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스트레스.

이리저리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다보면 (설령 그 일이 시간이 적게 걸리고 해도 밀도가 높은 일이라면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기관지 아래쪽부터 십이지장을 지나 위속까지 바짝바짝 마르는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시간이 지나면 뭔가 결과물이 나와주면 좋을텐데 해결책이라던지 결과물은 아직까지 첩첩산중이고, 왠지 ‘걸어가야 될 길이 멀다’라는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기 시작하면 괜스레 차가운 물 한모금 마시고 털털거리면서 하늘한번 보고 담배한대 피우면서 시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기운이 난다 싶으면 다시 달려든다. 그리고 또 지치고 또 차가운 물 한모음을 찾고 담배 한모금을 태우고 하늘한번 쳐다보고 또 쉰다.

뫼비우스의 띠라던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이라던지 그런것 까진 아니라도 계속 반복하다보면 제법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옛날엔 그다지 신경질적이거나 짜증을 자주내는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엔 자잘한것들이 날 짜증나게 만든다.

그래도 좋은 사람과 두런두런 이야기 하는것은 좋다.
무덥지근한 여름속에서 시원한것들은 참 좋다.
맛있는것을 먹는것도 좋다.
차갑게 식혀진 송글송글 이슬이 맺혀있는 맥주 한모금도 좋다.

사진을 거의 한달넘게 찍지 않고 있다.

여름.

가람이가 얼음 주머니를 만들었다.
시원한 느낌에 몸이 스르륵 풀린다.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팥빙수를 먹으러 갔다.

작업실을 나서서 국제시장 빙수골목까지 너털너털 걸어갔다.
약간은 무덥지근하지만 바람은 낮의 끈적임보담 훨씬 상쾌한 느낌이었다.
3명이서 자리를 잡고, 늘 가던 빙수집에 아줌마 얼굴을 보며 눈인사를 했다.

‘빙수 3개 갈아주세요’

서걱서걱 하는 소리, 그때 불어오는 여름 밤 특유의 바람냄새
말없이 빙수를 먹었다.
그릇을 달란다. 더 주겠다는 말이다.

그것도 시원하게 먹었다.
먹는 도중 잠시 멈추고 주위를 봤다.

오른쪽 다른 빙수집에 앉은 여자 손님 둘, 백열등 불빛때문에 피부가 멋지게 보인다. 화장품 가계도 있고 뒤엔 사람들이 계속 지나간다.
손님이 없는 빙수집에서는 빙수 한그릇 들고 가라고 행인에게 소리친다.

바람은 좀더 선선해졌다. 무척 부드럽고 달큰하고 담백한… 그런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피부에 와 닿는 공기는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담배 하나를 물고 다시 터벅 터벅 걸어서 작업실로 돌아오는 길.

바람은 날 행복하게 해 주었다.

여름엔 팥빙수가 맛있는 계절이다.

해운다 아침바다.

어제 술을 아침까지 아주 과하게 마시고 (그런데도 전혀 취하지도 않고 잠도 전혀 와주질 않았다) 어떤 사람이랑 해운대 백사장을 타박타박 걸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아침에 조깅하는 사람들(외국인도 다수 있었다) 모래를 해변가에 퍼부어 모자라는 모레를 채워주는 불도저들, 어딘가 전혀 조깅할것 같이 안보이는 어떤 아주머니처럼 보이는 사람이 출렁출렁 뛰어가는 모습.
정체를 알 수 없는 중학생정도의 꼬맹이들이 빤히 쳐다보고 가는 모습. ‘수영금지’라는 깃발이 힘없이 펄럭이는 모습.

앉았다.

내 옆사람은 휘파람을 휘휘불면서 있었다.
담배가 떨어져 답답해 하다가 어기적 어기적 걸어가서 담배한갑을 사서 입에 물었다. 맛이 좋다.

조금씩 해가 오르고 (해운대에서는 해오름이 보이지 않는다) 하늘빛도 변해간다.

옆사람은 갑자기 알러지가 있다면서 콧물을 흘렸다.
"무슨 알러지가 있는거죠?"
"아. 피곤하면 콧물이 나오기도 해"
"특이한 알러지군요"

단어로는 표현하기 힘든 몇억만가지의 파란색들이 눈앞에 있다.
여전히 사람들은 어딘가로 걸어간다.
8명정도 되는 일행중에 물에 빠진듯한 느낌의 귀여운 여자가 젖은 머리칼과 주적주적 젖어있는 원피스 옷을 바라보면서 왠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 또 하늘이 변했다.

머리를 높이 쳐올려 바라보니 정면으로 바라봤을때의 하늘색과는 또 다른 정말 눈이 아픈 파란색이 들어왔다.

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옆 사람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록키를 휘파람으로 부르기도 했고 나는 잘 모르는 흘러한 옛 팝송을 흥얼거리며 노래하기도 했다.

‘유리 조각이 하나 있으면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해운대 바다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박하향 담배.

월요일 아침. 갑자기 뭔가 답답한 마음에
일기장의 글을 쓰려 했지만.. 뭔가 아무것도쓸수 없었다.
무심히 본 테이블에는 박하향 담배가 있었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는 바람한점 없는 공간사이에서 내 얼굴을 타고 올라가고
깊은 한모금을 빨아들인후 한숨을 토하듯 패속에 있는 연기를 토해낸다.

뭐가 문제인가.

그래 왠지 그런건 아무래도 좋을것 같다.
지금은 그저 박하향 담배와 연기가 섞인 찐득한 한숨을 토해낼수있는
그런것 만으로도 어떤 사람의 백마디 천마디의 말… 보다도.
나를 스며들듯 감싸준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보면 좋을 일이다.

복잡한듯, 스스로를 위한 위로, 끈적끈적한 자신에 대한 측은함.
그리고 그러하기 때문에 오는 스스로에 대한 어떤 감정들의
토사물, 그 속에서 스스로에 대한 무책임한 맞섬, 회피 따위는.
징글징글하다.

그것은 귀찮은 일이다.

때로는 역겹기도 하다.

때로는 짜증나기도 한다.

말하고 싶어지는것을 막아버리게 되어버린다…

하지만…. 의연히 그 자리에 서 있고..
카메라를 들고 서 있는다.

왜?

이유는 모조리 다 박하향 담배 때문이다.

필름 현상.

100피트 필름 깡통에 들은 빽뺵히 들어찬 필름들을 물끄러미 본다.
아아.. 양이 너무 많은데 언제 하지..싶었다.

그렇게 이틀, 삼일 지나고나서 필름 현상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말없이 현상할 필름을 준비하고, 필름 픽커로 필름 매거진 안에 들어있는 필름을 뺴내고, 현상탱크를 준비하고, 암백을 준비한다.
손에 차고있던 손목시계를 벗어던지고 필름을 현상탱크에 감아넣는다.

현상약품의 온도를 맞추고, 정지액과 정착액을 준비한다.

그리고 약품을 집어놓고 현상을 시작한다.
그렇게 3종류의 약품이 지나가고 나면. 필름에는 어떠한 ‘상’이 떠있다.

어제는 16롤을 현상했다. 약 570컷정도의 분량이다. 필름 현상이라는건 상당히 체력소모가 크고 피곤한 일이다.
새벽 3시 30분에 시작해서 아침 7시를 넘어서야 겨우 끝이났다.

허리가 무척아팠다. 갑자기 몸살기운이 들고 무척 추웠다.

그렇게 잠들었다. 가람이녀석이 중간에 날 깨워 약이며 파스를 사다 붙여주었다.

그리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 사이에 누군가 온것 같았다. 갑자기 짜증이 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잠이 깨었다. 저녁 8시.

조금 정신차리고 일어나보니 영욱이가 있었다.

너무 몸이 않좋아서 잠시 바깥으로 산책을 다녀왔다.
무척이나 춥고. 아프다.

돌아오는 길에 약국에 들려 가루약 4봉지를 샀다.
한봉을 먹고나니까 머리의 두통이 조금은 가라앉는듯 하다.

허리의 통증도 아침에 비하면 많이 편해졌다.

지금껏 수백롤의 필름을 현상했지만… 필름 현상후에 이토록 아픈것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냥…

조금 기대어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필름은 필름 스캐너에 스캔을 당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것들이 뭘 의미하는건지.
뭘 말하고자 하는건지. 그래서 뭘 어쩌자는 건지. 그런거에 대해선
난 잘 모르겠다.

그런건 머리 아프고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뭔가 이토록 매달리는 것에 대해서 어떤 ‘정당한 이유’따위의 것이 있으면 조금은 편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 뭐 아무렴 어떻냐만……..

추신 : 머리가 아픈상태에서 적다보니 뭔가 횡설을 한것 같다. 이해 해주시길.

마른 하늘의 벼락 맞기.

나름대로 조그만 일을 하려고 하다가..
그래. 좋은 느낌이군. 잘 될것 같다. 준비도 잘 되고 있고.
데이터도 착실히 모으로 있고, 사진 자료도 착착 모아지고 있고
잘 되고 있어. 라고

일을 진행시키다가 갑자기 마른하늘의 벼락을 맞는 기분은 다들 가끔 한번씩은 있을듯 하다.

어찌된게 뭔가 일이 잘 되어가는것 같다가… 결정적으로 결정적인 압력이 들어와버려서 이걸 어떻게 하지라고  고민을 하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다른걸 찾아야 하나…라고 생각하고 고민해본적은 한번씩 다 있을듯 싶다.

사업도 마찬가지고, 인간관계도 마찬가지고, 연애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말 이런 ‘벼락’은 좀 피했으면 싶다. 어쩌면 오히려 더 잘된 일일수도 있다. 이미 일이 런칭되어 진행해 나가고 있는 중에는 오히려 피해가 더 클수도 있으니까 오히려 잘 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옛날… 5년전에 누군가 나에게 해주었던 말을 다시금 상기하게 되었다.

‘그래.. 원주….. 잘 되려고 그러나 보다.’ 라고…

5년 전에 들었던 이 말은 아직까지고 내 가슴속에 남아있다.
언제고 힘들때, 괴로울때, 무척이나 가슴아프고 시려울때, 몸이 아플때, 너무 외로워 술조차 들어가지 않고 패잔병처럼 축 늘어져 있을때, 피폐해져있을때도…… 그럴 때에도 그 짧은 한마디는 온건히 나를 부드럽게 쓸어주고, 가만히 응시하며 날 바라보고, 손은 내밀어주진 않치만 그 호흡의 냄새와 따뜻한 피냄새…… 다시 일어설수 있게 해준 그런 작고도 큰 따뜻함이 되었다.

그저 지금 내가 계획하고 있는 조그만 일에 이렇게 큰 비약을 한다고 생각할런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래… 원주……. 잘 되려고 그러나 보다…….’라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온건한 그 말 한마디에 난 지금까지도, 그리고 아직도 버티어 내고 있다.

난 말이라는것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것도 아닌 말. 하지만 순간에 모든것이 되기도 하는 그 말 한마디….    말.

그래서 난 마른 하늘에 벼락을 맞을지언정 다시 일어 설 수 있다.

언젠가 나도 어떤 사람에게 가슴깊은곳으로 부터 도움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무척이나 좋은 일이다. 진정.

ICO.

플레이스테이션2용 게임인 ICO(이코) 라는 게임을 플레이하고
엔딩을 보았다.

요즘같이 스펙터클하고 화려하며 호흡이 무척 빠른 게임들과는 반대적인 느낌.

물, 바람, 소리, 빛, 그림자, 어둠, 소년, 소녀가 나온다.

대화조차 통하지 않는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전혀 다른) 여자 주인공 요르다와 주인공인 어린 소년 이코. 뭐 그런 이야기.

손잡기 버튼을 누르면 요르다와 이코는 손을 잡는다.
그때 소녀의 심장이 패드의 진동으로 전해진다.

직접… 플레이 해보길 강력이 권장한다.

추가로 이코의 뜻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난 상당히 놀랬다.
그냥 주인공 이름이 ICO겠지 싶었는데..

I(나) CO(함께)의 합성어.

나와 함께…

빌려서라도 해보길 권한다.

옛날 LIFE를 뒤적이다.

사진은 하나의 작은 목소리일 뿐이고.
나의 사진의 테마는 언제나 사랑이다.

– W. Eugine Smith

밤샘.

어쩌다보니 여러가지 일로 밤샘을 하고나서 몸이 추우욱 늘어진 상태로
아침을 맞고… 오랫만에 목간이나 갈까 싶은 마음에 필요한 몇가지 것들을 챙기고 목간탕엘 갔다.

대강 편하게 입고 나간 옷과… 아무렇게나 신은 신발.
아침녘에 나갔을땐 아침 특유의 쿰쿰함과 싱그러움. 그리고 햇볕의 냄새가 나의 몸을 지나갔다.

일요일 아침이기에 지나가는 골목에는 사람하나 없었다. 주섬주섬 걸어나와서 도로를 지나 육교를 건너서 가는 동안 자동차를 제외하곤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이 아침 시간에 도시 전체중에 나 혼자만 덩그러니 걸어다니는듯한 느낌..

아침에 사람이 거의 없는 목간탕은 정말 좋다.
혼자서 비어있는 탕에 물을 풀고 물을 휘저으며 온도를 맞추고. 물이 어느정도 차오른후에 몸을 푹 담궈주는 그 맛이 참 좋다.

머리를 감고 양치를 하고 수염을 깎고 때도 밀고… 다시 샤워하고 다시 탕에 들어가고 조금 열이 오른다 싶으면 냉탕에 있다가 그냥 거울보면서 멍하게 장난을 치기도 하고. 탕에 있기가 좀 지친다 싶으면 바깥에 있는 차가운 물한잔을 마시면 왠지 몸이 프래쉬해진다. 그리고 또 탕에 들어간다. 그렇게 있다보면 어느세 2시간은 후딱 지나가 버린다.

빳빳하게 말린 깨끗한 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몸에 남아있는 물기를 털고 다시 옷을 주섬주섬 입은후에 돌아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려서 바나나우유를 하나 샀다. 갈려던참에 빨대를 잊어버려서 다시 돌아가 빨대 하나를 얻어서는 은박두껑 위에 ‘톡’하고 찔러넣는다. 그 조그만 빨대속에서 올라오는 바나나우유.. 특히나 목간탕에 막 다녀온후에 몸에서 아직도 김이 오를것 같은 그런 프레쉬한 상태에서의 바나나 우유의 맛은 최고다.

아직 마저 남아있는 일을 처리하고 이제 잠시 눈을 좀 붙여야겠다.
지금은 오전 10시 5분이다.
오늘은 조금은 행복해도 괜찮을것만 같은 그런 날씨다.

이제.. 난 잠을 좀 자야겠다. 잠을. 좀 자야겠다.

Bud

난 맥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여름에 마시는 맥주라는것은 나에겐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몇 안되는 기쁨이고 행복이다.

여름이 오는걸 난 여러가지로 느낄수야 있을것같다. 예를 들어 버스를 타고갈때 창문을 열면 그때 들어오는 바람냄새라던지, 풀잎의 색깔이라던지(왠지 조금은 징그러운듯한 그 녹색 말이다) 정오의 열기라던지 그런게 있겠지만.. 내가 진정으로 인정하는 여름의 기준은 바로..

조금 이른저녁 혹은 느즈막한 저녁쯤에 마시는 맥주가 맛이 있으냐 없느냐이다.

그 맛이 있다 없다에 대한 기준은 그 첫모금을 목구멍을 거쳐 위장으로
떨어지면서 그 싸아한 맛이 온몸으로 퍼지면서 목 뒷덜미를 지나서
뇌속으로 강하게 혹은 은근하게 쳐올라올때…….. 이겠지만.

역시 사람이 중요하다.

여름 아니면 맛볼수 없는 맥주맛…
좀 유치하고 단순한 이야기지만….

난 맥주를 좋아해서 여름을 좋아하는건지
여름이 좋기 때문에 맥주를 좋아하는건지
잘 모르겠다.

그래.
뭐 아무렴 어떻냐만.

추신 : 맥주야 어찌 되었건.. 아뭏든 난 여름이 좋다.
         시체로 썩어버리거나 마르지 않는 해바라기를 볼 수 있어서 좋다. 난 해바라기 환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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