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돌아와서.

몇일간 작업실을 비운체 일을 보고나서 돌아와보니, 수백마리의 하루살이 주검과 창문을 거의 닫아놓은 상태 특유의 감도는 답답하고 텁텁한 공기와 한동안 청소를 하지 않은 덕에 보이는 검은 때가 끼어있는 바닥이 날 맞이해주었다.
짐을 풀고 한동안 말 없이 의자에 앉아 담배를 연속으로 3개피를 피우고, 차가운 물을 컵에 가득 채워 마시는 것을 3번 반복했다.

바닥에 검은 모래가 뿌려져 있는듯한 광경을 말 없이 한 동안 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담배를 피우고 물 한컵을 한번에 들이마셨다.

컴퓨터의 전원을 올리고 여행 중에 고장이 나버린 MP3 플레이어를 연결해서 증상을 살펴본 후에,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플레이어 안에 내용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기계 자체는 다행스럽게도 작동이 된다.
음악을 다시 집어넣도록 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물끄러미 모니터에 비춰진 나의 윤곽이 얼핏 보인다. 얼굴은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무척 피곤해 보인다. 도대체 난 뭘 하고 있는거지? 라는 혼잣말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듯 하다.

옷을 다 벗었다. 알몸으로 빗자루를 들었다. 바닥을 쓸어 굴곡이 갸름하게 깔린 검은 모레 같은 하루살이 시체를  모아서 쓰레받이에 담았다.
찌든때를 지우는데 쓰는 독한 약품을 들고 바닥에 뿌리고 걸레질을 했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약품을 뿌려놓고 시간을 조금 보내다가 다시 걸레질을 한다. 그렇게 계속 반복한다. 몸 전체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것저것 묻어있던 테이블도 싹 닦아내고 담배연기와 세월로 인해 노랗게 되어버린 냉장고도 닦았다. 가득차 있던 쓰레기 통도 비워내고 군데군데 쌓여있던 쓰레기도 전부 정리 했다.

어느정도 끝 마치고 난 뒤의 광경을 보는 것은 기분이 좋지만 어딘가 눅눅한 기분이 되어버렸다.
담배를 피우고 음악을 틀었다. 그리고 차가운 물을 두컵 마셨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수건으로 물기를 대강 닦아내고 선풍기 앞에 서서 나머지 물기를 말렸다.

간단한 몇가지 볼일이 있어 시내로 나갔다. 여전히 덥다. 여름의 마지막을 악착같이 잡아 뜯어데는 듯한 매미소리와 귀에서 들리는 차갑고 부드러운 음악과, 한때는 선명한 네이비 블루였던 카메라 가방과 무거운 F6를 옭아매듯 거리를 걸었다.

가는 길에 항상 보이던 카우보이 마네킹이 사라졌다.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부서지기 시작해서 왼손에 붙어있던 손가락 4개가 사라지고 얼굴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고 나중엔 혼자 똑바로 설수도 없어서 끈으로 몸통을 파이프에 묶어놨던, 그 카우보이 아저씨 이다. 웃는듯 울고 우는듯 웃는 그 아저씨였다. 결국은 사라졌다. 그 사라진 자리에서 1분 정도 그 빈공간을 응시하며 가만히 서 있었다.

인화지를 샀다.
또 가격이 올랐다.

돌아오는 길에 반가운 사람을 만났고,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우체국에 들려 보낼 것을 보냈다. 이전부터 봐왔던 익숙한 우체국 직원의 모습이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싸그리 물갈이라도 된걸까, 익숙하지 않다.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슈퍼에서 담배를 한갑 샀다. 계단을 올라와 작업실의 검은 문을 열고 차가운 물을 한컵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무척 졸음이 왔지만, 잘 수 없었다.
익숙한 것은 담배만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매우 목이 말랐다.

날씨가 좋더라.

그래서, 괜히 서럽더라.
하지만 이렇게 서러운것도 잠시일 뿐.
땀이 흘러 옷을 검게 적시고 끈적거리는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흐르는 시간을
슬그머니 목을 조르듯 흘려보내고 있을때.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나면 그나마 좀 괜찮아 진다. 발가벗은체로 선풍기 앞에서 미지근한 바람과 마주하면 나름 시원해진다. 제법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이렇게 기분 좋은것도 잠시일 뿐.
기실 변한건 아무것도 없다.
변한것이라곤 30분의 시간이 사라졌다는 것 뿐이다.

기린을 보고 싶다.

새삼 느끼는 것 이지만.

세계라는 것은

그 사람을 구성하는 것으로 이루어 진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하나마나한 세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말이다.

이것이 나에겐 희망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끔은 절망스럽게
느껴질때가 있다. 그리고 피곤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물론 그렇게 느껴질때마다 난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여름과 겨울은 달라서 나에겐 여름이 좋게 느껴진다. 바흐와 헨델은 달라서 나에겐 바흐가 좋게 느껴진다. 조용함과 시끄러움은 달라서 나에겐 조용함이 좋게 느껴진다.

한편으론
해와 달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해바라기와 안개꽃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사진과 음악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낮과 밤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맑은날과 비오는 날은 달라서 나에겐 좋게 느껴진다.

창세기에 이런 말이 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해서 빛이 생긴 이후, 천지를 창조하는 일을 모두 끝낸 후 그는 이렇게 말 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좋아 보이더라\’

10일. 밤 10시.

2006년 7월 10일. 밤 10시.
서울 동쪽 약 80Km 부근 육상.

3호 태풍 위니아 소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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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제 핸드폰의 문자 메세지로 알려주셨습니다.
위니아가 아니라, 에위니아, 태풍의 신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익명의 제보자께 감사합니다.

그렇다.

경멸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 니체

無無. 無

이미 알고 있는거다.
이미 겪었던 일이다.

딱히 슬퍼할 여력같은 사치도 부리지 못한다.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사실 아무것도 난 모른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다지 다르지 않다.

여름의 일본이라는 것을 가보고 싶어졌다.
간다 한들 아무것도 없겠지만.

딱히 마쯔리 라던가 흔해빠진 부채를 들고 있는
유타카 아가씨라던가 그런걸 보고 싶다기 보다는.

그렇게 아무도 날 기다리지 않는 거리라는 곳에서의
혼자 여름을 \’걷고싶다\’라는 느낌이다.
미치도록 더운 도쿄의 어딘가에 있던 몇평 안되는 놀이터에
목을 땅에 쳐박아놓고 죽어있는 기린동상과 그 뒤에 있던 매정한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그렇게 정지된 듯한 그곳을.
매미는 죽을려고 악을 쓰는것 처럼 울고 있는 그 거리를.

물론, 오다이바 따위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결국. 어느 곳이든, 날 기다리는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겠지.

어쩌면. 난,
절대적으로 날 기다려주는
그 무엇을 원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절대적\’으로 말이다.
그렇게 절대적으로 날 기다려주는
그렇게 날 맞이해주는
그 무엇 말이다.

사진따위가 아닌.

아마. 내가 이런 소리를 지껄이는 것은
조금은 지쳤기 때문이 아닐까,
혹은 아까 마신 술때문이 아닐까 라고 자위한다.

그래서 아주 약간은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붉은 밤, 홀로 암실에서 프린트를 하는것도,
길을 걷는것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누군가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여름의 시작

새로 들어온 렌즈에 대한 화각 적응과 렌즈의 특성을 몸에 새겨넣기 위해 거의 붙박이 처럼 마운트 되었던 105mm Micro 렌즈를 분리시키고 한달 하고도 2주일 만에 45mm렌즈를 마운트 시켰다.

그리고 파인더를 마주하는 순간, 아득한 진공감이 느껴진다.
일종의 현기증 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굉장히 그립지만 어느 구석엔가 항상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슬픈, 바로 그 느낌이다. 50mm가 아닌, 하필 왜 45mm를 난 마운트 하였던 것인가.

그리고 한컷을 찍고, 걷고 버스를 타고 음악을 듣고 내려서 또 한컷을 찍고
그렇게 토해내듯 한컷씩 찍어갈때마다 무엇인가를 비워나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무거워짐을 느낀다.

지긋지긋하던 봄은 이제 끝나고, 여름이 시작되었다.
척추 속에 박혀있는 얼음 알갱이들은 그딴건 상관없다는듯 여전히
날 차갑게 만든다.

Some times feel so happy. Some times feel so sad.

달짝지근하게 I\’m not going anyway. 라고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 날짜의 소인이 찍힌것 일 뿐이다.

그나저나 돈도 없는놈이 담배를 계속 피워서야..
이놈의 담배 끊어야 할텐데 말이다..

Some times feel so happy.
Some times feel so sad.

쪽이 나에겐 훨씬 더 호소력이 있다.

돌아오는길.

작업실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언덕을 내려와 걸어가던 길 옆에 조그만 슈퍼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다큰 잡종 고양이 한마리가 서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왼쪽어깨엔 낡아빠진 카메라 가방을 오른쪽 어깨엔 카메라가 걸려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 고양이를 찍고 싶었다. 다섯 발치 정도 거리에서 자세를 낮췄다. 어떤 고양이 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먼저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 다가가도 도망가거나 하지 않는다.
좀더 자세를 낮추어 바닥에 주저앉듯 더 자세를 낮추고 붙어 있던 105mm Micro 렌즈의 화각에 알맞도록 프레이밍을 했다.

신속하게 노출을 맞추는 것과 동시에 초점을 정확하게 잡는다. 고양이의 흰색털은
존6 1/2정도로 노란털은 존 4 1/2정도 떨어졌다. 아스팔트의 그림자는 존 3 1/2 정도로 되었다. 필시 아름다운 톤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모든게 순간 결정남과 동시에 한번의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그 뒤엔 필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듯 필름을 더 이상 감아내지 않았다. 필름 카운터에선 End가 뜨고 있다. 그 순간 지체할 것 없이 손이 자동적으로 카메라 가방에 있던 필름을 꺼내려 한다.

그때 고양이는 나에게 다가온다. 발소리도 내지 않은체 조용히. 살짝 경계를 하지만 녀석은 이미 알고 있다. 내가 녀석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그 순간 이런 아무 의미도 없는 다가옴이 나의 손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리고 다가오는 녀석에게 나의 손을 맡겼다. 목을 손에 부비고 얼굴을 손에 부빈다. 그러자 녀석은 바닥에 아에 주저앉아버렸다. 난 녀석의 목을 머리를 몸을 쓰다듬어 주었다. 조그만 울음소리 조차 내지 않는다.

기분이 좋은것인지 아닌 것인지 알 수 없다. 녀석은 아무 소리 없이 그렇게 아스팔트 위에 누워있다. 녀석이 기분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표정밖에 없다. 하지만 고양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얼굴표정으론 알 수 없는 생물이다. 가까이서 얼굴을 자세히 보니 양쪽 눈에는 서로 크기가 다른 눈꼽이 끼어있었다. 때주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진 않았다.

2분의 시간 동안 필름을 꺼낼지 그냥 계속 이렇게 있을지를 생각했었다. 이것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면 흐름이 깨질것 같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흐름을 느끼면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말 없이 고양이와 나와 말 없이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난 필름 생각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내 귀에 걸쳐진 헤드폰에서는 계속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어떤 음악이었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다가 어떤 외국인이 지나가면서 같이 앉아 고양이를 만졌다. 난 말 없이 그 사람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고 그 사람도 나에게 목례를 했다.

20초 정도 그렇게 있다가 그 외국인은 잘 들리지 않는 말로 뭐라고 말하더니
일어서서 다시 자신의 갈길을 가려 한다.

그때 헤드폰을 벗었다. 고양이는 그 사람을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난 가진게 없어. 아무것도 없다니까\’ 라고 말을 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길을 재촉한다.

40초 정도 그 광경을 멍하게 보고 있다가, 그제서야 정신 차린듯 카메라에 있던 필름을 천천히 빼고 새 필름을 천천히 넣어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과 고양이가 함께 사라진 길목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당연히 그 외국인도 고양이도 없다.

그 자리엔 조그만 꼬마 4명이 무엇인가를 하면서 놀고 있었다. 줄넘기를 하고 있었던가, 롤러브레이드를 타고 있었던가 혹은 그냥 축구공만 팅팅 퉁기던 것이었던가.

어쩐지 입안이 건조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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