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조금은 미지근하고 선선한 날이였다.

시간이 되었는데도 택배 아저씨가 오지 않아 조금씩 초조해져갔다. 생각해보면 나에겐 그럴 이유가 그리 없다. 어찌 되었건 시간 안에 올 것이고 건네주면 된다.

침착하기가 힘든 기분이 자꾸 마음을 불편케 한다. 결국 전화를 걸어 통화를 하고 마침 근처에 있어서 건네주었다. 8년간 나의 시간이 저며든 녀석이 노란색 골판지 상자속에서 사라졌다. 택배 아저씨는 항상 바쁘다. 마지막 인사를 할 사이도 없이 눈 앞에서 사라졌다.

카메라를 보낼 때 이런 마음은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 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느낌의 깊은 안쪽엔 사진도 조금 변해갈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내기 전 마지막으로 잡은 인류의 마지막 F는 마치 내 손바닥과 카메라가 그대로 녹아 붙은듯한 느낌이 든다. 이것이 약간 서글픈 기분이 든다. 필름을 넣지 않은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셔터를 누른다. 항상 똑같은 소리다.

8년간 단 한번도 다른 소리를 낸적이 없는 잠결에도 구분 할 수 있는 소리다. 셔터를 누를때 마다 뽀득 거리는 모래를 맨발로 밟아 흡수 되는 듯, 그러나 분명히 지탱이 되는 셔터의 진동. 몇번이고 셔터를 누른다.

어째 쓸쓸해지는 기분이 들지만 별 수 없다. 상당히 고민하고 이해하고 무엇보다 납득을 해버렸기에 더 이상 머물수만은 없겠지.

렌즈도 흑백 필름에 이상적이였던 일본 생산 버전의 오래된 50미리 1.4 렌즈를 처분하였다. 특유의 노란끼가 감돌기 때문에 흑백에 있어서 분위기가 신형 50미리에 비해 참으로 좋았다. 그 자리를 대신하여 다소 차가운 색감과 높은 해상력을 가진 50미리 1.8 렌즈를 주문 하였다. 물론 사전에 데이터 수집과 실 사용을 한 뒤에 충분한 납득을 거쳐 선택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쓸쓸한 기분이 든다.

8년, 그리고 8년.

Nikon F6를 장터에 내놓았다.

장터에 내놓기 위해 사진을 찍고
셔터막 보호를 위한 플레이트를 올려놓고 다시 사진을 찍었다.
8년 전 이와 똑같은 일을 했었다. 그때도 날이 추운 겨울의 즈음 이였다.

이 카메라가 다른 사람의 어깨에 올려져 있는 것이 쉽게 상상 되진 않는다. 긴 시간을 함께 하고 많은 곳을 함께 했고 많은 것을 나에게 들려주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던 조용한 전우 같은 느낌 이였다. F6의 경우 F5에 비하면 조금 더 살가운 느낌 이였지만 니콘의 플래그 쉽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조용함은 혈통으로서 조용한 것이다.

F7이 나올 올해엔 아무런 발표가 없었고 8년전 최초로 예감 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다. F7은 나오지 않았고 Nikon F6는 인류의 마지막 필름 플래그 쉽 35mm SLR 카메라가 되었다.

필름실에 남아 있던 Tri-X 400의 남은 컷들을 차근히 찍어 갔다.

F6의 마지막 컷을 눌렀다.
마음의 반응에 바로 반응 하는 셔터 버튼.
소리.
강렬한 속도.
조용히 흡수되는 진동.

그 이후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언제나 묵묵히, 확실하게 필름을 감아내는 모터의 소리.

그리고 필름 크랭크의 회전.

하늘

삶이란 때론 태풍의 눈과 같아서
정신없이 몰아치다 갑자기 조용해지면 더 무서운 법 인듯 하다.

그렇게 죽지 않고 태풍이 지나가고 그렇게 견뎌낸 후에 주위를 보면
항상 그렇듯 많은 것들이 망가져 있고 부서진 흔적들이 남기 마련이다.

아연실색하여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면
언제 태풍이 왔었냐는 듯, 하늘이 파아랗다.

태풍의 눈 속에 봤었던 그 하늘이다.
그 하늘은 내 머리 위를 죽을때 까지 감싸고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것은
사실 그 하늘은 아무 관계가 없었으며,
무엇을 우선으로 하여
다시금 살아가야 하는 가를 되새겨 볼
좋은 시간이 왔다는 것 뿐이다.

흐리고 맑은 날.

요상한 날이다.

낮엔 매미가 울고

밤엔 귀뚜라미가 운다
귀뚜라미가 잠을 자면
쓰르라미가 울고

다시 낮엔 매미가 운다.

따뜻한 커피에
차가운 콜라를 섞은 듯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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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중.

성악설

기본적으로 인간은 성악설에 매우 가깝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기본적으로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정의를 내려야 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그러나 지금의 이야기는 무척 심플한 이야기다.

요즘 나의 사소한 습관중 하나는 지나가는 편의점의 내부와 그 가계에서 일하는 사람, 손님들의 동작과 표정을 보는 것이다. 모두가 비슷해보이지만 희안하게도 가계마다의 표정이라는 것이 약간씩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쉽게 예상 할 수 있듯, 기본적으로 단순하고 답답한 기분을 주기 나름이다.
하지만 가끔은 의외의 기분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이것이 앞뒤 맥락을 알기 쉽지 않는 것이 나름의 매력 중 하나이다.

작업실 돌아오는 길에 자그만 편의점 옆을 지날 찰나였다. 손님이 편의점 문밖을 막 나가는 순간,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미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절묘하게 미묘하지만 젊고 표정이 밝으며 또렷한 느낌의 아르바이트 처자가 웃으면서 손에 쥔 물건을 들고 밖에 나가는 손님에게 인지 나에게 인지 도무지 시선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눈과 마주쳤다.

희안하게도 왠지 모르게 잔잔한 감동 같은 것을 느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정도 인물이라면 살살 꾸며서 밤에  주로 영업하는 전문적인 업소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쉽게 버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편의점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지 싶다. 어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선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표정이였다. 그 맥락이 너무나 궁금하여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그 아르바이트 처자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는 찰나 편의점 바로 앞에 있던 횡단보도에선 기다리던 녹색불이 켜지고 때르륵 거리는 소리가 빨리 건너라고 재촉한다. 뭐, 이런것도 나름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발길을 돌려 아스팔트 위 흰색 횡단보도 선을 밝는 순간,

흰색의 SUV 차량이 내 얼굴에서 약 한뼘 반의 차이로 흰색의 매케한 냄새를 남기며 굉장한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편의점 처자를 본 순간 부터 매케한 냄새까지의 걸린 시간은 9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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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아도 꽃이오, 꾸밀수록 꽃이 아니게 될지니.

손가락 세마디

늘 그렇듯 이런 류의 느낌은 전조가 없다.
그렇다고 무심하게 라는 것도 손가락 세마디 정도의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그와는 별개로 바람에 뇌가 흔들리듯 명징하게 쏟아 들어오는 느낌이기도 하다.

하늘이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땅을 딛고 있는 발이 사라지기라도 하듯
민들레 홀씨 처럼 나부끼는 몸둥아리가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하늘이 하염없이
가깝게 느껴진다.

의외로 이 시간은 감각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자신도
알아차리기 힘든, 찰나의 순간 나의 다리는 돌아오고 시선은 지평선을 향해있다.

이런 류의 느낌은 전조가 없다.
하늘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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