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Nikon Sprit.

사진학과엔 1년에 한번씩 Nikon의 정기순회 서비스를 도는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약간 수더분한듯 하지만, 노련해 보이는 a/s 기사분이 두분계시고 상당히 젊은 어시스턴트 한분이 있었다.
어떤 카메라들이 있는가 봤더니, 전부 옛날 기계식 수동 카메라 뿐이었다.
내가 보기엔 사용하다가 맡긴게 아니라 오랫동안 어딘가 쳐박혀 있던
느낌의 카메라들이다. (어째서 알 수 있냐고? 척 보면 단박에 안다)

기사분들도 약간 탈력인 느낌이랄까. 자기 나이보다도 많은 카메라
수리를 하고 있어야 하냐?! 라면서 약간 쓴웃음을 허허 지으며 클리닝을
하고 녹아버린 고무와 패킹을 조심스럽게 녹여내고 새로운 부품으로
정성스럽게 갈아주고 있는 모습을 봤다.

전자식 수동 카메라는, 내 F5와 F90X가 전부.

아아. 요즘 캐논 많이들 쓰죠? 라며 약간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내가 니콘에서 일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난 니콘 카메라를 좋아한다고
역시 카메라 라고 한다면 이런 느낌이어야만 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이
담겨 있는 말이었다.

F5를 보시더니, ‘아아…’라는 소리도 되지 못할정도의 짧은 탄식을 지으며
슬며시 미소를 띄는게 보인다.

‘참 좋은 카메라 입니다.’ 라고 말하자 난 짧게 대답한다.
‘네. 많이 낡았죠.’

다른 사진학과쪽은 잘 모르겠지만, 경성대쪽은 확실히 캐논쪽 유저가 많은것이 사실이다. 실리적으로 보더라도 현재 디지털 쪽에 있어선 Canon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예전에 니콘을 쓴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계속 필름을 사용한다고 하더라도 장래성(이건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을 생각한다면 디지털로의 이행을 생각했을때 Canon을 선택하는 것은 상당히 납득이 되고도 남음이다.

대단히 강한 오만적 편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아니라고 본다. 하하하. ) 캐논의 것은 ‘카메라’ 라기 보다는 단순히 사진찍는 기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런 느낌이다. 뭔가 사진찍는 사람과 기계간의 어떠한 공명감, 공기감이 느껴지지 않는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사진찍는 전자기계(필름 카메라라고 할지라도)의 느낌이 강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러한 생각은 ‘바디 의존적 사진’을 찍고 있는게 아니냐 라는 쪽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누군가 그랬듯, 어느 정도 경력을 가지고 있는 사진가의 경우, 그 사람이 어떠한 카메라를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어떠한 사진을 찍고 있는지 대강 짐작 해 볼 수 있다고 한다.

글쎄, 어쩌다가 이렇게 장황스럽게 쓸때없는 소리를 써재끼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요는 간단하다.

Canon은 Sprit이 없지만. Nikon은 Sprit이라는게 존재한다고 느낀다.

추신1 : Canon을 쓰시는 분들에겐 대단히 죄송스러운 이야기겠지만, 그냥 어떤 니콘 팬의 투덜거림(?)정도로 봐준다면 좋겠다.
추신2 :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DSLR을 하나 구입하라면 난 1Ds를 살꺼다. 이건 어쩔 수 없거든.
추신3 : 이렇게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Canon New F1의 광적인 팬이다.

I got the feelin.

삘 한번 받으니까,
몇일 동안 끙끙대도 안되던것이
5분도 안되서 끝났다.

세상에.

추신1 : 역시 억지로 하는건 영 체질이 아닌가 보다.
추신2 : 찰스 브라운, 썅! 당신을 존경해. 정말루.

흰색, 붉은색, 검은색 잉어.

어떠한 동공감 이라는 것은 항상 미묘한 마취감을 가지게 만든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무엇인가, 계속 하고 있는데 문득 동공감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아무생각 없이 일은 계속 하고 있고, 머리 속은
점점 마취가 되어가는 그런 느낌 말이다.

무엇인가 한쪽에선 한 단어를 들고 있고, 나머지 한쪽에서는 그것과
짝이되는 단어가 있는데, 영원이 그 단어 둘이서 만날 일은 없는 것 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꼭 맞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따위는 기본적으로 존재 할 수 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체험적으로 나마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해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조금은 이해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무한반복속에서 마취감은 점점 저려오듯 온 몸으로 퍼지고
마지막엔 그러한 마취감 자체가 지릿지릿한 고통으로 와닿기 시작한다.

따뜻한 볕이 느껴지는 한가로운 오후에, 조그만 인공호수 속에
있는 사람팔뚝보다도 훨씬 큰 비단잉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현기증이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아서, 잉어를 찍지 못했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회복하는 기간이다. 그런것으로 다시 나 자신을 깎아가며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진 않다.

어, 나 겁 먹은건가?

매트.

믿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말을 듣는 다는 것은 많은 힘이 된다.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안개가 다소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원천적인 문제해결 – 애초부터 이런게 가능할까만 – 은 아닐진
모르겠지만,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지난듯 하다.

완성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제부터 비로서 시작이다.
항상 그랬듯.

몸살.

실은 몇일 전 부터 목구멍 안의 편도가 조금씩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 했다.
이 정도의 것은 평소에도 가끔씩 있는지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일 동안 여러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그리 녹녹한 일들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생각내보면 그리 대단찮은 일이지만, 쌓이다 보니
꼭 그런것만 같지는 않다.

어젯 밤에 마저 남은 작업을 하다가 코에서 뜨뜻한 액체가 나왔다.
콧물인가 싶어 훑어보니 붉고 끈적한 코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가래를 쏟아냈다.연신 쉴새 없이 콜록 거리며 기침을 밷어내고 있다. 어제 돌아 오는 길에 약국에 들려 약을 한봉 구입했다.
약사 말로는 보통 그러한 상태는 몸의 컨디션을 알려주는 신호등과
같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래도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제법 그리 심하게 나쁘진 않았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견뎌낼만 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한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가끔은 이런것도 좋겠지만, 정말이지 뭔가 아무것도 없는체
하루가 사라지는 느낌은 너무나도 허허롭게 느껴진다.

건강한게 최고다.

방금전에 꿀차 한잔을 마셨다. 조금은 괜찮아 지겠지.

안경.

앞으로 어떤 문장이 쓰여질지 전혀 짐작가지 않는다.
아뭏든 뭔가가 끄적거리고 싶어서 일기장을 열었지만,
무엇을 써야하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나는 안경을 벗고 잘 보이지 않는 모니터를 눈을 찡그려 가며
보고 있다. 안경을 쓰면 당장에라도 이 불편한 상태가 해소 될 것임은
분명이 알고 있지만, 그냥 있기로 한다.

입에는 88 골드가 물려있다. 앰프는 꺼저있고 컴퓨터의 냉각팬 소리만
위잉 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언어, 혹은 말 이라는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이과 관련된 주제의 일기는 짧막하게나마 몇차레 주절거린적이 있다.
언어는 사고시스템과 직결된다고 한다. 그 사람 혹은 종족이 가지고 있는 어휘가 작다면, 느낄 수 있는 세계도 작다는 것이다.
언어는 세계를 재단하고 카테고리화 하고 기준을 만든다.
때문에 위의 말은 틀린게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이누이트족의 경우 눈(雪)과 관련된 단어만 33가지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기껏해야 약 4~5가지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 이라고 해서,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아닐것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적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추상적인 표현에 있어서 언어의 한계(난 이것을 한계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가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 또한 1차적인 의미에서의 경우고, 이러한 한계 자체를
하나의 표현방식으로써 응용하게 된다면, 또 다른 무엇인가가 표현가능하게 된다고 난 생각한다.

어떤 사람 2명이 있고, 대화를 한다.
명사만을 사용한 대화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인가 뜻 혹은 감정을 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게 부르는 단어만 전달이 되었을 뿐 그것에 연결되어진 관념은 개인마다 다르게 이어지게 된다.

‘무엇’이 눈 앞에 있고(혹은 느껴지고), 그것을 말 해야 한다면 기호만 같고 뜻은 서로 다른 오해가 생겨지는 경우 또한 많은 듯 하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경우와는 별도로

같은 맥락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은 둘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은 둘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

둘 중에서 꼭 하나만 선택하라면 난 후자 쪽이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걸 끄적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아니 어쩌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인가 답답한 느낌에 쓴것 임에는 분명하다.

갑자기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경우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쎄, 따지고 보면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여전히 난 안경을 벗고 있고, 그 덕에 모니터의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난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쌀을 있는데로 다 찌푸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다. 그야 안경을 쓰면 잘 보일것 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곧 자야 할 시간이다.

프린트 III

프린트가 끝났다.

수세기에 물을 채워넣고 인화지를 넣었다.

잠시 후에 인화지의 물기를 짜내고 건조대에 널어 놓으면 끝이다.

하지만, 뭔가 텁텁한 기분.

프린트 II

거의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

프린트.

학교를 마치고 사진재료상에 들려, 인화지를 샀다.

ILLFORD의 Wormtone 인화지는 좋아하는 인화지 중 하나다.

아무래도 웜톤인화지기 때문에 최대 하이라이트 농도가 조금 떨어지는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포드의 인화지 이기 때문에 하이라이트의 재현력은 그래도 좋은 편이다.

포트레이트 혹은 Jazzy한 사진에 잘 어울리는 톤을 가지고 있지만,
처리를 다 한후에 셀레늄 토닝을 하고나면 뭐라 말하기 힘든 ‘미묘한’
톤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냥 따뜻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성의 밋밋한 느낌도 아닌.

총 16장의 프린트를 해야 하는데,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RC라면야 ‘훗…’ 웃어 줄 수 있지만 말이다. 그나마 11×14라서 다행이지.

그래도 좋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축복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괴롭히지 말아라고 했지만.

내가 괴롭힌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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