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걷다.

비교적 옛날 (이라곤 해도 불과 몇년전의)엔 난 천천히 걷고 그랬다.
꼭 풍광이 좋은곳뿐만이 아니라도, 매연냄새가 가득한 남포동에서든 바닷가에서든
나의 걷는 속도는 느릿했다.

빠른걸음으로는 모르는 풍경들이 있다. 천천히 걸으면 주위의 풍경들이 왠지 달라져 보인다.

시간이 제법 지나고 군대를 다녀오고 전역을 한후 시간이 제법 지났다.
갑자기 깨달은 사실인데 난 걸음이 예전에 비해 제법 빨라졌다.

가끔 혼자 길을 나설때 나의 걸음은 예전의 것과 비교하자면 마치 달리는것과 비슷한정도로 빨라질때도 있다.

또한

가끔 혼자 길을 나설때 나의 걸음은 거의 멈춰있는것과 마찬가지 일정도로 천천히 걸을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의 첫째 조건은 같이 걷는 사람이 없어야만 할 수 있는것이다. 아무래도 같이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어느정도 페이스를 맞출수 밖에 없는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한 불쾌함 혹은 귀찮은 같은건 그다지 없다.
같이 걷는 사람이 있다는것은 혼자걷는것 이상으로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난 어떠한 하나에 생각이 빠지게 되면 다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음이라던가 호의라던가 그런것은 가슴속에 있음에도, 심장은 나에게 그 어떠한 생각 하나에 집중이 되어버리도록 만든다.

그다지 오해는 없었으면 좋겠다.

선풍기를 꺼내다.

삼 사일전쯤이었을까.

딱히 날씨가 덥진 않았지만, 선풍기를 꺼냈다. 먼지쌓인 비닐을 벗겨내고, 뭍어있는 먼지를 대강 닦아내고, 전원을 올렸다. 1년 조금 안되는 시간만에 선풍기는 잠을 깨고 일어나서 바람을 만들어 주었다.

좋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비가 온다. 선풍기는 잠을 자고 있고, 약간 쌀쌀한 날씨덕분에 가스히터를 틀었다.

좋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선풍기를 조금 늦게 꺼내도 괜찮치 않았을까 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엎어치나 돌려치나 꺼내야 하는건 매한가지다.
‘어짜피’ 꺼내야 하는것 이기 때문이다.

두둥실 코끼리

밤 3시 반쯤. 담배가 떨어져 편의점엘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갑을 열어 담뱃값을 꺼내는데, 어쩐지 묵묵히 지갑을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그다지 적지않은 돈이 들어있긴 하지만, 이리저리 나가야할 종이조각들.

처음엔 담배 2갑을 살려 마음먹었는데, 왠일인지 ‘아저씨 담배 4갑 주세요’라고 말해버렸다. 평소에 항상 한갑 혹은 두갑씩만 사던 내가 갑자기4갑을 달라고 하자 점원은 ‘네? 4갑요?’ 라고 한번 확인을 하고 4갑을 건내주었다. 그리고 난 돈을 건네주었다.

확실히 여름이 다가옴을 느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여름이 오고야 마는것이다.
하지만 난 흰색 반팔 셔츠를 하나 입었을 뿐이었고 밤공기는 의외로 조금 쌀쌀하게 느껴졌다. 돌아와서 암실입구쪽에 있는 골판지들이 땅에 붙어있는걸 보고 한번 벽에 다시 붙여봤지만, 땅에 다시 붙는다.

두번정도 그렇게 하다가. 그냥 무덤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다시 앉았다. 담배 한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무감히 스쳐가는 담배맛, 무감히 나의 몸을 스친다. 언제나 그렇듯 거의 일주일째 한번도 쉼없이 돌아가는, 동그마니 소리를 내는 냉각팬 소리, 투닥토다닥 토해내는 키보드 소리, 어딘가 아주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제법 비슷하게 중요할법한 어떠한 젤리같은 덩어리가 들어갈만한 공간이, 그곳에 있어야할 젤리같은 것이 비어있는 공허함을.

그래서, 난 작업실을 재정비하기로 마음 먹는 中이다.

무척이나 무거운 코끼리가 버둥버둥거리며 둥실둥실 떠있는게 보인다.

점심.

오늘 오후에 가족과 야외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라고 해도 어딘가 가서 사먹는게 아니라..
간단한 피크닉 정도로 생각하면 좋겠다.

어찌되었건, 어머니께서 야외에서 먹을 대강의 음식들을 해서는
이걸 빌미로 보고싶어하는 아들놈의 얼굴을 보는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 식사라는것은 간만에 가족끼리 얼굴을 보는 자리가 되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 중에서도 아침이나 저녁때 먹는 식사와는 다르게
가족이 점심때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건 어쩐지 느낌이 다르다.

그냥. 점심때 가족끼리 식사한다는게 어쩐지 느낌이 다르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침묵 II.

말을 해야만 할때 혹은 꼭 하고 싶을때 혹은 꼭 해야만 할때가 있다.

하지만 보통 그럴땐, 말 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아픈가?

아픈가? 살아있는 증거다.

그런데, 그래서 어쨌다구?

그냥, 그런거야. 바보.

공기 통풍기 소리.

내 암실에는 암실내에 나쁜공기를 빨아들이기 위한 통풍기가 하나 있다.
암실에서 발생하는 약품 가스를 빨아들이기 위한 목적이다.

이것이 없이 그냥 밀패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게 되면, 머리가 띵해진다던지 몸이 늘어져버린다던지 등의 현상이 발생한다.

왜 갑자기 이런 글을 쓰냐면…

나에겐 통풍기가 필요하다고 쓰고 싶었다.

간절히.

사람을 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들은 참으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물론 어느정도 카테고리 별로 분류를 할수도 있을수도 있겠다.

그러한 ‘카테고리’ 혹은 ‘타잎’이라는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어느정도 그 분류에 사람을 끼워넣을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러한 분류법은 참으로 효용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참으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아.. 이 사람은 이런 타잎이라군..이라고 분류가 되어버린다.

이런에 일을 하게 되면서 나름대로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면서 일을 하고, 혹은 같이 일을 하게 되었다.

어떤의미에선 나에게 있어서 신선한 경험이었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하지만.. 어떠한 측은함이 느껴지는것은 어쩐일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확하게 어떠한 종류의 단어나 문장으로 만들긴 힘들지만…
뭐랄까… 역시 나에겐 입술을 오랫동안 닫은체 말없이 셔터를 누르는것이 좋다는것을 다시금 확인 할 수 밖에 없었다.

좋은것인지, 나쁜것인지 알 수 없다.

입을 다문다는것.

아무말 하지 않고 오랫동안 입을 다물고 있을때의 느껴지는
입술근육의 느낌을 나는 참 좋아한다.

오랫동안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붙어있는체.
마치 연약한 자석이 어렵사리 단단하게 붙어있듯, 묵묵한 무게감이 전해지고 마는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오랫동안 있다보면 입술주위에 근육또한 마찬가지로 묵묵한 움직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좀더 있다보면, 윗입술과 아랫입술은 입술껍질과 약간의 타액으로 인해서 둘은 붙어버린다.

그럴때면 나는 슬그머니 입술근육을 위 아래로 벌려본다. 물론 입술이 떨어지진 않게.

미묘한 저항감이 몸전체에 퍼저든다.
그리고나면 왠지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하지만.. 이런것보다 더 좋은건, 물을 마시기 위해서 입술을 벌리고, 그 속에 차가운 물들이 입술을 적시고 목구멍으로 흘러들어가는 느낌이 좋다.

그런것을 모두 포함한것이… 나에게 있어서 입을 다문다는 것이 아닐까… 라고 그냥 쓰고 싶어졌다.

물론…. 별 뜻은 없다…. 별 뜻은…

침묵.

침묵 하고 싶어질때가 있다.

하지만 보통 그럴땐, 침묵 할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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