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정말 갑자기 문득 생각난건데.

팩토리의 작업실엔 암실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세로 2미터 가로 2미터 정도 될까, 그 입구를 구성하고 있는 나무판에는
가끔 내킬때 사진을 붙여놓곤 한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 없이. 대강 대강 프린트 했던것들, 테스트 스트립들, 미스 프린트들, 작은 사이즈의 사진들을 마구 마구 붙여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잠시 동안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해 생각을 해 봤다.
처음엔 저러한 이미지들도 중요하게 인식이 되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음. 전혀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3~4% 정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또 뭐가 있을까. 아아… 왠지 조금은 알것도 같다.

그래서 조만간 이 공간을 채울 수 있도록 우드락에 얇은 코르크를 붙여놓은 싸구려 보드를 몇장 사서 붙여볼까 싶다. 접착력이 좋아야 할텐데 말이다.

사진들을 마구 토하고 싶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 접착력이 좋은 보드 위가 그 한계라는 걸 난 알고 있다.

Habit

대강 한두달 전쯤부터 사용하던 CDP의 리모콘에 문제가 생겼다.
내가 사용하는 기기는 본체엔 버튼이라곤 아무것도 없고 오직 리모콘으로만 조작이 가능하다. 당연하지만 음량조절도 그렇다.

어느 비오는 날 우산없이 비를 한껏 맞으면서 길거리를 주적주적 걸어가던 때가 있었다. 당연하지만 (?) 음악듣기 최고로 좋은 시간 중에 하나다. 아마 그때 빗물이 리모콘으로 흘러들어갔나보다. 그 다음날부터 음량조절에 문제가 생겼으니까.

고치기가 너무나도 귀찮아서 그냥 놔두었는데, 오늘 리모콘을 조작하다 너무 짜증이나고 무엇보다 짜증을 내고 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귀찮아진 덕에, 완전분해를 해버렸다.

무감하게 드라이버를 돌려서 모두 들어내고 뜯어내고 속 알맹이가 보였다. 볼륨부위를 들어내고 천천히 무감하지만 조심스러운 느낌으로 정리를 하고 닦아주었다.

테스트 해보니 새것처럼 작동이 잘 된다. 기분탓이겠지만 음질도 예전에 비해서 조금 더 클리어 한 느낌이다.
두껑을 닫고, 무표정하게 드라이버를 돌리고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5시간동안 연속으로 듣고 있다는걸 방금 눈치챘다. 이런건 오랫만인듯 한데, 아마 무의식적으로 난 음악을 들으면서 볼륨조절을 많이 했었던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예전엔 음악듣다가 뭔가 귀찮아져서 꺼버렸적이 몇번이고 있었던것 같다.

아주 작고 사소한 수리행위였지만, 난 그 이상의 크고 부드러운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하루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하루종일

내 머리속 뇌수가 납물로 변해 버린체 하루종일
머리를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

무엇 하나가 소멸해버렸다.

라고 느껴진다.

추석.

담배가 다 떨어진지 몇시간이 지났다.
담배피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한밤중에 이런 사태가 발생할땐 참 난감하다. 바로 코앞에 있는 가계도 나가기가 귀찮아 진다.

밤 11시를 넘어서 털래털래 몸을 추스리고 담배를 사고 돌아오는 길 이었다.
나이는 30대 말에서 40대 초반, 약간 얇으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안경태가 반짝이고 있고 머리 숱이 풍성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적은건 결코 아닌, 약간 푸른빛이 도는 회색의 정장을 입고 있는 사내의 손에는 추석에나 어울릴듯한 느낌의 선물이 담겨있음직한 종이 백이 들려져 있었다.
주위를 한번 두리번 거리더니 그 사내 정면에 버티고 서 있던 여관 문속으로 \’스~윽\’ 하고 스며들어버렸다.

여러가지 상상들과 이미지들이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전시회가 끝났다. 그리고

여러가지 일도 많았고 말도 많았고 좋은의미와 나쁜의미로 많은 것을 경험 할 수 있었던 전시회가 끝났다.

그간 전시회에 찾아주신 분들에게 너무나도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난 앞으로도 계속 작업을 할 것이다.

추신 : 전시회에 오지 못하신 분들을 위하여 조만간 웹 갤러리를 통해  전시할 예정이다. 그야 오리지널 프린트의 느낌에 비하면 그 느낌이라는 것이 상당히 달라져 버리겠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웹 전시를 하지 않을 순 없다.

필름 일안 리플렉스 카메라 F6

발매 확정.

추신 : 예전엔 앞에 \’필름\’이라고 쓰지 않았는데 말야. 하지만 어떤 면에선 오히려 그래서 기쁘달까.

사진집을 한권 구입했다.

보통 사진학과에는 각 학기초에 한번씩 사진집을 판매하는 분이 오신다.
머리는 벗겨지고 피부는 살짝 삭은듯한 연한 구리빛에 질감은 어딘가 힘들게 살아온듯한 장사꾼의 늘어짐 같은것이 베어 있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비난스럽게 보이는 몸 때문에 약간 작아보이는, 조금은 호감이 생길 수도 있을법한 그런 느낌이다.

몇권 보던 중, 어쩌면 이미 예상을 했던 심각한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진짜 구입하고 싶은 사진집은 있었지만, 여느 사진집이 그렇듯 나 같은 가난한 사람이 구입하기엔 상대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비쌌다. 인쇄된 사진에 행여나 지문이라도 묻을까 싶어 조심조심 한장 한장 넘겨 보던 중, 옆에 서 있던 삭은 구리빛이 조그만 보루지 상자를 열어서 주섬주섬 책을 꺼내기 시작한다.

정신차리고 보니 책 한권이 내 손에 들려있고, 이미 돈은 빌린 이후다.
책값을 굉장히 할인 받았다. 아마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도 혹은 너무 가지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인지도 모른다.  손바닥 만한 조그만 사진집. 인쇄된 세종대왕의 얼굴이 꼭 비웃는 것 처럼 보였다. 그렇게 비웃는 세종대왕 하나를 건내주고 돌아섰다.

어쩐지 손바닥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느낌이었다. 학교 앞 등나무에서 사진집을 보면서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보고 싶었던, 가지고 싶었던…   모니터로 보는게 아닌 종이에 인쇄된 사진은 나에게 흥분을 가져다 주었다.

뭐, 일단은 이걸로 족하다.

내일 돈 갚기로 했다.
아무렴 그래야지. 이런 사진집을 구입하고 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으면 그 사진들에 대한 예의(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다)가 아니다.

.

오늘은 썩은 수박물로 젖으면 좋을 것 같다.

뭔가 쓰고 싶은 말이 잔뜩이었는데

박쥐 라벨이 붙어있는 바카디로 머리를 푸욱 젖게 만들고 싶어지는 그런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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