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진학과에는 각 학기초에 한번씩 사진집을 판매하는 분이 오신다.
머리는 벗겨지고 피부는 살짝 삭은듯한 연한 구리빛에 질감은 어딘가 힘들게 살아온듯한 장사꾼의 늘어짐 같은것이 베어 있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비난스럽게 보이는 몸 때문에 약간 작아보이는, 조금은 호감이 생길 수도 있을법한 그런 느낌이다.
몇권 보던 중, 어쩌면 이미 예상을 했던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진짜 구입하고 싶은 사진집은 있었지만, 여느 사진집이 그렇듯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이 구입하기엔 상대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비쌌다. 인쇄된 사진에 행여나 지문이라도 묻을까 싶어 조심조심 한장 한장 넘겨 보던 중, 옆에 서 있던 삭은 구리빛이 조그만 보루지 상자를 열어서 주섬주섬 책을 꺼내기 시작한다.
정신차리고 보니 책 한권이 내 손에 들려있고, 이미 돈은 빌린 이후다.
책값을 굉장히 할인 받았다. 아마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도 혹은 너무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인지도 모른다. 손바닥 만한 조그만 사진집. 인쇄된 세종대왕의 얼굴이 꼭 비웃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 비웃는 세종대왕 하나를 건내주고 돌아섰다.
어쩐지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느낌이었다. 학교 앞 등나무에서 사진집을 보면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보고 싶었던, 가지고 싶었던… 모니터로 보는게 아닌 종이에 인쇄된 사진은 나에게 흥분을 가져다 주었다.
뭐, 일단은 이걸로 족하다.
내일 돈 갚기로 했다.
아무렴 그래야지. 이런 사진집을 구입하고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그 사진들에 대한 예의(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