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새삼 느끼는 것 이지만.

세계라는 것은

그 사람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루어 진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하나마나한 세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것이 나에겐 희망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끔은 절망스럽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리고 피곤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느껴질때마다 난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여름과 겨울은 달라서 나에겐 여름이 좋게 느껴진다. 바흐와 헨델은 달라서 나에겐 바흐가 좋게 느껴진다. 조용함과 시끄러움은 달라서 나에겐 조용함이 좋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해와 달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해바라기와 안개꽃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사진과 음악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낮과 밤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맑은날과 비오는 날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창세기에 이런 말이 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생긴 이후, 천지를 창조하는 일을 모두 끝낸 후 그는 이렇게 말 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더라\’

10일. 밤 10시.

2006년 7월 10일. 밤 10시.
서울 동쪽 약 80Km 부근 육상.

3호 태풍 위니아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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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제 핸드폰의 문자 메세지로 알려주셨습니다.
위니아가 아니라, 에위니아, 태풍의 신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익명의 제보자께 감사합니다.

그렇다.

경멸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 니체

無無. 無

이미 알고 있는거다.
이미 겪었던 일이다.

딱히 슬퍼할 여력같은 사치도 부리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실 아무것도 난 모른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여름의 일본이라는 것을 가보고 싶어졌다.
간다 한들 아무것도 없겠지만.

딱히 마쯔리 라던가 흔해빠진 부채를 들고 있는
유타카 아가씨라던가 그런걸 보고 싶다기 보다는.

그렇게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는 거리라는 곳에서의
혼자 여름을 \’걷고싶다\’라는 느낌이다.
미치도록 더운 도쿄의 어딘가에 있던 몇평 안되는 놀이터에
목을 땅에 쳐박아놓고 죽어있는 기린동상과 그 뒤에 있던 매정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그렇게 정지된 듯한 그곳을.
매미는 죽을려고 악을 쓰는것 처럼 울고 있는 그 거리를.

물론, 오다이바 따위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결국. 어느 곳이든, 날 기다리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겠지.

어쩌면. 난,
절대적으로 날 기다려주는
그 무엇을 원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날 기다려주는
그렇게 날 맞이해주는
그 무엇 말이다.

사진따위가 아닌.

아마. 내가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조금은 지쳤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아까 마신 술때문이 아닐까 라고 자위한다.

그래서 아주 약간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붉은 밤, 홀로 암실에서 프린트를 하는것도,
길을 걷는것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누군가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름의 시작

새로 들어온 렌즈에 대한 화각 적응과 렌즈의 특성을 몸에 새겨넣기 위해 거의 붙박이 처럼 마운트 되었던 105mm Micro 렌즈를 분리시키고 한달 하고도 2주일 만에 45mm렌즈를 마운트 시켰다.

그리고 파인더를 마주하는 순간, 아득한 진공감이 느껴진다.
일종의 현기증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굉장히 그립지만 어느 구석엔가 항상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슬픈, 바로 그 느낌이다. 50mm가 아닌, 하필 왜 45mm를 난 마운트 하였던 것인가.

그리고 한컷을 찍고, 걷고 버스를 타고 음악을 듣고 내려서 또 한컷을 찍고
그렇게 토해내듯 한컷씩 찍어갈때마다 무엇인가를 비워나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무거워짐을 느낀다.

지긋지긋하던 봄은 이제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척추 속에 박혀있는 얼음 알갱이들은 그딴건 상관없다는듯 여전히
날 차갑게 만든다.

Some times feel so happy. Some times feel so sad.

달짝지근하게 I\’m not going anyway. 라고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날짜의 소인이 찍힌것 일 뿐이다.

그나저나 돈도 없는놈이 담배를 계속 피워서야..
이놈의 담배 끊어야 할텐데 말이다..

Some times feel so happy.
Some times feel so sad.

쪽이 나에겐 훨씬 더 호소력이 있다.

돌아오는길.

작업실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언덕을 내려와 걸어가던 길 옆에 조그만 슈퍼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다큰 잡종 고양이 한마리가 서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왼쪽어깨엔 낡아빠진 카메라 가방을 오른쪽 어깨엔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고양이를 찍고 싶었다. 다섯 발치 정도 거리에서 자세를 낮췄다. 어떤 고양이 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 다가가도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좀더 자세를 낮추어 바닥에 주저앉듯 더 자세를 낮추고 붙어 있던 105mm Micro 렌즈의 화각에 알맞도록 프레이밍을 했다.

신속하게 노출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초점을 정확하게 잡는다. 고양이의 흰색털은
존6 1/2정도로 노란털은 존 4 1/2정도 떨어졌다. 아스팔트의 그림자는 존 3 1/2 정도로 되었다. 필시 아름다운 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모든게 순간 결정남과 동시에 한번의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뒤엔 필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필름을 더 이상 감아내지 않았다. 필름 카운터에선 End가 뜨고 있다. 그 순간 지체할 것 없이 손이 자동적으로 카메라 가방에 있던 필름을 꺼내려 한다.

그때 고양이는 나에게 다가온다. 발소리도 내지 않은체 조용히. 살짝 경계를 하지만 녀석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녀석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순간 이런 아무 의미도 없는 다가옴이 나의 손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녀석에게 나의 손을 맡겼다. 목을 손에 부비고 얼굴을 손에 부빈다. 그러자 녀석은 바닥에 아에 주저앉아버렸다. 난 녀석의 목을 머리를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조그만 울음소리 조차 내지 않는다.

기분이 좋은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수 없다. 녀석은 아무 소리 없이 그렇게 아스팔트 위에 누워있다. 녀석이 기분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표정밖에 없다. 하지만 고양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얼굴표정으론 알 수 없는 생물이다. 가까이서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양쪽 눈에는 서로 크기가 다른 눈꼽이 끼어있었다. 때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2분의 시간 동안 필름을 꺼낼지 그냥 계속 이렇게 있을지를 생각했었다. 이것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면 흐름이 깨질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흐름을 느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말 없이 고양이와 나와 말 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난 필름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내 귀에 걸쳐진 헤드폰에서는 계속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음악이었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외국인이 지나가면서 같이 앉아 고양이를 만졌다. 난 말 없이 그 사람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고 그 사람도 나에게 목례를 했다.

20초 정도 그렇게 있다가 그 외국인은 잘 들리지 않는 말로 뭐라고 말하더니
일어서서 다시 자신의 갈길을 가려 한다.

그때 헤드폰을 벗었다. 고양이는 그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난 가진게 없어. 아무것도 없다니까\’ 라고 말을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길을 재촉한다.

40초 정도 그 광경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그제서야 정신 차린듯 카메라에 있던 필름을 천천히 빼고 새 필름을 천천히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라진 길목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당연히 그 외국인도 고양이도 없다.

그 자리엔 조그만 꼬마 4명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줄넘기를 하고 있었던가,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있었던가 혹은 그냥 축구공만 팅팅 퉁기던 것이었던가.

어쩐지 입안이 건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삶은 겨울 나무들로 섰다.

우리 삶의 한 부분은 늘 젖어 있어
떠나가는 사람의 등 뒤에 비를 내리게 하고,
젊은 나이에 번지는 낙동강 하구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친구들의 이름을
뼈만 남은 겨울 진눈깨비로 돌아오게도 한다.
우리가 미신 같은 바람을 온통 물고
스크럼을 짠 쑥밭이 된 남포동 거리를 뛰어 다니거나.
폐결핵으로 혼자 콜록거릴 때도
목숨 한 호흡은 젖어 떠돌다
공중 금새 사라지는 빛깔 속에 뿌리를 내리기도 하고
어두운 자취방 낡은 벽지에 곰팡이로 번지기도 하다가

삶은 깊어서
들판 가득 태우는 매운 연기속에 황홀하게 증발하고 남은
겨울 나무들로 섰다.

– 이성희

오후.

오늘, 이런 저런 잡생각들이 뼈속 심지를 온데 파헤치고
그렇게 밤을 세고 나서

오후께가 되어 창문을 바라보니 햇살이 좋아서 잠시 나갔는데..
눈물이 났다.

햇살은 굉장히 강한데…
눈에 쏘는 그런 햇볕도 아니고
그렇다고 느즈막하니 엷고 날카로운 햇살도 아니었다.

바람 같은 햇살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뭍어있던 세로그립이 달린 내 카메라는
잠자코 아무말 없이 그대로 내 곁에 있었다.  무척이나 그리운 느낌이었다.

뜬금 없는 소리지만, 요즘 같을땐

나비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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