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세고, 창업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라는 건, 나에겐 너무나도 눈이 부시다. 담배 한대 물고 키보드를 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는 모니터도 검은 글씨도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내 주둥이에 물려진, 하얗게 타들어 어디론가 흩어져버릴 흩어져버릴 연기만 보인다.
그것도 아주 조용하고 조용하고 조용하게…
깊은 한숨같은 담뱃재가 떨어지려고 한다.
오전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던 핸드폰이 시끄럽다. 조금 더 자고 싶었지만 오늘 해야 할 수업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일어나야 한다. 주섬주섬 일어나서 대강 옷을 입고, 카메라 가방을 메고 약 15분 정도 걸어나와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갔다.
어제 일기예보에는 오늘부터 내일이나 모레까지 비가 올거라고 하던데, 마침 열차를 탄다면 비나 실컷- 왔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예약했던 열차표의 값을 치르고 게이트를 통과하고 지정된 좌석을 찾는것 까지가 왠지 힘이 들었다.
좌석에 앉아 창밖을 보니 하늘이 흐릿하니 비가 올것 같다.
딱히 할것도 없고 해서 가져왔던 책을 읽었다. 비교적 오랫동안 읽지않았던 느낌이 들어버린 노르웨이의 숲 표지는 너덜너덜하고 손때가 잔뜩 묻어있어서, 묵묵히 보고 있자면 어쩐지 아주 아득한 과거의 일 처럼 느껴진다.
조금 읽다가 갑자기 몰려드는 극심한 피로감에 책을 카메라 가방에 다시 넣고 음악이나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CDP에 플레이 버튼을 눌렀지만, 화면에 보이는 메세지는 No Disc였다. 잠을 청해봤지만 어쩐지 몸이 기묘하게 비틀려있는 느낌 덕분에 잠을 청할 수 없었다.
책을 들고 식당칸에 가서 맥주를 하나 시켰다. 사람이 별로 없고 조용하다. 왠지 안심이 된다. 창밖의 보이지 않는 풍경들과 차창 사이의 공간에 시선을 두었다. 묵묵히 있다가 맥주 한모금을 삼켰다. 책을 읽다가 머리가 아프면 사이 공간에 시선을 두고 맥주를 마신다. 그것을 계속 반복했다.
책은 이제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미료에서 나와 레코드 가계에서 바깥의 풍경과 사람들을 보고 있는 장면이다. 끈적끈적한 두통의 감각이 온몸의 얇은 피막을 이루어 한치의 빈틈도 없이 내 몸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좌석에 돌아가 잠을 청했다.
중간 중간에 몇번이고 잠이 깨었는데, 그때마다 옆자리의 사람은 바뀌었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언제 사람이 바뀌었는지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처음엔 안경의 모양이 기묘한 중년남자였다. 그 다음엔 생쥐처럼 생긴 중년남자였다. 그 다음엔 살이 보기싫게 오른 아줌마였고 그 다음엔 서른 초입으로 보이는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여자였다. 마지막으로 눈을 떴을땐 기묘하게 이리저리 휘어진 나무지팡이 (매우 손질이 잘 되어있는 느낌의)를 쥐고 있는 할아버지였다.
플랫폼에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티켓을 게이트에 넣고 역을 빠져나왔다.
여전히 하늘은 흐릿했지만 비는 단 한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무엇인가 깨달아가는 것이 많을수록 고통이라는 것은 점점 줄어들 것이라 생각한적이 있었다. 물론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에 관해서 여러가지 다각도로 생각을 해봤지만, 깨달음이 많아지고 그 깊이가 깊어질 수록, 아픔이라던가 슬픔이라던가 고통이라던가 하는 것은 점점 엷어질 것이다 라고..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깨달음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도 (아마도 그럴것이라 생각한다) 그러한 것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듯 하다. 아마도 나의 배움과 생각과 마음과 인간 됨됨이가 아직까지 많이 모자라고 부족한 것 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정확하게 하고 픈 말을 문장으로 만들기 힘들다.
기껏 할 수 있는 말이라곤, 전혀 어긋나 버린 문장이 되어버렸지만,
이제 나 스스로를 놓아야 할때. 정도가 겨우 쥐어짜낼 수 있는 말이다.
조금만 있으면, 조금만 있으면 봄이 지나간다. 조금만 참으면 봄이 간다.
언제고 가랑비가 내리는 오전에 다대포나 다녀왔으면 좋겠다.
지하철을 타고다니다 보면, 아주 가끔 차량과 차량사이를 이어주는, 사람 한명 정도가 겨우 서 있을 만큼의 공간이 있다.
앞에도 문, 뒤에도 문. 그리고 두 다리는 두 차량이 따로 노는 듯한 그런 울렁 거림이 있다. 그 곳에 서 있다 보면, 우습게도 땅이 흔들리고 울리는 느낌이 들곤 한다. 혹은 바다에서 조그만 배를 탔을때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몸이 울렁이는 감각같은 것이 필요할떄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가끔은. 그게 바로 오늘이었나 보다.
그 감촉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하던 일을 팽개쳐두고 기차를 탔다.
짧은 휴가라고 생각하자…
도대체.
무엇을 위한 감정이고, 무엇을 위한 슬픔이고, 무엇을 위한 아픔인가.
7~8년 전쯤 부터 붙어버린, 술을 마셔도 쉽사리 취하지 않게 되어버린 나의 음주 습관이
이럴땐 너무나도 가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