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사사로운 농담.

아주 예전, 사진 촬영에 쓰이는 조끼를 입고 다니며 촬영한 적이 있었다. 움직임에 방해도 안되고 통풍도 잘 되는 편이다. 급하게 쓸 수 있는 펜과 종이를 넣을 수도 있었고, 렌즈를 빨리 바꿔야 하는 상황에선 큼직한 주머니에 렌즈를 던지듯 쑤셔 넣고 뺄수도 있었다.

난 이 촬영 조끼를 간간히 애용 했는데, 어느날 부턴가 전혀 사용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곤 사는 곳을 옮긴후에 그 조끼는 사라졌다. 누구를 줬던것인지 그냥 버려진 것인지 어쩌다 말려버리듯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 했었던게 아닐까 싶다. 난 사진을 찍고 있소! 라고 보여지는게 참으로 싫었던게 아니였을까. 사진 찍는게 그 무슨 대수라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듯 자신의 존재감을 그렇게 부각시켜야만 하는 것인지. 라고 짐짓 심각한듯 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그 때 즈음에 애지중지하며 무척 잘 사용하고 있던 길고 커다랗고 무거운 검은색의 80-200 f2.8 줌렌즈도 처분했었다. 사실 그 렌즈는 무척 좋아하던 렌즈였고 나름 쓸만한 사진은 그 렌즈로 찍은 사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 렌즈가 아니고서는 촬영 할 수 없었던 것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촬영 조끼를 입게되지 않으면서 부터 그 렌즈의 사용빈도도 줄어들고 사진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조금이라도 단 반발짝이라도 어떻게든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것에서 어느날 부턴가 조금씩 거리가, 생기가, 그렇게 멀어진 거리감 속에 난 조금 더 무엇인가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28mm렌즈를 처분하고 24mm렌즈를 구입한것도 그때 즈음이였던것 같다. 어떠한 거리감. 그 자체가 나를 확실히 획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로부터 약 10여년이 지난 지금. 주로 사용하는 렌즈는 여전한 50mm와 25mm렌즈를 사용 하고 있다.

그런 사사로운 농담 같은 이야기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거리가,
머나먼 거리가.

하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찾다 보면 사이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길은 너무나도 가늘어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금새 사리지고 말지.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만 해

길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되면 그 길은 정말로 없어져 버릴 지도 몰라

그러니까
반드시 길이 있다고 계속 믿어야만 해.

적어도 이런식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상황이나 정황에 따라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냥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그리고 단발마 적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해버리고 나면, 어쩌란 말인가.

가슴이 많이 아팠다.
4년을 부정한건 결코 아니였다는 말을 전해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암실에서 묵묵히 현상을 하다가 울컥했다.

사라진 제국.

– 사훈 –
창조는 생명

– 경영이념 –
하나. 지적 창조로 사회에 공헌
하나. 선진 기술로 시대를 선취
하나. 인사일체로 목표추구

/ SEGA의 사훈.

사진을 찍지 않다.

딱히 말하기에도 번거로울 정도로 낮에는 햇볕이 따스하다. 길거리를 걷고 있자니 포장도로의 아스팔트 깨진 조각 사이로 꽃 한송이가 피어 있다. 순간 이것이 민들레 인지 국화인지 혼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미끌거리는 뇌수에 발을 밟아 넘어지는 느낌으로 무심히 꽃을 봤다.

노란 국화를 보면서, 일부러 하기에도 힘든 아스팔트 깨진 틈 위에 뿌리를 내린 연유가 궁금했다. 1분 정도 바라보고 있었다. 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외감이라던가 어찌하여 이리 척박한 곳에 뿌리를 내렸나 같은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런걸 생각하기엔 멀리 와버렸다.

5월이 지나면 꽃은 시들것이고 씨앗을 맺고, 어느날 종적을 감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딘가 바람을 타고 수많이 깨진 아스팔트 틈 사이로, 계단의 틈 사이로, 사람의 마음 틈 사이로 또 뿌리를 내릴께다.

왜 씨앗을 뿌리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을 멈출수 없는 이유는 알고 있을 것이다.

봄.

수염을 잘랐다.

진심의 모습.

진짜같은 것이 거짓말로 된다.
거짓말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거짓말 처럼.
거짓말 처럼 일어난 일은 실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한 명의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남자인 나로서 살아간다는 것.
내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혹은 소중하다고, 사랑한다고 느낀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인생을 사는것이 나의 정체성.

진심의 형태는 마치 물과 같아
향기나 맛은 시각마다 모습을 달리한다.

만우절 거짓말이라고 하기엔 소름끼치는 이야기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자신이 결정 할 일이다.

물소리

어느날엔가
조용한 불의 이글거림 속에
떨어지는 물 한방울이 타버려
물먼지가 날릴때

낮게 떠 있던
뜨거운 붉은 달

.

진실로 중요한 것은 배워 얻은 내용이 아니라 배워서 얻는 방법, 그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나를 그토록 서럽게 만들었는지, 당시엔 알지 못했었다.
왜 내가 그토록 흉폭했었는지 알지 못했다.
아주 먼 땅에서
싸구려 여관 방바닥에 혼자 누워, 싸구려 위스키 한병을 두숨에 나누어 통채로 들이붓고 그렇게 짐승새끼처럼 울부짖어야 하는 이유를 난 몰랐다.
내가 할 수 있었던건 단지 손에 거머리 처럼 붙어있던 검은 카메라로 베어나가는 것 뿐이였다.
어째서 내가 이런일을 당해야만 했었는지 난 알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지만, 알 수 있다. 아니 알 수 있게 되어졌다.

그리고 다시 그로부터 아주 오랜시간이 흐른 뒤에도 난 여전히 알 수 없는게 남아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 Wonzu Au / No use without prior permission other than non-commercial use. / 비상업적 용도 이외의 사전 허가없이 사용을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