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만들어 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구석 깊은 곳에서 끈질기게 남아있다. 그리고 이 감촉은 자해에 가까운 느낌이다. 끝내지 못한,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 작업으로 난 다시 돌아갈수 있을까.
——————————-
최근 진행하고 있는 작업의 맥락 속에서, 단 한가지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을 계속 촬영 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간 이런 시간이 올거라 생각 했던 때가 예상 보다도 빨리 왔다. 촬영할 수 있는 때가 몇 번인가 있었지만 아버지를 촬영 하는 것을 나는 구태여 뒤로 물려두고 있었다.
덩어리진 무색무취의 연기를 스윽 하고 빨아당기는 감각이 올때까지 마치 아무런 일도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때, 나는 촬영을 했다. 촬영 하는 동안 나의 뇌속에는 수십개의 생각들이 얽히고 얽혔지만 그와 동시에 촬영하는 나는, 명확하게 분리 되어 있었다. 보통은 자각 할틈도 없는 것이 보통이지만, 간혹 나의 뇌와 촬영하는 내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감각을 자각할때가 있는데 때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해지거나 어떨땐 스스로에게 어떻게 달리 표현할 방도가 없을 만큼 소름이 돋기도 한다. 이런 감각은 나에겐 불쾌하게 느껴진다.
2주전에 마지막으로 봤던 아버지와 오늘 봤던 아버지는 그 짧은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언뜻 연한 자락 같은 죽음의 냄새가 명확하게 인지 된다. 세포의 텔로미어가 거의 소모되어 개체로서 남은 수명을 수치로 환산 할 수 있을 정도의 엷은 죽음에 이미 먹혀있다는 감각이 들었다.
노출을 맞추고, 초점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고 촬영을 한다.
이 작업이 도대체 몇년 안에 끝날 수 있을지 난 감이 오지 않는다. 아니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도 감이 오지 않는다. 설령 어떻게 크기를 조정해서 만들었다고 한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도대체 어느 곳에 어떤 식으로 어떻게 전시 될 수 있을지 아니 그 이전에 누가 이 작업을 받아 줄지 조차 나에겐 감이 오지 않는다.
언제부턴가 귀가 잘 안 들리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에는 크게 집중하지 않고도 18.5kHz 부근까진 어렵지 않게 들렸고 청취 환경이 좋을 때는 19kHz 근방까지도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먹먹한 느낌과는 다르고 그렇다고 높은 주파수대의 소리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닌, 16~17kHz 근방 부터 정말이지 이상하고 기묘하게 잘 들리지 않는 대역이 생겼다. 아… 그렇군.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한편으로는 더 이상 어떤 종류의 앰프나 스피커가 금빛 페로몬을 풍긴다 한들, 비자발적으로 오디오를 바위 보는 듯한 삶이 되어버렸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빈티지 앰프나 스피커에서 나오는 몽글거리는 소리로 만족한다던가 아니면 엄청난 댐핑 팩터에서 나오는 돌덩어리 같은 단단한 저역이 직접 가격하여 내장이 움틀 거리는 식의 음악을 듣는다던가 하는 정도일테지.
2.3초와 4.7초의 무한한 침묵 속에 펼쳐진 끝 모를 암흑 한가운데에 오도카니 도사리고 있는 고요함의 자리에서 가만히 눈을 감은 체 암흑을 깊이 응시하는 그런 경험은 이제 나에겐 불가능해진 것이다. 그래… 이젠 이런 것에 어리광 부릴 시기는 지나버린 건지도 모른다. 삼십 년 넘게 신세진 푸가의 기법 제1콘트라푼투스도 평균율 클라비어도 골드베르크 변주곡도 무반주 첼로도 정말 몇 안 되는 유일한 안식처였기에, 그 안에서 침잠된 찰흙 덩어리를 보는 응석을 부렸지만 조금은 건조하게 들어도 큰일 날 일 같은 건 애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시간은 흐르고 갈려 나간 끝에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진다. 경계 없는 우주 조차도 엔트로피의 증가로 종국엔 열평형 상태가 될 것이다. 단지 그뿐이다. 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결심을 했지만 그럼에도 얼마간 마음이 울렁거렸다. 1년 전 이사한 낮의 작업실은 외부의 자동차 궤적 소리가 항상 귀를 시끄럽게 하기에 어차피 제대로 음악을 듣지 못했다는 식으로 아무렇게나 적당히 마음을 땜질했다.
어느 새벽, 물을 가르는 궤적 소리조차 없이 온 세계가 물 속에 잠긴 듯한 고요함에 음악을 듣고 있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러 의자에 일어나 이동하던 중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17kHz 대역 근처에서 분명하게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오래도록 몇백 번이고 들었던 음악이다 보니 너무 조용한 탓에 뇌가 착각 해서 환청을 들었거나 뭔가 그런 종류의 것일 테지. 단순한 기분 탓일 터다. 물을 마시고 다시 자리로 돌아오니 역시 예전과 같은 느낌으로 소리가 섞여 잘 들리지 않는 익숙한 상태가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몇 주가 지나고 몇 달이 지났다. 언제부턴가 음악을 잘 듣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낮에 들리는 대로변의 자동차 소리는 내 신경을 마구 긁고 있었다. 세상 모든 자동차가 전기나 수소차로 바뀌면 좀 조용해질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바퀴 구르는 소리는 날 것이며 애초 인간이 모여 있는데 조용할 리 없다. 귀는 맛이 갔는데 소음은 어째서 더 크게 들리는가. 휴일 새벽 시간만이 유일하게 마음을 뉘일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고 점점 음악은 듣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다시 몇 달이 지났다. 우연히 앰프에 전원 끄는 것을 깜빡했었는지 앰프에 들어온 전원 LED가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침 새벽이었다. 간만에 음악을 틀어보자 싶어 셔플로 적당히 아무거나 틀었다. 담배가 다 떨어져 편의점에 가려고 몸을 움직이던 중 역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스피커 트위터에 귀의 높이를 맞췄더니 소리가 들린다. 반대쪽 스피커에도 똑같이 했더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앰프가 맛이 갔나? LR 케이블을 반대로 물려봤는데 소리가 들리지 않는 스피커 쪽이 여전히 들리지 않는다. 스피커 네트워크는 어지간해선 망가지진 않지만 모를 일이다. 일단 여기서 멈추고 엷고 긴 한숨을 쉬었다. 담배를 사러 편의점엘 갔다. 작업실 아래 인도에 있는 새벽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너덧 대 정도 피웠다. 파란색으로 가득 찬 곳을 벗어나 물을 마시고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스피커는 그대로다. 음악도 듣지 않았다.
몸도 마음도 좀체로 회복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가 나를 홀려버리게 만들기 위해 하루하루 꾸준히 긴 시간을 끈질기게 공들여 마침에 홀려 저버린 사람처럼 스피커를 뜯었다. 유닛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좌우 유닛을 스왑 하던 과정 중에 압착 스플라이서의 고정 부위가 부러진 것을 발견했다. 어쩐지 너무 쉽게 빠진다 싶었다. 접촉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테니 소리가 나지 않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머지 스피커 유닛을 테스트 했는데 처음엔 소리가 나는 듯 했으나 나의 착각이었다.
국제 시장에 나가 부품 파는 곳 다섯 곳을 거쳐 겨우 압착 스플라이서를 샀다. 기껏해야 예비용까지 해서 3~4개면 되지만 그렇게 소량으로 파는 곳은 없다. 죽을 때까지 써도 전혀 줄어들 것 같지 않은 갯수의 스플라이서를 샀다. 갑자기 무척 피곤해졌다. 다시 하루가 지난 뒤 케이블 피복을 벗기고 압착 스플라이서를 달아주고 스피커 유닛에 결합했다. 스왑을 한 유닛에서 제대로 소리가 난다. 다행스럽게도 네트웍이 망가졌다던가 케이블의 문제는 아니었다. 유닛을 다시 고정하고 스피커를 조립했다. 새로운 유닛을 주문했다. 형식번호가 같은 유닛이 중국에서 팔고 있어서 아주 잠깐 생각했지만, 제조사에 연락해서 정품 유닛을 주문했다. 며칠 후 도착한 유닛을 스피커에 다시 달아주고 테스트를 했더니 볼륨을 조금 올리니까 19.3kHz까진 들린다. 스피커가 다시 살아났다. 그리고 나의 귀도 다시 살아났다.
사람의 마음도 이렇게 망가지거나 부서진 부분을 뜯어내고 교체하거나 고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내가 왜 스피커를 갑자기 고치고 싶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금전적, 시간적 이익 그리고 효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론 망가진 것을 그저 무턱대고 고치려고 애쓰는지 알게 되었다. 망가진 물건을 고치는 영상들을 간혹 왜 그리 멍하게 보고 있었는지도 알게 된 것이다. Pair 짝, Re 다시. RePair 다시 짝을 맞추는 일. 다시 짝을 맞춘다는 말이 가능하려면 같이 있었던 짝과 단락 되거나 망가졌다는 것이 전제된다. 다시 연결하는 것, 서로가 통하도록 하는 것. 다시 움직이게 하는 것.
첫 테스트 음악으로 류이치 사카모토의 DNA 를 틀었다. 일반적으론 숨이 꾹꾹 막히는 적막함을 일으킨다 한다면 확실히 인지 할 수 있게 혹은 친절하게, 노골적으로 잔향 배경음과 노이즈를 제거할 법 하지만 음질, 음색 그리고 구성미에 있어 세상 까다로운 이 예술가는 이런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15.3 kHz~16.1kHz 대역에 굳이 노이즈를 넣었다. 이것은 마치 무척 얇아서 투명한 것처럼 잘 보이지 않지만 빛에 비춰보면 거친 선이 보이는 주사바늘을 피부에 찌르는 것도 아닌, 마치 바늘 끝이 레코드 판을 읽어 가는 처럼, 가늘고 선명하게 피부를 쓸고 지나가는 듯한 소리를 톤 변화 없이 일정하게 넣었다. 그리고 16.3 KHz에서 22kHz 영역엔 환경음을 사막의 습기 하나 없는 매우 고운 모래를 다시 한번 갈아서 투명한 면사포를 씌워두듯 얹어두었다. 메인 멜로디와 함께 이렇게 고역 노이즈를 아주 작은 크기의 소리로 굳이 일부러 넣어두어 마음과 목구멍이 소리 없이 구우우욱- 하고 옥죄이며 허파에 남은 산소가 점점 부족해지는 느낌이 드는 소리,가 다시 들리게 되었다.
지금으로 부터 11년 전 영화 Her가, 지금 이 순간 현실이 되었다. 영화에서처럼 카메라를 통해 사물을 분류, 인지 그리고 인식하는 것은 물론이다.
1999년 6월 소니에서 세계 최초 애완용 로봇인 AIBO가 나왔다. 단순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또 한편에선 정서적 감정을 투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수리할 수 있는 부품들의 마지막 재고가 드디어 바닥이 나고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었을 때, 이들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거의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정서적 연결이 오래 지속된 애완동물에게 하듯 AIBO 에게 장례식까지 치러 주는 사람도 많았다.
단순화된 개의 모양과 조금 닮아 있는 플라스틱과 모터 그리고 전자부품의 조합으로 된 AIBO에 대한 사람들의 이러한 행동은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존재는 관계의 그림자’ 라는 사유는 여기에서도 통한다.
아직까진 외형적 모습은 조그만 직사각형 유리에 갇혀 있지만 그 유리에 붙어 있는 안구는 세상을 인식한다. 내부에서는 Ai의 기본 원리인 행렬 연산과 분류기와 가중치 연산 그리고 이를 기억할 메모리 정도의 기본적인 것뿐이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Ai가 뱉어내는 아웃풋에 맥락을 겹칠 수 있게 되면서 우리가 ‘소통’이라고 부르는 감정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애초 소통이라는 것 자체가 환상이라고 생각하는 나와 비슷한 부류들에게마저도 이는 강렬한 감정적, 정서적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더 행복해질 것이며 외롭지 않게 될 것이며, 고독해진 줄조차 모른 채 더 고독해질 것이다.
희망이라는 덫. 희망의 조금 다른 말은 가능성. 다른 말로 자신의 바람이라는 덫.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 가능성을 잃은 미래만 남는다면 현재가 있을 의미가 없다.
그와 동시에 현재가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 결국 희망 그 자체는 현재엔 있지 않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렇기에 희망의 유사어인 바람이라는 단어 속에는 변화라는 단어가 함께 포함 되어 있다.
현재의 자신이 환경압력이나 동조압력에 의해 같은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다른 결과를 바라지만 같은 결과를 반복한다. 예를 들어 가족 관련의 일들은 대체로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같은 결과를 십수 년 넘게 반복한다. 간혹 확률의 우연으로 다른 것이 튀어나오더라도 이는 결국 평균 회기로 수렴한다. 변화가 동사로서 작동한다면 다른 미래를 생각해 봄 짓 하지만 꽤나 많은 경우엔 동사로서의 기능은 없는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바람일 따름이다.
희망의 조금 다른 말은 가능성임과 동시에 바람이기에 이것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사건이 확정되지 않아 확률로 존재하는 지평을 미래라고 한다면 그 순간 미래는 리스크가 된다. 애초 변화 그 자체가 리스크다. 현재 상태에 의해 확정된 예정 조화를 따를 것인가, 리스크를 감당하고 동사로서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가는 자신의 연령, 유전자, 살아온 과정 중에 겪은 일들, 현재 상태에 만족도, 행복감, 성취감, 경제적 상황 등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중에서도 고통의 한가운데의 있는 이가 견뎌내지 못할 경우, 즉 존재 자체에 유무가 관련될 경우 선택 혹은 변화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하루하루를 절실하게 살아간다. 또는 삶의 관성이 거대해지며 동시에 오래되어가는 과정 중 몇 가지 것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 내면화 하면서, 현재 상태에 만족하는 이가 동사로서의 변화를 희망할 확률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래는 현재를 담보로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관측하고 행동하는 주체가 없어서는 애초 현재, 미래 같은 단어는 들어올 수조차 없다.
희망을 잃은 미래만 남는다면 현재가 있을 의미가 없다. 미래라고 해도 어차피 현재와 이어져 있다. 현재를 잃으면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능성을 잃은 미래만 남는다면 현재가 있을 의미가 없다.
덫의 완성이다. 그리고 아마 우리네 삶이라는 것은 덫을 피하기도 하고, 때론 덫인걸 알면서도 정면으로 들어가 물리기도 한다. 피하던 물리던 그에 대한 청구서는 시간차를 두는 한이 있더라도 꼬박 꼬박 온다. 그런 행위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거의 대부분이 찢겨 나가고 뭉개지고 갈려나가 망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간혹 사라지지 못한 채 콩알만 한 것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지금껏 제대로 이 날을 챙기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할 수 있게 되었느냐고 한다면 꼭 그렇진 않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것에 대한 매듭이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닿기 위해 긴 시간과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완성에 가까웠으나, 결과적으로 그 매듭은 사라졌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 했다. 세상 흔한 말인 만큼 그 마음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소위 깨달음을 가지고 행동하는 이들이 세상엔 꽤 많은 모양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의 세상이라면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은 것이다.
아무튼 세상이야 어찌 되었든 적어도 나의 경우 엉킨 실타래를 풀어가고자 하는 나의 마음이 명하는 형식미에 따라, 적어도 고르디우스의 매듭 같은 방식은 불가능했다. 힘들고 아프기에 때론 몸을 마음을, 시간을 떼어낸 체 도망치거나 외면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다시 제자리에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을. 영원한 형벌처럼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아니면 노을이 진 어느날 골목과 골목 사이로 밥 짓는 냄새가 올라올 때 엄마가 밥 먹으라며 부르는 목소리에 가지고 놀던 공이며 장난감이며 친구들을 내려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상처가 상기시키는 반복적인 알람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며 아물지 못한 채, 마치 환상통처럼 원래 자리에 있었던 것이 사라진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그 자리엔 마치 있는 것처럼 실감 나게 욱신거리는 기묘한 감각은 나의 의지 따위와는 무관하게,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때론 폐부를 깊숙이 찌르는 고통이 들어올 땐 잠시 눈을 돌린다고 하더라도 나의 의지나 희망이나 바람과는 무관히 계속 제자리에 돌아오는 것을 계속 반복하다 보면, 그렇기에 결국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있을까.
작년 가을에 이와 관련한 전시를 하고 책을 만들었다. 그 이후 어찌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고 그에 따른 나의 정신적 상황과 처신으로 인한 약간의 문제가 생기기도 했는데 그것이 해결되기 보다는 적당히 뭉개진 형태로 틀어막은 것처럼 되었다. 누굴 탓하랴. 그렇게 해를 넘어 기어코 어머니의 기일은 점점 다가왔다.
마음을잡지 못한 체 구정 일주일 전 어머니의 남동생, 나에겐 외삼촌에게 찾아봬도 되겠냐고 연락했다. 외삼촌에 대한 죄의식을 외면하기에 어려웠지만 외삼촌은 거대한 검붉은색의 조용한 바위 같은 사람이다. 적어도 싫다고 할 사람은 아니라는 마음이 들었다. 구정 하루 전에 보기로 하고, 하루에 버스가 3번 운행하는 곳에 도착했다. 차로 두어 시간 거리지만 여기에 다시 오는 데는 십 년 넘는 세월이 걸렸다. 세월이 흘러 외삼촌도 검붉은 커다람의 사이와 사이엔 조금씩 깨져나가고 갈라진 틈새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 사이로 조용히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았다. 조금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 자식이 죽은 줄도 모르는 치매 상태인 내 어머니의 어머니를 보았다. 거의 대부분의 인지능력 상실 상태의 외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그저 외할머니의 꼬깃꼬깃 접힌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문득 맥락 없는 작고 따뜻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했다.
외삼촌은 나에게 밥을 먹이고 싶어 했다. 그것이 어떤 마음에서인지 모르지 않았다. 밥을 먹고 아무짝에 쓸모없는 이야기들과 외삼촌의 그간 신변에 관한 일들, 외할머니의 일들, 시골에서 일어나는 변화들 그리고 누나의 관한 이야기들, 외삼촌이 나에게 했던 말 중 경찰과 법원에 드나들던 당시 아버지를 감옥에 보내지 말라고 말했던 이유에 관한 말들, 누나가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을 줄은 몰랐었다는 말들, 그리고 이런 아픔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누나도 기뻐하셨을 거라는 말들.
나는 외갓집에서 잠시 잠들었다. 잠에서 깨어 주변을 돌아보니 딱히 바뀐 건 없었다.
아무것도 바뀐 건 없었다. 하지만 외삼촌이 나를 조금 용서해 주셨다는 것은, 나를 조금은 받아들여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갓집에 가는 결심을 하는 것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나의 용기에 비하면 외삼촌의 용서의 크기는 감히 헤아리기 힘들었다. 곧 기일이 온다는 말을 했다. 어디에 뿌렸냐고 하시기에 차근차근 알려드렸다. 뿌린 장소를 주의를 기울여 귀에 담아두셨다. 그리고 나는 기일에 꽃과 담배를 챙겨 갈까 합니다. 라고 했다.
버스 막차 시간이 되어 인사를 나누고 작업실에 돌아왔다. 그로부터 며칠인가 지나고 꽃과 담배를 주섬주섬 챙겨 배회하는 사람조차 거의 없는 한 밤의 길 위에 나섰다. 나와 바다와의 2차원 직교 좌표계의 차이는 8미터 였다.
어느 배우의 자살과 정황 그리고 일련의 과정들과 사람들의 반응 그리고 이것이 우리 현재의 무엇을 말하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읽던 중에 다음의 문장에서 나는 한참을 멈췄다.
”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참회를 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을 받는다. 사람은 용서를 통해 구원을 받는데 그때의 구원은 쌍방향적인 것이다. 용서받는 자도 구원받고 용서하는 자도 구원받는다. 근데 이때 중요한 것이 참회의 행동이다. 참회라는 실천을 하지 않으면 그 죄과를 보다 엄중하게 물을 수 있다.
그가 구원받지 못하게 된 처지에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
나는 잠시간, 저 말이 가지는 원래의 의도와 맥락에서 분리하여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매듭을 묶고 싶었던 나는 그 매듭을 묶을 끈을 만들기 위해 무척 애썼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에게 있어서 매듭을 묶을 때 쓸 끈이라는 것 자체가 나의 과욕이었을까.
그저 몇 가지 필연과 우연이 겹친 것이겠으나, 이것의 감정적 형태의 모습은 나에겐 어둑한 밤길을 걷다 고속으로 돌진하는 고장 난 자동차에 덮쳐진 것 같다면 과장일까. 그래 뭐 아무렴 어떻냐만..
계속하다 보니 어딘가 쿰쿰한 기분이 든다. 무엇인가와 닮았다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엷게 콧구멍 속을 찝쩍거린다. 순간 플리퍼가 멈추었고 마지막 남은 공이 떨어졌다.
최초로 핀볼과 마주한 것은 8살 때였던 것 같다. 나는 전자오락을 좋아해서 어린 나이에 용맹하게도 혼자 버스를 타고 켜켜이 굽어있는 산복도로를 지나 부산 남포동 시내까지 원정을 나가서 전자오락실에 가곤 했었다.
시내의 전자오락실은 소위 동네 오락실과는 전혀 분위기가 달라서 덩치가 아주 큰 녀석부터 일반적인 캐비넷 형태의 것들까지 종류도 다양했고 무엇보다 동네 오락실에는 없던 최신 게임들이 있곤 했다. 그렇게 1~2주에 한 번씩 원정 게임을 하러 가곤 했었던 것이 나의 유년 추억 중 하나다.
어느 날 남포동 시내 오락실에 태어나 처음 보는 녀석이 들어왔었는데 익숙하게 보던 CRT의 화면은 전혀 없고 땡기는 레버와 버튼이 하나씩 왼쪽과 오른쪽에 붙어있는 지극히 간단한 그리고 무척이나 거대한 녀석이 들어왔다. 난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는지는 몰랐지만 어쩐지 그 크기에 압도되어 주눅 들었다. 어른 한 명이 멋을 부리며 동전을 넣고 레버를 땅기자 공이 튀어나왔다.
무척이나 맑은 스테인레스 공이다. 저걸로 머리를 맞으면 무척 아프겠지? 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눈으로만 봐도 단단한 느낌의 반짝거리는 공이 ’공간’의 좌우를 가른다. 뭔가가 닿으니 튕! 소리가 나면서 요란한 불빛들이 반짝인다. 도대체 이건 뭐지? 딱히 피한다거나 맞춘다는 것도 모르겠고 뭔가를 어떻게 어떻게 하면 또 뭔가 열리는데 도대체 규칙도 모르겠거니와 버튼을 누르면 까닥까닥하는 이 막대기로 단지 공을 튕기고, 구멍 아래로 빠지면 게임 오버. 이런 간단한 규칙으로 도대체 무슨 재미가 있담? 싶었지만 그것은 무척 잠시였다.
공의 움직임이 무척이나 희한하고 아름다웠던 것이다. 예상할 수 있는 공의 움직임인데도 간혹 보기 좋게 내 예상이 빗나가는 반짝이던 공의 움직임은 변화무쌍한 포물선을 그리며 하염없이 테이블의 공간 속에서 춤췄다. 이것이 나와 핀볼의 첫 만남이었다.
그렇게 홀린 듯, 손에 쥔 땀에 쩔어있는 소중하디 소중한 동전을 겨우 밀어 넣고 처음으로 레버를 당기자, 공들이 튕기면서 화려한 소리와 음성들이 들린다. 벽면을 때리고 타겟을 때리고 알 수 없는 양키 말로 뭐라 뭐라 떠들어대는데 국민학생이 뭘 듣고 알겠는가. 그냥 공이 내려오면 버튼을 눌러 막대기를 튕기고 그렇게 공을 계속 튕기다가 어처구니없게 공이 죽음의 땅으로 떨어지면 심플하게 끝이다.
보는 것에 비해서 직접 해보니 너무나도 어려웠다. 도대체 이렇게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해? 무엇보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대단히 불합리하다. 테이블의 정중앙에서 90도 각도로 내려오면 좌우의 막대기로는 막을 수도, 튕길 수도 없다.
공의 움직임이 예상되는데도 그냥 멀뚱히 바라보며 공 한 개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게 참 마음이 좋지 않다.
금방 싫증을 느낀 나는 어쩌다 간혹 장시간 은구슬 게임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20분이고 30분이고 싫증 내지 않고 보는 정도였다. 아무튼 공이 만들어내는 궤적은 굉장히 신기했으니까.
’아저씨 이거 뭐라고 부르는 거예요?’ ’핀볼 이라고 해’ ’핀볼요? 이름이 이상해요’ ’아무튼 이것의 이름은 핀볼이야’
시간이 흘러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나오고 그만큼의 시간 동안 동네 오락실에도 시내 못지않은 최신 게임들이 들어오곤 했었다. 하지만 핀볼 만큼은 동네 오락실에 들어오지 않는다. 결국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 원정을 나가야 할 수 있는 게임.
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핀볼을 하는 사람이 많이 줄어든 듯싶다. 아무도 하지 않는, 게다가 그 시간 동안 반짝 반짝 거리는 느낌은 전부 사라지고 이미 검은 때가 구석 구석 박혀있던 낡아버린 핀볼 테이블에 동전을 넣자 주르륵 소리가 나오며 내가 공을 튕기길 기다리는 기계를 봤을 때, 내가 공을 튕기지 않으면 기계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그런 짧은 순간, 가슴이 허-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또 흘러 대학생이 되고선 아주 가끔 근방 오락실에서 핀볼 게임을 하곤 했다. 희한하게도 핀볼을 하고 있다 보면 이상하게 외로운 기분이 들곤 했다. 자세한 규칙에 대해서도 스스로 터득하게 되었고 재미있게 하는 방법과 몇 가지 사소한 요령도 터득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든다.
단지 플리퍼를 까닥거리는 것만으로 많은 것들이 반응한다. 공의 속도와 각도 그리고 제일 중요한 타이밍에 따라서 각도는 변화무쌍하다. 당연히 전략도 필요하다.
그리고 정말 아주 약간의 차이에 의해서 마치 나비효과처럼 예상치도 못한 형태가 생기곤 한다. 운이 따라주는 것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내가 플리퍼를 치는 그 한순간마다 이후에 일어날 모든 일은 예정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득 그것이 난 소름 끼쳤다.
그 뒤로 오랜 세월 동안 핀볼 게임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에 들어 정교한 물리엔진으로 만들어진 컴퓨터로 하는 핀볼이 아닌 핀볼 기계 관리자가 와서 나사를 다시 조이고 각도를 맞추고 램프의 상태와 플리퍼의 각도와 고무줄을 체크해야 하는 진짜 핀볼 게임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진짜 핀볼 게임을 할 수 있는 날은 다시 오지 않았고 지금은 컴퓨터로 간혹 핀볼을 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지나갔다.
삶과 무척 닮았구나. 라고.
그리고 위의 글을 쓴 11년 후, PC용 핀볼 게임 제작사에게 이런 글을 썼다.
때론 인생은 핀볼이랑 어딘가 약간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인 규칙이 있고 그에 따른 달성해야 할 스테이지가 있다. 마치 우리가 태어나 나이에 따른 달성 해야 할 목표처럼. 하지만 제대로 노린다고 해서 항상 그렇게 달성되는 것도 아니며, 무조건 노력만 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때론 행운의 실수로 잘 풀릴 때도 있다. 또한 흐름을 잘 타서 진행이 잘 되는 중에도, 예상 밖의 연쇄 작용으로 어쩔 도리 없이 어두운 구멍에 빨려가는 경우도 흔하다. 그럼에도 기본적으론 결정론적 물리 세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아이러니가 있는 것이다.
수천 년 전의 인간과 지금 인간의 삶이 가지는 형태는 많이 다르지만, 근본적인 행동 원리는 다르지 않은 것처럼.. 그럼에도 역사의 더께가 쌓여가며 조금씩 발전 해나가는 것과 같이, 핀볼 또한 거듭해 가며 쌓인 경험에 따른 노련미로 전체적인 흐름이나 리듬을 읽어가게 되는 과정들을, 단지 버튼 두 개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이 핀볼의 매력일지도 모른다.
오랜 핀볼 팬으로서 실제 핀볼을 플레이하기 어려워진 세상 때문에 결국 PC로 핀볼을 하면서 대리만족했었으나 항상 마음이 허전했었다. 그렇게 점점 핀볼과 멀어지게 되었고 결국 이 취미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이 핀볼을 처음 봤을 때, Zen Studios의 오래된 IP를 단지 재활용해서 VR로 껍데기만 바꾼 것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의 경우 VR로 하는 핀볼은 이번이 첫 경험인데 아직까지도 물리 엔진의 미묘한 아쉬움 같은 게 있었지만, 플레이를 거듭하는 동안 결국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을 정도로 훌륭한 경험을 했다. 바로 이것이 아날로그를 넘어 디지털 시대의 핀볼이 가져야 할 이상적인 모습이자 경험이다.
덕분에 십수 년 동안 죽어있던 나의 핀볼 취미가 다시 살아났다. Zen Studios에게 진심의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아케이드 모드에서 에피소드 4 테이블의 세계 랭킹 1위가 될 때까지 플레이 하면서 느낀 아쉬운 점을 이야기 하자면 Quest 2의 하드웨어 연산 능력에 따른 한계인지 모르겠지만 게임 내부 설정에서 고해상도 모드로 진행을 해도 여전히 해상도가 아쉬웠다. 테이블의 플레이 필드 아트워크는 스토리, 지시성, 플리퍼 동작 타이밍의 힌트와 더불어 아름다움 또한 핀볼의 매우 중요한 점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 Zen Studios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타협을 한 결과겠지만 플레이를 거듭해 갈 수록 이 부분이 계속 아쉽게 느껴진다. 또한 간혹 초당 프레임이 순간적으로 렉이 걸리는 경우가 있었다. 좀 더 최적화를 진행하여 네이티브 렌더링 지원된다면다면 핀볼 팬으로서 너무나 기쁠 것이다.
두 번째로 이 역시 하드웨어 연산 능력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Zen Studios의 자랑거리 중 하나인 광원 처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핀볼의 정서적 매력 중 하나는 바로 시시각각 변하는 불빛으로 물드는 테이블의 광원과 볼에 반사된 주변 시야에 따른 정서적 고양감인데 과거 Zen Studios에서 만들었던 테이블의 매력적인 광원 처리가 빠지고 Baked Lighting으로 대체 한 것이 쓸쓸했다.
이것 만큼은 VR 하드웨어 성능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쓸쓸한 건 쓸쓸한 거다.
멀리 한국에 있는 핀볼 팬 중 한 명으로서 Zen Studios에게 감사와 찬사를 보내며,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핀볼 팬이면서 VR를 가지고 있다면 플레이 하지 않을 이유 따윈 하나도 없다. 이건 꼭 경험해야 한다.
그렇게 위의 글을 쓴 날로부터 다시 몇 달 후 나는 총 11개의 테이블 중 4개의 아케이드 테이블에서 세계 랭킹 1위를 했다.
계속하다 보니 어딘가 쿰쿰한 기분이 든다. 무엇인가와 닮았다는 끈적끈적한 느낌이 엷게 콧구멍 속을 찝쩍거린다. 순간 플리퍼가 멈추었고 마지막 남은 공이 떨어졌다.
그로 부터 2년이 지나 지났지만, 내가 다시 핀볼을 즐길 수 있는 날이 올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이런 종류의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 봐야 핀볼, 고작 핀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볼.
시간이 지나면 조금은 진정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한 달이 지난 나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과 복수에 물이 가득 찬 것처럼 혹은 산소가 부족한 고산지대의 가쁜 호흡 같은 감정을 매일 마주하고 있다.
일상을 조금 바쁘게 지내면 일시적 마취 효과라도 생길 것이라는 생각에, 당장 쓸 때는 없지만 예전부터 간간히 해왔던 비생산적이며 반복적인 것들에 조금 더 몰두했다. 덕분에 관련 기술들은 조금 더 단순해지고, 조금 더 결과가 좋아졌다. 하지만 이런 도피처에서 영원히 있을 순 없기에, 결국 다시 땅 끝에 발이 닿고 나면 오히려 그간 도망쳤었던 시간 만큼의 분량을 더하고 거기에 이자까지 더해서 나를 깔아뭉갠다. 이를 몇 번 반복하면서 점점 악화되었다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친구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의 이야기가 복잡하여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내가 순진한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복잡하다고 말하는 그가 잘 이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복잡하다는 관점으로 다시 보기로 했다.
복잡한 것은 단지 복잡하기에 잘 이해 되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이 이야기가 복잡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정적 준위 차이 혹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라고 하면 끝날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중 한 가지가 있다. 이해 되지 않는 모든 것은 복잡하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단지 복잡하다고 해서 이해가 안되는 것이 아니듯.
다시 혼자로 돌아왔다. 언제부터였을까, 걷고 있다고 생각 했지만 사실 땅도 하늘도 바람도 꽃도 별도 달도 없는 공간이라는 개념 조차도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나는 그저 걷는다는 동작 혹은 행위의 형식만 반복 했을 뿐, 실제로 걷는다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 것을 일평생 해왔던 것은 아닐까. 우주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명한 사실일지도 모른다. 마치 무한한 자유는 그 자체로 자유가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혹은 무한의 확률은 확률 그 자체의 의미가 사라지고 오직 확률에 의해 발생한 사건과 사건의 중첩이 세계를 이어가듯 말이다.
산소가 얼마 남지 않은 느낌이다. 실제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것이 힘들다. 신문지의 잉크를 졸여놓은 듯한 들숨과 날숨이 시커멓게 내려앉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죽을 리는 없다. 여행을 다녀오라는 말을 들은 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나에게 허락된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 느낌이다. 분노와 허탈과 까만 들숨과 날숨, 엉킨 뇌수와 호흡이 가쁜 몸은 내가 원하고 바란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을 위해 발버둥을 친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