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시트론.

그러니까 말이지.

바람 좋고 햇살 좋은 그런 날.
어딘가 공원이든 유원지든 어디든 그런데 따위엘 가는거다.

상큼발랄한 그 여자아이는 앞에서 놀고 있고, 난 벤치따위에 노곤하게 앉아선, 상큼발랄한 여자아이를 말 없이 흐뭇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여자애는 혼자놀다 지겨워졌는지, 상큼하게 다가와선 내 소매를 쭉쭉 잡아당긴다. 그리곤 별로 내키지도 않는 (그리고 그다지 흥미도 없는) 놀이들을 같이 하는 거다. 하지만 딱히 불쾌하다거나 귀찮다거나 하는 그런 싫은 기분은 전혀 들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그 여자애의 행동들이 마치 시트론 향처럼 나에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넘어갈 즈음에 어딘가에 가서 식사를 하고, 어딘가에 가서 간단하게 술을 마신다. 그리곤 어딘가의 호텔에 같이 들어간다. 그 여자아이는 몸을 내쪽으로 향하여 새우처럼 곱게 누워있고, 난 천장을 바라보면서 누워있는 것이다. 그 상태 그대로 나의 오른손으로 여자아이의 왼쪽 발등을 살포시 손바닥에 뭍어두곤 그대로 잠들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요 며칠동안 뜬금없이 계속 했었던것 같다.

사실, 내 이상형은 (어디까지나 이상형일 뿐이지만) 미드나이트 블루의 원피스가 잘 어울리는 여자다. 누군가 이야기 했지만, 이러한 옷을 어울리게 입는 것에는 그러한 인생을 살아야만 가능한게 아닌가 싶다. 헤링본 무늬의 슈트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이상형일뿐, 그러한 여자라는게 매우 드물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반작용에 의한 상큼 발랄한 여자애 라는건  아니다.

상큼발랄한 여자아이 역시 매우 드물것이라 생각하지만.

무엇도 구할 것이 없다. 당연히 구할 수 있는 것 또한 없다. 당연한 것이다.

난. 그자리에서 뭘 하고 있었던가.

난 그 자리에서 무엇을 구했던 것인가.

난 그 자리에서 뭘 원했던 것인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난 무엇도 구하지 않았고,
당연히 무엇도 구할 수 없음이다.

매우 당연한 것 이다.

그래. 당연한 것이다. 매우.

스쳐지나가는 공기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난 무엇을 구할려고 했던 것인가.

대답은 자명하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매우 역겹다.

그 무엇도 구할 수 없는것임은 이미 알고 있다.

역시 당연한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아주… 오랫만에 황야의 이리를 올때가 온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 자체도 역겹긴 마찬가지다.

간만에, 조금은 취한 사람의 헛소리 일 뿐이다.

자빠져 자는 것이 현명할 일이다.

당연한 것이다.

난. 봄을 증오한다.

조금씩 머리가 굵어지고, 세상에서 겨우 걸음마를 때는 순간부터,
난 봄을 좋아 할 수 없었다.

9년 동안 항상 그랬다.

그리고 올해 봄 역시 그럴 것 이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없다.

그렇게 되고 싶어서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닐진데,
내가 어째서 그런 말을 감히 할 수 있단 말인가.

무슨 권리로 내가 그 따위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오열 하고 싶지만, 그럴 힘 마저 나에겐 남아 있지 않다.

6 : 30 am

폴라리스…

그러니까 말이지.

공기속을 부유하는 하이얀 플랑크톤이 폐속에 들어오는거다.

딱히 아프다거나 고통스럽다거나 하는건 없지만, 목구멍이 점점 답답해져 오는거다. 동맥경화걸린 핏줄기의 덩어리 처럼. 그러다가 어느 순간엔가 늘 그렇듯, 아무렇지도 않게 표정이 굳어버린다.

피도 통한다. 당연히 심장도 뛴다.

요즘은 고탄 프로젝트의 Queremos Paz 라는 음악을 하루에도 마흔번은 넘게 듣는듯 하다.

입닥치고 길거리를 부유하기에 좋은 음악이다. 플랑크톤 처럼.

항상 그렇듯, 현상이나 해야겠다.

Seven Years.

뭔가 얼떨결에 노래방에 따라갔다.
아주 어렸을때는 나도 몇곡인가 찾아가며 불렀던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것도 쉬운일이 아니다. 단순히 신곡에 무관심하다거나 하는 문제도 있겠지만,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부를 수 있는 노래보다는 부를 수 없는 음악 혹은 부를 수 없는 노래쪽을 많이 듣게 되는 탓일게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노래를 부른다는 것이 에너지 소비가 많이 되는 일인데다 설령 그렇게 에너지를 쏟는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노래도 안되니 가끔은 같이 간 사람들에게 민망스러운 경우도 있다.

같이 간 일행중에 Don\’t know why 를 불러서 속으로 얼마나 깜짝놀랐는지 모른다. 그야 목소리 톤이라던가 창법에 있어서 차이라는건 어쩔 수 없는 것 이겠지만, 무엇보다 이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는 예상은 커녕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부분부분 미묘하게 어긋하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듣기 나쁘지 않은 목소리다.

나 또한 나름대로 예전 기억을 조금씩 더듬어 가며 몇곡인가 불렀는데, 당시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Don\’t know why를 부르는 것을 들으며 머릿속을 지나간 것이 있었다. 예전엔 패닉의 노래를 즐겨부르곤 했던것 같은데 한곡도 부르지 않았다는 거다. 웃기는 건 흘러가버린 사랑노래, 이별노래 이런것을 부르고 있으니 스스로도 놀랄수 밖에 없었다. 예전부터 그런 종류의 노래는 듣는건 나쁘진 않지만, 부르는 것은 좀 다른 경우이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있어선 쉽사리 할 수 있는 종류의 행동이 아니다.

어째서 그런것일까, 이런저런 이유들을 유추하고 생각하다가 그냥 관두기로 했다. 그냥 그게 더 좋을것 같아서.

일행과 헤어진후 날씨가 조금 쌀쌀한 편인데도 불구하고 견딜 수 없이 맥주가 마시고 싶어졌다. 주머니 속을 뒤져보니 5000원이 전재산이다. 작다면 작은돈이고 많다면 많은 돈이다.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근처에 살고 있는 K군 집에 미리 연락도 없이 불쑥 들어갔다. 괜히 그러고 싶을때가 있는 것 이다.

거기엔 Y군도 같이 있었다. 전에 빌렸던 7000원중 5000원을 갚았다. 조잔한듯 해서 괜히 미안스럽다. 자리를 잡고 뜨뜻하게 올라오는 전기장판의 열을 받으며 3편의 영화를 봤다. 담배를 피우고, 과자를 씹었다. 난 영화 한편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에너지를 집중해서 보는 편이라 왠만해선 하루에 한편 이상 보진 않지만, 오늘은 어쩐일인지 그냥 그렇게 되어버렸다. 머리가 지끈거리는건 평소때 상황과 다름 없지만, 나쁘진 않았다.

옷을 추스려 입고 Y군과 함께 집을 나섰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괜스레 기분이 미묘하다. 어둑어둑한 사람 하나 없는 길거리를 캔커피 하나씩 빨면서, 교차점에서 헤어졌다.

돌아와서 보니 코트가 제법 젖었다.

그냥, 그게 더 좋을것 같다.

괜히.

수염을 깎았다.

오늘보다 조금 못한 하루라도 좋으니까…

간단한 아르바이트 하나를 끝내고, 조금은 여유있게 시간을 보냈다.
항상 미안스럽게 민폐를 끼친다는 느낌은 자꾸 나를 찌르는데, 그런 미안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미안스러운 느낌이 불쾌하다거나 찝찝하진 않다. 단지 속으로 조금씩이나마 갚아나갈 일이 생길것이라 스스로 위안을 하는 것 정도가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일 이다.

괜히 기분상인지 실제로 인진 모르겠지만 오랫만에 미묘하게 좁다싶은 계단이 있는 커피집엘 갔다. 문을 열자 언제나 똑같은 조명과 똑같은 주인과 똑같은 아르바이트 생이 있다. 싱긋 눈인사를 하면서 괜히 쑥스러운 미소가 입가에 돈다.

왜 인지 모르겠지만, 괜히 숨을 폐속 가득 싶이 들이 내쉬었다.
순간 눈앞이 보이지 않고 오직 아득한 느낌만이 조용하고 부드럽게 온몸을 휘몰아 감는다. 그렇게 5초 정도 가만히 서 있었다.

가끔 그러고 싶다. 커피 한잔을 마시더라도 평소의 페이스와는 다르게, 설령 커피가 식는다 하더라도 조금씩 천천히 마시고 싶을때가 있다. 아마 오늘이 그런 날 일게다.

어찌 보면 딱히 특별할 일도 없는, 그런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다. 누가 그랬듯 같은 하루 속을 그렇게 몸은 훑고 지나가는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어쩐지 이런 미묘하고 사소한 공기의 떨림은, 오늘 같이 미묘히 기분이 저 기압이었던 나에게 한 웅큼의 온기를 부여해준다.

기뻐 미쳐 날뛸 정도의 것이 아니라도, 그냥 순순히 사람이 있고 별 하릴없는 그런 일상의 평범한 이야기들 속에서라도 특별히 표정이 드러날 것도 없는 조용한 타인의 미소와 나의 미소는 언제나 그렇듯, 나에게 있어서 다시금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하는 온기 일 것이다.

추신 : 주인장이 커피 드리핑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는데, 아름다웠다.

오전 6시 2분

.

© Wonzu Au / No use without prior permission other than non-commercial use. / 비상업적 용도 이외의 사전 허가없이 사용을 금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