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중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온다.
무엇때문인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무엇이 날 답답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그 무엇\’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 눈앞에 보일듯 할때, 생각의 두껑을 닫아버렸다.
아마도 거기서 조금 더 생각을 했었더라면, 그 무엇이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냥 알 수 있게 되는 것 종류의 것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난 어째서 두껑을 닫아버렸던 것일까.
무엇이 날 그토록 두렵게 만든 것인가.
그리고 다시 돌아와 그 무엇은 과연 정말 무엇이었던가.
잠들지 못한체 의자에 앉아선 예전에 선물받았던 쿠바산 시가를 보고 있다. 아주 좋은 일이 생겼을때 꼭 피우리라고 아껴두고 아껴두었던 것이다. 일본에서의 개인전 결정이 서신으로 날라왔을땐 정신이 없어서 시가를 피울 정신도 없었다.
난 여전히 의자에 앉은체 손에 올려진 쿠바산 시가를 물끄러미 보면서 피우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처음 이 시가의 역활이 \’설정\’ 되어진 상황에서 지금 이런 상태일때 피워버리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생각한다.
하지만 어짜피 그 시가의 역활은 애초 내가 설정해버렸던 것이고 시가는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이 단지 시가일 뿐이다. 때문에 설정 혹은 의미를 바꾼다고 해도 아무런 문제 될건 없다.
그래. 피우는 것 자체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냥 피우면 되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마음 먹은 직후 내 손바닥 위에 있던 시가는 서랍속으로 다시 조용히 들어간다. 이젠 언제 피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혹은 아마도 그렇게 \’설정\’되어져버린 시가가 남아있다.
그런 기분이다.
잠들고 싶다.
개인전에 사용될 포스터와 엽서에 들어갈 사진을 한장 셀렉트 하고 잡지에 실릴 원고용으로 한장 더 셀렉트 해야만 했다.
그리고 원 작품에 포함된 Artist Statement 외에 Nikon측에서 따로 요구한 사진의 개략적 내용 (혹은 소개글)을 400자 원고지 분량에 맞춰서 쓴 글도 다 마무리 지었다.
예전부터 벼르던 좀더 좋은 프린트를 위해 기존에 사용했던 화이버 베이스 건조대의 망을 뜯어내고 전부 새로 갈아 넣었다.
수분 흡수력은 떨어져서 예전보다 프린트 취급 자체는 좀더 신경 쓰이겠지만 통기성이 더 좋아짐에 따라 얻은 이득은 분명 할 것이다. 또한 간혹 발생 할 수 있는 표면처리 문제또한 이것으로 완벽히 해결 될 것이다. 다소 품이 드는 일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도와준 사람이 있어서 만족스럽게 잘 끝낼수 있었다.
나머지 서류관계쪽의 문제와 그 밖에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조금 더 궁리를 하고 해결하고 난 후에 프린트를 하고 싶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
프린트에만 완전히 전념 하고 싶다.
지금도 프린트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있지만, 왠지 지금은 그래선 안된다는 직감이 나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춘다면 이럴 경우 내 직감을 믿고 따르는 것이 옮았다.
나 자신을 믿고, 조금만 조금만 더 참고 참아서.
어느날.
프린트를 하게 될 것이다.
몇일 혹은 몇주전 후지에서 새로 발매될 필름에 대한 세나미와 전시를 한다고 해서 참석하게 되었다.
필름 특성곡선과 스펙트럼별 감광특성곡선을 보기도 하고, 실제 촬영을 한 필름들을 비교하면서 볼 수도 있었다. 해당 필름을 이용한 사진을 대형 프린트로 해서 전시한것도 물론 있었다.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후지필름 연구소 실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분과 잠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난 이야기를 하기전에 내 어깨에 걸쳐있는 필름 카메라를 보이지 않도록 뒤로 제껴두고 질문을 했다.
기본적으로 내가 물었을때의 뉘앙스는 \’난 필름 카메라 안써. 역시 디지털이 최고지\’ 라는 기분의 뉘앙스로 약간은 당돌하게 (그러나 기본적인 예의는 지키면서) 질문을 했다.
\”요즘 같이 디지털이 대세인 시대에 이렇게 새로운 필름을 발매한다니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장사가 될까요? \”
\”확실히 예전에 비해 필름전체의 쉐어가 줄어든건 사실입니다만, 어떤 부분에 있어선 고급 필름의 수효는 예전에 비해 그 상대비율이 오히려 더 올라갔습니다. 실제로도 디지털로 사진을 시작하셨다가 필름으로 가신분들 혹은 필름으로 하셨다가 디지털로 해보시고, 결국 다시 필름으로 돌아오시는 분들 또한 상당수 있고 아마 주변 분들 중에서도 그런 분이 간혹 있으리라 생각 합니다. 또한 필름 고유의 아름다움, 그리고 단순히 결과물로써만이 아닌 아날로그 필름이라는 과정 그 자체의 불편함속에서 오는 즐거움. 그리고 그러한 수요가 요구되고 있는 한 계속 필름을 만들어 갈 것이고 새로운 필름의 개발 또한 앞으로 계속 될 것 입니다. \”
\”네 그렇군요. 하지만 과연 그게 언제까지 계속 될 수 있을까요.\”
\”저희 회사 이름은 후지가 아닙니다. \’후지필름\’ 입니다. \’후지필름\’ 이라는 이름이 있는 한, 필름의 생산을 중단해버리게 되면 그것은 더이상 \’후지필름\’이 아니게 되어버립니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숨이 막혀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마치 잘못을 시인하듯, 내 어깨뒤에 숨어있던 필름 카메라를 편안하게 풀어 그 사람의 시야에 보일 수 있도록 팔목춤에 카메라를 걸었다.
\”네. 후지가 아니라 후지필름 이었군요. 네… 맞습니다. 후지필름 이었군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속으론 나름 감동을 했지만, 전혀 표시내지 않으려고 무뚝뚝하게 목례를 하고난 다음 길로 나섰다.
그 연구소 실장에게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일부러 아무 말 하지 않고 꾹 참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말을 해버릴까 싶기도 해서 좀 아쉽다.
\’좋은 흑백필름 꼭 개발 해주세요\’ 라고.
그리고 이런 기업이 일본에 있다는게 굉장히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등골이 싸늘할 정도로 무섭다.
그리고 더불어 코닥도 조금 더 힘내주면 좋겠다.
우연하게 구한 산타나의 슈퍼 내츄럴 라이브 DVD를 봤다.
특별한 기교가 있는것도 아닌, 산타나 답게 그저 편안히 리프 하나 하나를 슈퍼 내츄럴 하게 연주해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말 없는 눈빛과 동작과 웃음과 에너지를 주고 받고 섞고 교통하며 음악을 들려준다.
아니, 서로와 서로가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 그 웃음 속에는 이미 어떤 종류의 완벽히 결정화 되어버린 아름다움이 있다.
살짝 어긋나는 경우도 있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나의 소리가 인간을 인간 이상으로 만드는, 어쩌면 승화라는 단어마저도 약간 게걸스럽게 들릴 정도의 자연스러움이 녹아있다.
음악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음악이란, 사람을 얼마나 아름답게 만드는가!
음악과 사진은 유사한 점이 너무나도 많다.
라이브가 끝나고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 소리와 리듬과 에너지와 기쁨과 미소와 아름다움이 몸에서 떠나질 않는다. 하지만 순간 몸이 멈춘다.
유사한 점이 너무나도 많은 사진과 음악이지만, 사진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기엔 너무나도 힘이 든다.
기껏 해야 담배 한개비 태울 정도의 것이, 지금 나의 한계이다.
전에도 그랬지만, 항상 음악에 대한 열등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서로 비슷한 것이 많다는 사실은, 이러한 열등감에서 더더욱 벗어나기 힘들게 만든다.
내가 죽기 이전에 \’무엇인가에서 부터 무엇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아니, 사진으로 애초에 그러한 것이 가능 한 것인가. 어쩌면 애초에 내 생각 자체가 틀린 것인가.
포기 해버리기엔 나의 열등감은 깊다.
몇일 전,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히 아침밥을 챙겨먹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오른쪽 머리가 깨어질듯 아팠다. 죽을 만큼 아픈건 아니었지만 슬금슬금 기미가 보이더니 그 거무스름한 아픔이 오른쪽 뇌 전체를 쓸어버리고 있었다.
기미가 조금 진정되는 틈을 타서 (마치 태풍의 눈 같았다) 서둘러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바깥엘 나갔다. 바깥 공기라도 쐬고 산보라도 하면 좀 괜찮아 질것이라는 심산이었다. 마침 월동 준비도 해야했기에 잘 되었다 싶다.
타박타박 걸어서 국제시장엘 갔다.
장미표 문풍지를 몇개 사고, 잠시 잠시 태우려고 세븐스타 한보루와 추울때 몸을 데워줄 알콜도수가 높은 술을 한병 샀다. 이게 나의 월동준비의 전부다. 그렇게 구입하고 작업실에 돌아가려는 참에 전화가 한통와서 사람을 만나고 저녁 먹는 자리에 같이 합석 하게 되었다. 그때 까지도 계속 머리가 아팠는데, 겨자가 제법 들어간 음식을 먹고나니 막혔던 머리가 뻥 뚫려버리는 듯한 쾌감이 몰려온다. 기분이 제법 상쾌하고 가벼워 졌다. 얼굴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진듯 하다. 커피를 마시고 고마운 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작업실로 돌아왔다.
문을 열고 불을 켜고 작업실에 한발 넣어 보니, 벌써 살짝 냉기가 돈다. 장미표 문풍지의 포장을 찢어낸 후에 손에 살짝 물기를 뭍혀놓고 바람 들어오는 곳을 찾아서 발라주었다. 딱히 힘든일도 아닌데 괜스레 장미표 문풍지의 찢겨진 포장지가 자꾸 눈에 밟힌다.
다 끝낸 후에 오늘 사왔던 세븐스타의 포장을 뜯어 한갑을 꺼내고 다시 담배곽의 포장을 벗겨낸 후에 다시 천천히 한가치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리고 역시 오늘 사왔던 알콜 도수가 높은 술의 두껑을 따고 잔에 부어 세번에 나눠 천천히 마셨다.
다 붙이지 못했던 문풍지를 마져 다 붙이고, 나뒹굴던 장미표 문풍지의 척박한 포장지를 물끄러미 보고, 길다라니 쓰레기가 되어버린 미로속의 스티커를 바라 보았다.
소파에 가만히 앉아봤다. 확실히 좀 낫다.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하프판 SLR인데.
올림푸스 Pen F 혹은 FT.
국내에 물건 있는걸 알고 있으신 분은 제보 바랍니다.
E-bay에서는 물건이 좀 있는데, 신용카드를 만들 수 없는 신분(생활)을 하고 있어서, 별 수 없군요.
모델은 젊었을 적 날카로웠던 유진 스미스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