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Nikon D4s 첫 인상

바쁜 일과중에 택배 박스가 하나 날아왔다. 어떤 회사의 플래그십 카메라가 들어있는 택배라고 한다면 평소 같으면 하던 일을 ‘당장. 전부. 멈추고’ 박스 부터 열어봤을 것이다. 허나 나는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 하고 박스를 열어보기로 했다. 일이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지만 어쩐지 ‘그럴 기분’ 같은게 별로 들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지금껏 나에게 있어서 Nikon의 ‘한자리수 D’ 라는 것은 그 정도의 느낌이다. D1부터 D3x까지 이런 저런 인연으로 제법 사용을 했었고, Nikon의 한자리수 D라는 것은 한자리수 F와는 다른, 내 나름의 기준선이 마음 속에 잡혀있기도 했다. 게다가 선행 발매된 메이저 넘버링의 Nikon D4를 발매 당시라면 모를까, 그로부터 2년 뒤에 업데이트 버전인 Nikon D4s라는 것도 있었을 터이다. 사용하는 사람입장에선 신선도가 별로 없다. 대강 그 정도의 것이다.

무심히 바디를 잡았을때 느낌은 별 느낌이 없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히 되어 있다는 느낌일 뿐 (어떤 의미에선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어딘가 특별히 강렬하다거나 인상적이라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좋을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셔터 릴리즈 버튼의 경우 부드럽고 섬세하며 또한 릴리즈 되기 직전의 극도로 섬세한 바늘 끝점 같은 민감함과 단단함을 통해 카메라와 몸이 연결 된듯한 느낌 같은 것들은, 예로부터 니콘 플래그십 전통 특유의 당연한 것이니까. 다른게 있다면 셔터 릴리즈 버튼이 이전 니콘 플래그십에 비해 조금 더 강직한 느낌으로 마무리 되었다. 바디 디자인에 관해선 D4의 리뉴얼 모델이기 때문에 별달리 할 말은 없을것이다. 라고 생각 했지만 분명히 뭔가 느낌이 다르다.

특히 나의 경우 그립감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D4s의 그립감에 나는 잠시간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그립감이 나쁘냐라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 그렇다고 훌륭하냐고 한다면 그것도 아니다. Nikon 카메라 역사 전체를 통틀어, 대단히 훌륭하여 외려 비현실적인 느낌의 그립감을 가지고 있는 Nikon F6에 비하면 뭔가 달라도 한참 다르다. 이것은 좋다 나쁘다의 기준과는 좀 다르게 와닿는 느낌이다. 심지어 역대 한자리수 D 카메라 중에 최초로 이것은 뭔가 그리운 느낌이 나기도 했다. 그것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이러한 혼란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체 장님 코끼리 만지듯 계속 살펴봤다. 슈팅시 바디의 진동 억제력은 명쾌하다. 분명 내부에선 파워풀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는데 어째서인지 진동 억제력 그리고 후에 남는 여진의 흐름과 처리는 우아하다. Nikon의 플래그십 카메라 라고 한다면 응당 이 정도는 되어줘야 할 것이다. 혹시나 싶어 카메라에 대해 잘 모르는 남성 지인에게 Nikon D4s를 들려주고 슈팅을 몇번 해본 후에 진동에 대한 소감을 물었는데 예상과 달리 대답이 걸작이다.

“ 기계식 카메라 같은 느낌이 별로 안들어요. “

지인의 카메라 경험이 어느 정도 인지 알고 있었기에, 저 말은 작은 컴팩트 카메라와 비슷한 인상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내 입장에선 컴팩트 카메라가 가진 거의 무진동에 가까운 정도까진 아니지만 반대로 초심자 입장에서 이 만큼의 차이가 느껴지는 정도라는 것에 대해선 바로 납득 할 수 있었다.

고감도 성능에 대해선 별 달리 할 말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수치스펙으로만 본다면 상용감도가 25600으로 1stop 정도 좋아진 것 뿐인데 예상과 달리 의외로 이것이 촬영에 있어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나의 경우 빛이 모자란다고 판단 할때 사용 감도는 최대 400까지, 어쩔 수 없는 특수한 경우 1600까지 사용 하는 것이 보통인데 Nikon D4s의 경우 6400까지 올려서 써도 거슬리는 느낌이 없다. 느낌을 말하자면 마치 마법 같은 기분으로, 필름으로 비교하자면 T-Max 3200P 필름을 6400으로 증감처리 하였지만 나온 결과물은 마치 감도 200 필름을 썼을때 인상감이 비슷하다.

몇가지 커스텀 기능들을 살펴보던 중 포커스 포인트의 구동 형태를 바꾸는 부분이 있어 다양하게 적용해보았다. 개인적으로 포커스 포인트 인디케이터가 잘 안보이는 쪽을 선호한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한가지만 이야기 하자면, 파인더를 통해 바라볼때 포커스 포인터가 흐름을 가리기 때문이다.
Nikon F5의 경우 비록 파인더의 밝기가 어두운 편이었으나 포커스 포인터가 필요시 집중할땐 보이고, 렌즈 너머 피사체를 볼땐 포인터가 잘 보이지 않아서 집중 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난 포커스 포인터가 응당 가져야 할 최고로 미덕으로 생각하고 있다. 또한 Nikon F6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또한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포커스 포인터였다. (대신 파인더의 밝기와 선명함을 얻었다)

그룹 다이나믹 AF시 십자형태로 된 포커스 포인터 형태가 되는데 Nikon D4s에서 추가된 기능인 커스텀 셋팅 a5 항목 (그룹영역 AF 조명)에서 아주 작은 점(dot) 형태로 바꿀 수 있다. 또한 십자형태면서도 십자의 교차점이 되는 부분은 아에 포커스 포인터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형태에 매우 가까이 왔다. 한가지 더 추가 되었으면 하는 것은 그룹 AF만이 아닌 싱글 포인트 AF모드에서도 지원 되었으면 한다.

그 외 AF관련해서 속도, 정밀도, 추척성능등 여러가지를 사용해보고 있는데 기본적으로 정밀도가 조금 더 올라갔다는 인상이다. 그 밖에 관련 부분은 좀더 심도 있게 사용해야 알 수 있을듯 하다. 또한 바디의 사용 목적상 빠른 JPG촬영이 많은데, 이에 따른 화질 그리고 업무 특성에 따라 유용하게 사용하기도 하는 오토 화이트 밸런스의 평가 성향이 약간 달라진 인상감을 느꼈다.

그렇게 쭉 사용하고 있는데 불현듯 뭔가 느낌이 왔다. 나를 혼란스럽게 만든 그리운 느낌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이 녀석 어딘가 Nikon F5와 닮아있다. 아마 그립의 느낌이 많이 닮아있지 않을까 한다. 굳이 말하자면 Nikon F6의 형태가 녹아있지만 Nikon F5에 좀더 가깝다. 하지만 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나의 몸에서 지워지지 않는 Nikon F5의 무감한 침묵의 느낌이 선뜩선뜩 하다.

나중에라도 각 잡고 리뷰를 쓴다 치면, 이러한 여러가지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좋은 의미에서 문맥 정리가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Nikon D4s에 대한 첫인상은 대략 이 정도이다. 나의 경험을 한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이런 류의 첫인상감을 가지게 하는 카메라는 보통 둘 중 하나다. 도구로서 피사체와 사진가 사이의 심적 거리를 잇는 가장 짧은 거리를 만들거나 혹은 카메라에 눌려 끌려 다니거나.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내가 보건데 Nikon F5에 비하면 명확히 따뜻한 쪽의 카메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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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悲 (고비)

1. 언어의 정원에 대하여 –

처음으로 「사랑」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습니다. 제 과거작에선 적어도 그려오지 않았던 감정을 본작에서는 극장 애니메이션에 담아내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획을 세우기 전에 떠올렸던 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세계에는 문자보다도 맨 먼저───당연하지만, 구어가 있었습니다. 문자를 가지지 못했던 시대의 일본어는 「야마토코토바(大和言葉)」 라고 불려, 만엽 시대에 일본인은 중국에서 들여온 한자를 자신들의 말인 야마토 언어의 발음에 차례대로 맞추어 나갔습니다. 예를 들면 「春(はる)」 는 「波流(はる)」 라고 쓰고, 「菫(すみれ)」 은 「須美礼(すみれ)」 라고 썼습니다. 그 표기에는 현재의 「春」 와 「菫」 라는 문자로 고정되기 전인 살아있는 회화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정경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恋(こい)」 는 「孤悲(こひ)」 라고 썼습니다. 고독하고 슬프다는 의미입니다. 8세기의 만엽인들───우리들의 먼 선조───이 사랑이라고 하는 현상에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연애(恋愛)」는 근대가 되어 서양에서 유입된 개념이라고 하는 건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옛날의 일본에는 \’연애(恋愛)\’가 아니라 \’사랑(恋)\’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본작 「언령의 정원」 의 무대는 현대지만, 그려내는 것은 그러한 사랑(恋)───사랑(愛)에 이르기 이전의, 고독하게 누군가를 희구할 수밖에 없는 감정의 이야기입니다. 누군가와의 사랑(愛)도 유대도 약속도 없이, 먼 곳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개인을 그려내고 싶습니다. 현 시점에선 그 이상은 전달할 수 없지만, 적어도 「사랑(孤悲)」을 끌어안고 있거나 끌어안았던 사람을 북돋워줄 수 있는 게 가능한 작품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2. 대사는 상당히 적은 편이다. 제목이 ‘언어의 정원’이 된 이유가 있나?

‘만엽집’이라는 일본의 고전 시집이 있다. 이 만엽집은 <언어의 정원> 속에도 등장하는데 스토리 상에서 키 포인트가 되는 역할을 한다. 만엽집에 의하면 ‘언어의 잎새’라는 말이 지금의 ‘언어’로 정착이 되었다. ‘말씀 언’과 ‘잎 옆’자를 합치면 일본어로 언어라는 뜻이다. ‘언어의 정원’ 역시 옛날식 언어를 이용해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은 생각에서 제목으로 짓게 됐다. 또 비가 내리는 정원에서 다카오와 유키노가 말과 기분을 교환하는 것이 영화의 중심 스토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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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 포스팅을 복사 붙이기 하고 있던 중에
작업실 유리창 너머 한 남자가 목놓아 울듯 십초 넘게 소리를 지르고, 받아 치듯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우연의 타이밍 같은건 웃기고 잔인해서 싫다.

수압

2차 셀렉이 끝났다.

십여만장의 사진 중에 1차 셀렉하는데 8개월로 소모하고 2982장이 남았다. 그리고 다시 2개월을 소모하여 방금 전 2차 셀렉이 끝났다. 1143장이 남겨졌다.

1차 셀렉으로 농도가 짙어진 탓에 깊은 바닷속 수압으로 찌그러져 망가질것 같은 것을 아슬아슬하게 버텨가듯 했다. 하릴 없이 작업실에서 멍하게 보내는 날들이 많았다. 콧구멍에 바람쐬듯 도망치기도 하였고 비틀거리는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받기도 하였다.

작품 두점이 팔렸다. 정밀한 코니컬 버 방식의 전동 원두 그라인더와 7년 전 부터 쓰고 싶었던 베어링 레일 방식의 듀얼 매트 커터 그리고 중성 뮤지엄 매트 보드를 구입했다. 마치 브레이크 오일을 갈아준듯한 감각이다. 이 감각은 어딘지 모르게 때쓰는 듯한 감정과 약간의 안심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비루한 서글픔이 듬과 동시에
계속 걸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행이라 생각한다.

백매화 향이 나는 여자에게 자각없이 홀릴것 같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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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 이상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폐벽에 그을음이 앉는다.

밤새도록 나는 몸살을 앓는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실어내 가기도 하고 실어 들여오기도 하고
하다가 잊어버리고 새벽이 된다.

폐에도 아침이 켜진다.
밤 사이에 무엇이 없어졌나 살펴본다.

습관이 도로 와 있다.
다만 내 치사(侈奢)한 책이 여러 장 찢겼다.

초췌한 결론 위에 아침 햇살이 자세히 적힌다.
영원히 그 코 없는 밤은 오지 않을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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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 이상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오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 말을 못 알아 듣는 딱한 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오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오

거울 때문에 나는 거울 속의 나를 만져보지를 못하는구료만은
거울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 속의 나를 만나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 가졌소만은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에 골목할께요

거울 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만은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 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쓰지 말고,

모든 생물을 그 어느 것이나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른다.

연정에서 우환이 생기는 것임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를 동정한 나머지 마음이 얽매이면 손해를 본다.

가까이 사귀면 이런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이나 아내에 대한 애착은

마치 가지가 무성한 대나무가 서로 엉켜 있는 것과 같다.

죽순이 다른 것에 달라붙지 않도록,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는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 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즐겁게 하고,

또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마음을 산산이 흐트러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는 이러한 우환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내게는 재앙이고 종기이고 화이며
,
병이고 화살이고 공포다.

이렇듯 모든 욕망의 대상에는

그러한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추위와 더위,굶주림,갈증,바람,

그리고 뜨거운 햇볕과 쇠파리와 뱀,

이러한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치 어깨가 떡 벌어진 코끼리가

그 무리를 떠나 마음대로 숲속을 거닐 듯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임(集會)을 즐기는 이에게는

잠시 동안의 해탈에 이를 겨를이 없다.

태양의 후예(부처님)가 한 말씀을 명심하여,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서로 다투는 철학적 견해를 초월하고

깨달음에 이르는 결론에 도달하여 도(道)를 얻은 사람은

`나는 지혜를 얻었으니,

이제는 남의 지도를 받을 필요가 없다\’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내지 말고 속이지 말며, 갈망하지 말고

남의 덕을 가리지도 말며, 혼탁과 미혹을 버리고,

세상의 온갖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의롭지 못한 것을 보고

그릇되고 굽은 것에 사로잡힌 나쁜 벗을 멀리 하라.

탐욕에 빠져 게으른 사람에게 가까이 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고매하고 총명한 친구와 사귀라.

온갖 이로운 일을 알고 의혹을 떠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이나 쾌락에 만족하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은 집착이구나.

이곳에는 즐거움도 상쾌한 맛도 적고 괴로움뿐이다.

이것은 고기를 낚는 낚시이다\’ 라고 깨닫고,

현자(賢者)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는 것처럼,

또는 불이 다 탄 곳에는 다시 불 붙지 않는 것처럼,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러러 보거나 헤매지 말고,

모든 감관(感官)을 막아 마음을 지켜

번뇌가 일어나는 일 없이, 번뇌의 불에 타지도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의 다섯 가지 덮개를 벗겨 버리고,

모든 수번뇌 (隨煩惱)를 잘라 버려 의지하지 않으며
,
애욕의 허물을 끊어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전에 경험했던 즐거움과 괴로움을 버리고,

또 쾌락과 우수를 버리고 맑은 고요와 안식을 얻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 정진하고,

마음의 해이를 물리치고 행동하는 데에 게으르지 말며,

힘차게 활동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홀로 앉아 선정(禪定)을 버리지 말고,

모든 일에 늘 이치와 법도에 맞도록 행동하며,

살아 가는데 있어 우환을 똑똑히 알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애착을 없애기 위해 게으르지 말고,

벙어리도 되지 말고,진리를 배우고 마음을 안정시켜

이치(理法)를 확실히 알며 자제하고 노력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 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어 뭇짐승의 왕이 된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종벽한 곳에 살기를 힘쓰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비와 고요와 동정과 해탈과 기쁨을 때에 따라 익히고,

모든 세간(世間)을 저버림이 없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매임을 버리고,

매듭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가장 오래된 불교 경전 슷타니파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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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전 십여만장의 사진중 마지막 사진을 보았다. 8개월 걸려 전부 보았다. 이 만큼의 시간이 필요 했던것이였다고 편하게 말할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필요와는 다른 그 만큼의 시간이 걸린것 이라고 하는 쪽이 아주 약간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남겨진 사진 2982장.
시간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희안하다. 분명 지옥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을 8개월 이였다. 나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뿌리부터 박살나며 쇳냄새가 베어있는 피가 사방에 흩뿌려지며 철두철미하게 부정되었다. 시간은 너무나 더디게 흐르고 너무나 얼척 없이 사라진다.

뭔가 할 말이 분명 있는듯 한데, 몇 십분째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손가락만 올려두고 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지금껏 살고 겪고 공부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만들어왔던 모든 것들이 적어도 지금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뭔가를 발견 한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행복한 한해가 되길.

Black Dog.

지옥을 지나가는 중이라면, 계속 가라.

조그만 양초 하나

선물 받은 우드윅 양초. 향이 은은하니 부드러워 작업실에 홀아비 냄새가 사라짐. 하지만 그것보다 좋은건 심지에서 장작타는 느낌의 소리가 아주 조용히 조용히 들려서 마음이 치유가 된다.

하지만 불꽃의 모양과 흔들림 심지의 형태와 재질을 봐서 원리를 유추 해보자면 녹아서 기화되려는 속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한 산소를 빨아들이려는 불완전기화에 의한 소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니, 어쩐지 발악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듣기가 더 좋다. 게다가 불완전기화가 되어야 향이 좀더 덩어리감 있게 퍼질테고 말이다….

콘 사토시 (Kon Satoshi) 를 기리며..

2010년 8월 25일 (수요일)

안녕

잊을 수 없는 올해 5월 18일.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 순환기과 의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선고를 받았다.

– 췌장암 말기. 뼈 여러부분에 전이. 여명 길어야 반년 –

아내와 둘이서 들었다.

둘만의 힘으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청천벽력에 억울한 운명이었다.

평소부터 생각하고는 있었다.

\’언제 죽는대도 할 수 없지\’

..라고는 해도 너무나도 갑작스러웠다.

분명 징후는 보였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2, 3개월 전부터 등 여기저기와 서혜부 등에 강한 통증을 느꼈고, 오른쪽 다리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게 되면서 걷기도 힘들게 되어 뜸을 뜨거나 카이로프랙틱 등을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던 차, MRI나 PET-CT 등의 정밀기기로 진단한 결과 느닷없는 사형선고가 내려진 것이었다.

눈치챘을 땐 죽음이 바로 등 뒤에 서있던 것 같은 상황으로, 나로써는 도저히 어찌해 볼 길이 없었던 것이다.

선고 후,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아내와 함께 모색했다.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믿음직한 친구나 더할나위 없이 강력한 분의 지원도 얻어 왔다.

항암제는 거부하고, 일반적인 세상의 상식과는 다소 다른 세계관을 믿으며 살아보려 했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부분이 나다워서 좋은 것 같았다.

어차피 언제나 다수파에는 몸둘 곳이 없었던 듯이 생각된다.

의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현대의료의 주류파 뒤에 어떤 시스템이 있는지도 이것저것 뼈저리게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한 세계관으로 살아남아 주겠어!\’

그러나.

기력만으로는 맘먹은대로 안 되는 것은 작품 제작과 마찬가지.

증세는 하루하루 확실히 진행되고 있었다.

한편, 나 역시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 보편적인 세상 상식의 절반 정도는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꼬박꼬박 세금도 내고 있으니.

\’훌륭\’하곤 거리가 멀지만 나 역시 버젓한 일본사회의 멤버 중 하나다.

그러니 살아남기 위한 <사적 세계관>의 준비와는 별도로, <깔끔하게 죽을 채비>에도 손을 썼다고 생각한다.

전혀 깔끔하게 못했지만.

그중 하나가, 믿을 수 있는 친구 두 명의 협력을 얻어 덧없지만 곤 사토시가 가진 저작권 등의 관리를 맡길 회사를 만드는 것.

또 하나는 많지는 않지만 재산이 원활하게 처에게 양도되도록 유언장을 만드는 것이었다.

물론 유산 다툼 같은 게 터질 리야 없지만, 이 세상에 홀로 남을 아내를 위해 불안요소는 하나라도 없애주고 싶었고, 그것이 쬐금 저편으로 여행을 떠날 나 자신을 안심시키는 것으로 이어지니.

절차에 따라붙는, 나나 아내가 익숙치 못한 사무처리나 예비 조사 등은 멋진 친구에 의해 빠르게 진행되어 갔다.

후일, 폐렴으로 위독한 가운데서 비몽사몽 간에 유언장에 마지막 사인을 했을 때에는 일단 이걸로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휴우…겨우 죽을 수 있게 됐어…\’

어찌됐든, 그 이틀 전에 구급차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으로 옮겨지고, 하루 걸러 또 구급차로 같은 병원에 실려 갔다.

과연 이쯤 되니 입원해서 상세 검사에 들어가게 됐다.

결과는 폐렴의 병발.

가슴에 물도 상당히 찼다.

의사에게 딱잘라 물었더니, 매우 사무적인 태도여서 어떤 의미로는 고마웠다.

\”잘 버티면 하루 이틀…고비를 넘긴다 해도 이 달 안이겠지요.\”

그 말을 들으며, \’일기예보 같구먼…\’하고 생각했지만, 사태는 절박했다.

그게 7월 7일에 있었던 일.

꽤나 가혹한 칠석이었다.

…이상으로 마음은 굳었다.

나는 내 집에서 죽고 싶다.

주변 사람에게 있어 마지막 대형 민폐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지만, 어떻게 해서든 집으로 탈출할 방법을 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아내의 노력과 병원측의 \’포기한 듯 하면서도 실은 매우 도움이 되었던\’ 협력, 외부 의원의 막대한 지원, 그리고 수많은, 하늘의 도움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우연들.

그렇게 우연과 필연이 빈틈없이 잘 맞아 떨어지는 게 현실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였다.

<토쿄 갓 파더>도 아니고 말이지.

아내가 탈출분비로 분주한 한편에서, 나는 의사에게, \”한나절이라도, 하루라도 집에 있을 수 있다면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요!\”라고 호소한 후, 어두침침한 병실에서 혼자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쓸쓸하진 않았지만 떠오르는 생각은 이런 것.

\’죽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특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을 지도 모르지만, 기분은 자신도 놀랄 정도로 평온했다.

단지, 단 하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여기서 죽는 건 싫은데…\”

하며 봤더니, 벽에 걸린 달력에서 뭔가가 움직여 실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런이런…달력에서 행렬이라니…내 환각은 개성이 쥐뿔도 없구만…\”

이런 때조차 직업의식이 발동하는 걸 흐뭇하게 느꼈지만, 사실은 이때가 가장 저승에 접근했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죽음을 가까이에 느꼈다.

죽음의 세계와 시트에 둘둘말려,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어, 기적적으로 무사시노 적십자 병원을 탈출해 자택에 도착했다.

죽는 것도 괴롭구만.

혹시나 해서 말해 두지만, 특히 무사시노 적십자에 비판이나 혐오는 없으니 오해마시길.

단지, 나는 자신의 집에 돌아가고 싶었을 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그 집으로.

조금 놀랐던 것은, 자택의 거실에 옮겨질 때 임사체험 등으로 잘 알려진, – 높은 곳에서 자신이 방 안으로 옮겨지는 것을 본다 – 라는 덤이 붙은 것이었다.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풍경을, 지상 수 미터의 정도의 높이였을까, 와이드스러운 렌즈를 통해 진부감(眞俯瞰)으로 보고 있었다.

방 중앙에 있는 침대의 사각이 묘하게 크고 인상적이고, 시트에 감긴 자신이 그 사각 위에 내려졌다.

그리 정중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불평은 할 수 없지.

자, 남은 것은 자택에서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을 터였다.

그런데.

폐렴의 고비를 어렵지 않게 넘겨버린 듯 하다.

얼레?

어느 의미론 이렇게 생각했다.

\’못 죽었네(…훗)\’

그 후, 죽음만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은 분명히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한다.

몽롱한 의식의 깊은 곳에서 [reborn]이라는 단어가 몇 번인가 흔들거렸다.

신기한 것이, 그 다음 날 기력이 다시 재기동했다.

아내를 비롯, 문병을 와서 기력을 나누어 주신 여러분, 응원해준 친구들, 의사나 간호사, 간병인 등 관계자 모두의 덕분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솔직하게 마음으로부터.

살아갈 기력이 재기동했으니, 멍하게 있을 여유는 없다.

덤으로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명이라고 마음에 되새기며, 소중하게 쓰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현세에 남긴,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하나라도 줄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실은 암에 관해 극히 가까이 있는 사람 외에는 알리지 않았었다.

부모님께조차 알리지 않았을 정도다.

특히 일과 관련해선 여러가지로 얽힌 것이 많아 말할래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인터넷 상에 암 선언을 하고, 남은 인생을 하루하루 보고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지만, 콘 사토시의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작다고는 해도 여러가지 영향이 염려되기도 했고, 그때문에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도리를 다하지 못했다.

정말 면목없다.

죽기 전에 하다못해 한번이라도 만나, 한마디라도 인사를 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다.

가족이나 친척, 거슬러 올라가면 초, 중학교부터 고교 동창,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만화의 세계에서 만나 수많은 자극을 서로 교환했던 사람들, 애니메이션의 세계에서 책상을 나란히 하고 함께 술잔을 기울이고, 같은 작품 안에서 실력을 서로 자극하며 고락을 함께 나누었던 수많은 동료들, 감독이라는 입장 덕분에 만날 수 있었던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각지에서 팬이라고 해주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웹을 통해 만난 친구도 있다.

할 수만 있다면 한번 만나고 싶은 사람은 잔뜩 있었으나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만나면 \’이 사람과는 더 이상 만날 수 없게 되는구나…\’라는 마음만이 쌓일 듯 해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돼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회복했다고는 해도 내게 남은 기력은 한 줌 뿐.

만나는 데는 크나큰 각오가 필요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일수록 만나는 것이 괴롭다.

아이러니컬한 얘기다.

게다가 뼈에 암이 전이된 영향으로 하반신 불수가 되어, 거의 누워 지내는 상태라서 비쩍 말라버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많은 지인들 속엔 건강했던 무렵의 콘 사토시로 남아 있고 싶었다.

병세를 알릴 수 없었던 친척들, 온갖 친구들, 모든 지인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도리를 다 못함을 사죄드립니다.

하지만, 콘 사토시의 방자함도 이해해 주시면 합니다.

뭐랄까, <그런 녀석>이었잖아요? 콘 사토시라는 사람은.

얼굴을 생각해 내면, 좋은 추억과 웃는 얼굴이 떠오릅니다.

모두들, 정말로 좋은 추억을 잔뜩 주셔서 고맙습니다.

자신이 살았던 세계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행복입니다.

내 인생에서 만난 적지 않은 사람들은, 긍정적, 부정적 어느 쪽이 됐든 역시 콘 사토시라는 인간의 형성에는 어딘가에서 필요했을 터이고, 모든 만남에 감사하고 있다.

그 결과가 사십 대 중반 도중하차라고 하더라도, 이건 이것대로 다름 아닌 내 운명이라 받아들인다.

짭짤한 맛도 제법 봤고 말이지.

지금,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이런 것.

\”유감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네.\”

정말로.

그러나, 수많은 결례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하더라도, 내가 도저히 마음에 걸려 견딜 수 없는 일이 있다.

부모님과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다.

콘 사토시의 생부모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의 아버지.

늦었다고는 해도, 있는대로 몽땅 사실을 고할 수 밖에 없다.

용서를 구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집으로 문병을 와준 마루야마씨를 본 순간, 흘러 나오는 눈물과 비참한 기분이 멈추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런 모습이 돼버렸어요…\”

마루야마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저으며 양손을 붙잡아 주었다.

감사의 기분으로 가슴이 벅찼다.

노도와 같이, 이 사람과 같이 일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한 감사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의 환희가 밀려 왔다.

호들갑스러운 표현으로 들릴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내 맘대로일진 몰라도, 단번에 용서받은 생각이 들었다.

가장 큰 미련은 영화, [꿈꾸는 기계]이다.

영화 그 자체는 물론, 참가해 준 스탭에 대해서도 걱정되어 견딜 수가 없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자칫하면 지금까지 피땀을 흘려 그려온 컷들이 그 누구의 눈도 닿지 않고 묻힐 가능성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어찌됐든 콘 사토시가 원작, 각본, 캐릭터와 세계관 설정, 콘티, 음악 이미지…온갖 이미지 소스를 끌어 안고 있는 것이다.

몰론 작화감독, 미술감독을 비롯해서 많은 스탭들과 공유하고 있는 부분도 잔뜩 있지만, 기본적으로 <콘 사토시>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만들 수 없는 것 투성이의 내용이다.

그렇게 만든 것은 네 책임이다, 라고 하신다면 그만이지만, 나 나름대로는 세계관을 공유하기 위해 적지않은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리고 나니 내가 덕이 부족했던 부분만이 뼈에 사무친다.

스탭 모두에게 참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은 이해도 해주길 바란다.

콘 사토시가 <그런 녀석>이었으니까 다소라도 다른 것과는 틀린, 묘한 것을 응축한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으니.

상당히 오만한 말투로 들릴 지는 모르지만, 암이니까 좀 봐줘.

나도 어영부영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콘 사토시 사후에도 어떻게든 작품들이 존속할 수 있도록 모자란 머리를 쥐어 짜 왔다.

그렇나 그것도 잔꾀.

마루야마씨한테 꿈꾸는 기계에 대한 염려를 얘기했더니,

\”괜찮아. 어떻게든 해볼테니 걱정 말게.\”

라고 하셨다.

울었다.

완전 오열.

지금까지 영화제작에 있어서도 예산에 있어서도 결례만을 쌓아왔지만, 결국 언제나 마루야마씨가 어떻게 해주셨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난 발전이 없어.

마루야마씨와는 충분히 이야기 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덕분에, 콘 사토시의 재능이나 기술이 현재의 업계에 있어 상당히 귀중하다는 걸 약간 실감했다.

재능이 아깝다. 어떻게든 두고 갔으면 좋겠다.

뭐니뭐니 해도 더 매드하우스 마루야마씨가 말씀하시는 것이니 자신감을 다소 기념품으로 가지고 명부로 향할 수 있다는 거다.

분명,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이상한 발상이나 자잘한 묘사의 기술이 이대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단순히 생각해도 아깝지만, 별 수 없지.

그것들을 세상에 낼 기회를 주신 마루야마씨에게는 마음으로부터 감사하고 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콘 사토시는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도 행복했습니다.

부모님께 고하는 것은 진짜로 괴로웠다.

원래대로라면 아직 몸이 말을 들을 때 삿포로에 계시는 부모님을 찾아 뵙고 암에 대해 고할 셈이었으나, 병의 진행이 원통할 정도로 빨라서 결국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섰던 병실에서 전화로 갑작스런 비보를 전하게 되었다.

\”저, 췌장암 말기라서 곧 죽게 됐어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정말 기뻤습니다. 고맙습니다.\”

느닷없는 소식을 듣는 쪽은 견딜 수 없었겠지만, 그때는 이미 죽음의 예감에 휩싸여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집에 돌아가, 폐렴의 고비를 어찌저찌 넘겼던 무렵.

일대결심을하고 부모님을 만나기로 했다.

부모님 역시 만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만나면 괴롭고, 만날 기력도 없었지만, 어떻게든 한번 뵙고 싶었다.

이 세상에 낳아주신 은혜에 감사의 말을 직접 전하고 싶었다.

나는 정말로 행복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조금 서둘러 가는 것은 처에게도 부모님께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제멋대로인 나에게 부모님께서 곧 대응해 주셔서, 다음 날 바로 삿포로에서 집까지 오셨다.

병석에 누운 나를 보시자마자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한마디를 잊을 수가 없다.

\”미안해! 튼튼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님과는 짧은 시간 밖에 함께할 수 없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얼굴을 보면 그걸로 모든 게 통할 듯이 생각했었고, 실제로 그러했다.

고마워요, 아버지, 어머니.

두 분의 자식으로 이 땅 위에 삶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가장 큰 행복이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추억과 감사로 가슴이 벅찹니다.

행복 그 자체도 소중하지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신 것, 아무리 감사를 드려도 다 못 드립니다.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부모보다 먼저 가는 크나큰 불효자이지만, 이 십수 년 간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솜씨를 부리고, 목표를 달성하며, 평가도 나름대로 얻었다.

별로 안 팔렸던 것은 쬐금 유감이지만, 분수에 맞는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십수 년, 다른 사람 몇 배의 밀도로
살았던 기분이고, 부모님도 내 마음 속을 알아 주셨겠지.

부모님, 마루야마씨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으로 한 짐 던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누구보다도 마음에 걸리고, 하지만 최후까지 의지가 되었던 아내에게.

그 사형선고 후 둘이서 몇 번이고 눈물에 젖었었다.

서로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가혹한 매일이었다.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러나 그런 괴로우면서도 애달픈 나날을 끝까지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선고 후 바로 말해줬던 강인한 한마디 덕택이었다.

\”나, 끝까지 함께 달릴테니까.\”

그 말대로, 나의 걱정따위는 따돌리듯이 여기저기서 밀려오는 요구나 청구를 교통정리하고, 남편의 간병을 어깨너머로 바로 터득하여 척척 해나가는 모습에 나는 감동을 느꼈다.

\”내 마누라는 대단하다구.\”

새삼스럽게 말하지 말라구?

아니아니, 지금까지 생각했던 이상이구나…라고 실감했습니다요.

내가 죽은 후에도, 분명 능숙하게 콘 사토시를 배웅해 주겠지.

떠올리면, 결혼 이후 늘상 일, 일에 치여 사는 매일을 보내다, 집에서 느긋하게 지낼 시간이 생겼나 했더니 암, 이란 것은 너무한 얘기다.

하지만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것, 거기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바로 옆에서 잘 이해해 줬었지. 나는 행복했어, 진짜.

삶에 대해서도, 죽음을 맞이함에 있어서도, 아무리 감사를 해도 다할 수 없어.

고마워.

마음에 걸리는 것은 물론 아직 잔뜩 남았지만, 일일히 세다 보면 끝이 없다.

매사에는 끝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요즘은 그리 받아주는 곳이 없는 자택에서의 터미널 케어를 수락해 주신 주치의 H선생님, 그리고 그 부인이시며 간호사이신 K씨에게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자택이라는, 의료에 있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 속에서, 암으로 인한 진통을 갖은 방법으로 끈기있게 제거하여, 죽음이라는 골에 다다를 때까지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쾌적하게 지낼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주셔서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냥도 귀찮게 덩치 크고 거만한 환자를 단순한 일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 무엇보다도 인간적으로 대하여 주셨던 것에 우리 부부가 얼마나 위안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선생님 부처의 인품에 격려받은 일도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이 됩니다만 5월 중순에 암 선고를 받은 직후부터 공사에 걸쳐 엄청난 협력과 노력,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두 명의 친구.

주식회사 KON’STONE의 멤버이자 고교시절부터의 친구 T와 프로듀서 H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를 보냅니다.

정말 고마웠어.

내 빈약한 어휘로는 적절한 감사의 말을 찾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부부가 함께 신세를 졌네.

두 사람이 없었으면 죽음은 더욱 괴로운 형태로 나와 내 옆에서 간병하는 아내를 집어 삼켰겠지.

하나에서 열까지 정말로 신세가 많았네.

그래서 말인데, 신세만 져서 미안하네만, 나 죽고 나서 배웅하는 것까지 아내에게 협력해줄 수 없겠는가.

그래 준다면 나도 안심하고 여행길에 오를 수 있어.

마음으로부터 부탁하네.

자…여기까지 긴 문장을 함께하여 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좋은 것들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펜을 놓겠습니다.

자, 그럼 먼저 갑니다.

– 콘 사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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