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df_Mutter

이름.

몇일 혹은 몇주전 후지에서 새로 발매될 필름에 대한 세나미와 전시를 한다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필름 특성곡선과 스펙트럼별 감광특성곡선을 보기도 하고, 실제 촬영을 한 필름들을 비교하면서 볼 수도 있었다. 해당 필름을 이용한 사진을 대형 프린트로 해서 전시한것도 물론 있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후지필름 연구소 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분과 잠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난 이야기를 하기전에 내 어깨에 걸쳐있는 필름 카메라를 보이지 않도록 뒤로 제껴두고 질문을 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물었을때의 뉘앙스는 \’난 필름 카메라 안써. 역시 디지털이 최고지\’ 라는 기분의 뉘앙스로 약간은 당돌하게 (그러나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면서) 질문을 했다.
\”요즘 같이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에 이렇게 새로운 필름을 발매한다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장사가 될까요? \”

\”확실히 예전에 비해 필름전체의 쉐어가 줄어든건 사실입니다만, 어떤 부분에 있어선 고급 필름의 수효는 예전에 비해 그 상대비율이 오히려 더 올라갔습니다. 실제로도 디지털로 사진을 시작하셨다가 필름으로 가신분들 혹은 필름으로 하셨다가 디지털로 해보시고, 결국 다시 필름으로 돌아오시는 분들 또한 상당수 있고 아마 주변 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이 간혹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또한 필름 고유의 아름다움, 그리고 단순히 결과물로써만이 아닌 아날로그 필름이라는 과정 그 자체의 불편함속에서 오는 즐거움. 그리고 그러한 수요가 요구되고 있는 한 계속 필름을 만들어 갈 것이고 새로운 필름의 개발 또한 앞으로 계속 될 것 입니다. \”

\”네 그렇군요. 하지만 과연 그게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까요.\”

\”저희 회사 이름은 후지가 아닙니다. \’후지필름\’ 입니다. \’후지필름\’ 이라는 이름이 있는 한, 필름의 생산을 중단해버리게 되면 그것은 더이상 \’후지필름\’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숨이 막혀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마치 잘못을 시인하듯, 내 어깨뒤에 숨어있던 필름 카메라를 편안하게 풀어 그 사람의 시야에 보일 수 있도록 팔목춤에 카메라를 걸었다.

\”네. 후지가 아니라 후지필름 이었군요. 네… 맞습니다. 후지필름 이었군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속으론 나름 감동을 했지만, 전혀 표시내지 않으려고 무뚝뚝하게 목례를 하고난 다음 길로 나섰다.

그 연구소 실장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일부러 아무 말 하지 않고 꾹 참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말을 해버릴까 싶기도 해서 좀 아쉽다.
\’좋은 흑백필름 꼭 개발 해주세요\’ 라고.

그리고 이런 기업이 일본에 있다는게 굉장히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등골이 싸늘할 정도로 무섭다.

그리고 더불어 코닥도 조금 더 힘내주면 좋겠다.

열등감.

우연하게 구한 산타나의 슈퍼 내츄럴 라이브 DVD를 봤다.
특별한 기교가 있는것도 아닌, 산타나 답게 그저 편안히 리프 하나 하나를 슈퍼 내츄럴 하게 연주해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 없는 눈빛과 동작과 웃음과 에너지를 주고 받고 섞고 교통하며 음악을 들려준다.
아니, 서로와 서로가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 그 웃음 속에는 이미 어떤 종류의 완벽히 결정화 되어버린 아름다움이 있다.

살짝 어긋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나의 소리가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만드는, 어쩌면 승화라는 단어마저도 약간 게걸스럽게 들릴 정도의 자연스러움이 녹아있다.

음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음악이란, 사람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가!

음악과 사진은 유사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
라이브가 끝나고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소리와 리듬과 에너지와 기쁨과 미소와 아름다움이 몸에서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순간 몸이 멈춘다.

유사한 점이 너무나도 많은 사진과 음악이지만, 사진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기엔 너무나도 힘이 든다.
기껏 해야 담배 한개비 태울 정도의 것이, 지금 나의 한계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항상 음악에 대한 열등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서로 비슷한 것이 많다는 사실은, 이러한 열등감에서 더더욱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다.

내가 죽기 이전에 \’무엇인가에서 부터 무엇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 사진으로 애초에 그러한 것이 가능 한 것인가. 어쩌면 애초에 내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인가.

포기 해버리기엔 나의 열등감은 깊다.

오해.

사랑해요. 진심으로.
바보 같은 나를 언제나 믿어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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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을 정리하다 발견된 옛 편지 中

목구멍에 걸린 두마디.

당신, 뭘 보고 있는거죠?

사진, 왜 찍나요?

월동 준비.

몇일 전,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밥을 챙겨먹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오른쪽 머리가 깨어질듯 아팠다. 죽을 만큼 아픈건 아니었지만 슬금슬금 기미가 보이더니 그 거무스름한 아픔이 오른쪽 뇌 전체를 쓸어버리고 있었다.

기미가 조금 진정되는 틈을 타서 (마치 태풍의 눈 같았다) 서둘러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바깥엘 나갔다. 바깥 공기라도 쐬고 산보라도 하면 좀 괜찮아 질것이라는 심산이었다. 마침 월동 준비도 해야했기에 잘 되었다 싶다.

타박타박 걸어서 국제시장엘 갔다.
장미표 문풍지를 몇개 사고, 잠시 잠시 태우려고 세븐스타 한보루와 추울때 몸을 데워줄 알콜도수가 높은 술을 한병 샀다. 이게 나의 월동준비의 전부다. 그렇게 구입하고 작업실에 돌아가려는 참에 전화가 한통와서 사람을 만나고 저녁 먹는 자리에 같이 합석 하게 되었다. 그때 까지도 계속 머리가 아팠는데, 겨자가 제법 들어간 음식을 먹고나니 막혔던 머리가 뻥 뚫려버리는 듯한 쾌감이 몰려온다. 기분이 제법 상쾌하고 가벼워 졌다. 얼굴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진듯 하다. 커피를 마시고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작업실에 한발 넣어 보니, 벌써 살짝 냉기가 돈다. 장미표 문풍지의 포장을 찢어낸 후에 손에 살짝 물기를 뭍혀놓고 바람 들어오는 곳을 찾아서 발라주었다. 딱히 힘든일도 아닌데 괜스레 장미표 문풍지의 찢겨진 포장지가 자꾸 눈에 밟힌다.

다 끝낸 후에 오늘 사왔던 세븐스타의 포장을 뜯어 한갑을 꺼내고 다시 담배곽의 포장을 벗겨낸 후에 다시 천천히 한가치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역시 오늘 사왔던 알콜 도수가 높은 술의 두껑을 따고 잔에 부어 세번에 나눠 천천히 마셨다.

다 붙이지 못했던 문풍지를 마져 다 붙이고, 나뒹굴던 장미표 문풍지의 척박한 포장지를 물끄러미 보고, 길다라니 쓰레기가 되어버린 미로속의 스티커를 바라 보았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봤다. 확실히 좀 낫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조심해야 한다.

달이 아주 낮게 깔려있더라.

이런 날은 보통 불길한 일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조심해라..

특히 시간이 흘러 붉은 달이 될때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작업 끝.

모든 프린트가 끝났다.

그리고 서문도 거의 다 썼다.

이제. 정리하고 발송하면 일단은 끝이다.

이 사진들을 다시 화이버 베이스에 프린트 할 수 있는 일이 생기길 빈다.

혹시 이 카메라 보신 분 있으면 제보 바랍니다.

하프판 SLR인데.

올림푸스 Pen F 혹은 FT.
국내에 물건 있는걸 알고 있으신 분은 제보 바랍니다.
E-bay에서는 물건이 좀 있는데,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는 신분(생활)을 하고 있어서, 별 수 없군요.

모델은 젊었을 적 날카로웠던 유진 스미스씨.

하늘, 구름

잠들지 못한체, 아침을 지새우고 정오가 되어 바깥을 나섰다.
이런 눅진눅진한 기분을 햇볕으로 말리고 싶었다. 아니, 말라버린 몸을 조금은 촉촉하게 만들고 싶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수염도 깎지 않은체 카메라에 필름 한롤을 새로 채워 주워섬기곤 작업실 계단을 내려오자, 가장 먼저 만난건 강한 햇살이었다. 눈이 쓰리고 아픈 햇빛이다.

작업실 앞 수퍼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서는 입에 베어 물었다. 딱히 기분 전환이 되진 않는다. 탈래 탈래 걸으며 풍경들을 사람들을 거리를 자동차를 하늘을 바닥을 의자를 마네킨을 보았다.

갑자기 너무나도 서러워 내 마음을 대피할 곳을 찾아갔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근처의 가계에서 마네킨을 찍었다. 햇살은 매우 거칠어서 콘트라스트가 너무 강했지만, 우습게도 기묘한 음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열 몇컷을 그렇게 찍고 돌아가는 길에 닫혀있던 문이 살포시 열려있어서, 살짝 열기띤 얼굴을 하고 들어갔지만, 주인장은 열심히 콩을 볶아내고 있는 중이다. 어떻게 안될까요. 라고 물어봤지만, 그 양반. 언제나 그랬듯 대답은 확고하다.

마음이 조금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내 기분의 신상을 일일히 열거하면서 앉아있고 싶은 기분도 \’전혀\’ 들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에 수족관 물품 취급점에 들려서 아로아나를 잠시 묵도하러 갈까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금 정신적인 체력이 너무나도 바닥이다. 그런 정신 상태에서 아로아나를 보고 있다보면, 불현듯 갑작스럽고 조용한 충동이 생길까 하는 마음이 들어, 결국 가던 발걸음을 돌렸다.

더 프린트에 들려 조용히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간간한 이야기를 하고 책을 읽고 담배를 5개비 태웠다. 돌아오는 길에 부산 근대 역사관에 들려서 10분만에 싹 훑어보곤(그냥 천천히 걸었다는 기분이었다) 내려와 하늘을 보니, 거칠었던 광선은 조금 누그러 들고, 눈에 보이는 사물들의 톤들도 다소 부드러워 보인다. 하지만 무엇인가 생기가 빠져나간듯한 강렬한 박탈감이 느껴진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니,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흰색이었다. 그런 평범하고도 당연한 사실이 불현듯 나에겐 서럽게 느껴졌다.

작업실에 도착하니 3시가 조금 넘었다. 엇저녁 부터 새벽 1시 35분이 된 지금 이 시간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기껏 해봐야 커피를 마실 수 있는게 전부다. 뭔가 음식이 위장에 들어가면 다 뒤집어 질것 같은 기분이다.

난 왜, 여러가지 것들. 그리고 그 중에서 몇몇 중.요.하.다 라고 생각하는 것들까지 포기하면서, 이렇게 살고 있는가.

평범하고 당연한 하늘과 구름을 고개 들어 봤을때의 서러움이, 마침 카메라의 필름이 한컷도 없었음에 찍을 수 없었던, 오늘 하루를 감사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나의 하루를 감사해야 할 것이다.

에테르, 레테르.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으며, 무엇 하나 의미를 가지는 것이 없으며, (같은 말 같지만 엄연히 다른 말이다) 아무것도 알 수 없고, 아무것도 꺠달을 수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으고, 아무것도 전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이룰 수 없고, 심지어 무엇인가를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그런 상태 말이다. 그 무엇에도 다다를 수 없다. 라는 그런 것 말이다.

하긴 생각을 해보면 무엇엔가 다다른다는 것 자체가 존재 할 수 있는지 아닌지, 아니 심지어 \’그것\’이 언어로써 다다른다 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될 수 있는 것이기나 한건지..

너무나도 부정확스러운 기호만이 덩그라니 남아서, 날이 무딘 사람만한 칼로 전깃줄을 찢어내듯 펄떡펄떡 남아있는 \’기호\’가 우주에 에테르 처럼 떠있는 듯 하다.
(에테르 이론은 이미 예전에 파기된 개념이긴 하지만..)

갑자기 떠오르는 이미지.

천사의 알. 이라는 작품을 보면, 이런 갈증이 조금 풀릴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에겐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는것 같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게 느낄 순 없지만. 한가지 희미하게 나마 알 수 있는 것은, 정직 할것 이다.

과연 난 얼마나 정직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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