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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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남에게 희생을 당할 만한
충분한 각오를 가진 사람만이
살인을 한다

그러나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우리들의 옆에서는
어린 놈이 울었고
비 오는 거리에는
40명가량의 취객들이
모여들었고 집에 돌아와서
제일 마음에 꺼리는 것이
아는 사람이
이 캄캄한 범행의 현장을
보았는가 하는 일이었다
–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었다

(1963. 10)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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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훈(安炳勳)전

이마를 조아려 말씀 드리옵나니 접때 보낸 편지 이미 들어가서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엎드려 생각하노니 모시고 병환중인 몸 한결 효험을 보는지요, 구구히 지극히 우러러 생각합니다.
상중의 몸 미련한 모습 예와 같을 따름이외다. 며칠 전 이석곡선생이 밀양에 온 때문에 잠시 문안하고, 곧 내려온즉 이씨 또한 대구로 향해 그동안 아직도 그곳에 머물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보내드리는 소록은 전자에 보낸 소포서류의 초안을 정서할 때, 다시 고칠 곳이 있어 여기 조각 기록으로써 다시 부치나, 그러나 어느 줄 문구 아래 적어 넣을지 모릅니다.
부디 보살된 후 고쳐 기록함이 어떠하리오, 만약 모르면 다시 통기하기 간절히 바랍니다.
잘 조리하여 어른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음이 어떠하오리까. 아득하여 차례도없이 아뢰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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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 둘 다였다. 둘 다이며 또 훨씬 그 이상이었다.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였고, 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 … 나는 운명을 동경했고, 운명을 두려워했지만, 운명은 늘 거기에 있었다.

– Hermann Hesse

잃는다는 것.

그 어떠한 미사여구가 붙는다 하더라도 결국 소요욕, 물욕이라는 것이 정당하리라 생각한다.

자동차라고 한다면 속이 들여다 보일것 같은 코발트 블루나 브리티쉬 그린의 caterham super 7이다. 이 차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어서 그 사이 매우 다양한 버전과 가격대가 있지만 외형 기본 디자인은 변화가 전혀 없다고 해도 좋다. 커다란 나무상자 2개를 빠루로 직접 뜯어내서 엔진을 제외한 자동차 전체를 나사 하나부터 손수 전부 조립해야 하는 킷이다. 제로백은 3.8초. 특이하달지 당연하게도 캐터햄 본사에서는 이 차를 만드는데 사용하는 나사 하나까지도 전부 따로 판매한다. 기름복을 입고 차에 기어들어가서 사소한 나사 하나까지 완전히 내가 만들어가는 자동차.

그리고 스피커라고 한다면 MBL Radialstrahler 101.
이 스피커는 1996년, 어쩌면 1997년에 딱 한번 들은적이 있다. 정확하겐 이때 나는 소리에 관한 기준의 정립이 이루어졌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왜 이런식으로 말하냐면, 당시 들었을땐 기대감이 과했던 탓이였는지 뭔가 천상의 소리 같은걸 기대하고 있던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상 들렸던 것은 천상의 소리 같은것 따위는 전혀 없고 ‘그냥’ 음악을 연주하는 소리만 들렸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렇게 들렸던 큰 이유중에 하나는 소위 ‘스피커가 사라진 듯한 마법’을 경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순간부터 이루 뭐라 말하기 힘든 감정이 생겨났는데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빴었냐 라고 하면 왠지 좀 기분이 나빴었던 것도 같고. 혹은 좋았었냐 라고 한다면, 그건 정말이지 무척 좋았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런 소리는 단 한번도 들은적이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자기 좋을데로 변형시키기 마련이고 지금 다시 들어본다면 이것이 어떻게 들릴지 짐작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음악을 재생하는 기기류 듣는데 있어서 지금까지의 명확한 기준을 무의식적인 영역에서 작용한 것임엔 변함이 없다.

14여년 이상 나와 함께한 앰프는 생산일이 내 나이와 엇비슷한 낡고 구동력 반응속도 모두 떨어지며 뭉툭하고 부드럽고 포근하게 감싸는 소리를 들려주는 녀석이다. 스피커는 한때 한국 스피커의 자존심이라 했던 동양마샬 DME 스피커. 이 역시 해상도나 반응속도와는 거리가 아주 먼 녀석이다.

막상 소리의 기준은 MBL의 저런 말도 안되는 녀석이였으면서도 막상 내가 듣기 편안해 하는 것은 이런 부드럽고 뭉툭한 쪽인 것이 난 아주 재미있다. 그리고 이것이 난 무척이나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언젠간 MBL Radialstrahler 101E Mk2 Reference를 소유해서 내 가슴속 남아있던 잔영을 파쇄하고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 또한 무척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소유 라는 것의 밑바닥엔 언제나 그러한 것을 깔고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무척이나 아프고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모른다.

특히 그 힘뺀 웃는것과 우는 것의 사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낌이 왔던 여배우는 바닐라 스카이의 페넬로페 크루즈, 아주 옛날 김건모 뮤직 비디오에 나왔던 장진영 정도다.

남자 배우는
빌 머레이다.

가슴속에

계속… 고생만 해왔으니까…
예전 아버지가 했던 공장이 망하고 여자랑 도망 갔더랬어요. 매일같이 빚쟁이가 들이닥쳐서는 어머니는 빌기만 했었죠. 그러던 어느 날엔가, 어쩐지 어머니가 데려가서 둘이 바다에 갔어요. 아무도 없는 모래사장을 둘이서 하염없이 걷다가, 난 더 못걸어! 라고 투정을 부렸어요. 그랬더니 가까이 있던 식당에 들어가선 어머니가 이걸 주문해줬어요. 나는 결국 세그릇이나 더 먹었죠. 한번 더 ‘한그릇 더!’ 라고 외쳤을 때는 엄청 혼났지만 말이죠.

어지간히도 맛있었나 보네.

그때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지락 청주찜을 먹었었죠. 어른이 되고 어머니가 그러시더군요. 니가 술찜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죽는 거 관뒀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듯한 생각보다 평범한 이야기다. 그리고 어떤이는 더 이상 살아갈수 있는 무엇 하나 이유도 기력도 모두 소진되어 분명히 확실하고 똑똑한 느낌으로 희미한 죽음을 들이마시며 오늘 바로 죽어도 이상하게 않겠다 싶은 어느 날 밤, 자주 지나가던 길에 있던 포장마차에서 즐겨 먹던 만두를 먹고 다시 살아야 겠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나로 말할것 같으면 뭔가를 먹은 후 살아야겠다라는. 그런 막 도축한 뒤, 살을 베어난 장소에 피어오르는 김 같은 것은 없었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고, 꾹 참다가 넘쳐버려 그만 눈물이며 콧물이 범벅이 된적이 있다. 너무나 맛있었던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그렇게나 심장이 도려내진 듯한, 배어낸 그 자리엔 굵은 동맥이 피를 분수 처럼 치절 거리며 질기게 토해내고 있었고 정맥은 다리 사이로 소리 없는 강물이 흐르듯 그런 상태로. 몇일 동안이고 몇주 동안이고 언제 까지나 언제 까지나 눈을 뜨고 걷고 잠을 자고 몸도 마음도 한없이 도륙 당하는 것과 가까운 나날 중에 먹었던 음식이 너무나 맛있게 느껴지는 것이 나로선 이해 할 수 없었다. 정말 이해 할 수 없었다. 정말 이해 할 수 없었다. 사드륵 하는 소리가 나는 오싹 할 정도로 신선한 재료에 절제된 향신료의 비율이며 촉촉한 정도와 함께 루꼴라와 막 갈아넣은 단단한 치즈 속에 숨어들었다 피어오르는 육고기 같은 향과 동시에 진하고 달콤한 향기가 코와 뇌 구석 구석 들이닥쳤다. 고개를 숙이고 이빨이 부러져라 꽉 깨물고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느낌이 나를 구석까지 몰아세워선 이윽고 이빨을 꽉 깨문 그 상태로 낮은 비명이 나왔다. 정말 이해 할 수 없었다.

그 속에서 이렇게나 맛있는 것을 함께 먹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비명은 울음으로 변했다. 차마 목 놓아 울지 못한 그런 갈 곳 없는 울음이였다. 함께 하던 분이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너무 맛있어서 그랬다고 대답을 했다. 몇분을 울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천장이 조금 높고 유리벽으로 되었던 조금 넓은 홀에서 어떤 소리가 났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때의 맛있는 음식이 나에게 어떤 구원을 주었냐 하면 그것은 아니였다. 그렇게 울고나서 후련했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죽음의 옆에서 먹은게 아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준비 자체가 아에 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 다시 돌이켜 보면 머리로는 왜 그렇게 된 것인지 논리적으로 차분히 설명 할 수 있다. 허나 여전히 난, 그때 일을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가지 알게 된 것은 나의 의지를 떠나 내가 삶에 대하여 얼마나 탐욕스러운 인간인지 살짝 엿본 듯한 기분은 든다. 그리고 머리와 마음과 몸이 서로간에 어느 만큼의 거리 만큼이나 불일치가 되는지 또한 알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모든 것이 악화되어 가기만 하고, 바로 죽음의 직전까지 몰렸을때 그 어느 누구도 나를 어찌 해주지 못할때, 이 지옥에 다시 나를 끌어다 놓은 것은 만두를 먹고 살아난 놈의 안타까울 정도로 서투르고 뭉툭한 그렇게 길고도 지루한 몇 마디의 말 이였다.

여전히 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그때 그렇게 했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알게 된,
맛있는 것을 먹을때 생각 나는 사람이라는 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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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20여년 동안 작업 하면서 내가 SONY의 카메라에 대한 호감을 가지게 될거라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내장 플래쉬가 탑재된 알파7r 후계기가 나온다면 어떠한 경위가 되었던 입수 할 것 같다.

렌즈의 구성은 28mm 아스페리컬 스미크론, 35mm 즈마론, 40mm 녹턴 싱글코팅, 50mm 아스페리컬 스미크론.

내장 플래시가 꼭 있어야 한다.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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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셀렉이 끝났다. 여기까지 남은 사진은 436장. 그런데 숨쉬기 가쁠 정도로 부족한 산소 농도였던 것이, 어찌된게 그런 느낌이 싹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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