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일고 있는 어느 희뿌연 오전에
창문으로 흰빛이 찌르는
성당의 한 가운데 조용히 앉아서
아무 말 없이
미동도 하지 않은체
가만히 들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했다.
지금, 그런 기분이다.
마실을 나갔다.
딱히 큰 일도 없거니와 겸사겸사. 얼굴도 볼 겸. 그렇게 겸사 겸사.
팩토리에서 맛보는 원두커피 냄새가 중단된건 제법 오래전 일이다.
여차 저차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거겠지만. 항상 그렇듯 가장 중요한 원인은 한가지다.
몇개월 전부터 팩토리에서 커피를 마셔야지 마셔야지 했지만,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 날은 왠일인지. 나갈때 부터 원두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찌되었건 내 자금 사정상 상당히 사치를 부리고 말았다.
저녁에 돌아와서 오랫만에 혼자 오도카니 커피 마실 생각을 하니, 가끔은 이런 사치를 부린 자신을 책망하는게 조금은 누그뜨려졌다. 그런데, 한가지 잊은게 있었다. 드립핑 페이퍼가 한장도 없다.
왠지 김이 팍 세어버렸다.
다음날 느즈막이 나가서 페이퍼를 샀다.
커피 냄새가 제법 좋다. 게다가 원두도 상당히 고급이다.
물맛도 좋지 않고, 천천히 드리핑 하는것도 아닌 메이커에서 뽑아내는거라 제대로 된 커피맛이 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좋은 기분이다. 오랫만이라서 그런지 맛도 괜히 좋게 느껴진다.
약 2년간 고장난체 그대로 방치해둔 전기스탠드가 있다. 디자인은 아주 단순해서 특별히 멋있다던지 하는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70~80년대의 디자인을 가지고 있는 검은색으로 칠해진 쇠로된 갓전등. 그런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고장난 뒤론 고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계속 그렇게 방치해둔체 먼지만 폴폴 쌓여간다. 그렇게 쌓이면 쌓이는데로 손대지 않고 가만히 두었다. 아마 앞으로도 고칠 날은 없을듯 싶은 느낌이다. 솔직히 이 전등은 나에게 있어선 조그만 의미가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가만히 놔두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전조도 없이 전자부품상에 들려서 220v 토글 스위치 하나를 구입했다. 그렇게 부품만 구입하고 또 몇일을 보냈다. 어쩐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그 \’스위치\’는 책상위에 가만히 누워만 있다.
오늘 잠시 밖을 나가서 시금털털한 바닷내음을 느끼며 거리에 나섰다. 언제나 그렇듯 카메라를 울러메고. 언제나 그렇듯 귀에는 이어폰이 울린다. 타박 타박 타박…
서점에 들려서 책 두권을 샀다. 와아. 완전 거지다.
테스터기로 저항을 체크하고, 전기줄 역시 끊어진 곳은 없는지 세심하게 체크를 했다. 그리고 전등을 뜯고, 인두기의 열을 미리 올려놓고, 배선을 새로하고 납땜을 깔끔하게 다시 해주었다.
불이 들어온다.
아주 간만에 쌀을 이용한 밥을 했다.
밥솥에 적당량 쌀을 넣고 씻기고 물을 떠내고 약 10~20분 정도 불린다음
전원을 올린다.
밥할때는 생각 못했었지만, 막상 냉장고를 열어보니 슬라이드 필름만 몇개 남아있고, 찬거리가 될만한게 거의 없었다. 남은건 계란 몇알 정도. 그나마 정말 다행스럽다.
낡은 프라이팬과 조금 남은 소금과 조금 남은 후추와 식용유를 들고 나왔다. 불을 올리고 식용유를 뿌리고 살짝 달구어질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여기까진 아무 문제 없었다. 계란을 깨고 투명한 액채가 하얗게 변해갈때 즈음, 왠지 기분이 아주 조용히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럴땐 무표정이다.
익어하는 계란을 멀겋게 바라보며 갑자기 떠올랐다.
\’죠제와 호랑이와 물고기\’ 왠지 그 영화는 먹는 장면이 많이 나왔다.
계란은 이미 익을대로 익어서 조금씩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스크램블 에그로 하고 싶었는데…
밥그릇과 젓가락을 가지고 와선 밥을 펐다.
그리곤 밥을 입으로 옮기고 타들어간 계란도 입으로 옮겼다. 조용히 계속 반복했다.
마지막 생선굽는 장면이 계속 맴돈다. 그리고 노래가 나온다.
\’내가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는 대강 백가지정도 있어\’
로 시작하는..
몹쓸 영화다.
– Kodachrome – Simon & Garfunkel
When I think back
On all the crap I learned in high school
It\’s a wonder
I can think at all
And though my lack of education
Hasn\’t hurt me none
I can read the writing on the wall
Kodachrome
You give us those nice bright colors
You give us the greens of summers
Makes you think all the world\’s a sunny day, oh yeah!
I got a Nikon camera
I love to take a photograph
So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If you took all the girls I knew
When I was single
And brought them all together for one night
I know they\’d never match
My sweet imagination
And everything looks worse in black and white
Kodachrome
You give us those nice bright colors
You give us the greens of summers
Makes you think all the world\’s a sunny day, oh yeah!
I got a Nikon camera
I love to take a photograph
So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Leave your boy so far from home)
Mama, don\’t take my Kodachrome (away)
푸훗…
나도 니콘카메라 가지고 있는데 코다크롬을 직접 써본일이 없다.
요즘엔 사진을 진심으로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는게 한두번이 아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힘들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진은 나의 숨통을 조여온다. 단순히 현실적인 문제를 떠나서 사진 그 자체가 사신으로 다가온다. 나에게 고통인것은 이미 오래전 부터 이야기다.
좀더 살아보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나이도 모자라고 생각과 마음이 모자라서고 모자라고 부족한 인간이어서 그런지, 하면 할수록 더더욱 힘들고 고통스럽다. 예전엔 객기에 사진을 찢고 필름을 태우고 카메라를 집어던졌지만, 지금은 그런걸로 잠시간의 갈증이나마 해소될리 따위 없다. 묵묵한 무표정의 얼굴만이, 견딜 수 있고 대항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정말로 그만두자. 두눈 질끔 감고 그만두는거다. 어느 영화에서도 그러지 않았는가, 1분마다 새로운 선택의 인생이 있는거라고. 나쁘지 않은 거래다. 사진이라는 지옥에서 탈출하여 나 자신을 다독여주고 싶다. 하잘때기 없는 사진따위에 나 자신을 먹히게 만들고 싶지 않다. 난 상상만해도 내가 사진에게 먹히는 그 느낌과 촉감을 분명히 똑똑히 느낄 수 있다. 그래 그간 수고했다. 고생많았다. 라고 해주고 싶다. 아직까진 그대로 썩 늦은 나이는 아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보는 것도 배우 보람찬 일 일것이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결혼이라는 것을 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도 왠지 좋은일 일지도 모른다. 현명하고 총명한 아내와 나와 아내의 핏줄기를 보는것도 좋을것 같다. 물론 그만큼의 노력과 댓가는 필요하겠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럴때마다 그것을 막아주는 일들이 있으니, 천상 팔자 탓으로 돌리는게 속이 편할지도 모른다.
말은 이렇게 하고 있지만, 지금껏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아닌 사진이다. 난 그것을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난 도대체 얼마나 앞으로 더 살아가야 얼마나 더 많은 경험과 노력과 고통을 감내해야만 사진에서 벗어나 진정한 사진을 할 수 있게 될 것인가…… 앞으로 가야할 길이 너무나도 아득하다.
난 그녀에게 2년 4개월 동안 꼭 전해주고 싶은게 있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그녀에게 잘 전달이 되었을지 아닐진 모르겠지만.
그 동안 작업실에 있던 그녀의 물건을 돌려주며 내가 전하고 싶었던 것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진심으로 마지막 남아있던 힘을 쥐어짜며 전했다. 다리가 후들후들 거린다. 그것이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녀는 헤어지는 순간에도 나를 두번 죽였다. 나의 죄값중 일부다. 당연히 슬프다.
아직까지도 어떤 부분은 철부지 같은 모습이 보이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믿는다. 2년 4개월 동안 내가 봐오고 느꼈던 그녀는 충분히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녀는 안정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녀가 나선 작업실 검은 철문이 작은 쇳소리를 내며 닫히고 계단 내려가는 소리를 들을때.
그녀가 삶을 행복하게 살아 갈수 있길 진심으로 축원했다.
그리고 나에겐 그간의 죄를 갚아야 할 시간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나에게 또 다른 배움의 시간이 될것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 혹은 무서움을 느낀적 따위. 당연히 있다. 아마 아주 어렸을적 그래.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어느 찻집에 따라간것이 기억난다. 무슨일로 조그만 꼬맹이가 그런곳에 따라가게 되었는지 따위 전혀 기억이 안나지만, 커피테이블 바닥으로 모니터가 있고 모니터 위에 R,Y,G,B순서로 배열된 셀로판지를 붙여서 색으로 보이도록 만든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만나버렸다. 난 그날 이후로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러그, 엑셀리온, 제비우스, 피닉스, 디그더그 같은 오락에 푹 빠져있었던것 같다.
어느날엔가 아침밥을 먹고 유치원에 가야하는데 너무나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오락이 하고 싶어서 유치원 버스를 타지도 않고, 키는 의자정도 밖에 안되는 그런 녀석이 입는 노란 병아리 옷에 노란 가방(이 아니었을까? 전혀 기억은 안나지만. 아니 녹색이었나?) 을 둘러메고 홀홀 단신 오락실에서 50원을 넣고 혼을 불살랐던것 같다. 오직 그 앞에 그것만 보이는 그런 것이다. 부모님의 걱정이라던가 유치원에서 애가 나오지 않았음에 대한 문제라던가 따위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다. 단지 유치원 생이라서 그런게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오히려 유치원생 다운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지금과 그다지 다를게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어머니는 사방팔방 천지를 돌아다니가 이윽고 나를 발견했다. 물론 난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난 제비우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당히 최신 기종이었다. 기존의 것들과는 모든것이 한차원 다른 전혀 새로운, 압도하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 귀를 쎄게 당기더니 의자에서 떨어질뻔 했다. (그야 키가 작았으니까)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다. 서럽고 서럽고 너무나도 서러워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도 서러운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뺨을 맞아서 너무나도 아프고 고통스러운데도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 것이다. 너무나도 서러웠다. 오히려 다른 생각은 못한체 내가 오락하고 있는것을 방해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불쾌했었다. 철없는 그 조그만한 핏덩이가 눈을 부릅뜨며 엄마의 얼굴쳐다 보는 순간.
난. 울었다.
왜 눈물이 나는건지 당시의 나로써는 전혀 알수 없었다. 어째서 눈물이 나는건지 이해 할수도 없었다. 서러운것 하곤 다르다. 엄마의 얼굴에서 사력을 다해 허공에 손질하듯 헐떡거리며 찾아디니는 동안 녹아내린 걱정와 불안함이 그 조그만 핏덩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되어 격한 감정으로 되었다라는 것 따위 그 당시에 내가 이해 할수 있는 범위 밖의 것이었다.
그렇게 호대게 뺨을 맞았는데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품에 달려가 한없이 서럽게 울었다.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그때 난 처음으로 봤다. 그게 무서워였을까.
울면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간 나는 제법 오랜시간 엄마에게 혼난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탁은 상당히 풍성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오락실 출입 금지를 시켰다. 하지만 그 조그만 녀석은 녀석데로 약아빠져서 몰래 다녀오면 모르겠지라는 심산이지만, 엄마에겐 그런게 다 눈에 보이나보다. 몰래 다녀온다 손 치더라도 오락실에 한번 다녀오면 그 특유의 냄새가 온몸에 베여버리는 것으로 알아차렸다. 물론 거짓말도 했다.
\’오락실 안갔었어요.\’
\’이애가 또 거짓말을 하네! 나는 거짓말 하는 원주가 싫어요\’
이러면서 오락실 주인에게 까지 끌려간 적도 몇번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날 때리진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 난 냄새라는 것에 민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냄새가 있는 공간에 계속 있으면 코가 둔감해지기 나름인데도 그 속에서도 그 냄새를 맡는 요령을 스스로 터득했다. 오락실에서 나오고 나면, 불어오는 바람을 쐬고 바람이 없으면 달려서 냄새를 털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더더욱 달려서 땀냄새를 베어나게 했다. 조그만 것이 영악하다.
하지만 그때부터 난 바람의 냄새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것 같다.
흙의 냄새와 하늘의 냄새 정글짐과 철봉의 냄새,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냄새와 비냄새, 운동장 흙의 냄새와 길거리의 흙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난 처음으로 깨달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중엔 친구집에 놀러가면 그 집안 특유의 냄새에 따라 그집의 분위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 가정환경마저도 어느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실로 다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들 다른 고유의 집안 냄새가 있다는 것은 나에겐 굉장히 새로운 경험 이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조금씩 키가 커지고 머리도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의 상황속에서 난 두려움과 공포를 맛봐야만 했다. 여느 사람들이 그런것 처럼.
여자 좋아하는것도 유전이 되는가. 어렸을때부터 조금 조숙한 편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여자를 참 좋아했다. 적어도 최소한 두려움의 대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객채이다. 내가 좋아하는 객채인 것이지 두려워한다건가 무서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객채인 것이다. 여자라는 그 존재 자체가 난 좋았다. 나라고 하는 남자와는 대부분의 것들이 달랐다. 그런 \’다름\’ 그 자체가 나에게 어떤 흥미와 관심을 부여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여자라는 객채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가슴속 중심부터 깊이 박힌듯한 떨림을 느꼈다. 나름대로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많은것을 느꼈고 경험했고 배웠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여자는 좋아하지만 \’여자\’는 싫어하게 되어버렸다. 생각했던것에 비해 엔트로피는 여러 분야에 있어서 적용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서 쓰디쓴 미소를 짓게 되었던것도 그 쯤이 아니었나 싶다.
9년전, 태어나 여자에게서 처음으로 떨림과 불안함 두려움을 느낀적이 있었다.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것인지도 몰랐다. 어딘가 몸에서 자꾸 이상한 신호가 오는것만 같다. 위가 울렁거리고 식도와 기도는 꽉 조인듯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머리는 어쩐지 나의 머리가 아닌것 같고 몸 전체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순한 호감이라던가 좋아한다. 라는 느낌하곤 분명 다르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는것 만으로도 좋았다. 그 중에서도 난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게 제일 좋았다. 단지 한번 처음 보자마자 몸에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쑥맥이 되어버렸다. 이런말 하긴 쑥쓰럽지만 나름대로 베이직한 스킬은 터득하고 있었던 터라 그렇게 쑥맥이 될만한 건 아니었는데도, 마치 내 몸의 사지가 묶여버린듯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때 그녀는 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데곤 귓속말을 해주었다. 그것은 실로 근사한 몸짓이었다. 그 귓속말 한마디에 묶여있던 밧줄은 사라지고 겨우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난 그렇게 시작 되었다. – 그 귓속말 내용은 비밀이다.
그리고 일년이 모자라는 십년의 시간 동안,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동안 그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가진적은 없었다. 처음에 3~4년 동안은 차차 괜찮아질 것이다. 시간이 약이다. 라고 생각했었고 그다지 걱정도 많이 하지 않았다. 차차 시간이 해결해 줄것이다. 라고 굳게 믿었었고 실지로 많은 종류의 일들이 그렇게 해결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 않은것도 있는가보다. 그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스스로 자가진단을 내렸다. (우스운 일이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만약 그러한 종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신체적 감각기관이 있다면, 아마 난 그 기관이 거세당한 것. 이라고 말이다.
여전히 어렸을적, \’여자는 좋아하지만 \’여자\’는 싫어하는\’ 그 모습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살고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외로운 것을 공유하고 나누었다. 그러면 한결 사는것에 대한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킨쉽, 섹스 이런것을 난 무척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남자가 또 어디있겠냐만) 나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여자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물론 그러한것에 대가는 어김없이 지불해야만 한다. 그 뒤에 오는 외로움과 씁쓸함과 고독을 지불해야 한다. 엔트로피는 자애스럽다.
하지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엔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놀이삼은 적은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마음에 동하는게 없으면 나의 시선 바깥에 머물러 버렸다.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해야만 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났다 사라진 여자들이 있었다. 어느날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눈앞에 전화번호가 펼쳐져있는데도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은 커녕 오히려 극도의 절망적 고독과 씁쓸함을 견디고 견뎌야 했던적도 수십 수백번 이었다.
어떤 여자와는 진심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좋아했었다.
그러한 약 십여년의 시간동안 나의 거세된 감각기관은 자국만 살짝 남은체 내 가슴속에 있었다. 앞으로도 가망성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다. 불과 몇일 전까지.
설령 그녀와 나와의 관계가 잘 안된다 라고 한다면 그건 무척이나 굉장히 힘들고 슬프고 아픈 경험이 될 것이다. 일희일비하는 그런 소인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난 그렇게 되는것이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그녀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진심을 다해 전하고 싶다.
지금껏 내가 계속 살아있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함을, 그리고 내가 지금껏 계속 사진을 찍는 이유를 그녀는 나에게 재확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서 어떠한 종류의 두려움과 무서움은 또 다른 무엇인가를 잉태하는 어머니. 라고 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정은 결과에 수렴하고, 결과는 과정에 수렴한다. 그것이 끝도 없이 연속되어간다. 어떠한 상황에 어떠한 과정과 어떠한 결과가 있든 과정 혹은 결과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땅의 감촉, 하늘의 색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난 사진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스캐너에서 울리는 위~잉 소리를 9시간째 듣고 있다.
화장실을 잠시 다녀온 시간외에 의자에 거의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더니 허리에 붙어먹은 척추의 신경과 어깨가 시큰시큰 하니 쓰리다.
아픈것은 허리와 어깨만이 아니다.
너무 세삼스러운 일이지만, 아무리 호감을가지고 애정어리고 따뜻하게 여긴하고 하더라도
사진 이라는거… 정말 지랄이다.
그래도. 난 계속 찍어 갈 것이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제 자야겠다. 너무 너무 피곤하다.
이제 앞으로 내가 찍어갈 사진도 조금은 변할까.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내 앞에 펼쳐져있을진 전혀 짐작도 안가지만, 이제 조금정도는 나 자신에게 따뜻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는 허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하나 남아있던 맥주캔을 마셨다. 당분간 맥주캔은 필요 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