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기색도 없이 밤을 꼴깍 새버리고 햇볕이 느릿느릿 들어오는 오전 10시 즈음 되어서야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늘어뜨리며, 검은 비닐봉지에 샴푸며 린스며 면도기 면도크림과 치약 칫솔을 챙겨서 목욕탕엘 나섰다.
나름대로 옷을 챙겨입었지만, 햇볕이 그리 멀쩡하게 보이는데도 오전의 바람은 추웠다. 부들부들 떨며 항상 가던 목욕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목욕합니다\”라는 표지판이 길가에 멀쩡하게 서있는데도 문은 굳게 닫겨 있다. 밤샘을 한 탓인지 순간 심장 부근까지 욕지거리가 올라오는 느낌이 느껴졌다. 날씨가 너무 춥다. 투덜거리며 평소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목욕탕으로 몇발짝 더 움직여 들어갔다. 목욕값이 올랐다. 별 수 없다. 다들 물가가 오르고 월급이 오르고 그래서 또 물가가 오른다. 내가 불평해봐야 소용 없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가볍게 샤워를 한 후에 밤 동안 얼어있던 몸을 뜨거운 탕속에 노골노골 녹여갔다. 몸 구석구석까지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다. 이내 긴강감이 풀리며 목욕탕 오던 길에 억한 심정이 완전히 누그러들었다. 어찌 되었던 여기라도 열려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뼈속까지 들어찼던 냉기를 뽑아내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 없던 평일 오전날의 탕속에서 얼굴을 천장으로 향한체 몸 전체를 물위에 둥둥 띄웠다. 천장엔 탕의 습기와 천장의 낮은 온도 덕분에 언제나 그렇듯 목욕탕 특유의 이슬이 맺혀있다. 멍하게 그 이슬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천히 쉼호흡을 해본다.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배를 넣고, 다시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배를 부풀린다. 조금씩 뼛속에 박혀있던 얼음조각들이 녹는다.
충분히 긴장을 풀어내곤 욕탕 유리문 입구에 있는 식수대로 가서 물컵 한잔을 가득 채운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첫 모금이 들어가는 순간에 아릿하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마비에 가까운 무감의 쾌락이 녹녹하게 종이처럼 풀어진 내 몸 전체를 다시 고양 시킨다. 다시 2/3쯤 물을 받아서 마신다. 이번엔 목 뒷덜미에서 부터 백혈의 중앙까지 타고 올라오는 현기증이 오면서, 마치 피안의 세계로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거기엔 아무런 고통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없으며 정신의 방향성과 주체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마비감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3초 이상 버티질 못한다. 아마 이런 종류의 \’육체적\’ 감각이 생기는 원리는 대강 예상하고 있다. 뜨거운 온도로 인해서 혈압이 높아진 상태일때 순간 차가운 기운이 들어가면 혈관이 순간 수축되면서 오는 혈류의 흐름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뇌에까지 당연히 영향을 줄 것이다. 아마 그러한 과정에서 오는 어떤 종류의 고통과 비슷한 쾌감 혹은 쾌락과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예전 부터 생각했었던 것이지만, 고통과 쾌락은 그다지 다를바가 없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난 가끔 정상위로 섹스 할때 여자의 얼굴을 빤히 보는 경우가 있다. 몸은 관성에 의해 계속 움직이지만 나의 시선은 여자의 얼굴과 동작에 고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산고의 고통스러움으로 찌그러지는 얼굴과 섹스의 쾌락에서 오는 찌그러진 얼굴을 난 전혀 분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분위기랄까, 리듬 같은종류의 것이 깨진다는 걸 알면서도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 괴로워? \’ 진심으로 염려가 되는 마음으로 물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몇 십명 중 단 한명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상황 때문에 사실은 진짜 괴로워도 나를 염려하고 배려 하는 마음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짜 괴롭지 않은 것인진 나도 알 수 없다. 단지 그 대답을 믿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물을 마시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다시 뜨거운 탕속에 들어가 몸을 녹여낸다. 그리고 아까 처럼 다시 몸 전체를 물 위에 띄우고 이슬이 덕지덕지 뭍어있던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몸에 열기가 돌기 시작하고 심장의 박동을 천천히 즐긴다. 머리가 잠시 멍해진 탓에, 너무나도 차가운 냉탕에 코와 귀를 막고 머리만 담군다. 물 마실때와는 다른 종류의 냉랭함 혹은 냉정함이 다시 내 몸에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아서 매번 할때마다 기분이 기묘해진다. 하지만 이건 목욕탕에 보내는 전체 시간 중에서 딱 한번한 한다. 두번 이상 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어째서 그렇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듯 하다. 마음속 어떤 저항감의 감촉이 양모처럼 넘실대는 그런 종류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또 다시, 온탕에 들어간다.
이번엔 천천히 발 끝 부터 가슴팍 까지 들어간다. 몸뚱아리는 뜨겁고 머리는 차가운 상태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이상적인 기분 상태가 된다. 겉으론 완전 무표정으로 보일런진 모르겠지만 속으론 제법 지극히 자연스러운 흥겨움이 든적도 있다. 그렇게 몸 전체를 미끌어 지듯 시간을 두고 물속에 완전히 집어 넣는다. 아까의 차가웠던 머리의 바깥은 뜨거워지고 있지만 뇌 중앙의 어떤 종류의 차가운 덩어리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가 난 기분이 최고로 좋다. 그리곤 다시 몸을 천천히 물위에 다시 띄운다.
그런데 갑자기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순간 호흡하기가 무척 곤란해지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따뜻한 양수에 떠 있는 이미 죽어버린 아기가 이런 느낌일까, 라고 난 생각한다.
천천히 탕 바깥으로 걸어나와 쉐이빙 젤을 손바닥에 짜내고 비벼서 거품을 만들고 매우 주의깊고 세심하게 시간을 들여 수염을 깎아낸다. 샴푸로 나의 긴 머리를 감기고 한번 행궈낸 후에 평소에 항상 애용하던 도브 린스로 마무리를 한다. 간만에 목욕탕에 왔기 때문에 때 미는 것도 소홀 할 수 없다. 난 소위 이태리 타올로 때 미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내가 때를 밀때 쓰는 도구는 나의 왼손가락과 오른손가락이다. 시커먼 때가 나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하얀 세포주검들만 밀려 나온다. 마무리로 샤워를 하고 도구를 검은 비닐봉지에 다시 주섬주섬 챙겨넣고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고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섰다.
아까 느꼈던 양수의 감촉이 온 몸에 미끌미끌하게 남아있다. 그 느낌은 목뒷덜미 쪽에서 시작해서 몸 전체로 퍼져있다.
터벅 터벅 작업실로 돌아오니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었다.
충분히 시간을 기다려도 답신이 없는 이에게, 나 나름대로 3번 넘게 신중히 생각 한 후에 나의 감정을 되도록 단순화 시킨 문장을 만들어 핸드폰 문자로 전송했다. 그리고 냉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침대에 전기장판을 올리고 부들부들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쌩뚱맞는 소리라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서랍에 넣어두게 되어져버린 시가의 용도는 결정 되었다. 금연기념으로 피울 것이다. 남아 있던 담배는 모조리 피워없애고 마지막으로 나의 금연을 기념하게 위해 쿠바산 시가를 태우겠다고 눈을 감은체 냉기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