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하늘의 색

태어나서 지금껏 살아오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 혹은 무서움을 느낀적 따위. 당연히 있다. 아마 아주 어렸을적 그래.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 어느 찻집에 따라간것이 기억난다. 무슨일로 조그만 꼬맹이가 그런곳에 따라가게 되었는지 따위 전혀 기억이 안나지만, 커피테이블 바닥으로 모니터가 있고 모니터 위에 R,Y,G,B순서로 배열된 셀로판지를 붙여서 색으로 보이도록 만든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만나버렸다. 난 그날 이후로 스페이스 인베이더, 갤러그, 엑셀리온, 제비우스, 피닉스, 디그더그 같은 오락에 푹 빠져있었던것 같다.

어느날엔가 아침밥을 먹고 유치원에 가야하는데 너무나도 참을 수 없을 만큼 오락이 하고 싶어서 유치원 버스를 타지도 않고, 키는 의자정도 밖에 안되는 그런 녀석이 입는 노란 병아리 옷에 노란 가방(이 아니었을까? 전혀 기억은 안나지만. 아니 녹색이었나?) 을 둘러메고 홀홀 단신 오락실에서 50원을 넣고 혼을 불살랐던것 같다. 오직 그 앞에 그것만 보이는 그런 것이다. 부모님의 걱정이라던가 유치원에서 애가 나오지 않았음에 대한 문제라던가 따위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는 것이다. 단지 유치원 생이라서 그런게 아니었다. 아니 그래서 오히려 유치원생 다운건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지금과 그다지 다를게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어머니는 사방팔방 천지를 돌아다니가 이윽고 나를 발견했다. 물론 난 전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마 난 제비우스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상당히 최신 기종이었다. 기존의 것들과는 모든것이 한차원 다른 전혀 새로운, 압도하는 것이 있었다. 갑자기 누군가 내 귀를 쎄게 당기더니 의자에서 떨어질뻔 했다. (그야 키가 작았으니까) 그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뺨을 맞았다. 서럽고 서럽고 너무나도 서러워서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만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너무나도 서러운데도 눈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뺨을 맞아서 너무나도 아프고 고통스러운데도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는 것이다. 너무나도 서러웠다. 오히려 다른 생각은 못한체 내가 오락하고 있는것을 방해했다는 사실이 굉장히 불쾌했었다. 철없는 그 조그만한 핏덩이가 눈을 부릅뜨며 엄마의 얼굴쳐다 보는 순간.

난. 울었다.

왜 눈물이 나는건지 당시의 나로써는 전혀 알수 없었다. 어째서 눈물이 나는건지 이해 할수도 없었다. 서러운것 하곤 다르다. 엄마의 얼굴에서 사력을 다해 허공에 손질하듯 헐떡거리며 찾아디니는 동안 녹아내린 걱정와 불안함이 그 조그만 핏덩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되어 격한 감정으로 되었다라는 것 따위 그 당시에 내가 이해 할수 있는 범위 밖의 것이었다.

그렇게 호대게 뺨을 맞았는데도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엄마품에 달려가 한없이 서럽게 울었다. 엄마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그때 난 처음으로 봤다. 그게 무서워였을까.

울면서 울면서 집으로 돌아간 나는 제법 오랜시간 엄마에게 혼난것 같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식탁은 상당히 풍성했다. 그 이후로 엄마는 나에게 오락실 출입 금지를 시켰다. 하지만 그 조그만 녀석은 녀석데로 약아빠져서 몰래 다녀오면 모르겠지라는 심산이지만, 엄마에겐 그런게 다 눈에 보이나보다. 몰래 다녀온다 손 치더라도 오락실에 한번 다녀오면 그 특유의 냄새가 온몸에 베여버리는 것으로 알아차렸다. 물론 거짓말도 했다.

\’오락실 안갔었어요.\’
\’이애가 또 거짓말을 하네! 나는 거짓말 하는 원주가 싫어요\’

이러면서 오락실 주인에게 까지 끌려간 적도 몇번 있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날 때리진 않았다.

아마 그때부터 난 냄새라는 것에 민감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나름대로 냄새가 있는 공간에 계속 있으면 코가 둔감해지기 나름인데도 그 속에서도 그 냄새를 맡는 요령을 스스로 터득했다. 오락실에서 나오고 나면, 불어오는 바람을 쐬고 바람이 없으면 달려서 냄새를 털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더더욱 달려서 땀냄새를 베어나게 했다. 조그만 것이 영악하다.

하지만 그때부터 난 바람의 냄새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던것 같다.
흙의 냄새와 하늘의 냄새 정글짐과 철봉의 냄새,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공기냄새와 비냄새, 운동장 흙의 냄새와 길거리의 흙냄새가 다르다는 것을 난 처음으로 깨달았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모든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나중엔 친구집에 놀러가면 그 집안 특유의 냄새에 따라 그집의 분위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 가정환경마저도 어느정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실로 다들 비슷한 것 같지만, 다들 다른 고유의 집안 냄새가 있다는 것은 나에겐 굉장히 새로운 경험 이었다.

그것이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느낀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

조금씩 키가 커지고 머리도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하면서 여러가지의 상황속에서 난 두려움과 공포를 맛봐야만 했다. 여느 사람들이 그런것 처럼.

여자 좋아하는것도 유전이 되는가. 어렸을때부터 조금 조숙한 편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여자를 참 좋아했다. 적어도 최소한 두려움의 대상과는 전혀 거리가 먼 객채이다. 내가 좋아하는 객채인 것이지 두려워한다건가 무서움을 느낄 수 있는 그런것과는 전혀 관계없는 객채인 것이다. 여자라는 그 존재 자체가 난 좋았다. 나라고 하는 남자와는 대부분의 것들이 달랐다. 그런 \’다름\’ 그 자체가 나에게 어떤 흥미와 관심을 부여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여자라는 객채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의 가슴속 중심부터 깊이 박힌듯한 떨림을 느꼈다. 나름대로 그 시간들 속에서 나는 많은것을 느꼈고 경험했고 배웠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여자는 좋아하지만 \’여자\’는 싫어하게 되어버렸다. 생각했던것에 비해 엔트로피는 여러 분야에 있어서 적용되는게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서 쓰디쓴 미소를 짓게 되었던것도 그 쯤이 아니었나 싶다.

9년전, 태어나 여자에게서 처음으로 떨림과 불안함 두려움을 느낀적이 있었다.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고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해석되어져야 하는것인지도 몰랐다. 어딘가 몸에서 자꾸 이상한 신호가 오는것만 같다. 위가 울렁거리고 식도와 기도는 꽉 조인듯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머리는 어쩐지 나의 머리가 아닌것 같고 몸 전체가 부유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단순한 호감이라던가 좋아한다. 라는 느낌하곤 분명 다르다. 도대체 이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이 숨을 쉬는것 만으로도 좋았다. 그 중에서도 난 그녀의 눈동자를 보는게 제일 좋았다. 단지 한번 처음 보자마자 몸에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쑥맥이 되어버렸다. 이런말 하긴 쑥쓰럽지만 나름대로 베이직한 스킬은 터득하고 있었던 터라 그렇게 쑥맥이 될만한 건 아니었는데도, 마치 내 몸의 사지가 묶여버린듯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때 그녀는 나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데곤 귓속말을 해주었다. 그것은 실로 근사한 몸짓이었다. 그 귓속말 한마디에 묶여있던 밧줄은 사라지고 겨우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와 난 그렇게 시작 되었다. – 그 귓속말 내용은 비밀이다.

그리고 일년이 모자라는 십년의 시간 동안, 강산도 변한다는 그 시간동안 그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가진적은 없었다. 처음에 3~4년 동안은 차차 괜찮아질 것이다. 시간이 약이다. 라고 생각했었고 그다지 걱정도 많이 하지 않았다. 차차 시간이 해결해 줄것이다. 라고 굳게 믿었었고 실지로 많은 종류의 일들이 그렇게 해결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꼭 그렇지 않은것도 있는가보다. 그런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는 그대로였다. 그리고 스스로 자가진단을 내렸다. (우스운 일이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만약 그러한 종류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신체적 감각기관이 있다면, 아마 난 그 기관이 거세당한 것. 이라고 말이다.

여전히 어렸을적, \’여자는 좋아하지만 \’여자\’는 싫어하는\’ 그 모습 그대로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살고 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서로 호감을 가지고, 외로운 것을 공유하고 나누었다. 그러면 한결 사는것에 대한 무게가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스킨쉽, 섹스 이런것을 난 무척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남자가 또 어디있겠냐만) 나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었다. 여자 그 자체가 좋은 것이다. 물론 그러한것에 대가는 어김없이 지불해야만 한다. 그 뒤에 오는 외로움과 씁쓸함과 고독을 지불해야 한다. 엔트로피는 자애스럽다.

하지만 나 스스로 생각하기엔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놀이삼은 적은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라도 마음에 동하는게 없으면 나의 시선 바깥에 머물러 버렸다.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자\’를 진심으로 좋아해야만 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만났다 사라진 여자들이 있었다. 어느날 전화를 해볼까 하다가, 눈앞에 전화번호가 펼쳐져있는데도 전화번호를 누르는 것은 커녕 오히려 극도의 절망적 고독과 씁쓸함을 견디고 견뎌야 했던적도 수십 수백번 이었다.

어떤 여자와는 진심으로 온몸과 마음으로 좋아했었다.

그러한 약 십여년의 시간동안 나의 거세된 감각기관은 자국만 살짝 남은체 내 가슴속에 있었다. 앞으로도 가망성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라고 생각했다. 불과 몇일 전까지.

설령 그녀와 나와의 관계가 잘 안된다 라고 한다면 그건 무척이나 굉장히 힘들고 슬프고 아픈 경험이 될 것이다. 일희일비하는 그런 소인배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난 그렇게 되는것이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그녀에게 고맙고 감사하다고 진심을 다해 전하고 싶다.

지금껏 내가 계속 살아있었음을,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함을, 그리고 내가 지금껏 계속 사진을 찍는 이유를 그녀는 나에게 재확인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인간에게 있어서 어떠한 종류의 두려움과 무서움은 또 다른 무엇인가를 잉태하는 어머니. 라고 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정은 결과에 수렴하고, 결과는 과정에 수렴한다. 그것이 끝도 없이 연속되어간다. 어떠한 상황에 어떠한 과정과 어떠한 결과가 있든 과정 혹은 결과는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땅의 감촉, 하늘의 색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그녀에게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난 사진을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

스캐너에서 울리는 위~잉 소리를 9시간째 듣고 있다.

화장실을 잠시 다녀온 시간외에 의자에 거의 꼼짝하지 않고 앉아있었더니 허리에 붙어먹은 척추의 신경과 어깨가 시큰시큰 하니 쓰리다.

아픈것은 허리와 어깨만이 아니다.

너무 세삼스러운 일이지만, 아무리 호감을가지고 애정어리고 따뜻하게 여긴하고 하더라도

사진 이라는거… 정말 지랄이다.

그래도. 난 계속 찍어 갈 것이다.

일단. 그러기 위해서라도 이제 자야겠다. 너무 너무 피곤하다.

고맙고 감사해.

이제 앞으로 내가 찍어갈 사진도 조금은 변할까.

앞으로 어떠한 일들이 내 앞에 펼쳐져있을진 전혀 짐작도 안가지만, 이제 조금정도는 나 자신에게 따뜻한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허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 정도는 허락해도 괜찮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마지막 하나 남아있던 맥주캔을 마셨다. 당분간 맥주캔은 필요 없을 것이다.

진심으로 고마워.

한숨……

수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는 길거리의 한복판, 그 사이사이를 마치 붕뜬 공기처럼 존재감 없이 걸어가고 있을때.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길거리의 한복판을, 무거운 공기처럼 존재감 없이 걸어가고 있을때.

이른새벽 아무도 없는 중심가를 뼈속까지 시린 공기와 함께 걸을때.

주위의 것들이 순간, 아득히 느려질때.

그리고

주위의 모든것들이 순간, 아득히 사라지는것 처럼 느껴질때.

어떠한 순간에도 내 옆에 항상 있는건 카메라 밖에 없다.
그게 너무 아프고 슬프다. 진짜 슬프다. 정말로 뼈속 골수가 빠질 정도로 아프고 슬프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는 대관람차를 찾으려 여행이라도 떠나면 좋을 것만 같은 심경이다.

프로하스카

그러니까, 왠지 웃음이 피식 나왔다.

그래야 하는거다. 그렇게 하는게 맞는거고 그렇게 하는게 편한거다.
자기 합리화의 페르소나를 뒤집어 쓰고서는 웅크리고 있는게 편한거다. 괜히 어쩌면 쓸때없는 열기오름에 스스로 쑥쓰러워하고 두려워 하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아무렴 어떻냐만.

그래서 조금 슬프다.

3개월 넘게 냉장고에 모셔두었던 아끼고 아끼던 버드 한병을 마시고 잠을 자는게 지금으로선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눈이 와서 말이지……

2005년도에 들어서 부산에 눈온게 3번째? 4번째? 참 자주도 온다.

부시시 일어나서 어기적어기적 무엇인가 하고 있다 반투명 시트지가 발려있는 창문을 문득 보니 왠지 느낌이 이상하다. 눈이 온다. 메신저 에서도 눈이 온다고 누군가 메세지를 보냈다. 싫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반가운 기분이다.

오후 네시 반쯤 즈음 보니 눈이 내리는 하늘은 노랗더라. 왠지 전혀 알수 없지만 순간 울컥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위액이 역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진을 찍을려고 하는데, 메신져에서는 자꾸 메세지가 들어온다. 왠지 꼭 사진을 찍어야만 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 탓인지 조금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덧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오랫만에 CDP를 집어넣곤 이어폰을 귀에 꼽아둔체 거리를 걸으면 2~3롤 저도 사진을 찍었다. 그냥 눈이 찍고 싶어서 바닥에 있는 눈과 하늘에 있는 눈을 찍었다. 렌즈위로 눈이 조금씩 맺히더니 이내 녹아버린다.

너무 너무 추워졌다. 손가락이 얼기 시작했고 나중엔 손가락을 움직일 수 조차 없었다. 오늘은 왠지 장갑을 끼고 사진을 찍는다던지는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카메라에 들려서 몸을 녹여야겠다 싶었다. G형이 한껏 눈맞으며 돌아다닌 몰골을 찍었고 내 카메라를 쥐어주어 다시 한장을 찍었다.

따뜻한 인스탄트 커피 한잔을 마시며 몸과 손을 녹였다. 아.. 이제 좀 살만하다. 사람들 얼굴을 보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했다.

K양이 저녁을 샀다. 거기 식구들 및 민폐쟁이들(나도 포함)과 함께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웃긴건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는 것이다. 기분이 눅눅했다고 하더라도 배가 든든하면 그런 기분이 좀 가시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왠지 기묘한 공기감을 느끼게 된다. K양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괜히 쓸떼없이 느껴지는 쑥쓰러운 때문에 그냥 잘 먹었다고만 말을 하고 말았다.

가계문이 열리고 중년 초입쯤 되어 보이는 남자가 가게에 들어왔다.
뭔가 카메라를 살것같이는 보이지 않는, 그냥 어중이 떠중이 같은 느낌의 손님.

무엇인가 들썩 거리면서 카메라를 물어본다. 보통 일반적인 사람들이 그렇듯 카메라를 보면서 내보이는 묘한 열기 같은건 느끼지지 않는다. 왠지 길거리 걸어다가다 발 닿는데로 온 김에 카메라 구경을 한다는 느낌의 남자다. 눈동자도 무겁고 어두운 빛이 감도는  어딘가 기묘하게 뒤틀려 있는 느낌이다.

5분인가 10분인가 상담을 하더니 조그만 컴팩트 디지털 카메라며 메모리며 조그만 가방이며 그러한것을 챙겨가지곤 돈을 지불하고 나갔다. 뭘까. 싶어서 사장님에게 이야기를 해보니 눈이 와서 기분이 우울했다. 그래서 카메라를 샀다. 라는 것이다.

\’새로운 사진 인생이 탄생하는건지도 모르겠군요\’
\’글쎄 그래보이진 않지만.\’
\’그거야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겠죠\’

왠지 난 그 사람의 마음을 공감 할 수 있을듯 하다.

시간이 되어서 바깥을 나섰다.
여전히 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雪國)이었다. 로 시작하는 구절이 머리속에서 계속 맴돈다.

이야. 이거 정말.

끝장나게 괴롭고 외롭다.

시간이 흘러야 하는거지.

내가 예상한것 그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했을때, 그리고 그 예상이 실상 전혀 맞지 않았음을 깨달았을때. 비로서 그때 진정 아픔을 느낄때.

누구나 있는 그런 하등 특별할 것 없는 그런 평범한 일.

하지만 이번 일로 깨달은게 있다면, 나라는 인간은 생각보다 아직까진 아직까진…

さようなら.

잃어버리지 않아요.

요즈음 들어 난 항상 렌즈 2개 들고 다닌다. 당연히 하나는 마운트에 장착. 나머지 하나는 코트 안주머니에 항상 넣어놓고 다닌다.

오랫만에 K군과 술 한잔 걸치면서 무엇인가를 찍었다. 아마도 35mm로 찍다가 50mm로 바꾸었던것 같다. 무엇인가를 찍은 후 안주머니에 렌즈를 집어넣는데 바 넘어 있는 여자가 대뜸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렌즈 잃어버릴 일은 없겠네요\”

\”여자는 잃어버려도 카메라와 렌즈는 잃어버리지 않아요. 여자를 안주머니에 넣어 다닐수도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잃어버리는 걸요\”

아무 생각없이 순순히 나오는 말 이었지만,  말 하는 순간엔 몰랐는데. 약 30초후 슬퍼졌다.

약간의 취기 때문인지 스스로에 대한 심리적 피막이 엷여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약간 감상적으로 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막상 내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생각하면 머리를 긁적이면서 반숨도 되지 못할 정도로 피식거리고 말아버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종류의 것 일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내 나이에 있어서 그래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오는 찻간에서 Queen의 Some body to Love라는 노래는 눈물이 날 만큼 적적하게 들렸다.

프레디 머큐리는 그렇게 속삭였다.

여자는 잃어버려도 카메라와 렌즈는 잃어버리지 않아요.

이거 상당히 예전에 봤던 건데

이런저런 일들이 있고, 오늘 만났던 사람과 한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하면서. 머리속에선 상당히 예전에 봤던 노래가 생각났다.

특히 시작하고나서 처음에 나오는 무엇인가 소실되어버린 아저씨의 얼굴과 모자에 야채도매상 경매판을 달고 있는 아저씨의 얼굴 표정은 항상 무엇인가 울컥하게 만들곤 한다.

뭐랄까, 이건 좀 치사하다. 라는 느낌이다.

칠드런이고 어덜트고 간에 언제까지 나 자신이 나답게 무엇인가를 계속 할 수 있을런진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나 현재 내가 하고 있는 현실적으로 요구되어지는 고민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의 결정은 본인 스스로 하게 되는 것임엔 분명하다.

계속 지켜나가던, 완전히 포기하던 혹은 타협을 하게 되든 최소한 \’자신 스스로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감촉\’은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을 잃어버린다던가 소실 되어 버린다던가 하지 않는다면 최소한, 내가 지금 딛고 있는 땅의 감촉과 공기의 냄새와 햇살의 촉감과 하늘의 색을 잃어버리진 않을것이다.

그렇게 생각 하고 싶다.

희망의 수만큼 실망은 늘어나겠지
그래도 내일 가슴은 떨릴거야

만남의 수만큼 이별은 늘어가겠지
그래도 희망에 가슴은 떨릴 거야

.
.
.
.

나중에 잘 될려고 그러나 보다.

요 근래 몇일 동안 등록금 문제 때문에 이리저리 신경이 많이 쓰였다. 작년과는 달리 올해엔 제도가 바뀐덕에 뭔가 계획한데로 되질 못했다.

한해 휴학하고 내년에 다니면 되지.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버렸다. 죽기 직전까지 할 사진, 1년 정도 학교에 묶여있다고 해서 큰일 나는건 아니다. 그야 조금은 답답한 면도 있지만 한해 늦어진다고 조바심 부려선 안될 일이다. 한편으론 누구하나 원망할 것 없이, 나의 잘못이요 나의 실수이며 나의 능력부족 탓이니, 속으로 끙끙 하고 있어봐야 득 될것이 없다.

나중에 얼마나 좋은 일이 생길런지 모르겠지만, 두고 볼 일이다. 어찌 되었건 뜻하지도 않은 1년의 시간에 나에게 주어졌고 이 시간을 어떻게 알차게 보내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계획을 만들어야 함이 옮을 것이다. 일단 현재 작업실의 영업(그리고 지금껏 나 스스로 지켜왔었던 것들에 대한 타협까지도)을 중점적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1년 정도 일을 할 수 있는 직종을 해볼까, 이 2가지 정도가 내가 생각 해 볼 수 있는 정도이다.

되도록 작업실을 통한 수입이 들어오는 것이 비교적 좋을 것이다. 사진과 계속 닿아 있을 수 있고, 게다가 올해 할려고 하는 (그리고 지금껏 계속 준비해오고 있는) 개인전 역시 진행이 가능하리라 라는 심산이기 때문이다.

아니면 오전,오후로 일을 하고 저녁엔 작업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짜맞춰 볼 수도 있겠다. 잠이야 조금 덜 자면 되는 것이고.

아니 어쩌면 차라리 작업실은 잠시 닫아두고 확실히 일에만 전념하는게 좋을지도 모를 일이다.

라는 식의 생각들이 머리속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다.

하지만 요 몇일동안 등록금과 관련된 기타 금전 상황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서 그런지 심신이 피로하다. 하다못해 하루, 이틀 정도는 푹 쉬고 뒤에 일을 생각해 보는것도 좋겠다.

어찌 되었건, 수강신청 한것은 다 취소하고 휴학계를 제출하러 내일 학교에 가볼 참이다. 역시 씁쓸한 기분이 드는건 별 수 없지만, 이런걸로 기분이 눅눅해져선 나 스스로가 답답스럽다. 믿는 구석 하나 없지만 그래도 의기소침 하지말고 당당히 나답게 앞으로의 일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것은 아직까진 내 몸뚱이가 건강한 편이라는 것 이다. 정말로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이제 잠시 잠을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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