 폐지를 모으는 사람에게 수거되어 갔을 것이다.
시간은 더 흘러 작업실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것이 옮다고 판단했으며 그것을 납득 했기에 보드에 붙어있던 것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아트핀을 먼저 뽑고 붙어 있던것들을 떼어낸다. 그렇게 벽에 붙어 있던 콜드 보드 네개를 떼어냈다.
많은 것들이 재활용 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99개의 아트핀만 남았다.
본래 투명한 색이였을 아트 핀은 군데 군데 먼지가 묻어있고 담배진 때문에 연갈색으로 세월만큼 불투명 코팅이 되어 있었다.
녀석의 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 정도의 굉장한 실력을 보고 있으면, 말도 안되게 커다란 덩치와 무게 (100Kg이 넘는)에서 나오는 실력일까? 라는 뭉묵한 의문이 들 정도이다.
공장같이 시끄럽지만, 그렇에 ‘웅,웅윙’ 거리면서도 막상 움직임은 물위에 떠 있는, 맑고 깨끗한 한방울 기름같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엘레강스하다. 모든 것들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기민하고 빠르다.
게다가 영리하기 까지 하다.
이미지의 품질은 그야말로 납득 ‘당해버린’ 느낌이 들 정도의 실력.
오랫만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든다.
프린트 공방이 알려져서 훌륭한 이미지 품질의 프린트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접하고 즐겨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로 인해 나도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었으면 한다.
도착했다.
작업실 한켠에 저렇게 큰 기계가 있으니 이상스럽기도 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다. 녀석이 가동할때는 DummyFactory라는 이름대로, 공장같은 느낌이 제법 난다. 행여나 싶어 언제나 그렇듯 메뉴얼(200여 페이지의)을 다 읽고, 그외 추가적으로 필요한 문서도 챙겨서 다 읽었다.
대단히 멋져버린 녀석이다.
사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있지만 그런 이야기 보다는 우선 스스로를 믿기로 한다.
심리적인 저항선 맥락을 볼때,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직 남은것도 해야 할것도 너무나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하나씩 끝내가고 있다.
최근 잦은 두통이 나를 괴롭힌다.
하루는 왼쪽. 또 하루는 오른쪽 이렇게 좌, 우뇌를 번갈아가며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친우가 1년 전, 평소 두통이 심한 나를 생각하여 다량의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었다. ER 서방정 처방이기 때문에 큰 부담도 없고 효과가 길다는게 위로가 된다. 한알로 효과가 없을땐 십수알까지 먹어도 몸에 부담되진 않으니 이것도 다행스럽다.
그렇게 약을 먹다보면 고통을 느끼는 말단세포 접점 사이에 약물이 끼어들어 통신을 못하게 하는 느낌 같은것이 어쩐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사실 아프지 않은게 아니라 아픈것을 느끼게 하는 신호의 말단 접점이 마비되는 것 뿐. 하지만 그것을 아프지 않다고 할순 없는 것이다.
작업실의 분위기가 사뭇 많이 달라졌다. 몇가지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있지만 현재 내가 가용 할 수 있는 자금 한계가 너무나 분명함에, 차후 여유가 생기는데로 마음먹은것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전시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사진전시를 위해서 몇년 동안 촬영하고 그것을 다시 고르고 자르고 섞고 배열하고 마음에 안들면 전부 엎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운율을 다시 암실에서 구현해내고 전시장을 찾고 협의 하고 액자를 맞추고 포스트카드를 만들고 홍보를 하고 관장과 기싸움을 하고 사진을 운송하고 조심스레 수평을 맞추어 사진을 배열하고 조명을 체크하여 각도를 맞춘다. 그리고 결과로서 눈에 보여지는 것은 덩그러니 흰 벽에 있는 종이조각 뿐. 인것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긴, 세상의 일이라는건 준비에 비해 보여지는 결과라는건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눈에 보여지지 않는 가치를 난 믿고 있고, 그것을 느끼고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있기에 이런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좋은 분들이 나를 생각해주고 도와주고 도와주려 하고 있기에 극심한 외로움은 없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일도, 손에 잡히는 것은 종이지만 그 위에 뿌려진 부단한 노력의 가치를.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불모지 부산에서 말이다.
과한 욕심일까.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핵심을 잡으려면 잘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핵심에 집중한다는 것은 잘 버린다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 리차드 파인만,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나,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오,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 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할 민족은 일언이 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大韓)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春風)이 태탕(鋏蕩)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 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의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일본의 이번 당한 보복은 국제적·민족적으로도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
이상에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어니와,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옛날 한토(漢土)의 기자(箕子)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孔子)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
–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1947년 백범 김구 –
중학교 3학년, 혹은 고등학교 2학년 정도 되어 보인다.
머리카락은 어깨 밑으로 살짝 드러나 있는 티셔츠 밑으로 간들거린다.
옆의 친구들과 뭐가 그리 좋은지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깔깔거리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내 모습을 다시 지켜 봤다.
딱히 감흥이라던가 어떤 느낌 같은 것을 찾으려면 분명 뭔가 나오겠지만, 그냥 신경쓰는 것을 그만 두었다. 그러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봤다. 얼굴이 이쁜것도 몸매가 이쁜것도 아니다. 핑크, 블루 가로 스프라이트 패턴의 셔츠와 어딘지 길이가 모자라 뵈는 흔한 청바지. 길죽한 얼굴과 코. 저렴하지만 튼튼한 메이커의 적당히 닳아 색이 빠져 있는 캔버스 신발.
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걸까.
곰곰히 이미지를 다시금 생각 해봤는데 어쩐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아마 무엇인가 결핍된 모습을 찾아서 일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 한다. 말이 굉장히 어눌하다던가 하는 것도 아니다. 동작에 어떤 이상한 템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신경 쓰지 않으면 아무런 느낌도 없을 그런 지극히 일상적 느낌이지만, 그 뒤에는 강렬히 빛나는 결핍감이 느껴지는 것이다. 말이 되려다 만 인간 같기도 하고 인간이 되려다 만 말의 느낌이기도 하다. 인간의 눈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말의 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동석한 옆의 친구들도 어떤지 사정이 비슷하다. 어떤 친구는 대단히 뚱뚱했는데 핸드폰으로 뭔가 통화를 하고 있었고 옆에서 같이 듣던 친구들이 중간에 장단을 넣는 식이다. 뚱뚱하거나 사알짝 비틀리게 말랐거나, 말처럼 생겼거나.
가만히 보고 있으니 동물 같다는 느낌이 든다. 딱히 지구상에는 존재하지 않을 듯한 느낌의 동물 말이다. 유니콘이나 페가서스 같은 반짝거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그것은 나에게 진동을 \’넘겨\’주었다. 어쩌면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진동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조용한 지하철에서 밝고 환하게 소리내어 웃었고,
난 그 너머로 입술만 조금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