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6시? 쯤 되어서 잠이 들었다.
중간에 살짝 깬것 같은데 눈 앞에 어둡고 붉은 빛이 보였다.
사방은 아주 조용했다. 저녁인가? 새벽인가?
생각하기도 귀찮았다. 확인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꿈결속에 핸드폰 문자알람 소리가 들린다.
그대로 다시 잠 들었다. 그 사이 2번인가 이러한 짓을 반복했다.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때 햇볕이 보였다.
억지로 억지로 몸을 바둥거리며 일어났다.
몽롱하게 나와서 남아있던 오렌지를 찾아냈다.
오렌지 나이프로 껍질을 생선 배가르듯 갈라내고
껍질을 벗겨냈다. 우물우물 한개씩 씹었다.
오렌지를 먹고나면 잠이 좀 깰것이다 라는 심산이었다.
하지면 효과는 없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10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세상에 18시간 동안 잠을 잤다. 오렌지를 먹어도 몸이 돌아올리가
없다. 세포들이 아직 잠에 취해서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이럴땐 가볍게 구보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인터넷이 되지 않길레, 전화를 해보니 전혀 알아들 을 수 없는
전문적인 용어의 이유로 17시 이후 사용 가능 하다고 한다.
날씨는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쁜 날씨도 아니다.
갑자기 생긴 시간을 어떻게 사용 할 것인가 생각하다가
책이나 읽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인터넷이 오후 3시쯤에 재개통 되었다.
조용하고 한가한 시간이 항상 좋은것은 아니다.
당연한거지.
내가 줄껀 사진 밖에 없다.
가끔은 스스로 밷은 이 한마디에 스스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지금의 나로써는 어쩔 수 없는 일이기에, 체념을 할 뿐이다.
언젠가는…
변해간다와 망가진다 라는것은 동의어가 아니다.
하지만 망가진다 라는것 자체는 예전에 어떠한 상태에서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해가는 흐름을 말한다고 상정한다면,
부정적인 의미로써 변해간다 라는 것은 망가진다와 비슷한 용법으로
종종 이용이 되고 있는 듯 하다.
아닌 사람도 당연히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듯 싶다. 뭔가 변해간다는 것은 어떤 서글픔을 동반하기 마련인 것 인지도 모르겠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이 변해가고, 추억이 사람이 사랑이 변해간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어떠한 부정적인 변함 이라는 것 마저도 그러하기 때문에 비로써 내일에 대한 희망이 있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추신 : 하지만 사람 변하는 것엔 대책 없는게 아닌가 싶다.
전 수업이 일찍 마치는 덕에 다음 수업까지 한시간 정도의 시간이 생겼다.
정보관에 있는 자판기에서 백원짜리 하나와 십원짜리 다섯개를 넣고
커피를 뽑았다. 조금씩 홀짝 거리며 학과 건물로 갔다.
학과사무실에 이유없이 놀러가선 뜬금없이 오르골을 구경했다.
살랑 나와서 학교 암실 공사되는것과 드라이마운트 프레스의 전기연결이
되었는지를 살펴봤다. – 전에 이게 작동하지 않아서 낭패본적이 있다. 그것도 몇일 전에. 그러고 보니 동아리 전시때 나머지 프린트가 사라졌다.
아는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한 중요한 프린트인데, 혹시나 누군가 본적이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 과 건물을 나서서 법정대 옆에 있는 야외휴게실에 앉았다. 담배를 한모금 빨면서 짐노페디를 들었다.
햇볕이라는건 느껴지는데 아직까진 햇살의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추워서 강의실에 먼저 들어가기로 했다. 여자 네다섯인가 그릇이 깨질것 처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묵묵히 걸어서 창가쪽 책상에 자리를 잡고
햇볕이 들어오는 것을 애써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한참 책을 읽다 문득 정신 차려보니 사람들이 제법 많이 들어와있었다. 시간을 보니 아직까진 괜찮다. 또 짐노페디가 들린다. 읽던 책을 잠시 덮어두고 2층 강의실의 창밖을 보았다. 무엇인가 사람들이 바쁜듯, 무료한듯, 대학생 특유의 무료감이 느껴진다. 차 몇댄가 줄지어 누워있고 그 뒤로 시멘트로 만들어진 녹색의 농구 코트가 있다. 공 따라서 우르르 우르르 몰려다니는 그런 전형적인 게임 내용.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듣다가 책 읽다가 수업 듣다가 책 읽다가 (이상하게도 중요한 내용은 빠지지 않고 잘 듣는다. 본능적으로) 그렇게 반복하다가, 아무생각 없이 창밖을 보았다. 30분 전과 아주 비슷한 풍경이 계속 보인다. 앗차, 중요한 내용을 놓쳐버렸다.
카메라 생각이 났다. 찍고 싶다.
아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5~6년 전까지 소니에서 나온 상당히 작고 가볍고 튼튼하고 음질이 좋은
D-777을 사용했었다. CDP야 디지털이니까 어느 것 이라도 음질이
같아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CDP의 음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D/A 컨버터의 품질,
회로의 심플함, 그리고 볼륨에 사용되는 저항의 품질이다.
D-777의 경우 이 모든것을 충족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디자인 만큼은 요즘에도 먹힐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CDP 본체에 아무런 LCD가
붙어있지 않았고 대단히 심플했었다는 것이다.
이어폰도 제법 성능이 좋은것을 따로 구입해서 들었었다.
거리를 걸을때, 학교에 갈때, 기분이 좋을때 혹은 나쁠때, 우울할때, 날씨가 좋을때 혹은 흐릴때, 비가 올때 혹은 맑을때…
음악을 들으면서 거리를 걷다보면 다르게 보일때가 있다.
혹은 더 절절히 와 닿을때가 있다. 예전에 사용 헀던 CDP가 완전히 고장난 후(4년 정도 사용했던것 같다) 이동형 음향 재생기기를 구입하지 않았다. 항상 음악을 듣고 다녔기 때문에, 음악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듣기 위한 따위의 돈을 투자 할만한 여력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최근 내 형편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무리를 해서 CDP형 MP3 플레이어를 구입하게 되었다. 대략 5~6년 만에 이동형 음향재생기기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바깥 세상에 있을때의 음악에 대한 욕구’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었것 보다는 상당히 강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귓구멍에 이어폰을 쳐박아 놓고 걷다보면 자신과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와의 얇은 피막이 생길때가 종종 있다. 이 느낌 또한 상당히 멜랑콜리하면서도 쿨한 느낌이라서 좋을때가 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간혹 그러한 느낌이 좋지만은 않을때가 있다. 그렇게 입술을 닫은체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걸으면서 문득 귓구멍에 있는 이어폰의 존재를 순간적으로 느낄때가 있는데, 그 느낌이 사뭇 무섭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역시 ‘입술을 다문체…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라는 느낌은 나에게 있어선 특별한 양식으로서 나의 감각기관에 자리를 잡고 있다.
No music, No LIFE.
추신 : 당신은 길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