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은 언젠가 없어진다.
끝도 언젠가 온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있지 않은가…
진정 소중한 건 반드시 사라지지 않는 곳에 넣어둘 수 있는 방법이…
인간에겐 반드시 그런 곳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서울 것도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어떤 큰 지진이 일어난대도…
빼앗기지 않는 곳이…
사람들에겐 반드시 있다.
물건은 언젠가 없어진다.
끝도 언젠가 온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있지 않은가…
진정 소중한 건 반드시 사라지지 않는 곳에 넣어둘 수 있는 방법이…
인간에겐 반드시 그런 곳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무서울 것도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어떤 큰 지진이 일어난대도…
빼앗기지 않는 곳이…
사람들에겐 반드시 있다.
원래부터 난 시정잡배에 나쁜놈인건 애초에 알고 있었지만, 정말 나쁜놈 되는건 순식간이다. 정말 그렇다. 하지만 그 이유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잠시 혼란스러워지곤 한다.
정말 그런것인가.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예외가 아닌것들이 참 많다.
어느것에 있어서, 난 그렇지 않아. 라고 생각 할 수 있는것들을 막상 하나씩 생각해보면 그다지 많지 않다는 거다. 아주 약간의 차이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고 성격을 만들어내고 가치관을, 사고 시스템을 형성하게 되는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 별 사람없다. 라는 이야기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야 물론 별 사람 없다 라는 이야기도 맞는소리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또 꼭 그렇지는 아니지 않는가?
누구나 특별한 사람이고 누구나 특별할게 없는 그런 사람들이다. 나 역시 그러한 속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다. 서른을 목전에 둔 나에게 있어서 가식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날은 얼마나 남았으며 혹은 가식없이 살 수 있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 한 것일까.
이젠 그다지 별것 아닌 일엔 아무런 감흥도 슬픔도 없을것인데, 슬프게도 그리고 기쁘게도 아직까지 난 어린아이가 아닌가 싶다. 좀더 알고 싶어서 좀더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바둥바둥대는 꼬마아이 말이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도 슬프게도 하는 것인가.
아주 미약하나마, 조금씩 만이라도 솔직하게 그리고 강하면서도 부드럽게 살아가야할것이 아닌가. 라고 뜬금없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난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투성이의 삶이라는 것. 그리고 결국 신경이 다 끊어져버려 어떻게 이을수도 없을정도로 망가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걸.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라고 하는 좁디 좁아터진 세계를 재단하는 이 저주받을 틀 속에서 조금이나마 더 자유롭고 싶다고 생각한다. 날개가 부러진다 해도, 살이 뜯겨나간다 하더라도. 그러한 자유의 댓가는 누구나 알고 있듯 끝없는 고독이다.
내가 정말 원한게 그것이었던가.
실상 벗어난것은 무엇하나 없는데, 단지 벽은 더 두꺼워지고 더 높아져버리게 되어버린건 아니었던가?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내 몸뚱이에 박혀있는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인가.
어제는 그애가 나의,
내일은 내가 그애의 상처를 치유하는
그런 낭만적인 시대
새벽이라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시간쯤에, M군이 한가지 제안을 한다. 서울가자, 전시회도 보고 당일치기로 마실다녀오는 기분으로. 라는 느낌의 이야기였다. 처음엔 망설이다 (마실치곤 비용이 제법 크다고 생각하니까) 이리저리 신경써준덕에 마음을 어느정도 결정 할 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타고 몇시간이나 달리고 달려서 청담동 L갤러리에 갈 수 있었다. 브루스 데이빗슨. 정직히 말하자면 내 취향의 사진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진가 중 한사람이다. 특히 SUBWAY의 경우 아주 예전에 사진집으로 봤을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있어서 오리지널 프린트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로도 상당히 흥분되는 일 이었다. 또한 서울의 상업 사진 갤러리의 전시장 전시 방법과 관련된 기타 여러사항을 참고하기 위한 심산도 있었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는 언젠가 기분 내키면 따로 할 수 있는 시기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전시장을 나서고 저녁을 먹고, 수원을 거쳐 부산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고속도로와 휴게소들를 드문드문 찍으며 예상보다 제법 늦게 부산에 돌아왔다. 커피를 마시고 고속도로 우동 한사발을 들이키고, 차안에게 이야기를 하며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사진가 김종길님과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재미있었다. 비록 사진의 방향성이나 작업방식 자체는 다를런진 몰라도 그런것과는 관계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통할 수 있는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즐거운 일 이었다. 부산에 도착했을 즈음 상당히 지쳐있는듯 보여서 걱정이 되었다. 중앙동까지 데려다 주셨는데 그 길로 또 김해까지 가야 한다고 한다. 큰일이야 없겠지 싶지만서도 괜히 걱정이 된다.
40계단을 터벅터벅 올라와 작업실에 도착하니, 비록 쓰레기 통 같은 작업실이라도 괜히 마음이 안정된다. 내 작업실.
잘 채비를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몇가지 꿈을 꾸었던것 같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일어나서 온몸이 뻐근했지만 어제 다녀온 서울의 실루엣의 단면이 끈적끈적 몸에 남아있는듯만 하다.
작업실의 창문을 열자, 영도다리쪽에서 불어오는 바닷내음이 여기까지도 들어오는 듯 하다.
바위틈에 고인 물은 봄을 예고하는듯
잔잔한 바람에도 살랑댄다.
힘찬 대지의 고동은 강한 파문을 낳고
그들의 부딪힘은 더 큰 파문을 낳지만
그것은 생명을 위한 준비.
조화로운 움직임을 나타내는 동사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리라.
그늘에 우뚝 선 버찌나무는 가지를 힘차게 뻗어내고
물의 리듬에 맞춰 가지의 굴곡을 정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아무리 변화가 심하다 해도
버찌나무의 모습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나인틴 헌드레드는 그와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였던 맥스 투니에게 이런 말을 한다.
\”피아노를 봐. 건반은 시작과 끝이 있지. 어느 피아노나 건반은 88개야. 그건 무섭지 않아. 무서운 건 세상이야. 건반들로 만드는 음악은 무한하지. 그건 견딜 만해. 좋아한다고. 하지만 배에서 막 내리려고 했을 때 수백만 개의 건반이 보였어. 너무 많아서 절대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수백만 개의 건반… 그것으론 연주할 수가 없었어. 피아노를 잘못 선택한 거야. 그건 신이나 가능한 거지.\”
이런 독백을 들으니, 난 갑자기 미칠듯 바다로 가고 싶어 졌다. 데낄라 한병, 레몬과 소금과 같이.
오늘 촬영하고자 했던 계획은 나의 복통때문에 엉망진창이 되어버렸고, 끙끙거리며 하루종일 침대위에서 아르마딜로 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놓은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버렸다.
굉장히 우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