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찌그러진 식물의 섬 – 개인전

찌그러진 식물의 섬이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합니다.

4년이라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길기도 짧기도 한 시간입니다. 또는 어떤 종류의 일인가에 따라서도 그럴듯합니다. 저에겐 이번 ‘찌그러진 식물의 섬’ 작업을 형태로 만들어 내는 데 걸린 4년의 세월이 긴 것인지 짧은 것인진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가지 유일하게 알고 있었던 것은, 제가 이 작업을 ‘형태’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소리도 내지 못한 체 바스러진 채로, 문득 죽음이 도래할 때까지 그저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마친 지금에 다시 생각해 보면, 작업 이전과 이후 큰 차이가 있느냐고 하면 그렇진 않은 듯합니다. 다만 이번 작업의 시작 이유로 인해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던 이전에 진행했던 작업을 재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작업하는 사람으로 다시 생환했다는 것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번 작업과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은 제 생각보다도 훨씬 더 많았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지금 말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제 갓 사귄 연인과 함께 주말 데이트로 관람하기에 적합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그래도 내용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을 순 없으므로, 기본적인 큰 줄기를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면 대략 이렇게 될 듯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상투적’ 가정에 관한 이야기.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에 더불어 세상엔 다양한 장르와 형식미가 있지만, 그중 사진이라는 재료가 가진 여러 형식미 중에서도, 사진 이어야만, 사진이기에, 닿는 부분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중간에 꽤나 많은 이야기를 생략하자면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저의 기본적인 작업 구조와 형식에서 꽤나 반대 선상에 있는 작업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것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이는 직접 관람으로 확인 해주셔도 좋겠습니다.

9월 15일 (금) ~ 10월 13일 (금)까지이며
개관시간은 오전 11시 ~ 오후 6시 까지입니다.
별도의 오프닝 행사는 없습니다.

갤러리 토크(작가와의 대화)는 2회 엽니다.
9월 16일 (토) 오후 4시
10월 7일 (토) 오후 4시입니다.

위치는
부산 해운대구 송정광어골로 9, 2층 gallery flo 입니다.

관련 문의는
010-65610-7677
gallery flo 김영호

홈페이지 리뉴얼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기술로 만들어진 홈페이지는, 그 세월 동안 몇 번인가 디자인 리뉴얼을 했지만 핵심 DB 엔진은 그대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안에 점점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인지 간혹 서버 로그를 보면 이리저리 비집고 들어오려는 흔적이 잔뜩 남아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사진을 업로드 할때 adobe Flash 모듈을 거쳐야만 업로드 할 수 있는 구조였다. 언제부턴가 강제로 Flash 모듈을 로드 하는 것조차도 완벽히 다 막혀버린 덕에 사실상 1년 넘게 홈페이지가 강제로 멈춰버린 상황이었다. 그나마 Mutter에 일기를 쓰는 것 정도가 가능했는데, 그것 또한 일신상의 이유로 뭔가를 말하거나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가 3~4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홈페이지를 DB 엔진 교체 부터 시작해서, 바닥부터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여차저차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뭔가를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기존에 낡은 DB에 있는 자료를 마이그레이션 하는 부분인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건 초심자가 절대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그냥 놔둘 수도 없으니.. 쉽지 않으리라는 나름의 각오로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보다가 결국 포기.

이렇게 또 1년이 지나던 와중, 모 유명 IT회사에 다니는 아는 동생에게 내 작품 한 점을 받는 조건으로 DB 마이그레이션을 부탁했다. 레거시 DB라서.. 구조상 완벽하게 마이그레이션 하려면 꽤나 품이 많이 드는 일이 되는지라, 이 친구의 인건비를 고려하여 텍스트 데이터와 타임 스템프만이라도 살리고 이미지들은 다시 채우는 식으로 진행했다. 이렇게라도 되지 않았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 했을 것이기에 도와준 동생에게 감사한다.

그럼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기존 작품들의 이미지 해상도는 CRT 모니터 시절 1024 x 768 대응 해상도로로 되어있던 것을, 반응형 웹 및 레티나 해상도를 렌더링 할 수 있게 홈페이지를 만들고, 그에 따라 이전보다 높은 해상도의 작품을 넣으면 무척 좋을 것이다. 아무래도 이전의 CRT 기준으로 만들어진 낮은 해상도 작품 이미지로는 오리지널 프린트로 볼 때 오는 정보의 밀도, 온도감, 시각적 촉감과 농담의 표현 등은 저해상도로는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심플하게 불가능했다. 물론 레티나 대응의 고해상도라고 하더라도 오리지널 프린트에 비하면 여전히 열화판이지만 CRT 모니터 시절 대응 해상도와 비교하면 훨씬 좋다.

다만 이에 따라온 문제가 있는데 작품 전부를 고해상도로 새로 스캔해야 하는 일이다. 그야말로 군대에서 매일 매일 눈 치우는 감각으로 2개월 반 동안 스캔을 하고 RAW로 받은 필름의 물리 정보를 암실에서 현상하는 것과 비슷한 프로세스를 거쳐 후작업 하는 것까지 했다. 그래서 monoPhony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고해상도로 재 스캔하는데 2개월 반이 소요 되었다. 예상보다 한 달이나 더 걸린 셈이다. 진이 빠지는 일이지만 새로 스캔하면서 톤을 미조정하거나 약간의 수정을 추가하는 것은 꽤 즐겁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응용해서 홈페이지 랜딩 페이지에 접속하면 monoPhony에 있는 작업 전체 중에 랜덤으로 12장을 1세트로 뿌려주는 디자인을 넣었다. 새로 접속하거나 웹 브라우저의 페이지 리로드를 하면 새로운 12장의 랜덤 1세트를 뿌려주는 식으로 만들었다. 약간의 버그라고 해야할까.. 세로 사진은 잘려서 보이는데 이걸 해결하는 것은 당장 자력으로 해결은 안 되어 차후에 해결하기로 했다.

남아 있는 Polyphony에 들어가는 작품들도 분량으로만 보자면 monoPhony에 들어가는 작품 수만큼 되니까 이것 역시 2개월간은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오직 스캔 작업만 하면 완료할 수 있을 듯하다. 일단 기간 동안이라도 볼 수 있도록 링크를 살려두는 게 좋을 듯했다.

아직 홈페이지 전체를 보자면 서체가 미묘하게 맘에 들지 않는다던가, 특정 부분의 미조정을 하고 싶은데 이전처럼 html을 생짜로 만드는 방식이 아니라, 모듈 기반으로 페이지 빌드하는 방식이다 보니 전문적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한계를 느낀다. 관련으로 조금 더 지식이 쌓여 운신의 폭이 늘어나면 세부 조정을 조금 더 해볼 셈이다.

그 밖에 equip 메뉴에 있는 review 들은 버튼까지만 달아두고 해당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 전부 작성할 것인가 아니면 임시로라도 링크를 달아주는 게 좋을까 생각 중이다.

일단 여기까지 하는 데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뭔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긴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그리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모자란 부분은 조금씩 보충하고 개선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오늘 꽤 힘들었으니 일단 잠시 쉬어야겠다.

.

거의 5개월을 들여 71861장의 사진을 봤다.

자신에게 축적되고 사라지고 흔적이 남으며 변형되어진 덩어리들의 부스러기를 모아 형태를 가진 것으로 만들어가는 것은 여느 형식미를 가진 작업과 크게 다른 점이 없을지도 모르겠으나, 사진이라는 재료는 특정한 부분에 있어서 이러한 변형을 용납하지 않는다.

당시 셔터를 누르게 만든 심정적 이유가 무엇이었건 오롯이 물리적으로 새겨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같은 사진을 보고 있더라도 보는 사람의 변화에 따라 사진도 달라진다. 그렇게 명확성과 동시에 불명확성을 획득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사진들은 세부적인 감정의 감촉이나 온도감의 변화는 있을지라도, 소멸이나 변형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황야에 멀겋게 서 있는 바오밥 나무처럼 시선에서 피할 길이 없는 것이다.

단순히 개념을 다루는 작업을 넘어 실제로 살이 썩는 냄새와 비린내에 구토감을 삼키며 눈으로 그리고 손으로 직접 재료를 만져 다듬어야 하는 일이다. 작업에 있어 사진이라는 형식미는 때론 잔인하다.
어찌되었든 만들기 위해선 찍은 사진을 정면으로 마주 하고 봐야 한다.

이제 28877장을 더 봐야 한다.

.

 

계속 걷다 보니 조금씩 지쳐가는 다리가 느껴졌다. 모처럼 멀리 온 김에, 그리고 현지 교통 시스템 덕분에 자의 반 타의반 하루 단위로 움직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런 하루 중 아무런 사전 인지나 지식 없이, 그저 만나야 할 것들이 결국 만나게 되는 것처럼 이 그림을 보게 되었다.

화려한 이름들이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 이 그림은 얼마간 조용한 곳에 떨어져 있었다. 그리 눈에 띄이지 않는 무채색의 작품이 벽에 얼마간 흡수 돼버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도 없이 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나는 이 그림을 그린 작가의 이름도 배경도 살아온 삶의 굴곡도 모르지만, 이 무채색의 보름달이 떠 있는 밤에 창가에 나지막이 놓인 권총과 폐허가 그려진 단순한 그림을 보며 욱신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삶 어딘가에서 비슷한 풍경을 봤으며, 앞으로의 삶 어딘가에서 반복 될 풍경이었다.

십 몇분은 지난 것 같았다. 묽고 끈적한 물이 나왔다. 함께 하던 일행이 나를 발견하고 내가 보던 그림을 3초간 보고 다음에 갈 길을 무언으로 재촉했다.

급하게 사진을 찍고 이동했다.

.

너뎃살 정도의 꼬마가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처지를 인식하고 생존을 위해 행동을 흉내 내며, 생활을 견디며 살아왔겠구나 싶은 느낌이 드는 진지한 어른스러움. 그 와중 속에서 묻어나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이 섞여있는 그 모습은 기묘하고도 가슴 아프다.

Walked

 

전시 오픈날 갤러리에 방문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

수년간에 걸쳐진 지속적 어두움에 눌려있는 저의 일신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다시 조금은 앞으로 한걸음 옮기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드는 전시였습니다.
그리고 이런게 가능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격려를 해주시고 지켜봐주시고 도와주신 분들 덕 이라고 생각 합니다.

코로나 속에서도 귀중한 시간을 쪼개, 먼 걸음 와주신 분들에게 재차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오픈식을 하지 못하는 코로나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부분도 있었습니다.
시간에 묶이지 않고 각자 가능한 시간대에 와주신 한 분 한 분의 이야기를 듣고 그간 살아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마 별도의 오픈식으로서 식순을 진행한다거나, 갤러리 토크 같은걸 했다면 이런 경험은 힘들었겠지요.

그 중 내가 존경하는 선배가 자신의 아들이랑 같이 찾아와줬습니다. 아들이 이런 종류의 사진들을, 게다가 전시장에서 보는건 예가 태어난 이후 첫번째 경험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는데 그 다음 바로 번뜩 든 생각은, 좋은 기억과 경험 그리고 추억이 된다면 정말이지 무척 기쁠것 같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 아이의 눈으로는 무엇이 보았고, 무엇이 보였으며, 어떤 기분이나 마음이 들었을까가 궁금해졌습니다. 눈을 보고 싶어서 아이 옆에 앉은 자리로 물어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그런지 어떤진 전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아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여 말하는 것들 중엔 간혹 핵심에 닿아있는 것들을 정말 아무것도 아닌듯 말 할때가 있다는 것을 듣곤 했습니다. 선배도 고마웠지만 아직 꼬맹이인 아이에게도 무척 고마웠습니다. 안아주고 싶었어요.

이렇게, 또 조금씩 한걸음을 옮겨보게 됩니다.

와주신 모든 분, 그리고 축하와 격려 그리고 감상을 전해준 보내준 모든 분께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물질적으로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모든 분께

재차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Butterfly Walked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짧막한 소식이 있어 전합니다.

다음주 금요일 (8월 13일) 전시 오픈 합니다.

장소는 부산 서동 예술 창작 공간 갤러리이며
개관 시간은 오전 10 ~ 오후 6시 입니다. 일요일 및 공유일은 휴관 입니다.

8월 13일 오픈날 (저녁 7시 30분까지) 방문 해주시면 삭아있는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전시 기간은 9월 10일 까지 입니다.
무겁지 않은 전시이므로, 시간 괜찮으실때 바로 옆 에 있는 시장에서 밥 한끼 하는 김에 겸사 겸사 전시장에 들려 주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팬더 짬뽕이 전 괜찮더라구요)

감사합니다.

.

.

6년 전

 

할수 있는 조치는 모두 했지만 결국 우주선의 모든 연료는 바닥나고, 그저 목성 중력에 하루 하루 빨려들어가는 것 외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때, 목성의 소리가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는 것을. 이 영상을 처음 봤을때 상상한 적이 있었다.

출발하는 순간 심플한 백터 방정식으로 죽음은 이미 결정되어진 감각.

(사실은 보이저 1호가 1979년에 한 달 동안 접근하며 촬영한 것. 현재는 태양과 지구의 거리에 약 142배 정도 먼곳인 성간공간에 들어갔다. 그리고 2025년~2030년 즈음에는 모든 전력이 끊어진다)

첫 기일

어머니는 생전 나의 생일 전날과 당일엔 항상 아프셨다.

나를 낳을때 하마터면 돌아가실뻔 했다던 과정과 산통이 무척 컸었던것이 몸과 마음에 강렬하게 새겨진 것인지 아니면 어머니의 시간 속에서 초침이 짤각 거리는 기점이 되었기 때문인진, 나는 모른다.

어려서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지만, 매번 나의 생일이 있을때마다 몸이 부어오르거나 진짜로 아프셨다. 그래서 나의 생일은 내가 태어난 것을 새기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 보다는 어머니가 고생하신 날로 나에겐 새겨져있다. 그리고 그게 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매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언제부턴가 그게 어떠한 것인지 어슴푸레한 정도로나마 알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가 태어난 날 마다 매년 어머니는 아프셨다.

그리고 나는 매년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마다 아플것이라는 것을 오늘 알게 되었다.

© Wonzu Au / No use without prior permission other than non-commercial use. / 비상업적 용도 이외의 사전 허가없이 사용을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