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감사합니다

수업을 마치고, 다소 출출한것 같아서 수강생들과 함께 40계단 밑에 있는 분식점엘 갔다. 간단히 순대라도 한접시 먹으면서 속을 달랠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주문을 하고 있다 갑자기 핸드폰의 전화벨이 울린다.

반가운 목소리.
남포동 나온김에 작업실에 들렸다는 내용이다. 그래서 분식집으로 내려오시라는 말을 하고 기다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왠 녹차통 같은걸 스윽 내민다.

와아, 결국 구입하셨군요? 앞으로 라이트 박스에 필름 보는 재미가 더더욱 쏠쏠하겠군요. 라고 말하며 녹차통 같이 생긴 슈나이더 루뻬의 박스를 봤었다. 한번 구경해도 될까요? 라고 말하며 박스를 건네받으며 두껑을 열려고 하는 순간, 난 귀를 의심했어야 했다.

\”선물입니다.\”
\”네?\”
\”선물입니다.\”
\”네? 선물이라구요?\”
\”네. 선물입니다.\”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어찌 말을 못하다가, 겨우 정말입니까? 라고 물을 수 밖에 없었다. 실은 최근 몇년 동안 사용했던 루뻬가 망가져 부셔졌었던 것 이었다.

\”어짜피 작업실 사람들 다 같이 쓰는거고, 저도 쓰는거고 하니까…\” 라고 말하며 그 특유의 나는 도저히 따라하기 힘든 웃음을 지었다.

미안스럽고, 고맙고 따스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비록 사소한 것일런진 모르겠지만, 내 팔자에 슈나이더 루뻬를 쓸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런식으로도 되는건가 보다. 확실히 눈이 시원하고 사진의 구석구석까지 디테일 하게 보이면서도 왜곡으로 인한 눈의 거슬림이 없다. 1년 정도 목욕을 안하고 때가 피부에 쌓여있다가 목욕탕에 가서 말끔하게 싹 밀어버린 기분이다.

그다지 말주변이 없어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마음을 잘 전달하지 못했던 것이 왠지 아쉬웠다.

감사합니다.

토하고 싶을정도로 울컥거리는 밤.

날카로운 렌즈를 하나 샀다. 그리고 수일 후에 카메라도 새로 왔다.
그래서 지금껏 나두었던 수염을 깎았다.
날카로운 렌즈에 비해 포커스링의 텐션은 어딘가 무르다. 바늘하나 정도 굵기의 딸각딸각거림이 느껴진다. 몇일 동안 그 날카로운 렌즈에 익숙해지고 조금씩 동화되어가기 시작할 때 즈음, 불현듯 7~8년 전 즈음의 일들이 영문도 모른체 휩싸여 지나갔다.

밤이 되어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에 아는 동생놈 집에 잠시 들렀다. 잠시 시간을 보내다 돌아갈 채비를 하려 할때 방 한쪽 구석에 커다란 주방용 식칼이 반짝거린다. 어딘가 날이 뭉툭하게 망가져있지만, 어떠한 용도에 따라선 소위 칼의 용도로는 쓸수 있을것 같다. 몇컷을 찍다가 물어봤다. 이게 왜 여기에 있느냐? 도둑이라도 들어오면 찌를려구? 하지만 대답은 그리 시원치 못하다. 그냥 어영부영 넘어가는 느낌이다. 동생놈은 해병대 출신인데 잘은 모르지만 나름대로 칼 휘두르는 법은 알고 있을게다.

그렇게 수십컷을 계속 찍다보니, 그 뭉퉁한 칼날이 심장에 꽂히는 느낌이 든다. 꾸욱 참고, 숨을 멈춘체 계속 찍는다. 거의 한계점에 가까이 온듯한 느낌이 들었을때 아무말 없이 마지막 한컷을 찍어내고 겨우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 캔커피를 하나 마시고, 담배를 3개피 태웠다. 귓구멍에 울려 퍼지는 노래를 계속 들다보니 금방이라도 토할것만 같았다. 중간에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작업실로 돌아와 다시 담배를 한가치 태우며 스스로에 묻는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어째서 이런 느낌을 내가 느껴야만 하는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온몸을 비틀어재끼며 생각을 해봤자, 당장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울컥 거림의 정체를 언젠가, 기필코 정확하고 냉정하게 내 손에 움켜쥘 수 있게 된다면, 그렇다면 좀 편해질까….

날카로운 렌즈는 너무나도 날카롭다.

오늘 밤은
왠지 잠들기 힘들것 같다.

동의하지 못함. 한가지만 빼고.

카메라가 신의눈을 대신해 온 것일까?
종교의 쇠퇴는 사진의 발흥과 일치한다.
자본주의 문화는 신을 사진 속에 끼워넣어 왔던 것일까? 카메라는 우리에게서 기억이라는 부담을 덜어 주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신처럼우리를 꼼꼼하게 살피며,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대신하여 꼼꼼하게 다른 것들을 살펴주게 된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 어떠신 신도 그토록 냉소적인 적은 없었는데,
그 까닭은 카메라는 잊기 위해 기록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 본다는 것의 의미 中  – 존 버거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

가져온 글입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 스티브 잡스, 스탠포드대 졸업식 축사. 2005년 6월12일.

오늘 나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대학의 한 곳을 졸업하면서 새 출발을 하는 여러분들과 함께하는 영광을 가졌습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번이 내가 대학졸업식이라는 데 가장 가까이 다가간 경우입니다. 오늘 나는 여러분들에게 내 인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닌, 그저 세 가지의 이야기입니다.

첫번째 얘기는 점(點)을 잇는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리드 대학이라는 곳을 첫 6개월 다닌 후 그만 두었습니다. 그후 18개월 동안은 비정규 청강생으로 머물렀고 그 후 진짜로 그만두었습니다. 내가 왜 대학을 그만두었을까요?

이 얘기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내 생모는 젊은 미혼의 대학생이었는데, 나를 낳으면 다른 사람에게 입양을 시키기로 결심했습니다. 생모는 내가 대학을 졸업한 부부에게 입양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태어나면 바로 어떤 변호사 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되어있었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입양키로 한 부부는 마음을 바꿔, 자신들은 여자아이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 생모는 한밤중에 입양대기자 명단에 있는 다른 부부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가 예기치 않은 사내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아이를 원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들 부부는 \”물론\”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내 생모는 나중에야 내 어머니(양모)가 대학을 나오지 않았고, 내 아버지(양부)는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생모는 이 때문에 최종적인 입양서류에 서명을 하지 않다가, 몇달후 내 양부모가 나를 나중에 대학에 보낼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서야 마음을 바꿨습니다.

17년이 지난 후 나는 정말 대학에 갔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스탠포드와 거의 맞먹는 수준의 학비가 드는 대학을 선택했고, 노동자였던 내 부모(양부모)는 저축한 모든 돈을 내 대학등록금에 써야 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난후 나는 그만한 돈을 쓰는 데 대한 가치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나는 내가 내 삶에서 무엇을 하길 원하는지 알지 못했고, 대학이 그것을 아는 데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내 부모들은 전 인생을 통해 저축해놓은 모든 돈을 내 학비를 위해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 당시 그런 결정은 다소 두려운 것이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한 가장 훌륭한 결정중 하나였습니다.

내가 학교를 그만두는 그 순간, 나는 내게는 흥미가 없었던 필수과목을 들을 이유가 없어졌고, 내게 흥미롭게 보이는 다른 과목들을 청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 낭만적인 얘기는 아닙니다. 나는 기숙사에 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방바닥에서 잠을 잤습니다. 음식을 사기위해 되돌려주면 5센트를 주는 콜라병을 모으는 일을 했고, 해어 크리슈나 사원에서 일주일에 한번 주는 식사를 얻어먹기 위해 일요일밤마다 7마일을 걸어가곤 했습니다. 나는 그걸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의 호기심과 직관을 따라 가다가 부딪힌 것들중 많은 것들은 나중에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들로 나타났습니다. 한가지 사례를 들어보이겠습니다.

내가 다녔던 리드대학은 그 당시 미국에서 최고의 서예 교육 기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캠퍼스 전체를 통해 모든 포스터, 모든 표지물들은 손으로 그려진 아름다운 글씨체로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정규과목들을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에 이런 글자체들을 어떻게 만드는지를 배워 보려고 서체과목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세리프나 산세리프 활자체를 배웠고, 무엇이 훌륭한 활자체를 만드는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이 알아내지 못하는, 아름답고 역사적이며 예술적인 미묘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매료되었습니다.

당시 나에겐 이런 모든 것이 내 삶에서 실제로 응용될 것이란 어떤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만들 때 그 모든 것이 되살아 났습니다. 우리의 맥 컴퓨터는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되었습니다. 내가 만일 대학의 그 과목을 듣지 않았다면 맥 컴퓨터는 결코 다양한 서체를 가진 컴퓨터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원도즈는 맥 컴퓨터를 단지 베낀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맥 컴퓨터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떤 개인용 컴퓨터도 그런 아름다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정규과목을 그만두지 않았고, 서체과목에 등록하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는 지금과 같은 놀라운 서체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물론 내가 대학에 있을 때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잇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후 과거를 되돌아 볼 때 그것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점을 이을 수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것들에–자신의 내면, 운명, 인생, 카르마, 그 무엇이든지 신념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접근법은 나를 결코 낙담시키지 않았고, 내 삶의 모든 변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나의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내 삶의 이른 시기에 하고 싶은 것을 발견한 행운을 가졌습니다. 우즈(스티브 우즈니액, 애플 공동창업자)와 나는 애플을 우리 부모님의 차고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때 나는 스무살이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습니다. 10년이 지난후 애플은, 우리 둘만의 차고에서 20억 달러에다 4000명의 직원을 가진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인 맥킨토시 컴퓨터를 1년 빨리 시장에 출시했는데 그 때 나는 막 서른 살이 될 때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할 수 있느냐구요? 글쎄, 애플이 커가면서 우리는 회사를 운영할 어떤 사람을 고용했고 첫해는 그럭저럭 잘 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들의 미래에 대한 관점에 차이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추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회사 이사회는 그를 지지했고, 서른 살이었던 나는 쫓겨났습니다. 성인으로서 내 삶의 초점이었던 모든 것들이 사라져버리고, 나는 참혹함에 빠졌습니다.

첫 몇달동안 나는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나는 앞서의 기업가 세대는 물러나게 된다는 어떤 느낌, 지휘봉을, 내게 전해진 것처럼 그렇게 내려놓았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나는 데이비드 팩커드와 밥 노이스를 만났고 그들을 그렇게 못살게 군 데 대해 사과했습니다. 나는 아주 공식적인 실패자였습니다. 실리콘 밸리로부터 도망쳐 떠나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내게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애플에서의 일이 그것을 조금도 바꾸진 않았습니다. 나는 거부당했지만, 여진히 내 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새롭게 출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때는 전혀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된 일은 내게 일어날 수 있었던 일중 최고의 경우였습니다. 성공에 대한 부담은, 모든 것에 확신은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가벼움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그것이 내가 내 삶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시기로 들어갈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해 주었습니다.

이후 5년동안 나는 NeXT라는 회사, Pixar라는 이름의 다른 회사를 시작했고, 나중 내 처가 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픽사는 세계 최초로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스토리를 만들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애니메이션 회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의 놀라운 반전 속에서 애플은 넥스트를 사들였고 나는 애플로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넥스트에서 개발한 기술은 애플의 현재 르네상스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또한 로린과 나는 함께 한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내가 애플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중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그것은 두려운 시험약이었지만, 환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이란 때로 여러분들을 고통스럽게 하지만, 신념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나를 이끌어간 유일한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사랑했다는 것이었다고 나는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에서도 같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은 여러분 인생의 많은 부분을 채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진정으로 만족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 스스로 훌륭하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일을 하는 유일한 길은 여러분이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언젠가 그것을 발견할 때 여러분은 마음으로부터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훌륭한 관계에서 처럼, 그것은 해가 지나면서 점점 좋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발견할 때까지 계속 찾으십시오. 주저앉지 마십시오.

세번째 이야기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내가 열일곱 살이었을 때, 나는 이런 비슷한 것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매일을 삶의 마지막날처럼 산다면 언젠가 당신은 대부분 옳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나는 그것에 강한 인상을 받았고, 이후 33년동안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만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내가 오늘 하려는 것을 할까?\” 그리고 여러날동안 그 답이 \’아니오\’라는 것으로 이어질 때, 나는 어떤 것을 바꿔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은, 내가 내 삶에서 큰 결정들을 내리는 데 도움을 준 가장 중요한 도구였습니다. 모든 외부의 기대들, 모든 자부심, 모든 좌절과 실패의 두려움, 그런 거의 모든 것들은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을 남기게 됩니다. 당신이 죽을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당신이 어떤 잃을 것이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하는 가장 좋은 길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벌거숭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가지 못할 어떤 이유도 없습니다.

약 1년 전 나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나는 아침 7시30분에 스캔을 받았는데, 췌장에 분명한 종양이 발견되었습니다. 당시 나는 췌장이라는게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의사들은 이것이 치료가 불가능한 종류의 암이 거의 확실하다면서 내가 길어봐야 3개월에서 6개월밖에 살수 없다고 했습니다. 의사는 내게 집으로 가서 주변을 정리하라고 충고했습니다. 의사들이 말하는 죽음의 준비입니다. 그것은 가족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 진단을 하루종일 생각했습니다. 그날 저녁 늦게 나는 목구멍을 통해 내시경을 넣는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몇점의 세포를 췌장에서 떼어내 조사를 했는데, 의사들은 놀랍게도 나의 경우 매우 드물게도 수술로 치료할 수 있는 종류의 췌장암임이 밝혀졌다고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아 졌습니다.

이것이 내가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간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 몇십년간은 그렇기를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죽음이라는 것을, 유용하긴 하지만 지적 개념만으로 알고 있었던 때보다는 좀 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하늘나라 천국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조차 거기에 가기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목적지 입니다. 누구도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로 그런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의 가장 훌륭한 창조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교체를 만들어 내는 매개체입니다. 죽음은 낡음을 청소하고 새로움을 위한 길을 열어줍니다.

지금 이순간, 그 새로움은 여러분들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어느날,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을 그때, 여러분들도 점차 낡음이 되고 청소될 것입니다. 미안하지만 이것은 진실입니다.

여러분들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시간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과거의 통념, 즉 다른 사람들이 생각한 결과에 맞춰 사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의 견해가 여러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가리는 소음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라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으로 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들은 부차적인 것들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전세계 목록\”이라는 놀라운 책이 있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그 책은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스튜워트 브랜드라는 사람이 만든 것으로, 그는 시적인 면들을 가미해 책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책이 나온 게 1960년대로, 그 당시에는 개인용 컴퓨터도 데스크탑 출판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타이프라이터와 가위, 폴라로이드 사진들로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종이책형태의 구글 같은 것이었는데, 구글이 나타나기 35년전의 일입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이 책을 여러번 개정했고, 결국 그 책의 역할을 다 했을 때 최종판을 내었습니다. 그것이 197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바로 내가 여러분의 나이 때입니다. 그 최종판의 뒷표지에는, 여러분이 탐험여행을 하다가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타기 위해 손을 드는 곳과 같은, 이른 아침 시골길을 찍은 사진이 인쇄돼 있었습니다. 그 밑에 이런 말이 적혀 있었습니다.

\”늘 배고프고, 늘 어리석어라\”(Stay Hungry. Stay Foolish)

이것이, 그들이 책을 더이상 찍지 않기로 하면서 한 작별의 메시지입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나는 나 자신에게 늘 이러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이 새로운 출발을 위해 졸업하는 이 시점에서, 여러분들이 그러기를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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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Jobs says

This is the text of the Stanford Commencement address by Steve Jobs, CEO of Apple Computer and of Pixar Animation Studios, delivered on June 12, 2005.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 the finest universities in the world.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We worked hard, an 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 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Because almost everything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Beneath it were the words: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 번역자의 출처는 표기가 되지 않아 알 수 없습니다.

당연하지 않은가.

수업을 마치고, 일행과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 이었다.
일행중 한사람이 갑자기 튀김이 먹고싶다길레, 생각해보니 비도 오고 날도 축축하니 그럴때 바삭바삭 튀겨낸 신선한 튀김을 먹으면 참 좋을것 같았다.

커피집 근처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했는데 근처 포장마차엔 튀김 파는곳이 한군데도 없어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잘 구운 만두와 떡볶이 한접시를 먹기로 했다. 그렇게 떡볶이를 먼저 먹고 뒤에 나온 만두를 먹다가, 한 사람이 갑자기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어 졌다고 한다. 듣고 보니 맥주와 아주 잘 어울리는 만두라서 왠지 나도 그러면 좋겠다는 생각에 그럼 마시죠, 바로 앞에 편의점도 있는데. 라는 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내가 입었던 약간 늘어진 흰 면티의 등 부분이 미묘하게 표현하기 어려운 강한 텐션을 가지며 당겨(라고 쓰고 땅겨 라고 읽는다)졌다. 무엇인가 도저히 거절 할 수 없는 그런 느낌.

그 분은 아뇨 제가 가겠습니다. 라는 말을 했지만, 난 눈빛으로 저항한다. 그 저항이 제대로 설치 되기도 전에 벌써 그 분은 걸음을 성큼성큼 옮긴다. 기다리는 동안 왠지 미안하고, 따뜻하고, 부끄럽고, 고마운 느낌이다.

잠시 몇분이 흐른후에 550ml 벡스 캔맥주와 종이컵까지 준비해서 돌아오셨다. 비의 냄새가 사방의 땅에서 올라오고 있었고 길거리에 있는 예닐곱개 정도 되는 포장마차의 불빛이 녹녹하다. 포장마차 주인 아주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받은 다음, 캔을 따고 맥주를 \’종이컵\’에 부었다. 그리고 마셨다.

벡스는 분명 내가 좋아하는 맥주가 아니다. 그런데 정말이지 감동적인 맛이 느껴지는게 아닌가. 비오는날 만두며 순대며 떡볶이를 파는 길거리 포장마차의 둔치 아래서 \’종이컵 따위\’에 담겨진 맥주가 이렇게 맛있게 느껴질것이라곤 전혀 상상치 못했다.

그다지 크게 내색하진 못했지만, 너무나도 기뻤다. 인생에 있어서 무엇인가 커다란 기쁨을 발견한 기분과 견주어도 괜찮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의 눈가에 웃음이 일어난다. 이런 기분을 담고 싶어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그것 보담 그냥 그렇게 웃고 싶었다.

지금 작업실에 돌아와 다시 생각해보면 사진을 찍지 않은게 참 안타까운 기분이 들지만, 그런 안타까운 기분이 날 더욱 더 기쁘게 한다. 가끔은 이런것도 무척 좋을때가 있는 법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아직까진, 그 \’당연하다는 것\’이 나에게 남아있다는 것이 기쁘다.

그리고 그 분에게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해바라기

비의 계절이 지나고 햇볕 가득한 시기가 오면,
좀 편해질까.

한달 전쯤에 보았던 축 늘어진 해바라기가 보고 싶은 오늘이다.
마침 비도 잔뜩 오고 있으니, 우의라도 걸치고 타박 타박 걸어 나가보는 것도
좋을 일이다.

그리고 요즘같이 뭉퉁뭉퉁할 때엔
표현력이 날의 끝 처럼 혹은 다이아몬드 처럼 날카로운 렌즈를
하나 사야겠다.

그리고 하나 더 욕심이 있다면 1920~50년대 사이에 만들어진
싱글코팅 렌즈도 하나 구입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기분이다.

XTOL의 포뮬러를 찾았지만….

Part A:
    Sodium sulfite
    Sodium metaborate, tetrahydrate
    Diethylenetriaminepentaacetic acid pentasodium salt
    4-hydroxymethyl-4-methyl-1-phenyl-3-pyrazolidinone

Part B:
    Sodium sulfite
    Sodium isoascorbate
    Sodium metabisulfite

이긴 한데… 역시 제일 중요한 혼합비는 찾을 수 없었다.

기본적인 포뮬러의 혼합비를 알 수 있다면, XTOL의 기본 성질을 바탕으로 한
전용 현상액을 만들어본만도 할텐데…

하긴, 기밀일테니 어쩔수 없는지도…

http://www.amazon.com/exec/obidos/tg/detail/-/0240802772/ref=ase_covingtoninnovat/102-2261410-4670531?v=glance&s=books 이라는 이 책도 요즘 굉장히 관심이 가는 책이다.

.

조금씩 조금씩 칼로 도려내는 것이다.
그다지 아프지 않을 만큼 까지만, 딱.

그리고 나중엔 형체가 무너지고 부서질지도 모른다.

당연한거다.

보고 싶다.

일요일 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다.
토요일만 하더라도 하늘만 봐서는,  맑아서 도대체 비 같은것들이 오긴 오려나 싶었다. 팩토리에서 듣는 비 소리는 제법 괜찮아서 바깥 창문쪽 바로 밑에 있는 집의 지붕이 양철 슬레이트 지붕 같은거라서 소리가 이쁘다.

이번 장마는 얼마간 내릴런지….

온도가 낮아질테니 간만에 현상을 하는 것도 좋겠지……….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밤 2시 30분에 입었던 옷을 모조리 다 벗고 알몸으로 선풍기를 꺼냈다.

드라이버로 모터 커버를 분리하고, 망을 때어내고, \’날개\’를 때어냈다.

물을 적시고 수세미로 쌓였던 먼지를 벗겨주고 그런 것들.

끝나고 3시였다.

그 후로 1시간 12분이 지났지만, 그 시간 동안 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억나는 거라곤 선풍기 밖에 없다.

작년 여름엔 강한 햇살을 받으며 선풍기를 닦았다.

미적지근하게 시작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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