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잠자리, 매미, 기이함

비가 내린후 그치고난 아침엔
잠자리가 눈에 띄이곤 한다.
중앙동의 평지를 기준으로
40계단을 포함한 작업실의 높이는 약 6층 정도 되는데
그 높이에 잠자리가 바람에 몸을 맡기곤 하며 나른다.

한마리 두마리 세마리 계속 그렇게 셈을 하다가 9마리 까지 셈을 하고 나선
관두었다. 눈에 초점이 흐려진다. 아홉마리 이상은 나에겐 많다.

당장에라도 어딘가 달려가고 싶다가도 햇볕이 변덕스러워
순간 순간 햇볕이 주눅 들면 나도 같이 주눅드는 느낌이 든다.
바람도 같이 변덕 스럽다. 100미터 즈음에서 들리는 자동차의
배기음과 크랙숀 소리와 쇠가 갈리는 소리도 그렇다.

일주일 전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여름을 알리는 기점으로
그 소리가 들리면 나는 왠지 안심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로 부터 오늘까지 매미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괜히 불안스럽다. 물론 당연하게도 매미 소리가 다시 들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난 다시 안심 할 수 있을테다.

무엇으로 부터 안심을 하는 건진 나도 모르겠지만.

올해 여름은 기이한 느낌이다.

이해

몇일 동안 계속 비가 내리면서
바다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바다의 냄새는 저마다 달라서 마알간 청량감이 드는 냄새가 있는가 하면
그 냄새의 두터움이 너무나 커 질식할것 같은 냄새도 있다.

행정구역상 부산 중구 중앙동이라 불리우는 곳에는 쾌쾌하고 거무죽죽한 마치 코끼리 시체의 거죽같은 냄새가 감돈다. 비내 우루룩 내리는 동안은 그나마 덜하지만 빗발의 힘이 누그러질땐 요상스럽게도 스물스물 올라오는 것이 마치 오래된 이불 같다.

작업실에서 몇발자국 되지 않는 곳에 바로 바다가 있고 영도 다리가 있어서 그런걸까, 영도 앞바다는 이미 오래전 썩은 바다가 되었으니 세삼스러울 것도 없다.

하지만 그것이 썩은 것이였다면 빗물때문에 냄새가 덜해야 할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걸 보면, 바다속 깊이 썩었거나 아니면 사실 썩은건 아닌데, 마음대로 썩었다 단정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바다의 삶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냄새는 분명 다르게 와닿을 것이라 생각해봤다. 뭐, 당연한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거기에서 문득 신기함을 느낀다.

너무나 많은 것들을 겪어왔고 그래서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더 이상 흥미로울 것도 더 이상 재미있을 것도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상처에 충격에 둔감해져서 좋다고도 이야기들 하곤 한다.

일상의, 삶의, 하루 하루의 관성이 만들어내는 괘적은 그것이 괴롭고 힘들고 불행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괘도가 되어버린다.  그러한 괘도는 하루의 관성을 더욱 가속화 시킨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감동스러울 것도,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그 속엔 분명 신비한 것이 자리 잡고 있다.

비가 내리는게 신기했고
냄새가 나는게 신기했고
소리가 신기했고
무엇보다 신기한것은 이것들은
정해놓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이런것마저도 신비로울게 없는 일상이고
당연한 이야기라 할 지라도.

그건 그렇고,
바다의 삶을 이해하는 사람에겐 이 냄새는 어떻게 와 닿을까.

요상하지만 수긍이 되는 세계.

빛이 엷은 어둠이 깔려
깊은 물속 같은  감촉이다.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을터인데.

무언가를 하다 갑자기 맥이
풀려 몸이 흐물해질때 어떤 소리가 들렸다.

목탁 소리다.
일요일밤이 끝나고 월요일이 된지 막 1시간 30분이 지난 참이다.

목소리가 들렸다. 엷지만 분명한 울림이 되어 먼길을 돌아,
꼭꼭 닫아놓은 작업실 창문을 훑어 나에게 들어왔다.
정확한 발음을 구분하긴 어려웠지만 언듯 반야심경으로 들렸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이 묵상하고 있는 느낌이다.
단지 묵상하고 있는게 아닐까라고.
여름이라곤 하지만 아직 매미가 울지는 않는 그런 날이다.

10여분이 지난 후에 목탁 소리가 멈추고 갑자기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도대체 무엇이였던걸까.

그로부터 몇분 지나지 않아 다시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아무런 소리도 없다. 무척 조용하다.

아마 그렇게 다시 몇분인가 앉아있었던것 같다.
담배가 무척 피고 싶었는데도 몸은 내 마음과 달리 움직이지 않았다.
난 그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로부터 다시 몇분 후, 정적을 깨고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와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를 세번 들었다.

이제서야 겨우 몸을 움직여 담배를 피울 수 있게 되었다. 참으로 요상하면서도,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긍되어진 일이다.

1793년 프랑스 헌법 중 일부.

제1조. 사회의 목적은 공동의 행복에 있다. 정부는 인간에게 그의 자연적이고 소멸할 수 없는 권리들의 향유를 보장하기 위하여 설립된다.

제28조. 국민은 언제나 자신의 헌법을 재검토하고 개정하고 변화시키는 권리를 갖는다. 한 세대가 미래의 세대들을 자신의 법에 구속할 수 없다.

제35조. 정부가 국민의 권리들을 침해할 때, 봉기는 국민과 국민의 각 부분에게 가장 신성한 권리이자 가장 불가결한 의무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할말이 너무 많아, 할말이 없다.

말랑말랑한 위장.

어떤 사소한 이유로 사진이 한장 필요하여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훑어 보는데. 끝까지 보는게 힘들었다.

이런 감각은 이제 익숙해질때도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그렇게 스스로가 봐도 무감해질만 하다고 생각 했건만.

나이먹는것과는 상관없이 가슴 아픈건 가슴 아픈건가 보다.
무한에 가까운 시간 속에 엷고 반투명한 절편처럼 쌓여있던 사진들은,
내가 무엇을 향해 누른 셔터들이었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여전히 나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나는 셔터를 누른다.

그것은 따뜻한 눈길과 몸짓이였던, 울고 있는 것이였던간에 말이다.

그렇게 사진은 무섭다.

그렇게 묵묵히 지켜 보는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였다.

….

이야기 중에 문득 그녀가 말했다.

날씨가 좋아요.

….

그래, 날씨가 좋네.

….

응. 날씨가 좋아요.

그러내. 날씨가 참 좋구나.

짧은 공백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서로를 본듯한 느낌이였다.
많이 고마웠다.

.

날씨가 좋구나.

VueLoom.

올해 5월 부터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많은 고민 속에 결국 최종결정은 하지 못한체 종이에 먹이 물들듯
자신도 모르게 조막조막 준비를 해왔던 저를 발견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었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좋으신 분들께서 힘을 합해 주시어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부산에 아트 프린트 공방을 오픈 했습니다.

이름은 VueLoom입니다.

Vue는 ‘보다, 바라봄, 관점, 의견, 의도, 목적’의 뜻.
Loom은 ‘씨줄과 날줄을 엮어 천을 만드는 베틀’이라는 뜻을 합쳐 만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사진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저 나름의 능력을 현실적으로 활용 할 수 있는 부분 중에 큰것이
아트 프린트 쪽인듯 합니다.

사진 그리고 미술 등의 작업하시는 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밀도는 일반적인 프린트 샵에 비해, 좀더 용이하지 않을까 생각 해봅니다.

아, 그리고 실질적인 프린트의 퀄리티는
꼭! 직접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12월 초에 막 발매된 따근따끈한 프린터가 공방에 들어온 뒤로
바로 테스트를 하고 프로파일링 한다고 몇일 동안 실제 출력 이미지를 보질 못했지만,
기본적인 프로파일링 절차를 충분히 마치고 약간의 튜닝을 한 후에 나온 프린트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리고 실크같이 부드럽게 떨어지는 컬러와 톤을 보며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였습니다.

웹 페이지 주소는 http://VueLoom.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아트핀.

중학교 때부터 다녔던 단골 화방에 들려 콜크가 발린 있는 두터운 보드를 한장 샀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라기 보다는 내가 콜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골고루 압력을 받아 평면도가 높은 가공이 잘 된 콜크는 손끝으로 스쳐지나가는 느낌도 좋지만, 햇볕을 받았을때 보여지는 아주 엷은 표면의 질감은 때론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업실 입구 벽면쪽 (내가 항상 앉아있는 맞은편)에 콜크 보드를 붙이고 나니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빈 평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기엔 뭔가가 조금씩 채워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채워졌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단순히 돈으로 해결 될 수 없는, 시간이 충분히 들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시간이 흘러 한장의 콜크보드는 다 차버렸고 이어 두번째 콜크보드를 그 위에 붙였다. 공간이 한결 넓어졌고 답답한 느낌은 조금 사라졌다. 그래, 공간이 더 생겼으니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주 가끔 암실에서 미스 프린트가 난 조그만 내 사진들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체취가 남겨져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 연결 되어 나에게 와준 것들이며 그것들은 그렇게 나의 일부로 녹아내려갔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느덧 제법 시간이 흘러 남아 있건 공간이 거의 다 차버렸다. 한장을 더 구입해 세번째 콜크 보드는 아에 입구 문쪽에 붙였다. 다시 공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동안 붙어 있었던 것들의 배치를 다시 하였다. 전체적으로 너무 꽉 차보이지 않도록, 그러나 너무 비어 보이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조정하고 아무렇게나 붙인듯한 느낌이 들도록 비뚤비뚤 붙이기도 하였다. 한결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저렇게 다섯번째 콜크 보드까지 왔다. 처음 붙였던 날로 부터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보드에 붙었다. 더 이상은 붙일 장소가 없어서 콜크 보드를 더 붙일 수 있는 곳을 생각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리곤 몇 몇 것들은 보드에서 떼어지고 나선, 휴지통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새벽 폐지를 모으는 사람에게 수거되어 갔을 것이다.

시간은 더 흘러 작업실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것이 옮다고 판단했으며 그것을 납득 했기에 보드에 붙어있던 것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아트핀을 먼저 뽑고 붙어 있던것들을 떼어낸다. 그렇게 벽에 붙어 있던 콜드 보드 네개를 떼어냈다.

많은 것들이 재활용 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99개의 아트핀만 남았다.

본래 투명한 색이였을 아트 핀은 군데 군데 먼지가 묻어있고 담배진 때문에 연갈색으로 세월만큼 불투명 코팅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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