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사라진 제국.

– 사훈 –
창조는 생명

– 경영이념 –
하나. 지적 창조로 사회에 공헌
하나. 선진 기술로 시대를 선취
하나. 인사일체로 목표추구

/ SEGA의 사훈.

사진을 찍지 않다.

딱히 말하기에도 번거로울 정도로 낮에는 햇볕이 따스하다. 길거리를 걷고 있자니 포장도로의 아스팔트 깨진 조각 사이로 꽃 한송이가 피어 있다. 순간 이것이 민들레 인지 국화인지 혼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미끌거리는 뇌수에 발을 밟아 넘어지는 느낌으로 무심히 꽃을 봤다.

노란 국화를 보면서, 일부러 하기에도 힘든 아스팔트 깨진 틈 위에 뿌리를 내린 연유가 궁금했다. 1분 정도 바라보고 있었다. 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이라던가 어찌하여 이리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렸나 같은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걸 생각하기엔 멀리 와버렸다.

5월이 지나면 꽃은 시들것이고 씨앗을 맺고, 어느날 종적을 감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딘가 바람을 타고 수많이 깨진 아스팔트 틈 사이로, 계단의 틈 사이로, 사람의 마음 틈 사이로 또 뿌리를 내릴께다.

왜 씨앗을 뿌리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멈출수 없는 이유는 알고 있을 것이다.

봄.

수염을 잘랐다.

진심의 모습.

진짜같은 것이 거짓말로 된다.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거짓말 처럼.
거짓말 처럼 일어난 일은 실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한 명의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남자인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
내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혹은 소중하다고, 사랑한다고 느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인생을 사는것이 나의 정체성.

진심의 형태는 마치 물과 같아
향기나 맛은 시각마다 모습을 달리한다.

만우절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소름끼치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자신이 결정 할 일이다.

물소리

어느날엔가
조용한 불의 이글거림 속에
떨어지는 물 한방울이 타버려
물먼지가 날릴때

낮게 떠 있던
뜨거운 붉은 달

.

진실로 중요한 것은 배워 얻은 내용이 아니라 배워서 얻는 방법, 그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나를 그토록 서럽게 만들었는지, 당시엔 알지 못했었다.
왜 내가 그토록 흉폭했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주 먼 땅에서
싸구려 여관 방바닥에 혼자 누워, 싸구려 위스키 한병을 두숨에 나누어 통채로 들이붓고 그렇게 짐승새끼처럼 울부짖어야 하는 이유를 난 몰랐다.
내가 할 수 있었던건 단지 손에 거머리 처럼 붙어있던 검은 카메라로 베어나가는 것 뿐이였다.
어째서 내가 이런일을 당해야만 했었는지 난 알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알 수 있다. 아니 알 수 있게 되어졌다.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도 난 여전히 알 수 없는게 남아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봄이 오면, 오실런지.

오후께에 미술관에 작품 반입을 하기 위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겨울의 시려움을 막아주고 걷던 거리를 좀더 잘 듣게 해주던 검회색의 코트를 벗어놓고 조금은 가벼운 옷을 입었다. 오전과 저녁엔 약간 쌀쌀하지만, 햇살이 동공을 관통하는 느낌이 드는 오후께에는 제법 따사롭다.

12시가 넘은 밤시간에 암실에서 현상을 하는 동안 문득 미묘스럽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스물스물한 느낌이 들었다. 불쾌함까진 아니더라도 좀체 안정되지 못한 불투명하고 끈적끈적한 느낌은 항상 나로 하여금 입을 굳게 다물도록 강요한다.

암실은 추위 때문에 석유 팬 히터를 틀지 않아도 될 만큼 따뜻했다. 묵묵히 현상을 끝내고 의자에 앉아 담배를 태우고 음악을 들으며 했던 생각은, \’ 이제 봄을 증오하는 것도 그만둘때가 되지 않았는가.\’ 라는게 고작이였다.

올해 봄은 조금 정도는 행복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뜨거운 욕탕에 콧구멍만 내민체 숨을 쉬는것 처럼 답답하다.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들녘은 활짝 피어나는, 봄 맞으러 갈 수 있을까..

가벼움

노력한다고 해서 그것은 꼭 가능할 것이라는 이야기 같은건 나에게 있어선 의미 없는 이야기 이다. 꼭 이루어 질 것이기에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단지 노력 하는 것 뿐이다.

때론, 내 마음을 파악하기 힘들어 차라리 그것을 폐기처분 하거나 짐짓 모르느척 자신을 속여넘기거나 혹은 자신에게 속았다는 인식마져 하지 못한체 너무나도 완벽히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도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라서 시간이 흐른 후에라도
다행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것 마져도 압력을 완충시키려는 얇팍한 속임수는 아니였는지.

.

돌아오는 전철안에서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부산 시립미술관 학예 연구실에서 온 전화였고 긴듯 짧고 짧은듯 긴 통화를 했다. 미디움에 관한 간단한 질의와 일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외 구체적 사항 및 자료는 이메일을 통해 받기로 했다.

그리고 부산 시립미술관 개관 10주년 특별 기념 전시회에 초청 되었다. 단 한점의 작품이지만 사진부분 섹션에 한명으로써 참가하게 되어 기쁜 마음이다.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일 따위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덜 나쁜 일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설령 나쁜 일이 생기더라도, 더 심한 일이 생기지 않음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고 있다. 삶속에서 그런 최소한의 희망 정도는 품어도 용납 할 수 있을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한 시간을 걸어감에 때론 이런 시간이 오기도 하는가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있어 모든 필요 조건이 갖추어지는 호사스러운 때는 아니다. 이런 경우, 항상 시간이 모자르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지금껏 내가 했던 작업을 단 한장의 사진으로 응축해야 한다는 마음이 일순 들기도 했지만, 이내 그런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심을 버리고 찬찬한 마음으로 보내면 될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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