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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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중.

성악설

기본적으로 인간은 성악설에 매우 가깝지 않은가 하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기본적으로 선이란 무엇이고 악이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고 정의를 내려야 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그러나 지금의 이야기는 무척 심플한 이야기다.

요즘 나의 사소한 습관중 하나는 지나가는 편의점의 내부와 그 가계에서 일하는 사람, 손님들의 동작과 표정을 보는 것이다. 모두가 비슷해보이지만 희안하게도 가계마다의 표정이라는 것이 약간씩 다르다.

그리고 이것은 쉽게 예상 할 수 있듯, 기본적으로 단순하고 답답한 기분을 주기 나름이다.
하지만 가끔은 의외의 기분을 전해주기도 하는데 이것이 앞뒤 맥락을 알기 쉽지 않는 것이 나름의 매력 중 하나이다.

작업실 돌아오는 길에 자그만 편의점 옆을 지날 찰나였다. 손님이 편의점 문밖을 막 나가는 순간,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미인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절묘하게 미묘하지만 젊고 표정이 밝으며 또렷한 느낌의 아르바이트 처자가 웃으면서 손에 쥔 물건을 들고 밖에 나가는 손님에게 인지 나에게 인지 도무지 시선의 방향을 알 수 없는 눈과 마주쳤다.

희안하게도 왠지 모르게 잔잔한 감동 같은 것을 느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저정도 인물이라면 살살 꾸며서 밤에  주로 영업하는 전문적인 업소에서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쉽게 버는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편의점에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지 싶다. 어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선함과 따뜻함이 묻어나는 표정이였다. 그 맥락이 너무나 궁금하여 편의점으로 들어가서 그 아르바이트 처자에게 묻고 싶었다.

그러는 찰나 편의점 바로 앞에 있던 횡단보도에선 기다리던 녹색불이 켜지고 때르륵 거리는 소리가 빨리 건너라고 재촉한다. 뭐, 이런것도 나름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천천히 발길을 돌려 아스팔트 위 흰색 횡단보도 선을 밝는 순간,

흰색의 SUV 차량이 내 얼굴에서 약 한뼘 반의 차이로 흰색의 매케한 냄새를 남기며 굉장한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편의점 처자를 본 순간 부터 매케한 냄새까지의 걸린 시간은 9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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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지 않아도 꽃이오, 꾸밀수록 꽃이 아니게 될지니.

손가락 세마디

늘 그렇듯 이런 류의 느낌은 전조가 없다.
그렇다고 무심하게 라는 것도 손가락 세마디 정도의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그와는 별개로 바람에 뇌가 흔들리듯 명징하게 쏟아 들어오는 느낌이기도 하다.

하늘이 너무 가깝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땅을 딛고 있는 발이 사라지기라도 하듯
민들레 홀씨 처럼 나부끼는 몸둥아리가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하늘이 하염없이
가깝게 느껴진다.

의외로 이 시간은 감각적으로 오래 지속되는 느낌이 든다. 그러다 자신도
알아차리기 힘든, 찰나의 순간 나의 다리는 돌아오고 시선은 지평선을 향해있다.

이런 류의 느낌은 전조가 없다.
하늘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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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한 풍경.

희한하게도 봄의 끝 자락쯤 되는 평일에 간혹 반복되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30대 중반 여자가 한 손엔 백을 들고
나머지 손엔 초등학교 저학년의 남자아이를 잡고 있다.

그리고 그 표정은 판에 박은 듯 같다.
어딘가 지쳐있고 사연이 있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아 가야 할지 모를 먼 곳에 초점을 둔 눈.

그 손에 잡혀있는 남자아이의 표정은
대체로 영문도 모른 체 엄마의 체념 어린 발걸음에 끌려가며
둥그런 눈을 뜬 채 조심스레 산만한 모습이다.

이런 판에 박은 듯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닐곱 가지 사연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다.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텁텁하고 두터우며 파랗고 밝은 그림자가 좁은 골목을 채우고 있었고 카메라엔 25mm 렌즈가 붙어 있었다. 그렇다면 좁은 골목을 오히려 멀찍이서 넓게 찍는 것이 이런 모습을 더욱 답답한 느낌으로 표현 할 수 있을 것이다.

손에 쥐여 있던 카메라를 들려고 하는 순간
십수 년 전 나의 모습과 어머니의 모습이 겹쳤다.

그런 일들이 몇십 번이고 몇십 번이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까 말까 망설이는 짧은 시간 동안,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이 나를 발견하곤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카메라를 놓았다.
나는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고양이와 개

이해는 되었지만
섭섭한 마음이 생각보다 오래간다.

적적하다.

2009년 10월 26일 오후 세시 사십육분

그땐 몰랐는데 문득 스쳐지나다 보았다.

분명 그때도 그 표정을 보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관해서 이야기도 나누었을 것이다.

3년이 지난 후에 다시 본 그 표정은
다른 표정으로 나를 찔러왔다.

나는 사진은 언제나 살아있고 변화한다고, 늘 이야기 하지만
이렇게 덜컥 범해지는 느낌이 들땐 하염없이 우울해지고 만다.

그 사진을 나에게 보여주었을 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었던 걸까.
나는 그때 왜 이것을 보지 못했었던 것인가.
어쩌면 외면하려 했었던 건지도 모른다.

시간의 세례를 받은 사진은
대체로 잔인하다.

정말 참으로 답답하다.

상식이 상식으로서 상식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인가.

4년전 대선때 보다 더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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