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자신의 사진에 무지막지한 의미부여를 하고 싶을때가 있다.
평소엔 그런 사진이 내 손에 쥐어져 있을땐 치워버리지만 때론 그렇게 하기 힘든것이 있다.
그것도 굉장히 힘들때가 있다.
그럴땐 포르노를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나선 스트레이트 더블로 위스키 한잔 마시고 자는게 최고였다.
혼자 작업실에 앉아, 조그마한 음악을 틀어놓고 있었다.
창문 넘어 멀리 쿠콰드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다시 조용해졌다.
그 소리와 그 뒤, 부드럽고 무념한 적막속에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그 냄새는 피의 진액같은 것도 아니였고 검은색의 액체는 더더구나 아니였다.
마침 담배가 다 떨어졌다. 적당히 걸치고 조그만 카메라를 울러메고 홀린듯 소리가 났던 거리로 나섰다. 편의점에 가서 담배를 한갑 사고 소리가 났던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소리가 났었을 것이라 생각한 곳에선 아무것도 없었다.
홀린듯 바라보며 그 빈공간에 플래시를 터트려 찍었다. 도무지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작업실에 돌아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카메라를 놓아두고 의자에 앉아서 귀를 기울였다. 깊은 밤 도시에서 가장 큰 소리는 앰뷸런스 소리다. 당연히 그래야겠지.
싫어 할수도, 그렇다고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질 수는 없는 소리다.
이 즈음 되면 소리가 들려야 할텐데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음악은 끈 상태였고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공기가 흐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한시간 동안 앉아 있었다. 그리곤 무척 피곤함을 느끼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로 부터 두어달이 지났다.
창문 넘어 멀리 쿠콰드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다시 조용해졌다.
그 소리와 그 뒤, 부드럽고 무념한 적막속에 죽음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그 냄새는 피의 진액같은 것도 아니였고 검은색의 액체는 더더구나 아니였다.
담배는 아직 남아 있었고 음악은 그대로 틀어두었다.
앰뷸런스 소리따위 이런것과는 상관없이 잘 들리는 것이다.
굳이 담배를 사러 나갈 필요도 없었고, 카메라를 울러매고 홀린듯 길거리에 나가지 않아도 괜찮았다.
골드베르그 바리에이션을 틀어놓고 위스키 반잔을 한번에 들이붓고 다시 평균율 클라비어 2권을 틀어놓고 남은 반잔을 마셨다.
지구는 여전히 자전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었고 나는 내 의자 위에서 자전을 하고 있있었고 삶을 죽음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었다. 단지 그런것 일 뿐, 의미따위 애초에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어느 날엔 넓고 깊은 동굴속에서 막 나와 눈이 부심을 아파하며 짜증을 내다가도 한편으론 그것이 기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런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다. 언제 까지나 동굴일 뿐이였다. 그러다가 비로서 출구 근처에서 빛의 온기가 느껴짐에 어느 정도 가까이 왔다는 것을 스스로 기뻐했다가도 그것은 사실 지열에 의한 온기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마음이 �어지는 감촉을 강제로 당할 수 밖에 없기도 했다. 강간 당하는 느낌이 이것과 비슷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느껴지는 한가지 것은 공기의 흐르는 소리였다.
낮엔 조금 움직이기 시작하면 제법 땀이 나기도 한다.
통풍이 되는 옷을 입을때가 된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봄의 냄새는 조금씩 엷어지고 맥주가 조금씩 맛있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저녁이 되면 아직 날이 쌀쌀하다. 도회지에 살고 있고 꽃가계와 가깝게 지내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계절을 느끼게 되는걸까. 여자의 옷이라던가 온도의 차이라던가 하겠지만 당체 무엇으로 계절이 바뀜을 인정하게 되는걸까.
사람에게도 계절이 있어서 변하곤 하는데 어떨때 그것을 느끼게 되는걸까.
어젠 어린이 날이였고 조용한 하루였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다행스럽게 자식도 없다. 딱히 특별할 일이 없는 하루였고, 늦은 오후에 어딘가 노곤하고 피곤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잤다.
사진을 몇장인가 찍었고 카메라에 들어있던 필름을 전부 써버렸다. 봄의 독기가 조금씩 빠져나감을 느꼈고 오늘 새삼스럽게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오래 가지 못할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난 진심으로 감사했다. 조금씩 기운을 내야 할 때이다.
어느날, 익숙치 않은 거리를 계속 걷다가 무엇인가를 보았다.
십년 넘게 사용한 AF 50mm 렌즈를 마운트 한체 망연히 보고 있었다.
그것은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무색, 무취의 광경이였다.
순간 그 렌즈를 빼버리고 Nikkor 45mm f2.8/P 렌즈를 마운트 했다. 스스로 느끼기 힘들 정도로 순식간의 일이다. 익숙하니까 자신이 그렇게 했다는 것도 쉽게 인식 되지 않는다.
포커스를 신속히 가져다 놓은 후, 반숨을 쉬고 조리개를 f5,6로 조였다.
어떤 무상함에 쓸려가버리듯 그렇게 몸이 기능하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던 그 광경을 파인더로 한창을 봤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조차 느끼기 힘들었고 단지 무상함을 맞댄체 그 속에서 나를 가만히 녹여내는 것 정도 밖에 할 수 없었다.
이윽고 갑자기 잊었던 것이 번쩍 생각이라도 난듯,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일종의 반항심이였을까. 조리개를 한단 더 조였고 정보 표시창엔 f8이라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날카롭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난 알 수 있었다. 셔터 따위 누르지 않아도 알 수 있는거다. 호흡을 멈추고 눈이 아릿해짐을 느낄때 누르는 감촉도 느낄 수 없을만큼이나 부드럽게 셔터를 눌렀다.
한숨을 쉬고, 문득 렌즈를 봤다. 검은색의 작은 그 렌즈는 웃지도 울지도 비웃지도 슬퍼하지도 않았고 단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였다. 담배 한대 물고 다시 걸음을 옮겼지만, 몸이 으스러질 정도로의 격렬함이 아직 몸에 남아있었다. 다시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고 내쉬기를 몇번이고 반복하자 겨우 그 진동 만이 남아있게 되었다.
옛날과 한가지 달라진건 어쩌면 칼을 휘두르는게 좀더 세련되어진것 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에 대해 반성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단지 그 뿐 이였다.
세상엔 정말 웃기다 못해, 웃기지도 않은 인간들이 정말 많다.
그런 카테고리의 인간들에게 일말의 자비(그런게 나에게 존재한다면)도 베풀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한편으론 측은 하고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열심히든 어찌되었던 살아갈 따름일 뿐일테니까.
비열한 인간이, 열심히 비열한 사회를 만들고 사람을 비열하게 만든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텐가?
좋은 날이 있으면, 나쁜 날이 있고 그래서 다시 좋은 날이 오다가 나쁜 날이 오기도 한다. 그리고 때론 그 나쁜 날이 기대보다 오래가는 경우 또한 흔하게 있다.
항상 그렇지만 나에게 있어서 봄은 언제나 좋지 않았다. 나름 좋은 일들이 생기는가 싶으면, 밝은 길가에 난 조그만 어두운 귀퉁이에 숨어있다가 그것은 나를 항상 덮치곤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좋은 일 따위는 없는거지\’
잠시간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건 실로 맞는 이야기다. 애초에 좋은 일 같은건 있지도 않는 것이다. 그래서 당장 느끼기에 나쁜 일이 일어난다고 한들 딱히 법석떨고 유난 떨면서 자랑할 거리가 못된다.
단지, 좋은 사람과 함께 묵묵히 술을 마실 수 있는 것 정도 만으로 그것은 좋은 일. 이라고 그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껴야 한다는 것 또한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일이라는 것은 실지 존재하고 또한 그렇기에 나쁜 일 또한 존재하기 나름이다. 이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아마 우리네 인생은 견디기 수월치 않을듯 싶다. 희망이라는 것은 희망으로만 멈추었을땐 덧없음으로 치환되어 버린다. 또한 그것이 아픔이나 좌절로 흘렀을땐 희망 그 자체가 원망 스럽게 되고 마는 것이다.
좋았던 것 또한 후일에 나쁘게 되었을 경우 후회하지 않는다고 격양스럽게 말한다 한들 그 속엔 이미 좋았던 것들에 대한 원망은 항상 어느 정도 남아 있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이렇게 움직여지는 이유는 \’기억\’ 때문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대체로 자기 좋을대로의 기억으로 변형이 무쌍하여, 자신을 치유하게도 썩게도 만든다.
나쁜 기억도 가슴 아픈 기억도 괴롭고 외로워 새벽 2시 48분의 새벽길을 걷게 만들었던 짓찢겨 낸 빛망울이 축축한 기억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날카로웠던 그것은 무디어지고 반짝이던 검은 날에 피를 담뿍 머금었던 자리엔 세월과 모레와 바람이 씻기어내어 마침내 추억이라고 말해지는 자기 좋을대로의 기억으로 정리 되어 버린다.
때론 그것이 되지 않는 경우 또한 있어서 일생의 트라우마 같이 평생 괴롭힐 것 처럼 득의양양하게, 마치 늙고 거죽만 남아있는 악취나는 늙은이가 열세살 소녀의 목을 소리 없이 슬그머니 조이듯 따라다니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던 그 사람을 이루고 행동하게 하며 판단하게 하는 것은 기억이다. 태어날때 유전자로 만들어지듯 살아가며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인생은 마치 원죄와 가깝다.
정리되어버린 기억도 언젠간 사라지게 되고 그것에서 부터 자유롭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 그것은 다시 옥죄여 온다. 기억은 인식하지 못할때 해방 된다. 그것은 참 고약한 심보의 애늙은이 같은 것이다.
난 기억력이 대단히 나쁘다. 단순한 건망증을 떠나서 가끔은 내 머리가 심각하게 손상을 입은건 아닌지 싶을 정도로 기억력이 나쁘다. 아주 어렸을땐 기억력이 대단히 좋아서 한번만 들어도 그것을 다 기억해내곤 했다. 그리고 그때의 뇌속의 감각을 난 지금도 생생히 되새겨 볼 수 있다. 뇌가 부드럽게 꿈틀하면서 그 속에서 저절로 두루마리가 쾌활하게 펴지듯 기억 할 수 있는 것이다.
언제 부터인가 기억력이 대단히 나빠지기 시작했는데 나의 게으른 품성의 탓이 제일 크고, 그 자체의 팩트 보다는 인과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의 사고 시스템 탓도 크겠지만 단순히 그걸로 설명하기엔 언제나 부족했다.
이런 증상은 대략 팔년 전 즈음부터 시작이 되었고 그 원인을 알게 된 것은 몇년 전 즈음이다. 많은 생각과 고민 끝에 원인을 알게 된 이후로 난 기억력이 나쁘다는 것이 참 좋았고 편했다.
물론 세상엔 공짜 따위 없다. 그것을 댓가로 난 많은 것을 뺏겼다. 굳이 이것을 고치고 싶지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삼년 전만 하더라도 그렇다고 느꼈다.
당연하지만 그런식으로 강해진 다는 것은 자신의 무엇을 팔아넘기고 얻어낸 순수한 그 무엇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고 그것은 나를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지금까지의 강함을 처음부터 끝까지, 싸그리 부정해야만 했다. 그리고 나의 약함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납득해야만 했다.
봄이 되면 내 몸속에 있는 기억을 드르륵 소거해버리는 세단기가 꿈틀거리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내 손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봄엔 언제나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면 세단기는 몸을 비틀거리면서 꾸역꾸역 세단해버린다.
그렇게 잘게 잘게 잘려진 기억들은 바스켓으로 떨어지고 그것을 꺼내어 아무리 짝을 맞추려 해도 대단히 힘들어진다.
때론 내가 그러한 것을 강하게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토하듯 집어삼키고 몸을 비틀며 꾸역꾸역 세단하는 것을 망연하게 보고 있으면, 나라고 하는 인간은 정말로 지독한 인간이라는 것을 느낀다.
봄엔 모든 것들이 새로 움트는 계절이다. 죽음의 수면의 외로움의 반성의 계절이 지나고 영겁의 세월이 시작되고 그것으로 부터 모든 것이 끝난다. 암컷들은 발정기가 되고 수컷들은 놓치지 않는다. 나도 한땐 이 계절을 좋아했었다. 겨울은 너무나도 춥고 고통스러운 계절이다. 그래도 의지 할 수 있는 영혼과 살이 있으면 오히려 그런 겨울 이기에 더 따뜻 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견딜만 했고 어떨땐 겨울을 찬미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봄이 오면 모든 것들이 굳은 땅에서 솟아나듯 나의 기억들도 솟아 오른다. 필사적으로 막으려 하지만 막으려 하면 할 수록 기억이라는 것은 구질구질한 애늙은이 같아서 더더욱 나를 괴롭히게 된다.
숨을 멈추고 오직 여름이 오기만을, 온 몸과 마음을 고아 처럼 잔뜩 웅크리며 기다리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할 것인가. 언제까지 나의 업보는 계속 될 것인가. 언제쯤이 되어야 나는 이런것에 대하여 묵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은 너무 민감해요. 물론 그래서 좋지만, 너무 힘들어요\’
내가 민감한것 이라기 보다는 네가 둔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하지만 그녀의 그 말은 절반 이상의 타당성이 있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나의 민감함은 어떻게 고칠수도 바꿀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도 알고 있고 나도 알고 있다. 사진을 찍어가며 몸에 흡수되어버린 그것은 어설픈 낙인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 나름대로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을 익히게 되었고, 아무리 말하고 싶어도 무심한듯, 모르는 듯 할 수 있는 요령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말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는 행동이나 공기, 표정으로 나도 모르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 까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적어도 나라고 하는 인간의 그릇으론 그것까지 어떻게 통제 할 수 없다.
삼월이 지나고 사월의 말미에 아직도 봄이다.
그리고 날 민감하다 말했던 그말을 들으며 아주 아주 예전의 그녀도 나에게 같은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났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봄을 증오 한다.
그리고 봄을 증오하는 것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증오스럽다.
새벽이 오고 문득 자신의 관한 일이 생각났다. 시간들 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고 흘러갔고 어딘가 기억의 변방같은 곳에서 쌓여있다가 점토처럼 녹아서 사라지는 일들.
문득,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할때 몸도 마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게 된다. 담배를 태우고 더블 스트레이트로 바카디 3잔을 연거푸 마시면서 담배를 다 태워 없앴다. 주둥아리 근처는 미지근한 얼음으로 계속 문질렀을때 느껴지는 느릿느릿하고 지릿한 마비의 이글거림, 몸과 마음은 이미 손을 놓아버린 듯한 이탈감 따위들이 내 몸을 감싸돈다. 그것은 따뜻함도 차가움도 아닌 그저, 단지 그럴 뿐인 사사로운 것이다.
담배를 끊겠다던 수십번의 시도도 수포로 돌아가고 마지막 남은 한개비를 주둥아리에 물고 멍하니 있었다. 나의 발과 하늘이 흔들거리도록 만든 술. 남은 한방울 까지 혀로 빨아 마시고 그 사이, 다 태워버리고 남은 빈 종이 담배각이 남았다.
많은 일들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어디서 부턴가 사라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것은 그것대로 삶을 영위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나의 세계와 그 세계속에선 이미 사라져 없었음에 마치 존재하지 않은듯 되어버렸다. 세삼스러울 것도 없다. 당연한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다 예전 나의 기억과 그리고 나와 어떤 사람이 연결된 음악을 들었다. 이런 음악들은 언제나 그렇듯 필요 이상의 침묵을 만들어낸다. 불쾌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어쩐지 매정하게 음악을 끊어버릴 순 없다. 괄태충이 지나간 자리에 미끌거리며 끈끈한 점액이 남듯 마치 언제까지고 계속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듯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음악을 틀어놓은체 바깥엘 나갔다. 조그만 컴팩트 카메라를 어께에 걸고 호주머니에 담배값이 남아있음을 확인하고 새벽도 아침도 아닌 시간을 걸었다. 걸어가는 동안 3장의 사진을 찍고 더듬거리듯 걸어 24시간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는데 우습게도 배가 고프다.
이건 정말 우스운 일이다.
처음보는 삼각김밥이 있길레 그걸로 결정했다. 전자렌지에 30초간 데우고 촛점 없는 손길로 비닐을 벗겨내고 입에 넣어 씹으며 편의점의 문을 밀쳐내고 다시 거리로 돌아왔다.
맛이 없다.
작업실로 돌아와 문득 봤다. 탁자위에 놓은 카메라를 다시 손에 쥐고 머뭇거렸다. 찍고 싶지 않다. 찍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이런 것은 찍고 싶지 않다. 하지만 조용히 초점을 맞추고 석장을 찍었다.
사람들이 생겨나고 사라지고, 온기가 부드럽게 덮었던 마음의 천도 녹아내리고 계획을 세우고 사기를 당하고 계획은 엉망이 되고, 믿음을 자기 편할대로 만들어버린 사람도 아무런 응답없이 사라졌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내가 해야만 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것에 대해서 무력감을 느낄때, 그래서 새벽에 독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머리가 지끈거리는 무거운 둔통을 느낄때 우습게도 난 배가 고팠고 끈기없는 진흙덩이 같은 삼각김밥을 씹으며 다시 돌아와 담배를 피워 재끼는 것이다.
그 사이 나는 음악을 다른 것으로 바꾸었고, 광목천 사이로 창백한 햇볕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삼십대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고 시간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 질 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공중에 흩어져 재 처럼 쌓이고 그 동안 내가 행하고 저지른 죄값을 받게 될것이다.
이제 음악을 끄고 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