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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타

옛날.

큰 형님은 아플 사람을 예견하여 예방하고
둘째 형님은 병이 커지지 전에 고쳐주고
화타는 죽어가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명성으로

제일 능력이 뛰어난 의사처럼 비쳐지는 것이
오늘 날의 일과 다를 일이 없다고 봅니다.

일상

간만에 햇살이 햇살다운 빛깔을 보내고 있다.
공기는 봄 특유의 어딘가 비위상하는 달짝지근한 눅진거림이 사라지고 이젠 후덥지금함이 몸을 감싸고 있었다. 오전 11시 거리의 사람 표정과 걸음의 속도와 자동차들의 움직임은 예전과는 여전히 달라진게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계절이 봄에서 여름으로 바뀐다 한들, 하루 하루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선 크게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다. 웃의 두께와 색깔 그리고 땀이 흘러서 더워서 나는 짜증 정도가 우리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 정도 일 것이다.

약간의 볼일을 보고 다시 이동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더니 정오에 지하철을 타는 인원 정도라고 하는 인상의 승객들이 있었다. 뭔가를 파는 잡상인들의 판매상품이 바뀌었다. 어딘지 출처도 알 수 없는 자외선 차단 팔토시를 팔고 있다. 계절이 바뀐 실감을 1센치 정도 겨우 하게 되었다. 잡상인은 단 한개도 팔지 못하고 다음 역에서 하차를 하였다. 그 사람이 물러나자 미묘하게 다람질이 엉커있는 양복을 입은, 흰머리가 성성한 할아버지가 예수천당 불신지옥. 그리고 지옥과 사탄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예수님을 잘 믿고 기도를 잘 하고 등등의 이야기를 약 3분 40초간 소리 지르다 다음 칸으로 이동을 했다. 오른손에는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질이 잘 들었지만 어딘지 애달픈 느낌이 드는 서류가방이였다.

전철이 서면을 지나자 승객들은 한결 빠졌고 조용해졌다. 지하철의 흔들거리는 덜컹거림이 좌석을 타고 올라와 나의 엉덩이뼈를 지나 뇌를 흔들거리게 만든다. 딱히 무엇인가 잘못된 것은 없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봄이 오고 있었고 단지 시기가 되어 봄의 끝자락과 여름의 시작의 경계 사이에 머물러 있는 기묘한 공기가 나를 잠시 혼돈스럽게 할 뿐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 왜이리 생경스러운 건지 나 스스로도 아직 모르겠다. 그것은 딱히 가슴벅차 오르는 느낌도 무심하게 들이쉬는 숨결도 아닌, 공중에 헛발질을 하는 이질감이 들고 만다.

돌아오는 전철에 또 다른 잡상인이 물건을 판다. 7080 추억의 그림자. 어딘가 음산스러운 느낌마져 든다. 음악 CD를 팔고 있다. 짙은 셔츠에 스트라이프 갈색 넥타이 그리고 황금색 넥타이 핀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경로를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고 그 지금이 앞으로의 경로를 만들어 가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선택은 언제나 과거에서 연결되어 지는 무게를 부정 할 수 없다. 그리고 결국 \’그렇게 될 셈\’인 것이다.

마치, 여름이 오듯.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몇시간 전에 보았던 그 예수천당 불신지옥 할아버지와 다시 조우 했다.

그리고 오후 4시 거리의 사람 표정과 걸음의 속도와 자동차들의 움직임은 예전과는 여전히 달라진게 없었다.

각기 다른 색맹.

흑백 필름은 칼라가 보이지 않고
컬러 필름엔 흑백이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고 생각하는가?
그야, 당연하지.
그런데 정말 그런가?

애초에 질문 자체가 틀린건 아닌지?

본질은 그것과는 관계가 없는게 아닐런지.

흐르니까 바람.

미술관에 걸릴 사진을 셀렉트 하고 그 중에서 다시 추려내는 작업을 한다. 언제나 그렇듯 촬영 자체는 어렵지 않다. 셀렉트 할때가 되어서야 비로서 나는 사진을 찍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젠 이런 이야기도 다소 식상한 느낌이 드는건 아닌지 싶은 정도의 당연한 것으로 나에겐 새겨져있다.

프린트는,
부정적 외압의 에너지를 주워섬겨 그것을 다시 순수한 에너지 덩어리로 나의 내부에서 바뀌어 그것을 동력원 삼아 확대기 앞에 섰다. 그렇게 되기 까지 2주간의 시간이 걸렸다. 상황의 답답함은 사실 나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허나 그런 상황속에서 언제나 나의 마음을 자꾸 건드리는 것은 답답함이 아닌 얽혀있는 실타래, 그 자체인 경우가 많다. 그것은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풀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한 댓가를 치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나를 포함한 외계의 것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댓가를 치루고 있는 것이다.

제법 긴 호흡을 가지고 암실에서 묵묵히 프린트를 끝냈다.
시간을 들여 수세를 하고 그 만큼의 숙성이 된 프린트를 다시 꺼내어 염원하는 마음으로 셀레늄에 담금질을 한다.

제법 나쁘지 않은 프린트가 되었다. 은근히 중성적인 느낌의 프린트는 참으로 오랜만이 아닌가.

오후의 바람이 참 좋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잘 들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럴 수 밖에.

듣지 못하는 사람은 부처도 구제 못한다.

5분.

새벽과 아침의 경계 사이에 새가 운다.
깍깍 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까마귀가 우는가 싶다.
나의 왼쪽 귀 위에서 울다가 이내 오른쪽 아래로 소리가 들린다.

어슴푸름한 엷은 광선의 공기가 5분마다 달라진다. 5분. 그리고 또 5분 마다 세계는 다른 것을 보여준다. 점토처럼 쌓여간 5분이 모여 창백한 푸른빛은 사라지고 색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적막함 속에 공기가 흐르는 소리는 나를 포근하게 혹은 날카로운 날로 심장의 언저리를 슬쩍 베어놓고 간다. 피는 흐르지 않는다. 무거운 둔통이 입을 다문 목구멍으로 오르는 것 뿐이다.

대기음 속에 어느덧 자동차의 흔적소리가 들린다. 봄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름의 시작은 더디기만 하다. 5분의 시간이 쌓여 마침내 색은 제자리를 찾았다. 허나 우리는 알고 있다. 애초 원래의 색은 없었다는 것을. 그것은 단지 빛이 우리의 시신경을 특정하게 자극 하는 \’반사된\’ 것 일 뿐이라는 것을.

까마귀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울고 있다.
이제 눈과 귀와 입을 닫고 자야 할 시간이다.

새벽과 아침사이의 경계.
콧물 흘리던 어릴때 부터
지금까지 계속 좋아한 몇 안되는 것이다.

세삼스럽지만, 한번 더.

Wiio\’s laws

뷰오의 법칙

1 Communication usually fails, except by accident.

우연한 경우를 빼면,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실패한다.

1.1 If communication can fail, it will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할 요소가 있다면,
커뮤니케이션은 항상 실패한다.

1.2 If communication cannot fail, it still most usually fails

미처 고려하지 못한 무수한 오점이 존재하므로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하지 않도록 아무리 명료화 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기술했다고 생각되더라도,
커뮤니케이션은 대부분 실패한다.

1.3 If communication seems to succeed in the intended way, there\’s a misunderstanding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하고, 쉬워,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생각되더라도, 아마 그것은 실패일 것이다.
듣는 사람은 본인이 좋아하는 자신만의 방식대로 메시지를 이해했을 테니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 이겠지만,
그가 스스로 만들어낸 의미는 화자가 처음 전하려 했던 것과 매우 다를 것이다.

1.4 If you are content with your message, communication certainly fails

만들어 놓은 메시지에 스스로 만족한다면, 커뮤니케이션은 확실히 실패한다.
왜냐면 메시지가 만족스럽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 말을 지어 놓았다는 것일테니까.

2 If a message can be interpreted in several ways, it will be interpreted in a manner that maximizes damages

어떤 메시지가 모호해서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면, 그 말은 전혀 엉뚱하게 이해될 것이다.
이 말은 모호한 메시지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엉뚱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경고가 아니고,
상상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될 것이라는 뜻이다.

3 There is always someone who knows better than you what you meant with your message

직역하면 당신 메시지의 의미를 당신보다 더 잘아는 사람이 항상 존재한다.. 인데
그 의미는 나를 이해하는 사람이 결국 가장 심각한 골칫거리가 된다는 뜻이다.
어느 순간, 내가 말한 의미를 듣는 사람이 잘못 이해했다는 것을 발견하더라도,
그 사람이 그 사람 본인의 생각을 마치 내가 전달한 말인냥 제 3 자에게 전하고 다니는 것을 막기 힘들다.

4 The more we communicate, the worse communication succeeds

일반적으로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이 더 좋다는 통설이 있지만,
더 많은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더 많은 오해만 만들어 간다.

4.1 The more we communicate, the faster misunderstandings propagate

반복되는 커뮤니케이션은 잘못 전달된 의미를 더욱 굳어지게 만든다.

5 In mass communication, the important thing is not how things are but how they seem to be

대중매체에서 중요한 것은 상황의 진실 보다 대중에게 그것이 어떻게 비치는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가상적인 세계에 몰입한다. 결국 진실은 따분한 것이다.

6 The importance of a news item is inversely proportional to the square of the distance

새소식의 중요성은 그 뉴스와 대중과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비행기가 떨어져서 몇명이 죽었는가 보다는
그 안에 한국 사람이 몇명 타고 있는지에 따라 뉴스의 강도가 달라진다는 말.

7 The more important the situation is, the more probably you forget an essential thing that you remembered a moment ago

커뮤니케이션이 또한 자주 실패하는 이유는,
듣는 사람들이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강조되는 주요 설정들을 자주 잊는다는 것이다.
나중에 이러한 점들을 다시 명확히 하더라도 이미 모든 상황은 끝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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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탓하리..

사사로운 농담.

아주 예전, 사진 촬영에 쓰이는 조끼를 입고 다니며 촬영한 적이 있었다. 움직임에 방해도 안되고 통풍도 잘 되는 편이다. 급하게 쓸 수 있는 펜과 종이를 넣을 수도 있었고, 렌즈를 빨리 바꿔야 하는 상황에선 큼직한 주머니에 렌즈를 던지듯 쑤셔 넣고 뺄수도 있었다.

난 이 촬영 조끼를 간간히 애용 했는데, 어느날 부턴가 전혀 사용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곤 사는 곳을 옮긴후에 그 조끼는 사라졌다. 누구를 줬던것인지 그냥 버려진 것인지 어쩌다 말려버리듯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에 나는 이렇게 생각 했었던게 아닐까 싶다. 난 사진을 찍고 있소! 라고 보여지는게 참으로 싫었던게 아니였을까. 사진 찍는게 그 무슨 대수라고 사방팔방 떠들고 다니듯 자신의 존재감을 그렇게 부각시켜야만 하는 것인지. 라고 짐짓 심각한듯 생각을 했었던것 같다.

그 때 즈음에 애지중지하며 무척 잘 사용하고 있던 길고 커다랗고 무거운 검은색의 80-200 f2.8 줌렌즈도 처분했었다. 사실 그 렌즈는 무척 좋아하던 렌즈였고 나름 쓸만한 사진은 그 렌즈로 찍은 사진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 렌즈가 아니고서는 촬영 할 수 없었던 것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촬영 조끼를 입게되지 않으면서 부터 그 렌즈의 사용빈도도 줄어들고 사진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평소처럼 조금이라도 단 반발짝이라도 어떻게든 더 가까이 다가가려 했던것에서 어느날 부턴가 조금씩 거리가, 생기가, 그렇게 멀어진 거리감 속에 난 조금 더 무엇인가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가지고 있던 28mm렌즈를 처분하고 24mm렌즈를 구입한것도 그때 즈음이였던것 같다. 어떠한 거리감. 그 자체가 나를 확실히 획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로부터 약 10여년이 지난 지금. 주로 사용하는 렌즈는 여전한 50mm와 25mm렌즈를 사용 하고 있다.

그런 사사로운 농담 같은 이야기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거리가,
머나먼 거리가.

하지만
천천히, 신중하게 찾다 보면 사이를 이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그 길은 너무나도 가늘어 잠깐이라도 눈을 돌리면 금새 사리지고 말지.
그러니까..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뜨고 찾아야만 해

길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게 되면 그 길은 정말로 없어져 버릴 지도 몰라

그러니까
반드시 길이 있다고 계속 믿어야만 해.

적어도 이런식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상황이나 정황에 따라 그럴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냥 그렇게 일방적으로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그리고 단발마 적으로 하고 싶은 말만 해버리고 나면, 어쩌란 말인가.

가슴이 많이 아팠다.
4년을 부정한건 결코 아니였다는 말을 전해들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암실에서 묵묵히 현상을 하다가 울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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