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어째서, 그렇게 되어버리고 만 것일까.

나의 얼굴에 미소가 맺혀 있다.

어떤 표정인지, 어떤 질감인지, 어떤 모습인지 난 전혀 느낄 수도 가늠 할 수도 없다.

.

넌 참.. 원시생물 같은 녀석이군.

하고 그는 말했다.

난 기분이 좋았다.

칼 짜이스에서 나온 Nikon F 마운트용 렌즈 이미지 샘플.

출처 – http://www.zeiss.de/C12567A8003B58B9/ContentsWWWIntern/720D91333A3B82E1C12570F9003EE864
마운트 되어 있는 렌즈는 85mm/f1.4

생긴걸로 봐선, 나오기 힘들꺼라 생각했던 비오곤 시리즈도 나올듯,
그렇다면 디스타곤, 비오곤, 플라나가 나온다는 것은 거의 확정이고.
테사가 나올지 안나올지가 의문.

아마 두근거리는 사람 많을듯.

한가지 고무적인건 이번 ZF마운트 정식 발표에 따라서 일본내 니콘 카메라의 중고 가격이 소폭 상승했다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재미 있는건 NF마운트 렌즈 소개용 카메라가 F6라는 것인데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한편으론 \’이러한 시대\’에 있어서 고무적이랄까…

이제 Nikon에서는 SLR용 MF렌즈의 생산을 종료후, 그 뒤를 칼을 쥐어짜는 듯한 샤프함과 명료함을 가진 렌즈의 라인업이 나왔으니, 이것 또한 재미 있는 일.

아마 수년 전 부터 계획이 되어 있었던 일 이었을까…

한가지 궁금한건 ZF마운트용 렌즈는 전부 MF방식인데(당연하게도) Nikkor 45mm P 렌즈처럼 안에 내장 CPU가 들어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잠 온다.

몇가지 서류를 끝내고,

이제 프린트 시작이다..

내가 얼마나 견디어 낼 수 있는지, 나 스스로 조차 짐작하기 어렵다.

암실로 들어가기 직전, 지금 나의 마음은 많이 무겁다.

술이 맛이 없다.

한참을 쓰다 지우고 쓰다 지우다 이젠 지쳤다.

어쩌면 난 이 말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주절주절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실상 그 어떤것도 구원에 다다를 길은 없으며, 그 구원의 끝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마지막 끝에 있음을. 때문에 어쩌면 구원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환상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언제나 혼자이며, 잠시 동안 하나 됨을 느끼는 찰나의 순간이 정말 존재 하기도 하겠지만, 난 그것을 믿지 않는다. 영원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저 만큼 쓰고 나서 한참을 있다, 다시 보니 웃기는 소리다.
하지만, 잠시 1 시간 동안이나마 7년 넘게 사라졌던 내부의 어떤 감각기관이 찌릿찌릿하며 다시 살아날려고 했었던, 그리고 지금은 다시 완전히 죽어버린 나의 그 감각 기관에 대한 위로의 글이라 생각하고, 더 이상 글을 다시 지우고 쓰는 일은 여기 까지만 하기로 한다.

어짜피, 나의 업보이자 남자의 업보. 또한 나의 삶에 대한 댓가. 정도로 생각하고 싶다. 더 이상 놔두었다간 상당히 힘들 것이라는 예감을 강하게 느낀다. 그런 것 또한 내가 감내해야 할 것일게다.

술이 맛이 없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

아마도 혹은 결코 외로움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어디로 가더라도 무슨 생각을 하더라도 어떤 행동을 하더라도, 부메랑 처럼 다시 제자리로 돌아 오고야 마는 것이다.

때문에 외로워 할 필요도, 가슴 아파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단지 순순히 그것을 이해 하고 받아 들이면 될 일이다. 어떤 의미부여도 시간의 흐름도, 마치 그것은 테이블의 왼쪽 끝에 있던 우유곽이 오른쪽 끝으로 위치가 바뀌어지는 것 뿐 일 것이다. 물건 자체는 아무런 변화가 없으며 단지 그 물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그 자체 혹은 순수성 만이 무기질 처럼 있을 뿐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것이 \’실존\’하고 있는지 아닌지 조차 난 알 수 없다.

때문에 비통해 할 것도, 슬퍼 할 것도 없다. 그저 묵묵히 보는 것이다. 무엇인가 의미를 부여 한다는 것은 그것을 소유함에 다름이 아니다. 무엇에 의미를 부여 함으로써 그것은 자신만의 소유물이 되어버린다. 공통된 기호를 사용 하고 있지만, 실은 껍질만 그럴뿐 각자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정확히 겹쳐 질수도 붙일 수도 없다. 무엇과 무엇이 서로 통한 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단지 우리는 열심히 오해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왜 그 사람은 날 이해하지 못하는거죠? 라고 소란을 떨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혹은 어째서 그 사람은 나에게 그렇게 할 수 있는 거죠? 라며 분노하거나 가슴 아파 할 수도 있다. 자신만이 알고있는 소유물에 공용의 레테르를 붙임으로 인해서, 언제나 사람들은 마음 아파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해, 소통 이라고 불리우는 것은 과연 가능 한 것인가.
서로 언어가 다르지만 한자어는 통하는 아시아권 캐릭터가 나오는 시시한 영화조각 한편을 보던 중에 \’이해\’ 라고 어설프게 쓴 한자어를 보며, 난 어째서 심장의 피가 터져버려 역류하는 듯한 눈물을 흘려야만 하는 것 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마음을 가다잡으며 희망을 버리려 하지 않고 있다. 무심해 보이는 사소함 속에 \’그 무엇\’ 인가가 있을 것이라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고, 저편 넘어 그 어떤 것은 틀림없이 존재 하고 있을 것이라고 난 믿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난 숨쉬는 것 조차도 너무나도 힘들 것이다. 온기를 믿으며 사랑을 믿는다. 이러한 것 마져도 오해라는 것을 난 감지 하고 있지만, 실로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라고 난 믿고 싶다. 이 세상이 생성되고 이루어지고 움직일 수 있는 이치는 사랑일 것이다. 라고 난 믿고 있다.

지독스러울 만치 잔인한 고독과 외로움이 내 살과 피와 뼈를 먹어치운다 할 지라도, 오해의 파편들로 인해서 내가 짖겨 찢어진다 할 지라도, 난 내가 사랑 하는 것을 사랑하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한 댓가는 어쩌면 외로움과 고독일 수도 있겠다. 그 댓가를 통해서 난 어쩌면 자유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자유는 또 다시 외로움과 고독을 불러 올 것이다.

어쩌면 삶에 대한 집착이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춥고 슬프고 외롭다.
진득하게 술에 취해 토악질 하며 주정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해바라기

걷고, 춥고, 메마르고, 따스한 높고 낮은 바다를 보고
이미 주머니에 식어버린 캔커피를 홀짝 거리면서
바람을 가득 품고, 폐속에 있던 먼지를 조금 털어주고

버스 타고 돌아오는 길에 서점엘 들려 책 한권 사려 했지만 찾던 책은 모조리 재고가 없었다. 그리고 외견상으론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는 무엇인가를 샀다.

저녁을 먹고 영화를 30분인가 보다가 끈 후에 사진을 보고 다시 거리로 나와 추운 바람속에서 중간중간 실수가 잦은 5인조 브라스밴드의 성금함 앞에 지갑속에 있던 전재산 천원을 넣고 항상 가던 곳에서 커피를 얻어마시고 폐점 시간이 되어 돌아왔다.

오늘 하루 동안 4롤 정도 사진을 찍었다.

딱히 외롭다던지 하진 않다.
단지 해가 떨어진 후가 너무 추웠을 뿐이다.
어딜가더라도 나에겐 다르지 않다. 어디로 발걸음을 옮긴다고 한들 그곳은 나에게 있어서 호소하는 것이 없다. 그저 저마다의 상태로 길거리를 걸어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무엇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 정직하게 알 수 없는 수많은 가계들과 노골적인 가계들, 주머니엔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은 순수한 36컷의 필름 두롤과 이미 담겨진 4롤의 필름. 그리고 카메라가 있을 뿐이다.

딱히 외롭다던가 하진 않다.
단지 추웠을 뿐이다.

초겨울, 항상 지나가던 골목길에 피어있던 해바라기가 죽어 사라졌던게 생각났다.
당연하다 겨울이니까 말이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카메라는..

찍어야 할 혹은 찍고 싶은것이 있는 바로 그때
당신 손에 쥐어진 바로 그 카메라 이다.

괴로워?

아무런 기색도 없이 밤을 꼴깍 새버리고 햇볕이 느릿느릿 들어오는 오전 10시 즈음 되어서야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늘어뜨리며, 검은 비닐봉지에 샴푸며 린스며 면도기 면도크림과 치약 칫솔을 챙겨서 목욕탕엘 나섰다.

나름대로 옷을 챙겨입었지만, 햇볕이 그리 멀쩡하게 보이는데도 오전의 바람은 추웠다. 부들부들 떨며 항상 가던 목욕탕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목욕합니다\”라는 표지판이 길가에 멀쩡하게 서있는데도 문은 굳게 닫겨 있다. 밤샘을 한 탓인지 순간 심장 부근까지 욕지거리가 올라오는 느낌이 느껴졌다. 날씨가 너무 춥다. 투덜거리며 평소엔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목욕탕으로 몇발짝 더 움직여 들어갔다. 목욕값이 올랐다. 별 수 없다. 다들 물가가 오르고 월급이 오르고 그래서 또 물가가 오른다. 내가 불평해봐야 소용 없다.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가볍게 샤워를 한 후에 밤 동안 얼어있던 몸을 뜨거운 탕속에 노골노골 녹여갔다. 몸 구석구석까지 따뜻한 온기가 스며든다. 이내 긴강감이 풀리며 목욕탕 오던 길에 억한 심정이 완전히 누그러들었다. 어찌 되었던 여기라도 열려있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이다.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뼈속까지 들어찼던 냉기를 뽑아내고 싶은 마음에 사람이 없던 평일 오전날의 탕속에서 얼굴을 천장으로 향한체 몸 전체를 물위에 둥둥 띄웠다. 천장엔 탕의 습기와 천장의 낮은 온도 덕분에 언제나 그렇듯 목욕탕 특유의 이슬이 맺혀있다. 멍하게 그 이슬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천천히 쉼호흡을 해본다.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서 배를 넣고, 다시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배를 부풀린다. 조금씩 뼛속에 박혀있던 얼음조각들이 녹는다.

충분히 긴장을 풀어내곤 욕탕 유리문 입구에 있는 식수대로 가서 물컵 한잔을 가득 채운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첫 모금이 들어가는 순간에 아릿하면서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마비에 가까운 무감의 쾌락이 녹녹하게 종이처럼 풀어진 내 몸 전체를 다시 고양 시킨다. 다시 2/3쯤 물을 받아서 마신다. 이번엔 목 뒷덜미에서 부터 백혈의 중앙까지 타고 올라오는 현기증이 오면서, 마치 피안의 세계로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거기엔 아무런 고통도 없고 아무런 생각도 없으며 정신의 방향성과 주체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의 마비감에 가깝다. 하지만 그것도 고작 3초 이상 버티질 못한다. 아마 이런 종류의 \’육체적\’ 감각이 생기는 원리는 대강 예상하고 있다. 뜨거운 온도로 인해서 혈압이 높아진 상태일때 순간 차가운 기운이 들어가면 혈관이 순간 수축되면서 오는 혈류의 흐름이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뇌에까지 당연히 영향을 줄 것이다. 아마 그러한 과정에서 오는 어떤 종류의 고통과 비슷한 쾌감 혹은 쾌락과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예전 부터 생각했었던 것이지만, 고통과 쾌락은 그다지 다를바가 없는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난 가끔 정상위로 섹스 할때 여자의 얼굴을 빤히 보는 경우가 있다. 몸은 관성에 의해 계속 움직이지만 나의 시선은 여자의 얼굴과 동작에 고정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산고의 고통스러움으로 찌그러지는 얼굴과 섹스의 쾌락에서 오는 찌그러진 얼굴을 난 전혀 분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분위기랄까, 리듬 같은종류의 것이 깨진다는 걸 알면서도 바보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 괴로워? \’ 진심으로 염려가 되는 마음으로 물어 보는 것이다. 하지만 몇 십명 중 단 한명도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상황 때문에 사실은 진짜 괴로워도 나를 염려하고 배려 하는 마음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진짜 괴롭지 않은 것인진 나도 알 수 없다. 단지 그 대답을 믿는 것 외엔 방도가 없다.

물을 마시면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자니 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한다. 다시 뜨거운 탕속에 들어가 몸을 녹여낸다. 그리고 아까 처럼 다시 몸 전체를 물 위에 띄우고 이슬이 덕지덕지 뭍어있던 천장을 멍하게 바라보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다시 몸에 열기가 돌기 시작하고 심장의 박동을 천천히 즐긴다. 머리가 잠시 멍해진 탓에, 너무나도 차가운 냉탕에 코와 귀를 막고 머리만 담군다. 물 마실때와는 다른 종류의 냉랭함 혹은 냉정함이 다시 내 몸에 흘러들어오는 것만 같아서 매번 할때마다 기분이 기묘해진다. 하지만 이건 목욕탕에 보내는 전체 시간 중에서 딱 한번한 한다. 두번 이상 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어째서 그렇게 된건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어버린 것인듯 하다. 마음속 어떤 저항감의 감촉이 양모처럼 넘실대는 그런 종류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곤 또 다시, 온탕에 들어간다.
이번엔 천천히 발 끝 부터 가슴팍 까지 들어간다. 몸뚱아리는 뜨겁고 머리는 차가운 상태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상당히 이상적인 기분 상태가 된다. 겉으론 완전 무표정으로 보일런진 모르겠지만 속으론 제법 지극히 자연스러운 흥겨움이 든적도 있다. 그렇게 몸 전체를 미끌어 지듯 시간을 두고 물속에 완전히 집어 넣는다. 아까의 차가웠던 머리의 바깥은 뜨거워지고 있지만 뇌 중앙의 어떤 종류의 차가운 덩어리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그때가 난 기분이 최고로 좋다. 그리곤 다시 몸을 천천히 물위에 다시 띄운다.

그런데 갑자기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 든다. 순간 호흡하기가 무척 곤란해지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치 따뜻한 양수에 떠 있는 이미 죽어버린 아기가 이런 느낌일까, 라고 난 생각한다.

천천히 탕 바깥으로 걸어나와 쉐이빙 젤을 손바닥에 짜내고 비벼서 거품을 만들고 매우 주의깊고 세심하게 시간을 들여 수염을 깎아낸다. 샴푸로 나의 긴 머리를 감기고 한번 행궈낸 후에 평소에 항상 애용하던 도브 린스로 마무리를 한다. 간만에 목욕탕에 왔기 때문에 때 미는 것도 소홀 할 수 없다. 난 소위 이태리 타올로 때 미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내가 때를 밀때 쓰는 도구는 나의 왼손가락과 오른손가락이다. 시커먼 때가 나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하얀 세포주검들만 밀려 나온다. 마무리로 샤워를 하고 도구를 검은 비닐봉지에 다시 주섬주섬 챙겨넣고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고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섰다.

아까 느꼈던 양수의 감촉이 온 몸에 미끌미끌하게 남아있다. 그 느낌은 목뒷덜미 쪽에서 시작해서 몸 전체로 퍼져있다.

터벅 터벅 작업실로 돌아오니 시간은 12시가 조금 넘었다.
충분히 시간을 기다려도 답신이 없는 이에게, 나 나름대로 3번 넘게 신중히 생각 한 후에 나의 감정을 되도록 단순화 시킨 문장을 만들어 핸드폰 문자로 전송했다. 그리고 냉기가 그대로 남아 있는 침대에 전기장판을 올리고 부들부들 몸을 떨며 눈을 감았다.

너무나도 쌩뚱맞는 소리라고 생각할진 모르겠지만, 서랍에 넣어두게 되어져버린  시가의 용도는 결정 되었다. 금연기념으로 피울 것이다. 남아 있던 담배는 모조리 피워없애고 마지막으로 나의 금연을 기념하게 위해 쿠바산 시가를 태우겠다고 눈을 감은체 냉기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감았다.

분열

무엇이 어떤식으로 되어버린건진 알 순 없지만 내안에 있던 무엇인가가 변했다. 어떤 감촉이라던가 형태를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무엇인가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진 알 순 없다.

한가지 느낄 수 있는 것은 슬프다는 것이다. 요 몇일간 나를 미지근하게 발적적으로 괴롭히던 우울증의 원인도 알게 되었다. 무작정 카메라 가방을 울러매고 어디론가 가고싶다고 생각했지만, 어딜 가더라도 어디에도 닿을 수 없다. 그런건 이미 알고 있다. 긴 밤의 형광등 불빛속에서 가느다란 안광만이 괴물의 눈알을 햛듯 움직일 뿐이다.

정체모를 분노를 내 손바닥 위에 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는 것. 글렌굴드도 이럴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어제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날 괴롭히는 두통이 그쳤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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