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년 전까지 소니에서 나온 상당히 작고 가볍고 튼튼하고 음질이 좋은
D-777을 사용했었다. CDP야 디지털이니까 어느 것 이라도 음질이
같아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CDP의 음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D/A 컨버터의 품질,
회로의 심플함, 그리고 볼륨에 사용되는 저항의 품질이다.
D-777의 경우 이 모든것을 충족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 다시 생각해봐도 디자인 만큼은 요즘에도 먹힐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매력은 CDP 본체에 아무런 LCD가
붙어있지 않았고 대단히 심플했었다는 것이다.
이어폰도 제법 성능이 좋은것을 따로 구입해서 들었었다.
거리를 걸을때, 학교에 갈때, 기분이 좋을때 혹은 나쁠때, 우울할때, 날씨가 좋을때 혹은 흐릴때, 비가 올때 혹은 맑을때…
음악을 들으면서 거리를 걷다보면 다르게 보일때가 있다.
혹은 더 절절히 와 닿을때가 있다. 예전에 사용 헀던 CDP가 완전히 고장난 후(4년 정도 사용했던것 같다) 이동형 음향 재생기기를 구입하지 않았다. 항상 음악을 듣고 다녔기 때문에, 음악없이 일상을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라는 생각이었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듣기 위한 따위의 돈을 투자 할만한 여력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제법 흐르고 최근 내 형편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무리를 해서 CDP형 MP3 플레이어를 구입하게 되었다. 대략 5~6년 만에 이동형 음향재생기기를 구입하게 된 것이다.
‘바깥 세상에 있을때의 음악에 대한 욕구’라는 것은 내가 생각했었것 보다는 상당히 강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귓구멍에 이어폰을 쳐박아 놓고 걷다보면 자신과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외부 세계와의 얇은 피막이 생길때가 종종 있다. 이 느낌 또한 상당히 멜랑콜리하면서도 쿨한 느낌이라서 좋을때가 있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간혹 그러한 느낌이 좋지만은 않을때가 있다. 그렇게 입술을 닫은체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걸으면서 문득 귓구멍에 있는 이어폰의 존재를 순간적으로 느낄때가 있는데, 그 느낌이 사뭇 무섭다는 것이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역시 ‘입술을 다문체… 몇시간이고 몇시간이고…’ 라는 느낌은 나에게 있어선 특별한 양식으로서 나의 감각기관에 자리를 잡고 있다.
No music, No LIFE.
추신 : 당신은 길을 걸으면서 음악을 듣다가 울어 본 적이 있습니까?
간만에 프린트를 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진을 몇장 셀렉트 해서 암실에 들어갔다.
막상 프린트를 하려고 하니까 8×10 인화지는 남아 있는게 없었다. 덕분에 16×20의 일포드 화이버 베이스 프린트를 했다. 기왕하는거면 20×24를
해도 좋았을테지만, 그것 역시 없었다. 간만이니까 화이버 프린트도 나쁘진 않겠지.
비교적 오랫동안 사진 정리 목적을 위하여 필름스캔만 했었던 터이기 때문에, 오랫만의 암실작업은 좋았다.
모든것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다. 암실 특유의 미묘한 공기냄새, 확대기의 질감, 어둠속에서 인화지로 뿌려지는 빛덩이들의 모습. 그리고 그 덩어리들이 인화지를 새겨내는 그런 공기감.
그리고 이젠 제법 아무렇지 않을때도 되었건만, 현상액에 인화지를 담그고 천천히 상이 뜰때의 그 묘한 마취감은 여전히 같은것이다.
물론 태어나서 처음으로 현상했을때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감정이지만, 여전히 그 미묘한 마취감은 날 암실에서 나가질 못하게 한다.
이리저리 프린트를 8장 정도하고나서, 인화지 수세기에 물을 채워넣고
한장씩 한장씩 넣는다.
기분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수세기 속에 들어있는 인화지를 보고 있으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든다. 유치스러운 과장법이겠지만, 어떠한 영혼이 그 공간속에서 알을 꺠고 나오기 직전의 그 신선한 느낌, 그런 알싸한 공기냄새가 느껴진다.
수세가 끝나고 나면 스퀴지 플레이트에 인화지를 올려놓고, 유제면을 밑으로 하고 베이스면을 힘껏 스퀴지 한다. 물을 잔뜩 먹은 화이버에서 물이 쭉쭉 빠져나간다. 다시 뒤집어 유제면을 아주 조심스럽게 마치 애인의 목덜미를 햛듯 그렇게 물기를 빼내고, 건조대에 인화지를 말린다.
지루하다면 정말 지루한 과정이고, 힘들다면 정말 힘든 과정이다.
때에 따라선 정말 하기 싫을때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암실의 낮은 붉은 불빛, 약품냄새가 떠돌아 다니는 공기냄새, 신뢰감 가득한 튼튼한 확대기와 그곳에서 뿜어져나오는 빛덩어리들이 인화지를 새겨낼때, 그리고 약품속에 천천히 상이 떠오르는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암실에서 작업할때 아무말 하지 않고 입을 다문체 이 모든것들을 오롯히 느껴낼 수 있을때.
이러한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난 암실에서 프린트 하는것이 싫을수가 없는 것 이다.
멍하게 계속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음악이 들렸다.
Stella by Starlight라는 곡이다.
마일스 데이비스는 이렇게 말하는것 같다.
그래. 친구, 뒷골은 뻑뻑하고 목에는 피가 굳어 있지?
내 다 알지. 어때, 맥주 한 잔, 담배 한 모금 마셔봐.
라면서 나에게 담배를 물려주었다.
그리고는 말 없이 연주를 한다.
왠지, 순간 모든것들이 정지되고 무너지고 아무것도 없어지고,
작업실 한 가운데서 한참동안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느낌은 정말로 아주 간만이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약간은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구차하게 쓸데없는 말을 더 늘어놓고 싶진 않지만,
재즈는 Free Sprit 이라는 것을 한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아무 말 없이 거리위를 부유하면서 돌아다닐때가 있다.
웃기는 이야기만 분명 죽어있는 느낌인데도, 오히려 생생히
내가 살아있다는 위속의 울렁거림을 절절히 느낄때가 있다.
곧 있으면 완연한 봄이 될 것이고, 벚꽃도 피어나겠지.
그리고 말 없이 걷고, 수업을 받고, 책을 읽고,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게 되겠지. 말 없이 사진을 찍고, 귓구멍엔 이어폰이 끼워져 있을것만 같다.
귓구멍에 이어폰 같은건 꼽고 싶진 않다.
하지만, 요즈음이라면 필요 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다.
추신 : 선물 너무 고맙다. 미아야.
겨울의 냉냉한 미풍속에 봄냄새가 스리슬쩍 느껴질때 즈음이면
매년 생각하는것이 하나 있다.
아아. 올해는 해바라기를 찍을 수, 아니 하다 못해서 보기라도 할 수 있는걸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후로부터 언제부턴가 이런 생각을 매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왠지 상당히 놀라버렸다.
찍는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냥 앞에 해바라기가 있고 카메라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있어서 안된다. 내가 찍고 싶은 해바라기는 아주 보통의 평범한 해바라기다. 이미 관용화 되어버린 그런 해바라기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아주 단순하다.
모든것이 말라버릴것 같을정도의 눅눅한 햇살 아래 하늘은 맑고
꽃잎 – 이걸 꽃잎이라고 불러야 하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 은
답답한 가슴속을 날려버릴정도로의 선명한 진노랑의 에너지 넘치는
그런 해바라기를 찍고 싶다.
라고 매년 이 맘때 쯤이면 생각하기 시작하는 것 이다.
어째서 매년 그러하지 못했을까 라고 생각을 해보니,
생각 해 보면
간단하다.
아침 9시 30분.
전화소리에 잠을 깼다.
두세시간 잤을까, 일어나서 간단하게 정리를 하고 길을 나섰다.
아침의 햇볕속에는 봄내음이 뭍어나고 있다.
차에 탔다.
내 옆에 있는 남자는 어딘지 모를 세월에 냄새가 났다.
좀더 말하자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이 썩어갈때의 그런 중년 이후의 남자 냄새다.
그 냄새 때문인지, 수면 부족때문인지. 그래 둘 다 일 것이다. 뒷 정수리가 아릿하고 머리가 아프다. 그가 뭔가를 자꾸 물어본다. 머릿속으론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설명 혹은 대답을 해줘야 하지 않겠냐, 라곤 하지만, 왠지 난 조금은 짜증이 담긴것을 억지로 자제하려는 것이 역력한 말투가 되어버린다.
나는 점점 침잠해지고, 말수는 거의 없었고, 혼은 반쯤 나가있는 상태가 되었다.
지독스레 햇빛은 밝아서, 마음을 더욱 더 우울하게 한다.
돌아오는 길에, 도시락을 먹기로 했다. 작업실 앞에 차를 세우고 그 남자에게 작업실 열쇠를 쥐어주고 먼저 올라가 기다리라고 했다.
도시락 2개를 받아들고 다시 작업실로 돌아는 길 횡단보도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멍하게 바닥을 보고 있는데, 바싹 말라붙은 아스팔트에 두껍게 칠한 흰색의 갈라진 횡단보도 페인트 위로 부서지는 은빛이 보였다. 시큰한 냄새가 아무런 자극 없이 느껴진다. 신호가 바뀐것도 모른체 멍하게 계속 보고 있었다.
작업실로 돌아오는 계단 위로 길 앞에서 뒷 트렁크 정리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혼자 들어가기가 어색한것 일까. 나와 같이 들어가고 싶어했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아무말도 못한체, 왼손엔 도시락이 들어있는 비닐봉투만 바람에 사각거린다. 트렁크 정리가 다 끝나고 난 말했다. ‘먼저 올라가시지 그랬어요’ 그러자 그는 아무말 하지 않는다.
올라가서 자리에 앉고 도시락을 먹는다. 이 정도에 이 가격이면 제법 먹을만 하지 않나요? 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괜찮네.’ 라는 짧은 대답을 한다. 이런 저런 조곤조곤한 짧막한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탈까 하다가 전화가 온다. 남아있던 사이다에 눈길이 간다.
이거라도 마시지 뭐. 라는 말과 함게 그는 몇 모금을 마신다.
또 가야 할 곳이 있는 것이다.
갑자기 생각났다. 도시락을 사러 가는길에 담배를 샀었던 것이다.
물어본다. 담배 요즘도 태우시죠? 요즘은 안피워 라고 그는 대답한다.
하지만 난 상관없이 신발을 신고 있는 그에게 어줍잖게 담배 한개비를 권한다. 무슨 담배냐고 묻자 88 골드라고 대답한다. 덧붙여. 진한거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난 담배불을 붙여드렸다.
그냥 보내기가 왠지 아쉬워, 유치한 남자들의 소년적 의기를 애써 꺼낸다. 그와 난 하이파이브를 했다. 첫번째는 어쩐지 타이밍이 맞지 않았고, 두번째는 어쩐지 만족감이 떨어졌다. 묘하게도 그와 난 그것을 서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세번째 시도를 했다.
잘 맞는 느낌.
어쩌면 그는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느꼈던 무한에 가까운 3초간의 침묵을.
그는 나의 아버지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