삘 한번 받으니까,
몇일 동안 끙끙대도 안되던것이
5분도 안되서 끝났다.
세상에.
추신1 : 역시 억지로 하는건 영 체질이 아닌가 보다.
추신2 : 찰스 브라운, 썅! 당신을 존경해. 정말루.
어떠한 동공감 이라는 것은 항상 미묘한 마취감을 가지게 만든다.
어떤 행위를 함에 있어서 무엇인가, 계속 하고 있는데 문득 동공감이
한번 들기 시작하면, 아무생각 없이 일은 계속 하고 있고, 머리 속은
점점 마취가 되어가는 그런 느낌 말이다.
무엇인가 한쪽에선 한 단어를 들고 있고, 나머지 한쪽에서는 그것과
짝이되는 단어가 있는데, 영원이 그 단어 둘이서 만날 일은 없는 것 이다.
물론 실질적으로 꼭 맞는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따위는 기본적으로 존재 할 수 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체험적으로 나마 그런 비슷한 경험을 해본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조금은 이해 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무한반복속에서 마취감은 점점 저려오듯 온 몸으로 퍼지고
마지막엔 그러한 마취감 자체가 지릿지릿한 고통으로 와닿기 시작한다.
따뜻한 볕이 느껴지는 한가로운 오후에, 조그만 인공호수 속에
있는 사람팔뚝보다도 훨씬 큰 비단잉어들을 물끄러미 보면서, 현기증이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오늘은 카메라를 들고 오지 않아서, 잉어를 찍지 못했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회복하는 기간이다. 그런것으로 다시 나 자신을 깎아가며 에너지를 소비하고 싶진 않다.
어, 나 겁 먹은건가?
믿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말을 듣는 다는 것은 많은 힘이 된다.
앞이 보이지 않았던 안개가 다소 걷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론 원천적인 문제해결 – 애초부터 이런게 가능할까만 – 은 아닐진
모르겠지만, 스스로 납득하고 이해하는 과정은 지난듯 하다.
완성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제부터 비로서 시작이다.
항상 그랬듯.
실은 몇일 전 부터 목구멍 안의 편도가 조금씩 이상 증세를 보이기 시작 했다.
이 정도의 것은 평소에도 가끔씩 있는지라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몇일 동안 여러가지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았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도 그리 녹녹한 일들은 아니었다.
냉정하게 생각내보면 그리 대단찮은 일이지만, 쌓이다 보니
꼭 그런것만 같지는 않다.
어젯 밤에 마저 남은 작업을 하다가 코에서 뜨뜻한 액체가 나왔다.
콧물인가 싶어 훑어보니 붉고 끈적한 코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가래를 쏟아냈다.연신 쉴새 없이 콜록 거리며 기침을 밷어내고 있다. 어제 돌아 오는 길에 약국에 들려 약을 한봉 구입했다.
약사 말로는 보통 그러한 상태는 몸의 컨디션을 알려주는 신호등과
같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뻔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래도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제법 그리 심하게 나쁘진 않았다. 조금 힘들긴 하지만 견뎌낼만 했었다.
오늘은 아무것도 한 일 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가끔은 이런것도 좋겠지만, 정말이지 뭔가 아무것도 없는체
하루가 사라지는 느낌은 너무나도 허허롭게 느껴진다.
건강한게 최고다.
방금전에 꿀차 한잔을 마셨다. 조금은 괜찮아 지겠지.
앞으로 어떤 문장이 쓰여질지 전혀 짐작가지 않는다.
아뭏든 뭔가가 끄적거리고 싶어서 일기장을 열었지만,
무엇을 써야하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나는 안경을 벗고 잘 보이지 않는 모니터를 눈을 찡그려 가며
보고 있다. 안경을 쓰면 당장에라도 이 불편한 상태가 해소 될 것임은
분명이 알고 있지만, 그냥 있기로 한다.
입에는 88 골드가 물려있다. 앰프는 꺼저있고 컴퓨터의 냉각팬 소리만
위잉 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언어, 혹은 말 이라는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이과 관련된 주제의 일기는 짧막하게나마 몇차레 주절거린적이 있다.
언어는 사고시스템과 직결된다고 한다. 그 사람 혹은 종족이 가지고 있는 어휘가 작다면, 느낄 수 있는 세계도 작다는 것이다.
언어는 세계를 재단하고 카테고리화 하고 기준을 만든다.
때문에 위의 말은 틀린게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이누이트족의 경우 눈(雪)과 관련된 단어만 33가지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기껏해야 약 4~5가지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 이라고 해서,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아닐것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적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추상적인 표현에 있어서 언어의 한계(난 이것을 한계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가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 또한 1차적인 의미에서의 경우고, 이러한 한계 자체를
하나의 표현방식으로써 응용하게 된다면, 또 다른 무엇인가가 표현가능하게 된다고 난 생각한다.
어떤 사람 2명이 있고, 대화를 한다.
명사만을 사용한 대화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인가 뜻 혹은 감정을 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게 부르는 단어만 전달이 되었을 뿐 그것에 연결되어진 관념은 개인마다 다르게 이어지게 된다.
‘무엇’이 눈 앞에 있고(혹은 느껴지고), 그것을 말 해야 한다면 기호만 같고 뜻은 서로 다른 오해가 생겨지는 경우 또한 많은 듯 하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경우와는 별도로
같은 맥락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은 둘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은 둘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
둘 중에서 꼭 하나만 선택하라면 난 후자 쪽이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걸 끄적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아니 어쩌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인가 답답한 느낌에 쓴것 임에는 분명하다.
갑자기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경우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쎄, 따지고 보면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여전히 난 안경을 벗고 있고, 그 덕에 모니터의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난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쌀을 있는데로 다 찌푸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다. 그야 안경을 쓰면 잘 보일것 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곧 자야 할 시간이다.
학교를 마치고 사진재료상에 들려, 인화지를 샀다.
ILLFORD의 Wormtone 인화지는 좋아하는 인화지 중 하나다.
아무래도 웜톤인화지기 때문에 최대 하이라이트 농도가 조금 떨어지는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포드의 인화지 이기 때문에 하이라이트의 재현력은 그래도 좋은 편이다.
포트레이트 혹은 Jazzy한 사진에 잘 어울리는 톤을 가지고 있지만,
처리를 다 한후에 셀레늄 토닝을 하고나면 뭐라 말하기 힘든 ‘미묘한’
톤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냥 따뜻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차갑지도 않고, 그렇다고 중성의 밋밋한 느낌도 아닌.
총 16장의 프린트를 해야 하는데,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려온다.
RC라면야 ‘훗…’ 웃어 줄 수 있지만 말이다. 그나마 11×14라서 다행이지.
그래도 좋다.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축복이다.
대강 셀렉트를 하고, 정리를 한 다음
프린트 할려고 하니.
어라, 인화지가 없다.
11×14 RC 인화지는 정말 많다. (어쩌다 이렇게 된거지)
단, 그것 밖에 없다. 16×20은 이전에 다 써버렸고, 20×24 인화지는
한장 남았다.
오랫만에 일포드 웜톤 인화지를 써볼까 했었는데, 왠걸.
아주 조금 남아있다.
웜톤 인화지는 너무 비싸서.. 걱정이다. 것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