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컬플레인 셔터의 유래가 길로틴이라는 것은
단순한 기계적 연관성에만 관련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론 그렇게 셔터막이 잘라낸 흔적은 언제나 나에게 남겨지고 만다.
어떤 경우, 그것을 볼때 대단히 가슴 아픈 경험이 생기고 만다.
흔한 이야기지만, 세삼 느끼게 되는 상황은 여러번 반복 된다고 하더라도
견디기가 수월하다던가 하진 않다.
그래도 눈 앞에 보였던 것을 가로지르며 셔터의 길로틴이 잘라낸 것을
똑똑히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의무이며 권리다. 견뎌야 하는건 어쩔 수 없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똑똑히 그것을 보고, 그리고 보는 것이다.
분명 있다.
아주 예전의 일이다.
아주 라곤 하지만 대강 10년 전 즈음의 일이기 때문에 다시 생각해보건데 아주 오래전은 아니다.
당시에 사진학과 라는 것은 자신만의 개인 암실이 당연했고 필수라고 생각했던, 어떤 의미에선 정말 당연한 분위기라고 기억하고 있다. 난 암실이 없었다. 하지만 프린트는 해야만 했다.
여차저차 해서 한평조차 되기 힘든 통풍도 안되는 작은 암실에서 여름에 땀으로 샤워를 하면서 프린트를 했던게 기억이 났다. 현상액의 온도를 맞춘다는 건 당연 꿈 같은 일이다. 머리에 수건을 둘러서 땀 흐르는걸 막고 손과 팔에 흐르는 땀을 그걸로 닦아내곤 했다.
프린트가 끝나고 나면 정말 옷을 입은체 샤워기의 물을 맞은 것 처럼 말라 있는 곳이라곤 거의 없을 정도가 되고나서 그것이 견디기 힘들면 샤워를 하고 아에 알몸으로 프린트를 하기도 했었다.
대부분 그렇듯 여차저차 해서 사용하게 된 암실은 역시나 여차저차 해서 사용하지 못하게 되고 선배집을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당시 동기들은 대부분 자신의 프린트를 하기에도 시간이 넉넉치 못하였기 때문에 그 쪽은 아에 고려 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동기들과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였다. 툭 하면 선배들이 각목 나무랭이나 대걸레 나부랭이를 들고 \’빠다\’를 때리는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시기였고, 선배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보는것도 나름의 용기가 필요한 시기였다. 붉은 깃발 아래 \’사상\’이 엇갈리면 간단하게 패거리가 분리되는 시절 이었다. 간간히 교문 앞에 최루탄이 터지기도 하고 데모하는 모습도 낮설지 않았다.
학과가가 있었는데 난 그 노래가 굉장히 싫었다. 치졸하고 졸렬하며 음율마저도 이해하고 싶지 않은 어눌함에, 무엇보다 참기 힘든건 옛 선배들이 만든 학과가에 목적 자체가 당시 느껴기기론 마지 너덜너덜 해진 유령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면 나도 왠지 유령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난 당연히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그것 때문에 몇번인가 불려가서 주의를 받기도 하고, 과의 분위기를 흐트린다는 명분 아래 각목이라던가 대걸레 따위에 맞기도 했다. 반항을 한 적도 있었고 어떤 경우엔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사상적인 부분에 진지한 의문을 느껴 질문을 해본 적도 있다. 어떤 선배는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각목을 손에 때지 않은 선배도 있었고 어떤 선배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며 나와 대화를 하기도 했었다. 이미 그 쯤이 되자 과내에서 난 거의 고립이 되었다.
혼자 밥 먹는게 익숙해졌고 불편하다던가 외롭다던가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난 그런 상황이 편했고 고마웠다. 그런 중에도 어떤 선배와 무슨 시시껄렁한 이유로 또 끌려간 적이 있었는데 이유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평소에 내가 생각했던 것을 차분하게 이야기 하고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했다. 그나마 소위 대화 자체가 가능한 선배였다. 이야기가 끝날때 즈음 손에 잡혀 있던 각목은 창고 안으로 던져 지고 \’소주 한잔 하러 가자\’며 같이 술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난 사진을 너무나도 찍고 싶었고, 정말 갈증이 났다. 애가 타고 미칠것 같은 갈증이 아니라, 묵묵히 보고 그것을 다시 묵묵히 보고 그것이 어느 임계점에 닿으면 칼로 짖이겨 발기발기 찢어내듯 사진을 찍어나갔다. 언제 부터인가 단순히 과제 따위가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필름으로만 담아두기엔 이것을 프린트 함으로서 토해내야 한다고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도무지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예의 그 선배를 찾아갔다. 비교적 반갑게 맞이 해 주었고 암실이라고 하는 곳을 안내 받았다. 하지만 기대 했던것과는 완전히 다르게 암실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느낌이 들 정도로 모든게 흐트러져 있었다. 거실 마루바닥에 확대기가 있었고 트레이는 청소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요즘 프린트 안하냐고 물어보니, 자신은 커머셜 쪽으로 할 생각이라서 관둔지 제법 되었다고 했다. 커머셜을 하면 어쨰서 흑백사진을 관두게 되는지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애써 물어보진 않았다.
트레이를 씻어내고 약품을 올리고 필름 캐리어에 원고를 끼우고 확대기의 노광을 넣을때의 그 빛덩어리가 쏟아지는, 서글프고 거칠며 갈곳 없는 에너지 덩어리를 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몇번인가 선배내 암실로 가는 길목 앞 슈퍼에서 항상 고민을 했다. 알량한 지갑을 열어보고 지폐를 세어보고 쥬스를 사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몇번의 방문 동안 처음과는 다르게 점점 쌀쌀맞아진다.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약품도 모조리 선배의 약품을 쓰고 있었고 인화지 역시 마찬가지였다.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이틀치 밥값을 치르고 쥬스를 샀다. 쥬스를 사왔다고 해도 태도가 달라진다던가 반긴다던가 하는 것 따위는 애초에 전혀 바라지도 않았다. 최소한의 염치 만큼은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결국 자기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난 이틀치 밥값을 쓴건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다곤 하지만 바보 같은 일이고 한편으론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국은 그 뒤로 더 이상 선배네 암실을 사용 할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프린트한 사진을 손에 쥐고, 돌아가는 길에 몸을 올렸다. 육교를 건너던 중간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선명한 네이비 블루의 카메라 가방이 어깨뒤로 미끌어져 바닥에 떨어졌고 그대로 서서 쥐고 있던 사진이 손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조금씩 구겨져 갔다. 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육교 위 바닥에 주저 앉아 서럽게 울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고 군대를 다녀 오고 지금의 작업실을 만들었다. 그때 내가 제일 먼저 생각 한 것은, 나의 암실을 갖게 되었다는 기쁨 보다도, 다른 사람이 이 암실을 사용할땐 최소한 프린트 할때 사용 하는 약품 만큼은 그냥 주리라 결심 했던 것이다. 그 결심이 서고 나서야 나의 암실이 만들어 진것에 진심으로 기뻐 할 수 있었다.
내 작업실 이름은 DummyFactory 이다.
전산학 쪽에 조금이라고 관심이 있던 사람이라면 Dummy가 무슨뜻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Dummy의 뜻은 의외로 여러가지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속임수, 거짓, 쓰레기 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그런 공장이라는 뜻이다.
최소한 쓰레기 같은 사진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후 강산이 절반정도 변했고, 작업실은 주위에서 농담반 진담 반으로 말하듯 1년안에 망하진 않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고 한편으론 내가 사진 이외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던 기회를 모조리 놓쳤다는 이야기도 된다. 십여년전에 비해 지금은 모든 것이 훨씬 좋아졌다. 마음만 먹으면 프린트는 언제든 할 수 있고, 냉정하게 봤을때(대강 봐도) 최고라고 할 순 없지만 제법 훌륭한 작업실이 되었다. 응접실엔 에어콘이 없지만 암실엔 에어콘이 달려 있다.(선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약품 온도 때문에 씁쓸해 하지 않아도 되고 수건을 머리에 싸매지 않아도 된다. 응접실엔 출력 좋은 석유난로가 없지만 암실에는 있다.(역시 선물 받은 것이다) 덕분에 추운 겨울에도 약품의 온도 유지가 된다. 두꺼운 옷을 입고 둔하게 작업하지 않아도 된다. 우여곡절 끝에 현상기도 구입 할 수 있었고, 내가 만든 사진을 판매 할 수 있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중성 프린트 워셔도 구입하게 되었다. 상당한 고가의 4×5 대형 확대기도 얻을 수 있었고 20×24 초대형 이젤도 구입 할 수 있었다.
현금 보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항상 빠듯하고 한끼 밥값에 고민을 해야되고 필름값이 모자라면 노가다 뛰는게 어색하지 않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예전을 생각하면 비교 자체가 되지 않는다.
행복하냐고?
물론 행복하다.
그래서 행복하냐고?
..잘 모르겠다.
한가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사진을 왜 찍는지에 대한 질문에 답 할순 없어도
사진 찍는 것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주 평범 했던것, 혹은 아무 의미가 없었던 것.
그것이 어느날 조금식 커져가고 밀도가 높아 진다는 것은
결국 그 이후의 시간을 생각 했을때 좋지 않은 징조다.
선택은 몇가지가 있다.
무시하던가, 담담하게 몸을 투명으로 만들어 통과시키던가, 약한 산성액에 단백질이 흐물거리며 괄태충이 녹아나듯 그렇게 알게 모르게 녹아나던가, 혹은 가만히 응시를 하던가, 전면적으로 받아 들이던가, 그것도 아니면 또 반복하던가.
누구나 겪고 있지만 타인에게 쉽사리 이야기 하기 어려운 것들, 설령 이야기 한다고 한들 실은 이미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임에 조막만한 위로 한줌 밖에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가장 편안한 것은 입술을 부드럽게 닫은체 매일 창문을 열고 이빨을 닦고 차를 타고 종이를 읽고 청소를 하고 뭔가를 먹고 일기를 쓰고 잠을 자는 것 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알랴, 도처에 쉴곳이 있지만 쉴곳은 아무데도 없다는 것을.
그것을 깨닫는 순간.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수 있게 되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에 대한 시작이 아닐까.. 그것은 지옥도 천국도 현실도 아니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에 찬사를.
작업실에 혼자 남은 후, 식어버린 커피를 홀짝이며 음악을 듣다가
오랜만에 체호프의 단편들이 읽고 싶어졌다. 헤르만 헤세처럼
무겁고 진중한 느낌과는 다르지만, 다 읽고 나면 명치와 목 뒷덜미가
아린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자주 읽고 싶지 않은 소설중 하나다.
내용이 짧아도, 오히려 짧기 때문에 다가오는 임팩트라는 것은.
특히 매우 간결한 문장으로 정황을 표현해내는 부분에 있어선 상당하다고
생각한다.
단편들 중에 ‘공포’라는 제목이 붙어있는 부분을 읽었다. 항상 그렇지만
메마르고 곁가지가 당장에라도 부러질듯한, 하지만 그 근저에는
끈적하고 습하고 날카로운 웃음이 남겨져 버린 느낌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대단히 직접적이며 비유적인 제목이라고 세삼 생각한다.
다 읽고 나선, 언제나 그랬듯 명치와 목 뒷덜미가 아릿하다.
이제 책을 덮고 필름 현상을 하러 가야 하고, 사진 셀렉트를 해야 한다.
친구의 도움으로 작업실의 배치를 바꿨다.
쉽게 버릴 수 있던 것들, 쉽게 버릴 수 없었던 것들, 한편으론 버릴 수 없었던 것들을 모두 버렸다. 벽에 붙어 있던 내 사진들을 대부분을 떼어내고 아주 몇장만 남겼다.
예전에 의자로 쓰였던 큰 스피커 – 예전엔 주로 그곳에 여잘 앉히곤 했다. 베이스의 울림이 확실한 음악을 일부러 소리를 크게 해서 틀곤 했는데, 그럴때 변화되어지는 표정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관찰하곤 했었다 – 는 언제부터인가 이것저것 쌓이기 시작하더니 잡다한게 쌓이기 시작했었다. 그 위에 있는 물건들 역시 버리고 정리하여 다른곳에 넣어두고, 스피커는 내 키보다 더 높은 곳에 앉아 있게 되었고, 그 자리엔 에이리언에 나오는 페이스 허거와 확대기용 타이머 박스가 올려지게 되었다.
입구쪽에서 들어오는 부분에 정신없던 전선들 신호선들은 뒤쪽으로 보이지 않게 고무 커버를 씌웠다. 그 많고 정신 없는 케이블을 정리 한다는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점잖게 인정하고 커버를 씌움으로써 해결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훨씬 정리되어 보인다.
커피메이커는 고장나버렸고, 우퍼 스피커와 전자밥솥이 자기 자리를 찾았다. 예전에 마셨던 맛좋았던 술이 담겼던 빈 병도 모조리 버렸다. 사실 그런거 가지고 있는다고 해도 술이 다시 생긴다던가 하진 않는다. 먼지만 쌓이고 보기 흉할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껏 그렇게 놔두고 있었던건 단순한 귀찮음 일거라고 생각한다. 정말인진 모르겠지만.
몇일 후,
몇가지 모자라고 부족한게 있어서, 국제시장엘 나갔다. 소음방지용 쿠션 스티커와 4구 콘센트와 30와트 젖빛 백열전구와 110볼트 암, 수 소켓과 전선 2미터, 콜크 보드 두장을 사서 돌아왔다. 돈이 조금 더 있었으면 콜크 보드를 한장 더 사고 싶었다. 커피 메이커를 사려 했지만 생각보다 비쌌다. 대신 천오백원짜리 플라스틱 드립퍼를 샀다. 실은 사기로 된것을 사고 싶었지만 역시나 그따위 것들은 가격이 비싸다. . 돌아와서 파티션에 남아있던 사진들을 때어내고 그 자리에 콜크 보드를 붙였다. 훨씬 깔끔해보인다. 아트핀 따위로 사진을 붙이기에 좋을 것이다.
고치긴 몇달 전에 고쳤지만 테스트만 해보고 다신 전구를 넣지 않을것이라 생각했던 스텐드에도 전구를 끼워주었다. 스위치를 넣지도 않았는데 불이 들어왔다. 순간 목이 메이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말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위치를 넣지 않았는데 불이 들어올리 없다. 단지 전구를 넣기 전에 스위치기 미리 접속되어있던 것일 뿐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기분이 들때가 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가만히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어떤 때가 되면 급작스럽지만, 침착하게 숨통을 조여가는 일흔살의 남자처럼.
아직 밖의 불빛이 있었다. 확실히 가을인 가을인것이 여름에 비하면 어두웠지만 땅거미가 지기 바로 직전의 붉고 푸른 빛의 냄새가 나는 시간이었다. 작업실의 불을 다 끄고 스텐드로 보여지는 불빛을 봤다. 참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지만 어딘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예전에 이 불빛 하나만으로 좋은 사진을 찍었다. 지금 봐도 좋은 사진들 인 것이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사진들 인 것이다.
4×5 오메가 D5 확대기의 헤드가 고장났었다. 기타 접속구와 다이크로익 필터의 콘솔부, 램프의 접속구, 메인파워와 타이머의 연결등이 문제가 있었다. 싸그리 다 고쳐버렸다. 전선의 피복을 벗겨내고 암수 콘센트를 달아주고 메인파워와 타이머를 연결해주었다. 확대기는 다시 살아났고 잘 움직여주었다. 아직 다이크로익 필터쪽의 콘솔부와 연결되는 기어쪽은 아직 손을 다 보진 못했지만 흑백 프린트 하기엔 부족함이 없다. 필름 케리어에 4×5 필름을 넣고 밑에 깔려있던 20×24 이젤에 상을 투영해봤다. 날카롭고 부드러운 상이 보인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확대기 렌즈가 80미리 밖에 없어서 크기 조절이 자유롭지 못하고 주변부에 심각한 비네팅이 생기기도 한다. 120미리 확대기 렌즈는 비교적 저가의 것이라고 해도 나에겐 여전히 비싼 가격이다.
패드의 Digital Pad 부분의 입력이 똑바로 되지 않아서 평소에 짜증이 많이 났었다. 마음먹은데로 콘트롤이 되지 않으면 난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는다. 패드를 모조리 분해하여 문제점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애초에 설계 자체가 문제가 있었다. 아마도 타사의 라이센스를 회피하기 위한 설계로 보였다. 설계 개념 자체는 훌륭했지만 입력시의 감촉이 좋도록 만들기 위한 개념은 없어 보였다. D-Pad를 지탱하는 내부 원형판을 잘라내어 십자로 만들고 그에 따라 키 자체의 압력이 흐물해지면서 덜꺽 거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사이에 완충제를 붙였다. 너뎃번의 튜닝 끝에 제법 만족스러운 감각을 만들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컴퓨터가 자주 다운이 되었다.
램 뱅크쪽의 접촉 불안이 원인이라고 생각했었다. 청소를 하고 다시 시도해봤지만 여전히 문제였다. 한창을 붙들고 있다가 겨우 원인을 알게 되었다. 하드 디스크 접속부의 불안이 문제였다. 게다가 그 채널에 물려있던 하드 디스크는 사진이 담겨있던 것이였다. 지금까지 하드가 망가지지 않고 잘 버텨준것을 정말이지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했다.
최근 기상 온도가 떨어진것을 생각하고 CPU기본 전압에서 오버클럭킹을 했다. 당연히 아무런 이상이 없이 잘 돌아간다. 하지만 보험 삼아 0.05볼트만 올리고 설정을 마무리 했다.
예전에 찍었던 4×5필름 10장을 현상했다. 한번에 이렇게 현상하는 것은 처음이어서 쉬트 필름을 고정 시킬 클립이 문제였다. 35미리용 필름 클립은 4×5용으로 쓰기엔 문제가 많다. JOBO에서 나온 필름 클립은 여러가지 의미로 이상적인 클립이지만 따로 구입하려면 가격이 녹록하지 못하다. 일단 기존의 클립을 롱로즈 플라이어로 날이 선 부분을 휘게 만들고 양면의 접촉 부분이 평편하게 닫도록 조정해주었다. 일단 아쉬운데로 쓸만은 하지만 장기적으로 쓰기엔 문제가 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데 제법 지친상태에서 주전자를 붙잡고 드립을 할 만큼의 기분 따위 전혀 나지 않는다.
현상해야 할 필름은 46롤이 남아있다.
밀린 공과금도 내야 하고 또 얼마후에 집세도 내야 한다.
난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간밤에 필름 정리를 하다가 그대로 졸아버렸다.
얼마나 졸았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느낌상으론 제법 오랫동안 잔것 같은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던 것이 밤 열한시 십분, 지금 시각은 밤 열두시 이십오분.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던 이후에 시간이 조금 흐르고 졸았던걸 고려한다면 삼십분 정도 졸았던것 같다. 그대로 침대로 기어들어가서 자고 싶었지만, 쌓여있는 필름들을 보고 있으니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몇몇인가와 메신져를 통해서 이야기를 하고, 그렇게 사람들은 돌아갔다. 그 사이에도 필름을 계속 정리하고 있었다. 다소 피곤한 느낌이 들어 커피를 좀 진하게 타서 마셨더니 확실히 좀 낫다.
음악을 들으면서 혹은 뭔가를 보면서 계속 필름 정리를 해나간다.
정신 차리고 보니 작업실 창문 밖으론 태양이 엉덩이를 내밀고 있다. 이때 즈음의 태양빛은 바로 직광으로 눈을 쏘기 때문에 눈이 많이 피곤해진다. 게다가 체력도 거의 바닥날때 쯤이기 때문에 이럴때 받는 오전의 태양 빛 같은 건 달갑지 못하다.
결국, 완전히 지쳐 필름 정리는 관두었다. 어짜피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을.. 어쩌면 내가 숨이 붙어있는 한 네버 엔딩 스토리 같은 일이다. 조금 필름 정리가 늦어 진다고 해도 큰일 이야 나겠는가. 하지만 그런 생각으로 차일피일 미루고 미루다가 이렇게 쌓여 버리게 되면 무리 해서라도 일정량 이상 정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리듬이 흐트리 지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 작업실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서 필름조각들을 계속 만지고 있다 보면 가끔은 무엇인가 속에서 치밀어 오를때가 있다. 어떤 종류의 분노라던가 안타까움이라던가 슬픔 같은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정체가 무엇인진 알고 있다.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다. 그냥 묵묵히 그것과 마주하며 필름을 정리 할 뿐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그것이 나를 아주 못살게 굴때가 아주 드물게 한번씩 있곤 한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나 보다. 그것에 지기 싫어서 이빨 꽉 깨물고 악으로 버텼지만, 지쳐가는 몸뚱아리와 커피만으론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든 머리 덕분에 결국 지고 말았다.
시간은 아침 다섯시 삼십 팔분이었고, 아직 매미가 운다. 몸이 끈적끈적 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몸 속에 남아있는 소나무 진액 같은 것들이 스물스물 삐져나와서는 온 몸을 그렇게 굳어버리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느끼곤 했기에 당황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이지 여전히 기분 나쁜 감촉이다.
몹시 목욕탕에 가고 싶어졌다.
마침 몇달 동안 목욕탕엘 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목욕탕에 갔던게 몇달 전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그 뜨거운 온탕에 몸을 푹 지져넣고 근육 한올 한올을 전부 풀어헤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검은색 비닐에 샴푸, 린스, 바디소프를 챙겨넣고 MP3플레이어와 헤드폰 그리고 카메라를 챙기곤 바깥으로 나왔다. 아마 여섯시가 넘었으리라 생각한다.
거리로 나서 횡단보고를 건너고 예전부터 제법 좋아했던 목욕탕엘 갔다.
문은 오래 전 부터 닫혀 있었던듯 했다. 입구 쪽에 뭔가 그리스 기둥 같은 것이 뒹굴고 있었다. 태양은 벌써 이 만큼이나 떠 있었고 그 빛은 나의 눈을 바로 찌르고 있었다. 아침 시내 특유의 미끌거리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렇게 문을 닫은 목욕탕을 멍하니 삼 사분 정도 보고 있다가, 가져간 카메라로 셀프를 한장 찍었다. 이 목욕탕 정말 망했나 보다. 라는 말을 중얼 거릴때 갑자기 생각이 났다.
시내로 나갈때 내가 주로 잘 다니는 길이 있었는데, 실은 그 길가에 그 목욕탕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평소엔 목욕탕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 같은건 전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눈으로 보고 있었을 런지는 몰라도 그것을 인식하고 있다던가 인지하고 있었지는 못했던 것이다.
인간은 그 당시, 그 순간의 자신과 어떤 종류의 관련이 없다면 이다지도 무관심 해질 수 있는 것인가 싶었다. 물론 기본적으로 나의 문제도 크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자 문을 닫는 목욕탕에 대한 불만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문을 닫았다 라는 느낌보다는 망해버렸다 혹은 어떤 사정으로 인해서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았다. 라는 느낌에 훨씬 가깝다.
어쩔 수 없이 길을 돌아서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았던 목욕탕을 갈 수 밖에 없었다. 가격은 올랐고 목욕탕이 아닌 사우나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혹시나 해서 속에 뭔가 바뀐거라도 있었던가 싶었는데 알맹이는 전혀 바뀐게 없다.
옷을 다 벗고 카메라도, MP3 플레이어도 모두 로커에 넣어두고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탕에 들어갔다. 물은 가득 차 있지 않았고 뜨겁지도 않았다. 순간 지금까지 쌓여있던 것이 한꺼번에 폭발할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별 수 없다. 폭발한다고 한들.
관의 벨브를 열어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적당히 섞이도록 했다. 그리고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탕에 몸을 맡겼다. 이제 조금 기분이 좋은듯 하지만 이미 중요한 무엇인가는 지나가 버린 이후라는 느낌이다. 살다 보면 당연하게도 그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마련인 것이다. 비록 이런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뭔가 맥이 빠지고 기운이 빠지긴 했지만 그래도 뜨거운 탕 덕분에 조금은 나아진 느낌이다. 찬물을 마시고 다시 탕에 들어가고 다시 머리를 감고 몸에 비누칠을 하고 샤워하고 탕에 들어가고 다시 찬물을 마신다.
바깥엔 목욕탕에 들어갔을때 부터 나를 흘깃 흘깃 보던 30대 말 즈음으로 보이는 가운데만 대머리인 남자가 지겹다는 듯 TV채널을 느릿느릿 돌리고 있었다.
커다란 아디아스 로고가 등에 박힌 검은 티셔츠와 그의 머리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물기를 모두 닦아내고 머리를 말릴때 거울을 봤다. 콧등 주위로 부터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콧등에 난 주름은 왼쪽눈을 따라 그 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군.. 왼쪽 눈이군.. 오른쪽 눈에는 주름이 거의 없는데 왼쪽 눈으로 주름이 많이 졌구나..
그렇구나.. 작업실엔 거울이 없기 때문에(없는거나 마찬가지) 본적이 없었는데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뭔가 순간 확 하고 늙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시 옷을 입고 카메라와 MP3플레이어를 챙기고 길을 나섰다. 오전 아홉시가 넘었다. 작업실에 돌아오는 길에 뭔가를 찍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찍기 싫었다. 그럴때가 간혹 있다. 뭔가를 찍고 싶지만 아무것도 찍기 싫을때 말이다. 그러면서도 결국 무엇인가를 찍었다. 보였기에, 어쩔 수 없다. 찍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검은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샴푸니 뭐니 하는 것들을 다시 제자리로 놓고 봉지는 쓰레기 통에 버렸다.
몇일간 작업실을 비운체 일을 보고나서 돌아와보니, 수백마리의 하루살이 주검과 창문을 거의 닫아놓은 상태 특유의 감도는 답답하고 텁텁한 공기와 한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덕에 보이는 검은 때가 끼어있는 바닥이 날 맞이해주었다.
짐을 풀고 한동안 말 없이 의자에 앉아 담배를 연속으로 3개피를 피우고, 차가운 물을 컵에 가득 채워 마시는 것을 3번 반복했다.
바닥에 검은 모래가 뿌려져 있는듯한 광경을 말 없이 한 동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담배를 피우고 물 한컵을 한번에 들이마셨다.
컴퓨터의 전원을 올리고 여행 중에 고장이 나버린 MP3 플레이어를 연결해서 증상을 살펴본 후에,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플레이어 안에 내용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기계 자체는 다행스럽게도 작동이 된다.
음악을 다시 집어넣도록 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모니터에 비춰진 나의 윤곽이 얼핏 보인다. 얼굴은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무척 피곤해 보인다. 도대체 난 뭘 하고 있는거지? 라는 혼잣말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듯 하다.
옷을 다 벗었다. 알몸으로 빗자루를 들었다. 바닥을 쓸어 굴곡이 갸름하게 깔린 검은 모레 같은 하루살이 시체를 모아서 쓰레받이에 담았다.
찌든때를 지우는데 쓰는 독한 약품을 들고 바닥에 뿌리고 걸레질을 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약품을 뿌려놓고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다시 걸레질을 한다. 그렇게 계속 반복한다. 몸 전체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것저것 묻어있던 테이블도 싹 닦아내고 담배연기와 세월로 인해 노랗게 되어버린 냉장고도 닦았다. 가득차 있던 쓰레기 통도 비워내고 군데군데 쌓여있던 쓰레기도 전부 정리 했다.
어느정도 끝 마치고 난 뒤의 광경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지만 어딘가 눅눅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담배를 피우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두컵 마셨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대강 닦아내고 선풍기 앞에 서서 나머지 물기를 말렸다.
간단한 몇가지 볼일이 있어 시내로 나갔다. 여전히 덥다. 여름의 마지막을 악착같이 잡아 뜯어데는 듯한 매미소리와 귀에서 들리는 차갑고 부드러운 음악과, 한때는 선명한 네이비 블루였던 카메라 가방과 무거운 F6를 옭아매듯 거리를 걸었다.
가는 길에 항상 보이던 카우보이 마네킹이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해서 왼손에 붙어있던 손가락 4개가 사라지고 얼굴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고 나중엔 혼자 똑바로 설수도 없어서 끈으로 몸통을 파이프에 묶어놨던, 그 카우보이 아저씨 이다. 웃는듯 울고 우는듯 웃는 그 아저씨였다. 결국은 사라졌다. 그 사라진 자리에서 1분 정도 그 빈공간을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인화지를 샀다.
또 가격이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고,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우체국에 들려 보낼 것을 보냈다. 이전부터 봐왔던 익숙한 우체국 직원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싸그리 물갈이라도 된걸까, 익숙하지 않다.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슈퍼에서 담배를 한갑 샀다. 계단을 올라와 작업실의 검은 문을 열고 차가운 물을 한컵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무척 졸음이 왔지만, 잘 수 없었다.
익숙한 것은 담배만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매우 목이 말랐다.
그래서, 괜히 서럽더라.
하지만 이렇게 서러운것도 잠시일 뿐.
땀이 흘러 옷을 검게 적시고 끈적거리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흐르는 시간을
슬그머니 목을 조르듯 흘려보내고 있을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면 그나마 좀 괜찮아 진다. 발가벗은체로 선풍기 앞에서 미지근한 바람과 마주하면 나름 시원해진다. 제법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것도 잠시일 뿐.
기실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
변한것이라곤 30분의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 뿐이다.
기린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