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냉냉한 미풍속에 봄냄새가 스리슬쩍 느껴질때 즈음이면
매년 생각하는것이 하나 있다.
아아. 올해는 해바라기를 찍을 수, 아니 하다 못해서 보기라도 할 수 있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로부터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매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왠지 상당히 놀라버렸다.
찍는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앞에 해바라기가 있고 카메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있어서 안된다. 내가 찍고 싶은 해바라기는 아주 보통의 평범한 해바라기다. 이미 관용화 되어버린 그런 해바라기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모든것이 말라버릴것 같을정도의 눅눅한 햇살 아래 하늘은 맑고
꽃잎 – 이걸 꽃잎이라고 불러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 은
답답한 가슴속을 날려버릴정도로의 선명한 진노랑의 에너지 넘치는
그런 해바라기를 찍고 싶다.
라고 매년 이 맘때 쯤이면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이다.
어째서 매년 그러하지 못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니,
생각 해 보면
간단하다.
아침 9시 30분.
전화소리에 잠을 깼다.
두세시간 잤을까, 일어나서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아침의 햇볕속에는 봄내음이 뭍어나고 있다.
차에 탔다.
내 옆에 있는 남자는 어딘지 모를 세월에 냄새가 났다.
좀더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썩어갈때의 그런 중년 이후의 남자 냄새다.
그 냄새 때문인지, 수면 부족때문인지. 그래 둘 다 일 것이다. 뒷 정수리가 아릿하고 머리가 아프다. 그가 뭔가를 자꾸 물어본다. 머릿속으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설명 혹은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않겠냐, 라곤 하지만, 왠지 난 조금은 짜증이 담긴것을 억지로 자제하려는 것이 역력한 말투가 되어버린다.
나는 점점 침잠해지고, 말수는 거의 없었고, 혼은 반쯤 나가있는 상태가 되었다.
지독스레 햇빛은 밝아서, 마음을 더욱 더 우울하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작업실 앞에 차를 세우고 그 남자에게 작업실 열쇠를 쥐어주고 먼저 올라가 기다리라고 했다.
도시락 2개를 받아들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는 길 횡단보도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멍하게 바닥을 보고 있는데, 바싹 말라붙은 아스팔트에 두껍게 칠한 흰색의 갈라진 횡단보도 페인트 위로 부서지는 은빛이 보였다. 시큰한 냄새가 아무런 자극 없이 느껴진다. 신호가 바뀐것도 모른체 멍하게 계속 보고 있었다.
작업실로 돌아오는 계단 위로 길 앞에서 뒷 트렁크 정리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혼자 들어가기가 어색한것 일까. 나와 같이 들어가고 싶어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아무말도 못한체, 왼손엔 도시락이 들어있는 비닐봉투만 바람에 사각거린다. 트렁크 정리가 다 끝나고 난 말했다. ‘먼저 올라가시지 그랬어요’ 그러자 그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
올라가서 자리에 앉고 도시락을 먹는다. 이 정도에 이 가격이면 제법 먹을만 하지 않나요? 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괜찮네.’ 라는 짧은 대답을 한다. 이런 저런 조곤조곤한 짧막한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탈까 하다가 전화가 온다. 남아있던 사이다에 눈길이 간다.
이거라도 마시지 뭐. 라는 말과 함게 그는 몇 모금을 마신다.
또 가야 할 곳이 있는 것이다.
갑자기 생각났다. 도시락을 사러 가는길에 담배를 샀었던 것이다.
물어본다. 담배 요즘도 태우시죠? 요즘은 안피워 라고 그는 대답한다.
하지만 난 상관없이 신발을 신고 있는 그에게 어줍잖게 담배 한개비를 권한다. 무슨 담배냐고 묻자 88 골드라고 대답한다. 덧붙여. 진한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난 담배불을 붙여드렸다.
그냥 보내기가 왠지 아쉬워, 유치한 남자들의 소년적 의기를 애써 꺼낸다. 그와 난 하이파이브를 했다. 첫번째는 어쩐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두번째는 어쩐지 만족감이 떨어졌다. 묘하게도 그와 난 그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번째 시도를 했다.
잘 맞는 느낌.
어쩌면 그는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느꼈던 무한에 가까운 3초간의 침묵을.
그는 나의 아버지 이다.
머리속에 알알히 박혀있는 눅눅함이라는 것을 느껴본적이 있는가?
그것이 목 뒤쪽을 타고 흘러내려와 척추를 관통하고 팔과 다리까지
눅눅하게 만들어버린다.
시시껍절한 음악 역시 눅눅한 음악.
필름을 스캔하고 있는 스캐너에서 나오는 위잉. 즈으으으으, 끄끄꺼끅 하는 소리도 팔뚝에 스며들어서는 눅눅하게 만든다.
몸이 찌뿌둥해서 기지개를 한번 하고는 이내 눅눅한 몸이 돌아온다.
마치 밀물과 썰물 같다.
맥주를 마셔보기도 했지만, 여전하다.
담배가 다 떨어졌다. 바람을 지나 담배 두갑을 사고 돌아왔다.
입술은 굳게 닫혀있다. 언제든 부드럽게 열 수 있지만, 천근만근 입술은 무겁다.
여전히 스캐너는 나와는 관계없다는 듯 – 실지로 정말 관계는 없는 것이다 – 똑같은 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어디 남아있는 버본이 몇방울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힘내야지. 그래.
바닥에 얼음이 깔려있고 코끝으로 느껴지는 공기는 시리다 못해 아릿한 느낌이다. 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워서 거의 손이 얼어버릴 지경이다.
카메라만 달랑 매고 필름을 주섬 챙겨선 그냥 나갔다.
하늘은 어둡고 불빛은 힘없이 아른거리고 있다.
너무 추워서 지하도로 다시 걸어들어 갔다.
무언가, 아릿한 느낌이 들면서 묵묵히 두 세장을 찍었다.
계속 걸었다.
오랫동안 사용했던 카메라를 수리 했다.
조리개를 바꾸는 서브 다이얼, 셔터 스피드를 바꾸는 메인 다이얼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약 7~8여년의 세월동안 나와 함께 살면서 먹었던 먼지와 기름들이 원인이었다.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가끔 노출계가 1/3~1스텝 정도 튕기는 현상이 있었다. 원인은 대강 짐작이 갔지만, 사용할땐 큰 불편이 없어서 그냥 우악스럽게 계속 돌리면서 사용했다. 게다가 가끔 그런 증상이 있었고, 불편을 느낄정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 난, 내 카메라를 누군가의 손에 만져지는 것을 싫어한 탓도 있었다. 당연히 누군가에게 분해 당하는 것 또한 대단히 싫었다. 설사 그게 수리라고 할 지라도.
하지만 이 증상이 1여년 정도 계속되다 보니 서서히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급박하지만 민감한 노출을 정할시에 몇번 기회를 놓치는 일이 최근에 몇번 생기기도 해서, 큰 맘 먹고 (정말 큰 맘 먹어야 했다) 수리 할 생각을 했다.
‘X 카메라’ 수리점에 가서 견적을 부탁해 보았다.
조심스럽게 나의 의견을 이야기 했다. ‘제 생각엔 아마도 접점부위가 문제지 않을까 싶습니다. 클리닝을 하면 될듯 한데 어떻습니까?’ 라고. 그래서 나온 수리비(?) 견적은 대략 13만원이라고 했다. 상당히 놀란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다이얼 파트를 교체하면 얼마가 들겠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32만원? 36만원? 아뭏든 그 정도를 달라고 했다.
공손히 고맙습니다 하고 물러났다.
주위의 아는 지인중 한명이 서울에 A/S를 보낸다길레 같이 보냈다. 나중에 저녁한끼 사기로 하고. 그리고 오늘 카메라가 돌아왔다. 발송, 수리, 도착까지 불과 3일. 다이얼은 말끔하게 고쳐져 있었다. 옛날 바로 그 느낌으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용한 탓인지 메인다이얼을 오른쪽으로 돌릴때의 반응범위는 왼쪽이 비해 짧긴 했지만,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이얼을 한 스텝씩 클릭 했을때,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만큼 노출계가 떨어지는 것을 보며, 진작 해줄껄 그랬나 싶어 오히려 카메라에게 미안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수리비가 얼마 들었냐고 물었더니, ‘무료’ 란다.
그래도 카메라 뜯고 클리닝 하고 하는게 ‘공임비’ 라는게 있는데 어째서 그럴수가 있냐 라고 (좋아라 하면서) 물었더니. 그냥 그렇게 해주었단다. 여러가지 사정이야 있겠지만. 기분 좋은 일이다.
‘X 카메라’ 수리점에 대해 원망을 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다이얼 클리닝에 드는 공임비가 13만원(이것도 정확하지가 않다. 16만원 같기도 하다)이라는건 아무래도 심하지 않나 싶다.
지금 당장 손해를 보는것 같아도 장기적으로 볼때 그것이 오히려 더 이득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건 아닐텐데…
내가 너무 어벙하게 보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찌 되었건, 카메라는 오랫만의 클리닝 덕에 기분 좋아 보였고, 나 또한 무척 기분이 좋았다.
김XX 군에게 대단히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