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것은 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이러한것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던것 같다.
그렇게 살아갔던 이유는 아마, 내가 교만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 그 무엇도 아무것도 실로 변한건 없어서,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지만, 어쩌면 조금정도는 일어서서 한걸음 한걸음 다시 걸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 무엇하나 변한건 없지만, 무엇하나 알게된 것, 느끼게 된것 없지만 말이다…..
비가 오면 이번에야 말로 꼭 카메라를 들고 수분이 말라버린 내 몸을 다시 적셔야 겠다.
베트남에서 아오자이를 입은 십대 소녀를 만나는거지.
프랑스 혼혈의.
스콜이 내리는 속에서 멍하니 하얗게 젖어 스쳐가는 소녀를 만나는것도 좋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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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아무것도 판단 할 수 없고, 아무런것도 느껴지진 않지만… 그래도 잊지 않기 위한 메모.
마치.. .식물인간이 된 기분이다.
사진에 대한 나의 무력감은 마치 5살된 꼬맹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주저앉아버리는 그런 기분이다.
어쩌면 아무것도 전할 수 없고, 아무것도 전달 할 수 없으며, 아무것도 동할 수 없는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혹한 무력감이다.
물론 그런게 아니길 바라고 있으며, 그런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많은 사진가와 사진들이 이 세상엔 존재 한다.
나에게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내 핸드폰의 기본 화면은 달력인데, 해당계절에 따라 뒷배경이 바뀐다.
예를 들어 3월부터 5월 31일까지는 노란 꽃들이 피어있는 들판 같은 것이 보인다.
6월 1일이 되자 부른 바다와 부서지는 흰 파도, 야자수 나무가 왼쪽에 걸려있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도대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만든 사람의 의도를 모르는바 아니지만 그림이 문제라기 보다도 6월 1일에 \’째깍\’ 라고 바뀌어버리는 여름이라는게 당체 맘에 들지가 않는다는 것 이다.
6월 1일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비가 왔으면 하고 내심 굉장히 바라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내 마음을 알아주었는가…
비가 오면 판초우의를 입은체 카메라를 들고 나가고 싶었다.
그런 기분이었다.
요즘 작품 하나를 만들고 있는데 한번에 10롤 이상씩 보기가 너무 힘겨웁다.
6월이 끝나기 전까진 프린트를 마쳐야 하는데 이래선 언제나 가능할런지 짐작도 안된다.
요즘들어 가-끔 느끼는 것 이지만, 사람보다는 술이 더 낫구나, 라고 생각할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스쳐지날땐 조금 슬퍼진다. 견딜만한 정도 만큼 슬퍼진다.
나의 여름은 언제쯤 시작 될런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내 베셀러 확대기에 콜드 라이트 헤드를 달아줘야만 할 것 같다.
좀더 넓은 토널레인지와 캘리어 이팩트가 발생하지 않는, 부서지지 않고 견고한 하이라이트, 그리고 매끈하며 단단하고 밀도감 있는 쉐도우를 보상 받을 수 있을것이다.
일단 가격도 저렴한 편이니까.
전시회 프린트 준비도 해야하니 좀더 높은 퀄리티의 프린트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인화지는 헝가리에서 제조된 포르테 인화지를 꼭 써보고 싶은데
아직까지 여의치가 못하다.
그녀가 대뜸 나에게 말했다.
\”오빠가 꼭 봐야할 영화가 있어요.\”
그녀는 어지간해선 나에게 음악이라던가 영화추천 같은걸 잘 하지 않는다. 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나를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라고 난 생각한다. 어찌되었건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녀가 나에게 꼭 보라고 했었기에 일단 믿었다.
\” 알려줘서 고마워. 여러가지로 궁금한게 많은데… 일단 물어보진 않을께.\” 라고 난 말했다.
\” 지금 물어봐도 괜찮은데 천천히 물어보셔도. 되고요 \”
\” 그럼 한가지만. 뻔한 질문 하나. \” 라고 말한뒤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계속 했다.
\” 내가 이 영화를 봐야만 하는 이유가 궁금해. \”
그녀는 말했다.
빛 냄새가 나거든요.
조용하기도 거세기도 한 빛 냄새가.
내용은 정말 아무것도 없다.
정말이지 특별한 거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조용하고 약간 거세고 빛 냄새가 날 뿐이다.
이런 종류랄까 분위기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어서 질리지도 않고 찬찬히 봤다.
영화가 거의 끝나갈때 까지도 그런 분위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그것 뿐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드디어 엔딩 크레딧이 올라왔다.
한참인가 멍하니 엔딩 크레딧을 보다 순간 오열에 가까운 울컥거림이 몸은 아주 조용히 가만히 있는체 몸을 뒤흔들었다. 담배 한가치를 물고 의자에 앉아선, 그 동안에도 무념히 올라오는 엔딩 크레딧에 시선을 돌렸다.
난, 눈물을 흘릴 수 마저 없었다.
이 영화는 구원에 관한 이야기였다.
카메라가 말썽이다. 이리저리 마음고생한것 치면 솔직히 짜증이 난다.
몇일전 또 문제가 발생해서 서울로 보냈다. 이번에 세번째다. 분명 문제가 발생하여 보냈지만 서울 센터에서는 아무런 에러메세지를 찾질 못했다고 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지난주 금요일 물건을 발송하여 토요일 부산에 도착해야 할 물건이지만 받질 못했다. 전화도 오지 않았다. 월요일 오후 4시즈음 되서야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온 택배직원에게 물건을 수령했는데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니 한자리가 틀렸다. 용케도 위치를 찾는다.
지금은 아주 말끔히 고쳐진 상태다. 아무런 문제도 없고 거슬리던 그립 러버도 제대로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어딘가 변해버렸다. 퍼팩트하게 작동이 잘 되고 있지만 무엇인가 변해버렸다. 도무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필름 한롤 날릴 각오하고 열번 이상 릴리즈 로테이션을 했다. 분명, 무엇인가 변해버렸다. 무엇인가.
퉁명스럽게 테이블 위에 툭. 하고 던지듯 놓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저녁에 잠시 나갈일이 생겼다.
어찌 되었건 무척 오랫만에 카메라와의 동행이다.
새 필름을 놈의 밥통에 넣어주고 길을 나섰다. 약속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 한통을 했다. 그 목소리는 무엇인가 변해버린듯 했다. 이런 종류의 예감은 항상 언제나 그렇듯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찌 되었건 주섬주섬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에 무엇인가 눈에 박혀 사진을 몇장 찍었다. 여전히 무엇인가 변해버렸다, 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외부도 내부도 모든게 말짱하고 퍼팩트하게 작동된다. 하지만 무엇인가 소실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래도 사진을 찍는다.
파인더를 통한 바깥속에서 나 스스로를 본다. 프레이밍과 초점을 동시에 맞추면서 노출을 결정한다. 이 사진을 프린트할 인화지는 일포드 웜톤 화이버에 2.5호로 프린트가 될 것이고 인화 현상액은 일포드 멀티그레이드 디벨로퍼-IV 일것이다. 또한 현상시간은 1분45초 즈음에서 +,- 15초가 될것이다. 필름 현상액은 D-76 희석비 1:1에 온도는 24도, 아지테이션은 로터리 프로세스를 사용하고 현상은 표준데이터에서 대략 N-0.6이 될 것이다. 확대기는 베셀러 23cII에 확대기 렌즈는 슈나이더 콤포논-S 50mm f2.8렌즈에 조리개는 5.6, 사이즈는 11×14로 확대 할 것임을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러는 동안 카메라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어딘가 지금의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불완전하다. 예전같으면 어떻게도 정을 붙일수가 없겠지만, 그렇게 사진을 찍은뒤 자꾸만 카메라가 측은하게 보인다. 불쌍한 녀석… 그렇게 카메라를 연민어린 손길로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그래. 팔고 다른걸 산다던가 하는 생각은 접자. 어쩌면 정말 나와 닮은 놈인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시간을 뛰어넘어 그렇게 되어버린건지도 모르니까.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자. 라고…
그리고 그날 늦은 밤, 긴 통화후 한 여자와 헤어졌다.
그녀의 무리한 부탁을 난 들어 줄 수 없다.
작업실 중앙에 있는 흰색 테이블 위에 뒷모습만 보이는 카메라 만이 나와 함께 있다.
항상, 언제나 그런 식이다. 마치 저주 같다.
예전 \’그 일\’ 후에 선물 받았던 발렌타인 17년산을 난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두명이서 속닥하게 마시기에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라는 느낌 정도로 남아있었다. 그만큼 남아있었다, 라는 것도 난 좋았다.
함께 마시기 위에 아껴두고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그럴필요가 없으니,
맛있는 위스키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괜찮아 질 것이다. 괜찮아 질 것이다. 괜찮아 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