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전조

내가 앉는 책상 앞에는 회색의 텍스쳐가 강한 천이 덧대여진
사무용 파티션이 한장 있다.
아마 6~7개월 전부터 어딘가 모르게 살짝 기울어지기 시작했는데,
기울어진 방향을 내가 앉은 쪽으로 오도록 했다.

좁다고 하긴 미묘하지만 결코 넓다고 할 수 없는 작업실 입구의
배치를 생각할때 시각적으로 조금 더 편안하고 넓게 보이는 효과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고치지 않았다.
적당히 느슨한 느낌이 드는 파티션의 기울기는 어쩌다 반대편으로 누워있으면
마음이 마구 답답해질 정도로 그 효과는 적어도 나에게 있어선 컸다.
그래서 집게 손가락 끝으로 슬그머니 안쪽으로 밀면 힘없이 스-윽 하고 각도가 바뀌는
1초 정도 되는 짧은 시간이 나에겐 참 좋았다.
각도가 안정되기 직전에 살짝 걸리는 느릿한 텐션도 나에겐 만족스러웠다.

엉덩이가 직접 닿는 변기 커버는 10여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하면서 강렬할 정도로
심하게 낡아 수개월전 새것으로 교체 했다.
뜨거운 핫핑크색으로 하고 싶었지만, 일반적 정서를 고려해서 \’흰색\’으로 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사이즈가 맞지 않았는지 볼일을 보고 있다보면 하얀 사기로
된 변기통 안으로 미끄러져 불편했다.
그러나 몇번이고 반복하다 보니 이런 느낌도 요상하게 느낌이 온다.
1평도 안되는 몹시 좁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 갑자기 탐- 하고
흰색의 커버가 아래로 빠지면서 몸도 같이 빠지는 듯한 (그래봐야 3~4센치겠지만)
느낌이 기묘했고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어느날 전조도 없이 흰색의 변기 커버를 분해해서 고정하는 고정쇠와 나사를
\’바른 방향\’으로 채결하여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만들었다.
앉아 봤는데 불안한 느낌도 없고 편안했다.
이제 3~4센치 몸이 아래로 떨어지는 기묘한 느낌도 없다.

파티션의 고정 볼트를 모조리 분리하고, 새것을 가져와서 고정 부위를 다른곳으로 박아두었다.
총 16개의 볼트를 쑤셔박아야 하는데 혼자서 하는 것이다 보니 직각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80% 정도만 박아두고 한손으로 각도를 조정하면서 나머지를 박아두었더니 모양이 나왔다.
이제 검지 손가락 끝으로 밀어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다시 한달 정도 지나고 나니
어쩐지 미묘하게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다고 힘들여 깨끗하고 단단하게 고쳐 놓은 것을
일부러 힘들여 망가트리는 것도 우습다.

이쯤 되다 보면 어느 쪽이 맞는건지 2~3초 정도 헷갈릴때가 있는데
생각 해보면 나에겐 전의 상태가 맞는게 당연하잖은가.
당연한걸 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라고 머릿속에 바로 떠오르면
그 순간 \’당연한 듯\’ 바로 그 이유가 떠오른다.

그 당연한 생각을 뒤로 하고
창가에 서서 담뱃불을 붙이고 있다 보면
도수가 맞지 않는 안경을 쓰고 있는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3분 정도면 느낌이 사라진다.

이것은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익숙해진 것인가.

위장

또 하나의 표현 방법을 한가지 깨우쳤다는 미적지근한 포만감에 씁쓸한 담배 한개비 태우려 문을 열었다. (프린터가 들어온 뒤론 작업실은 금연구역이 되었다)

마치 10리 밖에서 들리는 듯하지만 분명하고 또박 또박 구분이 되며 음율속에 서한이 서려 있을것만 같은 소리가 구름에 가린 달빛처럼 넘실거린다.

찹쌀 떠-억-
망개 떠-억-

이 시간대 즈음 아주 어렸을적 자주 듣던 소리였다. (난 아주 어렸을때도 밤에 잠이 없었다) 단지, 떡을 판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 소리가 들리는 수많은 날중 어느날 갑자기 군말 없이 어머니 혹은 아버지께서 잠옷을 입은체 나가서 정말 찹살떡과 망개떡을 사가지곤 야밤에 먹곤 하였다. 특히 난 망개떡이 참 좋았다.

그것이 저 소리와 관련된 내가 가지고 있는 기억의 전부이다. 떡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1년에 두어번 정도의 조그만 기억은, 나에겐 왠 떡이냐. 라는 말이 정말 딱인 셈이다.

2009년의 9월 9일 금요일 밤에 난데없는 저 소리는 이상한 울컥거림과 함께 고약한 궁금함이 생겼다. 이 야심한 밤에 저 소리를 듣고 \’뛰어\’ 나가선, 찹쌀떡이랑 망개떡좀 싸주슈. 라는 것은 어찌 된 일인가.

그리고 어떠한 연유로 새벽에 찹쌀 떠-억과 망개 떠-억을 팔지 않으면 안되는가.는 또 어찌 된 일인가.

또 하나의 표현 방법을, 한가지 깨우쳤다는 미적지근한 포만감은 구차한 것으로 바뀌었고 향이 다 날아간 미적지근한 커피만 위장에 쓸어 넣었다.

사소한 이야기.

결국 아직도 난 진정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는 거지.

사랑

내 우주라는 건 조그마 했어
분명 갖자기 고민이나 답이 없는 일도 많지만
그래도 말야
이 세상에 우주의 일부가 아닌건 없고
나 조차도 그 우주의 일부야
그러니 비로소 우주라고
왠지 그러면 된듯 싶었어
말로는 잘 못하겠는걸
그래도 타나베도 그걸 말하고 싶은게 아니었어?

이 세계는 전부 연결 되어 있다고..
그리고
그걸 연결하고 있는건..

플라네타스 中

매미

담배 피우려 창문을 여니 오후 한시의 햇살이 너무나 눈이 부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러자 닫혀있던 귀가 열리면서 많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한모타리 삼천원 한다는 풋사과를 파는 수래차 소리에서부터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
자동차의 크락숀과 엔진소리
수업을 알리는 학교 종소리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마지막 남은 여름의 한 끝자락 발악하듯 소리 지르는 햇볕의 소리
기계 모터가 돌아가는 소리

그러던 중 내 속에서 스물스물 기어올라오는
이상한 소리

물끄러미 담배를 다 태우고 창문을 닫고 자리에 앉으니
세상이 고요하다.

그러다 들리는 여자 꼬마 아이의 떠드는 소리와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섞여들였다.

여전히 창밖엔 햇살이 꾸역꾸역 뭔가를 토하고 있었고
그만 나도 모르게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잠자리, 매미, 기이함

비가 내린후 그치고난 아침엔
잠자리가 눈에 띄이곤 한다.
중앙동의 평지를 기준으로
40계단을 포함한 작업실의 높이는 약 6층 정도 되는데
그 높이에 잠자리가 바람에 몸을 맡기곤 하며 나른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계속 그렇게 셈을 하다가 9마리 까지 셈을 하고 나선
관두었다. 눈에 초점이 흐려진다. 아홉마리 이상은 나에겐 많다.

당장에라도 어딘가 달려가고 싶다가도 햇볕이 변덕스러워
순간 순간 햇볕이 주눅 들면 나도 같이 주눅드는 느낌이 든다.
바람도 같이 변덕 스럽다. 100미터 즈음에서 들리는 자동차의
배기음과 크랙숀 소리와 쇠가 갈리는 소리도 그렇다.

일주일 전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여름을 알리는 기점으로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왠지 안심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로 부터 오늘까지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괜히 불안스럽다. 물론 당연하게도 매미 소리가 다시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난 다시 안심 할 수 있을테다.

무엇으로 부터 안심을 하는 건진 나도 모르겠지만.

올해 여름은 기이한 느낌이다.

이해

몇일 동안 계속 비가 내리면서
바다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바다의 냄새는 저마다 달라서 마알간 청량감이 드는 냄새가 있는가 하면
그 냄새의 두터움이 너무나 커 질식할것 같은 냄새도 있다.

행정구역상 부산 중구 중앙동이라 불리우는 곳에는 쾌쾌하고 거무죽죽한 마치 코끼리 시체의 거죽같은 냄새가 감돈다. 비내 우루룩 내리는 동안은 그나마 덜하지만 빗발의 힘이 누그러질땐 요상스럽게도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 마치 오래된 이불 같다.

작업실에서 몇발자국 되지 않는 곳에 바로 바다가 있고 영도 다리가 있어서 그런걸까, 영도 앞바다는 이미 오래전 썩은 바다가 되었으니 세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썩은 것이였다면 빗물때문에 냄새가 덜해야 할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걸 보면, 바다속 깊이 썩었거나 아니면 사실 썩은건 아닌데, 마음대로 썩었다 단정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바다의 삶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냄새는 분명 다르게 와닿을 것이라 생각해봤다. 뭐, 당연한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거기에서 문득 신기함을 느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겪어왔고 그래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더 이상 흥미로울 것도 더 이상 재미있을 것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상처에 충격에 둔감해져서 좋다고도 이야기들 하곤 한다.

일상의, 삶의, 하루 하루의 관성이 만들어내는 괘적은 그것이 괴롭고 힘들고 불행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괘도가 되어버린다.  그러한 괘도는 하루의 관성을 더욱 가속화 시킨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감동스러울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 속엔 분명 신비한 것이 자리 잡고 있다.

비가 내리는게 신기했고
냄새가 나는게 신기했고
소리가 신기했고
무엇보다 신기한것은 이것들은
정해놓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이런것마저도 신비로울게 없는 일상이고
당연한 이야기라 할 지라도.

그건 그렇고,
바다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이 냄새는 어떻게 와 닿을까.

요상하지만 수긍이 되는 세계.

빛이 엷은 어둠이 깔려
깊은 물속 같은  감촉이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을터인데.

무언가를 하다 갑자기 맥이
풀려 몸이 흐물해질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목탁 소리다.
일요일밤이 끝나고 월요일이 된지 막 1시간 30분이 지난 참이다.

목소리가 들렸다. 엷지만 분명한 울림이 되어 먼길을 돌아,
꼭꼭 닫아놓은 작업실 창문을 훑어 나에게 들어왔다.
정확한 발음을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언듯 반야심경으로 들렸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묵상하고 있는 느낌이다.
단지 묵상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여름이라곤 하지만 아직 매미가 울지는 않는 그런 날이다.

10여분이 지난 후에 목탁 소리가 멈추고 갑자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무엇이였던걸까.

그로부터 몇분 지나지 않아 다시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아무런 소리도 없다. 무척 조용하다.

아마 그렇게 다시 몇분인가 앉아있었던것 같다.
담배가 무척 피고 싶었는데도 몸은 내 마음과 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몇분 후, 정적을 깨고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를 세번 들었다.

이제서야 겨우 몸을 움직여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요상하면서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긍되어진 일이다.

1793년 프랑스 헌법 중 일부.

제1조. 사회의 목적은 공동의 행복에 있다. 정부는 인간에게 그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들의 향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설립된다.

제28조. 국민은 언제나 자신의 헌법을 재검토하고 개정하고 변화시키는 권리를 갖는다. 한 세대가 미래의 세대들을 자신의 법에 구속할 수 없다.

제35조. 정부가 국민의 권리들을 침해할 때, 봉기는 국민과 국민의 각 부분에게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가장 불가결한 의무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할말이 너무 많아, 할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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