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만 죽어라고 노란 꽃잎을 펼치다 몇몇 꽃잎이 떨어진 곳엔
벌써 잎이 돋아나고 있었다.
날은 여전히 나에겐 추웠다.
추워서 꽃이 떨어진 것인지, 저 녀석들에겐 따뜻해서 그런 것인지 순간 모호했지만,
잎들이 돋아나는 걸 보면, 아마 추워서 라기 보다는 성질급한 몇몇 놈들이 뻗어나온 것이라 생각 했다.
조금 걸어가니, 벚나무 들이 아직도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가올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무에 꽃순들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다. 아마도.. 그리고 틀림없이 순들이 터지면서 벚꽃들이 만개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조용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하나같이 다들 앙상하다.
그런 속에서 덩그러니 매화나무 하나가 서 있었다.
백매화다.
근처에 개나리는 보이지 않고, 벚나무의 꽃도 아직 피지 않았다.
그 근처에서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백매화만 보일 뿐이다.
꽃잎이 바닥에 흐드러져 마치 눈물 같이 보인다.
3분인가 5분인가를 보다가, 난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는 듯, 어께에 둘러맨 카메라 가방을 추스리고 돌아갔다.
백매화 향만 몸에 남더라..
순결한 처녀인들 과연 행복할까?
잊은 것으로 부터 세상은 잊혀진다.
티 없는 마음의 영원한 햇살이여
어느 이뤄진 기도 어느 무산된 소망.
– 알렉산더 포프
How happy is the blameless vestal\’s a lot ..
The world forgetting, by the world forget.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Each prayer accepted and each wish resigned..
– Alexander Pope
몇가지 뒤숭숭하고 정리되지 못한 (혹은 정리하고 싶지 않은) 생각 덕분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무료하게 앉아 머리를 비우고 내일 해야 할 것과 모레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고 있을때, 창문 밖으로 자동차 바퀴소리가 달라진 것을 느꼈다. 그리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언제 부터 내렸던 비였을까, 물 먹은 자동차 바퀴 소리는 들리지 않고, 창문틀에 찌그러져있는 물길 흐르는 소리와 하늘에서 부터 지상까지 10Km를 날아와 땅에 부서지는 물소리만 들린다. 이런 날은 고양이가 울어대는, 혼자 작업실에 있을때 간혹 소름 끼치도록 사무치는 애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래.. 이런 날은 고양이들도 조용히 있는 것이다.
내일은 일어나서 우산을 쓰고 나가자.
안쪽엔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이 놓여 있는 우산을 쓰고 나가자.
바깥 쪽엔 칠흑 같은 검은색이 \’씌여있는\’ 우산을 쓰고 나가자.
이제 곧 봄의 시작이다…
길을 가는데, 시체색 앙상한 뼈에 붙어있는 노란색 개나리가 피어 있다.
아마 2~3일 전 즈음에 피어있었을 것이다. 꽃샘추위에 부들부들 뼈가 울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런 정도로 개나리 꽃은 시들거나 죽지 않는다.
어찌나 촌스런 노란색인지 나로 모르게 눈살이 지푸려진다.
키높이 정도의 담장을 따라 뼈들이 계속 주우욱 펼쳐져 있다. 하늘의 파란색은 즙을 모조로 다 빼버린 건조한 물통색이었고, 바람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돌아오는 길 버스에 앉아 내 등뒤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무심히 보면서, 언제나 그렇듯 혼자 있으땐 귀에 헤드폰 걸어놓고 음악들 듣는다. 의자에 앉은체 카메라 가방에 팔을 고이고 턱을 괸다.
바로 앞자리 좌석에 햇빛이 쏟아지는데, 아까 봤던 그 개나리 색이다. 그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뒷모습만 존재 할 수 있도록 허락 받은것 같은 늙은 중년의 반쯤 벗겨진 머리를 보며, 아까 봤던 개나리가 생각 났다.
잠자고 카메라는 꺼내지 않는다.
조용히 작업실로 돌아와 보내야 할 사진 3장을 정리하고 우체국에서 포장을 해서 발송했다. 돌아오는 길에 담배 한값을 사고 계단을 올라와서, 무심히 담뱃불을 붙였다.
바람은 너무나도 차갑고 밀도감은 떨어졌다.
쓸때없는 잡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배가 고파 계란을 2~3개 꺼내 소금과 후추를 넣어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밥과 함께 먹었다.
여름이 빨리 오면 좋겠다.
그야 결국, 당연히 오고야 마는거지만..
그런식으로 또 당연히 다시 봄은 올 것이고, 이것을 얼마나 더 반복하게 될진 아직까진 알 수 없다.
10년째 항상 봄엔 좋은 일이 일어난 적이 없다.
내가 봄을 증오해서인건지, 그래서 봄도 나를 싫어하는 지도 모르겠다.
개나리는 이제 됐으니, 벚꽃이나 피었으면 좋겠다.
미지근하니 따뜻한 밤공기 아래 벚나무에서 술이나 한잔 하면 좋겠다.
아는 형과 바이크 이야기를 했다.
경바이크 단기통의 두둥 거리는 소리도 적당하고. 그런데 카메라의 심장은 뭐지?
카메라의 심장?
셔터일까
아뇨.
동력계의 기계들은 엔진이 심장이라잖아.
카메라의 심장은.
마음이에요.
하루 하루 \’생활\’ 한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분명 몸은 피곤한데 기묘하리 만큼 몽롱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오른쪽 눈엔 프린트 하다 튀어버린 약품 때문인지 흰자위가 벌겋게 조각나 있다.
생각이 많아지면, 그리고 그것이 숙성되고 영글어진다면 그 만큼 입이 무거워지기 마련일텐데 최근 들어 난 입을 여는 횟수가 많아진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필시 영글지 못함 때문이리라.
가만히, 듣고 응시하던 모습이 예전에 나에게 있었다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찌 된 일인가. 무엇에 대해 난 목 마름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 무엇에 대해 난 화를 내고 있는 것인지.
필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차분히 나의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하고 반성을 해야 할 때가 아닐까.
혀를 놀려 마음을 흩트리지 말고 혀를 쉬게 하고 심장을 쉬게 하고 눈을 쉬게 함으로써, 나 자신을 가라앉히고 투명하게 만들어 밑바닥을 봐야 할 것은 아닌가.
아니다.
그런게 아니다.
아마도 무엇을 두려워 하고 있거나
귀찮아 하는 것일 게다.
틀림 없다.
가랑비 젖듯 회의감에 물들어, 결국 무엇을 귀찮아 하게 된 것이다.
말을 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다,
말을 하기 귀찮아 졌기 때문에 말이 많아 진 것이다.
이런 상태는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불쾌하다.
스스로를 추스리고 조금은 따스하게 다정하게 대해줘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빌어먹을 언제나 그렇듯,
셔터는 항상 열려있다.
난 사진을 찍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
사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체,
자신의 어린 자식의 맞은편에서 자동 카메라를 들고 있는
이 세상 모든 아빠와 엄마를 존경한다.
그리고 때론 내가 사진을 찍고 있다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환멸감을 느낀다.
심장이 퍼렇게 될때까지 울고 싶은 밤이다.
내게 금빛과 은빛으로 짠
하늘의 천이 있다면,
어둠과 빛과 어스름으로 수놓은
파랗고 희뿌옅고 검은천이 있다면,
그 천을 그대 발 밑에 깔아 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이 꿈뿐이라
내 꿈을 그대 발 밑에 깔았습니다.
사뿐히 밟으소서,
그대 밟는 것 내 꿈이오니.
– William Butler Yeats
마지막 남은 한장을 프린트 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하이라이트의 톤을 맞추고 그에 따른 쉐도우 톤의 기본값을 먼저 기본으로 설정하고 그에 따라 내가 원하는, 그리고 \’목적\’하는 톤을 만들어 내기 위한 변화량을 조절해간다. 쉐도우의 변화량이 큰 핸들링을 할땐 미드톤에서부터 하이라이트의 중간부분까지 같이 변화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세심한 주의와 계산 그리고 경험이 요구된다. 그런식으로 감마값을 조절해나가면서 톤의 전체적인 무게와 촉감과 매끄러움 끈끈함 매마름 차가움 따뜻함을 만들어 나아간다.
그나마 오늘은 남은 프린트 분량이 적어서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프린트를 할 수 있었다. 보통은 12시간 15시간 동안 암실에서 거의 나오질 못한다. 그 시간동안 가끔 음악을 들으며 프린트를 하곤 한다.
몇번의 계속되는 프린트를 하면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마스터 프린트를 확인하기 위해 불을 켜고 스퀴지를 해서 면밀히 살펴본다. 셀레늄 토닝을 통한 디테일의 상승과 D-MAX의 깊어짐, 웜톤 인화지가 셀레늄으로 인해 살짝 중성화 되는 색조. 그리고 드라이 다운을 통한 톤의 변화량을 예견하면서,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리는 암실에서 혼자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때 내 귀에 걸려있던 해드폰에서 바흐의 \’음악의 헌정, 리체르카레\’가 흘러나왔다.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하는 듯 했다.
좋았다.
그리고, 서글펐다.
지금 인화지 수세기에 담겨 있는 사진들은 열심히 수세 되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