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외롭다.
이것은 양수가 채 씻겨나지도 않은, 벌겋게 달아오른 아기들도 안다.
자신을 채울 무엇인가를 욕구하고 욕망하고 때론 만족에 겨워 다시 돌아가기도 하며 때론 채워지지 못함에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단순한 이야기고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요 그게 우리네 삶의 이야기 중 대부분의 소제가 아닐까 한다. 그것이 에베레스트 6000미터 지점에서 되었던 길을 지나며 사람의 웅성거림이 들리지 않을때가 되었건 누군가 술을 같이 마시고 있을때던 제법 아가씨들의 몸매와 다리와 가슴이 빼어난 바에서가 되었던 이성에게 진심으로 다 바칠 만큼 사랑을 했다고 느꼈음에도 혹은 그러한 시작을 만들려 했음에도 돌아오지 않는 응답이 되었던 혹은 무엇인가를 만들던.
나를 제외한 외계의 것이 자신의 존재 증명이라는 시시껍절한 이야기 같은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나라고 하는 것 자체가 외계로 부터 만들어진 것이기에 구분 자체가 모호해질 뿐이다. 단지 나 라고 하는 기억이 나를 지탱해주는 유일한 근거일 뿐이다. 그리고 그 기억마져 자기 좋을대로 만들어 버리니 남아 있는 것은 자기 좋을대로 라는 것 정도가 남는데, 이것 또한 기실 정체성이라고 불리는 허울속에 적당히 밀봉되고 만다. 삶의 관성이란 이토록 관통하고 만다.
자신이 외롭다고 느낄때를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단순히 할짓이 없고 배부른 자의 팔자 좋은 노란 한숨 이라고만 치부하진 말자. 그것은 자신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며 자기 자신을 느낄 수 있는 명확하지만 흐릿한 그 무엇이다. 자신이 살아있음에 아픔을 혹은 증오를 느끼는것에도 감사하자. 그것은 자신의 생이 꿈틀거리고 있다는, 그리고 외로울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타인의 아픔을 고통을 우린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타인에게 다정하게 대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똑같이 느낀다면 위로와 다정함 따위 가능치 못하지 않겠는가. 당신과 나와의 삶의 궤적이 다름에 감사하자.
아직, 살아 있음에 찬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