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소한 이유로 사진이 한장 필요하여
예전에 찍었던 사진을 훑어 보는데. 끝까지 보는게 힘들었다.
이런 감각은 이제 익숙해질때도 되었다고 생각했건만,
그렇게 스스로가 봐도 무감해질만 하다고 생각 했건만.
나이먹는것과는 상관없이 가슴 아픈건 가슴 아픈건가 보다.
무한에 가까운 시간 속에 엷고 반투명한 절편처럼 쌓여있던 사진들은,
내가 무엇을 향해 누른 셔터들이었고 그것들은
시간이 지나도 지나도 여전히 나에게 화살이 돌아온다.
알고 있다. 알면서도 나는 셔터를 누른다.
그것은 따뜻한 눈길과 몸짓이였던, 울고 있는 것이였던간에 말이다.
그렇게 사진은 무섭다.
그렇게 묵묵히 지켜 보는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였다.
이야기 중에 문득 그녀가 말했다.
날씨가 좋아요.
….
그래, 날씨가 좋네.
….
응. 날씨가 좋아요.
그러내. 날씨가 참 좋구나.
짧은 공백속에 많은 이야기를 담아 서로를 본듯한 느낌이였다.
많이 고마웠다.
올해 5월 부터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많은 고민 속에 결국 최종결정은 하지 못한체 종이에 먹이 물들듯
자신도 모르게 조막조막 준비를 해왔던 저를 발견했습니다.
여러가지 상황들이 있었고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 되었던 적도 있었지만,
결국 좋으신 분들께서 힘을 합해 주시어 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부산에 아트 프린트 공방을 오픈 했습니다.
이름은 VueLoom입니다.
Vue는 ‘보다, 바라봄, 관점, 의견, 의도, 목적’의 뜻.
Loom은 ‘씨줄과 날줄을 엮어 천을 만드는 베틀’이라는 뜻을 합쳐 만들었습니다.
제 자신이 사진을 만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저 나름의 능력을 현실적으로 활용 할 수 있는 부분 중에 큰것이
아트 프린트 쪽인듯 합니다.
사진 그리고 미술 등의 작업하시는 분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의 밀도는 일반적인 프린트 샵에 비해, 좀더 용이하지 않을까 생각 해봅니다.
아, 그리고 실질적인 프린트의 퀄리티는
꼭! 직접 보아주셨으면 합니다.
12월 초에 막 발매된 따근따끈한 프린터가 공방에 들어온 뒤로
바로 테스트를 하고 프로파일링 한다고 몇일 동안 실제 출력 이미지를 보질 못했지만,
기본적인 프로파일링 절차를 충분히 마치고 약간의 튜닝을 한 후에 나온 프린트는
너무나도 아름답게 그리고 실크같이 부드럽게 떨어지는 컬러와 톤을 보며
가슴이 떨리는 기분이였습니다.
웹 페이지 주소는 http://VueLoom.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중학교 때부터 다녔던 단골 화방에 들려 콜크가 발린 있는 두터운 보드를 한장 샀다.
딱히 이유가 있어서 라기 보다는 내가 콜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골고루 압력을 받아 평면도가 높은 가공이 잘 된 콜크는 손끝으로 스쳐지나가는 느낌도 좋지만, 햇볕을 받았을때 보여지는 아주 엷은 표면의 질감은 때론 뭐라 말할 수 없이 복잡한 느낌을 갖게 한다.
작업실 입구 벽면쪽 (내가 항상 앉아있는 맞은편)에 콜크 보드를 붙이고 나니 알게 되었다. 비록 지금은 아무것도 없는 빈 평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거기엔 뭔가가 조금씩 채워질 것이라는 것. 그리고 그렇게 채워졌으면 하는 바램이였다. 단순히 돈으로 해결 될 수 없는, 시간이 충분히 들어야만 하는 것들이다.
시간이 흘러 한장의 콜크보드는 다 차버렸고 이어 두번째 콜크보드를 그 위에 붙였다. 공간이 한결 넓어졌고 답답한 느낌은 조금 사라졌다. 그래, 공간이 더 생겼으니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다.
아주 가끔 암실에서 미스 프린트가 난 조그만 내 사진들을 붙이는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나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체취가 남겨져 있는 것들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와 연결 되어 나에게 와준 것들이며 그것들은 그렇게 나의 일부로 녹아내려갔다.
당연한 이야기다.
어느덧 제법 시간이 흘러 남아 있건 공간이 거의 다 차버렸다. 한장을 더 구입해 세번째 콜크 보드는 아에 입구 문쪽에 붙였다. 다시 공간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동안 붙어 있었던 것들의 배치를 다시 하였다. 전체적으로 너무 꽉 차보이지 않도록, 그러나 너무 비어 보이지 않도록 적당히 거리를 조정하고 아무렇게나 붙인듯한 느낌이 들도록 비뚤비뚤 붙이기도 하였다. 한결 자연스러워 보인다.
이렇게 저렇게 다섯번째 콜크 보드까지 왔다. 처음 붙였던 날로 부터 제법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많은 것들이 보드에 붙었다. 더 이상은 붙일 장소가 없어서 콜크 보드를 더 붙일 수 있는 곳을 생각 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리곤 몇 몇 것들은 보드에서 떼어지고 나선, 휴지통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새벽 폐지를 모으는 사람에게 수거되어 갔을 것이다.
시간은 더 흘러 작업실에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것이 옮다고 판단했으며 그것을 납득 했기에 보드에 붙어있던 것들을 하나씩 떼어 냈다. 아트핀을 먼저 뽑고 붙어 있던것들을 떼어낸다. 그렇게 벽에 붙어 있던 콜드 보드 네개를 떼어냈다.
많은 것들이 재활용 통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99개의 아트핀만 남았다.
본래 투명한 색이였을 아트 핀은 군데 군데 먼지가 묻어있고 담배진 때문에 연갈색으로 세월만큼 불투명 코팅이 되어 있었다.
녀석의 실력은 대단히 놀랍다.
이 정도의 굉장한 실력을 보고 있으면, 말도 안되게 커다란 덩치와 무게 (100Kg이 넘는)에서 나오는 실력일까? 라는 뭉묵한 의문이 들 정도이다.
공장같이 시끄럽지만, 그렇에 ‘웅,웅윙’ 거리면서도 막상 움직임은 물위에 떠 있는, 맑고 깨끗한 한방울 기름같다. 너무나도 부드럽고 엘레강스하다. 모든 것들은 부드럽게 움직이며 기민하고 빠르다.
게다가 영리하기 까지 하다.
이미지의 품질은 그야말로 납득 ‘당해버린’ 느낌이 들 정도의 실력.
오랫만에 가슴이 쿵쾅거리는 느낌이 든다.
프린트 공방이 알려져서 훌륭한 이미지 품질의 프린트를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접하고 즐겨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이로 인해 나도 금전적인 부분이 해결되었으면 한다.
도착했다.
작업실 한켠에 저렇게 큰 기계가 있으니 이상스럽기도 하고 잘 어울리기도 하다. 녀석이 가동할때는 DummyFactory라는 이름대로, 공장같은 느낌이 제법 난다. 행여나 싶어 언제나 그렇듯 메뉴얼(200여 페이지의)을 다 읽고, 그외 추가적으로 필요한 문서도 챙겨서 다 읽었다.
대단히 멋져버린 녀석이다.
사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게 있지만 그런 이야기 보다는 우선 스스로를 믿기로 한다.
심리적인 저항선 맥락을 볼때, 준비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직 남은것도 해야 할것도 너무나 많이 남았지만 그래도 하나씩 하나씩 그리고 하나씩 끝내가고 있다.
최근 잦은 두통이 나를 괴롭힌다.
하루는 왼쪽. 또 하루는 오른쪽 이렇게 좌, 우뇌를 번갈아가며 끈질기게 나를 괴롭힌다.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친우가 1년 전, 평소 두통이 심한 나를 생각하여 다량의 아세트아미노펜을 주었다. ER 서방정 처방이기 때문에 큰 부담도 없고 효과가 길다는게 위로가 된다. 한알로 효과가 없을땐 십수알까지 먹어도 몸에 부담되진 않으니 이것도 다행스럽다.
그렇게 약을 먹다보면 고통을 느끼는 말단세포 접점 사이에 약물이 끼어들어 통신을 못하게 하는 느낌 같은것이 어쩐지 생생하게 느껴진다. 심지어 신비로운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사실 아프지 않은게 아니라 아픈것을 느끼게 하는 신호의 말단 접점이 마비되는 것 뿐. 하지만 그것을 아프지 않다고 할순 없는 것이다.
작업실의 분위기가 사뭇 많이 달라졌다. 몇가지 바뀌었으면 하는 것이 있지만 현재 내가 가용 할 수 있는 자금 한계가 너무나 분명함에, 차후 여유가 생기는데로 마음먹은것도 할 수 있으리라 본다.
전시를 준비하는 것과 비슷하다. 하나의 사진전시를 위해서 몇년 동안 촬영하고 그것을 다시 고르고 자르고 섞고 배열하고 마음에 안들면 전부 엎어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운율을 다시 암실에서 구현해내고 전시장을 찾고 협의 하고 액자를 맞추고 포스트카드를 만들고 홍보를 하고 관장과 기싸움을 하고 사진을 운송하고 조심스레 수평을 맞추어 사진을 배열하고 조명을 체크하여 각도를 맞춘다. 그리고 결과로서 눈에 보여지는 것은 덩그러니 흰 벽에 있는 종이조각 뿐. 인것이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긴, 세상의 일이라는건 준비에 비해 보여지는 결과라는건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눈에 보여지지 않는 가치를 난 믿고 있고, 그것을 느끼고 이해하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고 있기에 이런 무모한 일을 저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러한 나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좋은 분들이 나를 생각해주고 도와주고 도와주려 하고 있기에 극심한 외로움은 없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일도, 손에 잡히는 것은 종이지만 그 위에 뿌려진 부단한 노력의 가치를. 그리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불모지 부산에서 말이다.
과한 욕심일까.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게 무엇인지 알아내라.
핵심을 잡으려면 잘 버릴 수 있어야 한다.
핵심에 집중한다는 것은 잘 버린다는 것과 같은 얘기이다.
– 리차드 파인만, 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