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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학교 수업을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중앙동에 도착해서 담배를 한값 살까 싶었다.
편의점에 들어가기 전에 지갑을 미리 준비해둘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익숙한 느낌이 없다. 뭔가 허전하다.
전체를 다시 뒤져봤지만 지갑은 없었다.
버스에 올랐을때 분명 있었다. (교통카드를 지갑에 넣어 다닌다)
타고 있을때도 있었다. 묵묵히 음악을 들으며 주머니에 손을 질러넣고
제일 뒷자석에 앉아서 까닥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렸을때 주머니에서 흘러버린게 아닐까 싶었다.
114로 걸어서 해당 버스번호를 말해주고 버스 사무소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전화를 걸어 분실 신고를 하고, 나중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기대하지 않는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돈도 조금 있었고 (사실 돈을 아끼기 위해서 학교에서 밥을 먹지 않고 작업실에 돌아와 라면 끓여먹을 심산이었다) 여러가지 카드류 (본인은 신용카드 같은건 하나도 없다)가 걱정되었다.
지금껏 약 7~8년 동안 지갑을 잃어버린적은 없었다. 제법 신선한 경험이다. 물론 그와 동반되는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어제와 오늘 연속으로 운수 좋은 날이구나 싶었다.

수업을 끝낼즈음 전화가 왔다. 지갑을 찾았단다.
왠 세상에.

40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익영군과 갔었다.
밤 10시 20분에 도착을 했다. 저기가 사무소인가? 싶어서 설렁 들어갔더니, 와아~ 왠지 뭉클한 옛날 냄새가 난다. 80년대 말의 공장 사무소 같으면서도 넉넉한 오래된 분위기.

비가 일주일정도 눅눅히 왔으면 좋겠다.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17개의 비어있는 인화지 박스를 보고 있자니
멍해진다.

.

어느날 하늘에선 핏물이 쏟아지고,

대지는 고요히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뜨뜻 미지근하고 끈적거리는 핏물냄새가

몸 안에서 진동한다.

방명록.

문득, 오래전 방명록을 보고, 현기증이 났다.

.

발작성 우울증에 빠지다.

단 한컷도 찍지 못했다.

바흐만 들어온다.

염증.

언제부터인가 뇌속에 조그만 염증같은것이 느껴질때가 있다.

어떠한 생각을 하다보면, 그 염증이 시큰 거리면서 무엇인가를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무슨 말인진 알겠어. 하지만 아직 준비가 되어있는것 같지 않아.\’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것이 나중에 종양으로 변하고 그것이 전이 되어서 심장까지
파먹게 될지 아니면…

.

지금 이 캄캄한 밤 어디에선가
울고 있는 사람은
너를 위해 울고 있는 것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Nikon Sprit.

사진학과엔 1년에 한번씩 Nikon의 정기순회 서비스를 도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약간 수더분한듯 하지만, 노련해 보이는 a/s 기사분이 두분계시고 상당히 젊은 어시스턴트 한분이 있었다.
어떤 카메라들이 있는가 봤더니, 전부 옛날 기계식 수동 카메라 뿐이었다.
내가 보기엔 사용하다가 맡긴게 아니라 오랫동안 어딘가 쳐박혀 있던
느낌의 카메라들이다. (어째서 알 수 있냐고? 척 보면 단박에 안다)

기사분들도 약간 탈력인 느낌이랄까. 자기 나이보다도 많은 카메라
수리를 하고 있어야 하냐?! 라면서 약간 쓴웃음을 허허 지으며 클리닝을
하고 녹아버린 고무와 패킹을 조심스럽게 녹여내고 새로운 부품으로
정성스럽게 갈아주고 있는 모습을 봤다.

전자식 수동 카메라는, 내 F5와 F90X가 전부.

아아. 요즘 캐논 많이들 쓰죠? 라며 약간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니콘에서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난 니콘 카메라를 좋아한다고
역시 카메라 라고 한다면 이런 느낌이어야만 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F5를 보시더니, ‘아아…’라는 소리도 되지 못할정도의 짧은 탄식을 지으며
슬며시 미소를 띄는게 보인다.

‘참 좋은 카메라 입니다.’ 라고 말하자 난 짧게 대답한다.
‘네. 많이 낡았죠.’

다른 사진학과쪽은 잘 모르겠지만, 경성대쪽은 확실히 캐논쪽 유저가 많은것이 사실이다. 실리적으로 보더라도 현재 디지털 쪽에 있어선 Canon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예전에 니콘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계속 필름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장래성(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을 생각한다면 디지털로의 이행을 생각했을때 Canon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히 납득이 되고도 남음이다.

대단히 강한 오만적 편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아니라고 본다. 하하하. ) 캐논의 것은 ‘카메라’ 라기 보다는 단순히 사진찍는 기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런 느낌이다. 뭔가 사진찍는 사람과 기계간의 어떠한 공명감, 공기감이 느껴지지 않는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진찍는 전자기계(필름 카메라라고 할지라도)의 느낌이 강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생각은 ‘바디 의존적 사진’을 찍고 있는게 아니냐 라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누군가 그랬듯, 어느 정도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의 경우, 그 사람이 어떠한 카메라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어떠한 사진을 찍고 있는지 대강 짐작 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글쎄, 어쩌다가 이렇게 장황스럽게 쓸때없는 소리를 써재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는 간단하다.

Canon은 Sprit이 없지만. Nikon은 Sprit이라는게 존재한다고 느낀다.

추신1 : Canon을 쓰시는 분들에겐 대단히 죄송스러운 이야기겠지만, 그냥 어떤 니콘 팬의 투덜거림(?)정도로 봐준다면 좋겠다.
추신2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DSLR을 하나 구입하라면 난 1Ds를 살꺼다. 이건 어쩔 수 없거든.
추신3 :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Canon New F1의 광적인 팬이다.

I got the feelin.

삘 한번 받으니까,
몇일 동안 끙끙대도 안되던것이
5분도 안되서 끝났다.

세상에.

추신1 : 역시 억지로 하는건 영 체질이 아닌가 보다.
추신2 : 찰스 브라운, 썅! 당신을 존경해. 정말루.

흰색, 붉은색, 검은색 잉어.

어떠한 동공감 이라는 것은 항상 미묘한 마취감을 가지게 만든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무엇인가, 계속 하고 있는데 문득 동공감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아무생각 없이 일은 계속 하고 있고, 머리 속은
점점 마취가 되어가는 그런 느낌 말이다.

무엇인가 한쪽에선 한 단어를 들고 있고, 나머지 한쪽에서는 그것과
짝이되는 단어가 있는데, 영원이 그 단어 둘이서 만날 일은 없는 것 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꼭 맞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따위는 기본적으로 존재 할 수 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체험적으로 나마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해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조금은 이해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무한반복속에서 마취감은 점점 저려오듯 온 몸으로 퍼지고
마지막엔 그러한 마취감 자체가 지릿지릿한 고통으로 와닿기 시작한다.

따뜻한 볕이 느껴지는 한가로운 오후에, 조그만 인공호수 속에
있는 사람팔뚝보다도 훨씬 큰 비단잉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현기증이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아서, 잉어를 찍지 못했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회복하는 기간이다. 그런것으로 다시 나 자신을 깎아가며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진 않다.

어, 나 겁 먹은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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