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오래된 복구의 기간이 끝났다. 172명의 이야기와 1917장의 깨진 사진은 끝내 살리지 못하고 폐기된 바이너리의 세계에 끝으로 사라졌다.

나는 이들에게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을만큼 죄스럽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이 이후에 촬영하여 새로 추가된 분들과 어떻게 겨우 복구한 총 244명의 이야기는 남아있다. 난 이 작업을 앞으로 얼마나 더 해야 하는 것인가..

말라버리다

나이를 먹어가며 눈물이 많아지는 이유를 나는 호르몬 밸런스 변화라고 생각해왔었다. 그리고 이 생각에는 지금도 큰 변화가 없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요인이 더 있는것 같다.

살아가면서 크고 작은 행복하고 기쁜 일들과 슬프고 고통스러웠던 일들이 쌓여 버린다. 그러다 보면 어떤 상처들이 생기기 나름인데 어느 나이를 기점으로 상처 받는 것도 능력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상처 받는 능력이 사라진게 아니라 단지 무디어져 있고 익숙해져 있었을 뿐이라 속으로 삭혀 들어가는 것이다.

누군가가 역린이라도 건드려서 정신병자 처럼 폭발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렇게 그렇게 침잠해간다.

그렇게 쌓였던 ‘ 나 ‘ 는 문득 어느날 삭혀 들어간 기억의 저장소가 자극을 받는 상황에서는 공감하고 동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범위는 당연하게도 안타깝게도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자신의 경험치 만큼이 된다.

그중에서 특히 감정적 고통과 관련된 것들과 마주할 땐, 그저 화면속 인물이 눈물을 흘렸을 뿐임에도 요실금 걸린것 마냥 눈두덩이에서 물이 고인다.

그런데 왜 이렇게 되고 마는 것일까. 마음이 더 넓어져서 많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성숙해진 것일까?

일부 그런 면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처지가 그저 투사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건 감상적이라서 라기보다는 상대방을 통하여 자신을 비추어 자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그렇게라도 일정 부분 마음의 갈등이 일시적으로나마 해소 된다면 좋을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 나마 되지 못하고 마음이 움직이지 못하고 시간이 멈춰버린 것이다. 어떠한 종류의 극적 갈등 해소도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오분의 삼 정도로 눈을 열은체 엷은 막이 씌워진것 처럼 살아져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이 멈춰있는 인간은 살아있지 않은 것이다.

티끌 하나 없는

잠이 들 수 없었다. 흔한 아침이 밀려왔다. 삼십 분 정도라도 눈을 붙이려 애썼지만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흐르지 않는 용암이 나를 태워 녹여내는것 같았다. 한 시간가량 이동하여 법정에 갔다. 나를 걱정 해준 친구를 만났다. 내 손에는 광목천 보자기로 쌓은 사진이 들려있다.

급히 병원 응급실로 뛰어갔다. 거기서 결혼 45년의 세월이 쌓인 시간 끝에, 모친이 상대방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것은 뇌사였다. 뇌사한 사람의 몸이라는 것은 무척 논리적이며 동시에 참 이상한 것이다. 당신의 숨으로 쉴 때보다 인공호흡기가 밀어 넣는 호흡은 훨씬 더 건강하게 숨을 쉬는 듯 했고 체온은 따뜻했다. 마치 고요하게 깊은 잠이 든 것 같은 모습이다. 그리고 이미 뇌사한 모친이 깊고도 두껍게 감은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눈물을 보는 순간 그때까지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던 모든 것이 한순간 바스라지고, 4살부터 시작된 38년간 쌓인 분노와 티끌 하나 없는 맑은 살의가 쏟아져나왔다. 양쪽 안구에 양손 엄지손가락을 하나씩 쑤셔 넣어 확고하게 머리를 잡은 다음, 온몸에 체중을 실어 땅바닥에서 머리를 터트린 후에 그 어떤 도구도 없이 오직 맨손으로 뇌, 심장, 창자를 꺼내어 찢어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정당한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이다. 대신 나는 카메라를 들어 모친의 시체를 찍었다. 휘어진 발바닥과 발가락 그리고 발톱, 희미한 굵기의 팔뚝에 남아있는 멍투성이와 닳아버린 손가락, 두터운 거죽 같이 되어버린 상냥한 모친의 얼굴에 깊이 감겨진 눈꺼풀에서 흐르는 눈물을 찍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된 체 셔터를 누르다가 견디기 어려워 울다가 미친 이처럼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가 다시 카메라를 움켜쥐고 모친의 시체를 찍었다. 가슴에 하나하나 지져진 낙인을 받아들인다.  뇌와 심장과 팔뚝과 손가락의 근육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 찍은 사진 중 한 장을 액자로 만들고 영정 사진의 검은 리본을 붙인 걸 광목천 보자기에 쌓아서 법정에 갔다. 통과하는 입구에서 사진 액자에 대한 제지가 있었다. 위험 할 수도 있다는 이유인데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액자 패널로 위해를 가한다거나 유리를 깨서 어떻게 한다든가 하는 이유로 안 된다고 하였다. 그러는 와중에 옆에 사람은 소형 소화기 휴대가 통과되었다. 발상으로 따진다면 저것이 더 위험 할 텐데 싶었지만,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사람이 내려와서 법정 안으로 액자를 반입했고 방청 객석에서 영정사진을 꺼내서 무릎 위에 올린 지 10초도 되지 못 한 체 제지가 들어왔다. 상대가 이 영정 사진을 보지 못했다. 나는 지시에 잠자고 따랐다. 이 사진은 나중에 구치소에 보낼 것이다.

곧 증인석에 서서 서약하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피고인석에는 생부가 앉아 있었고 원고인 석의 의자 하나는 비어있었다. 증인석에 앉으니 머릿속이 반쯤 하얗게 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있는 그대로 사실대로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질문에 대답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질문에 중언부언하고 있었다. 일어난 상황과 연계된 감정적인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최대한 분리해서 대답하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날짜를 헷갈린다거나 상대방의 질문 의도조차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 때문인지 마음이 몸을 앞 찔러버린 감각 같다. 검사, 변호사의 질문 이후 생부의 발언을 듣는 중에 이성이 날아가버려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서 다가갈 뻔했지만 가슴을 닫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증인석에서 내려와 법원 구석에 있는 정자의 흡연 구역에서 담배 한 대와 라이터를 빌렸다. 담배가 절반 넘게 타들어 갈 때 쯤 소리조차 되지 못한 울음이 터졌다.

함께 온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와 의자에 앉은 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햇볕이 조금 변한 게 느껴졌다. 침대로 기어들어가 눈을 감았다. 얼만가 후 오늘 동행했던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저녁 7시 상영 조커를 봤다.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 까지 자리에 앉아 있다 극장에서 나왔다. 걸음이 유령 처럼 느렸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나의 두 배 넘는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연초를 한 갑 샀다. 입을 다물고 담배를 피우고 저녁을 먹고 담배를 피웠다.

고백

– 고백

태어났다.
처음에는 엄마와 둘이서 지냈다.
중간부터 새로운 가족 집에서 지냈다. 지냈다. 지냈다.

어릴 때부터 술집에 끌려다녔다.
그때는 호스테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학교는 등교 거부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하고 있었다. 하고 있었다.

야쿠자가 무서워서 울면서 경찰을 불렀다.
아버지가 사라졌다. 잡혔다.
초등학교 졸업

교통사고를 당해 목을 다쳤다. 다쳤다.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가 죽었다.
중학교 졸업

공장에 근무했다.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뻔해서 목이 아팠다.
음악에 열중했다.
전에 열중했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 그만두었다.
중고 Mac을 샀다.
몇명인가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
헤어졌다. 만났다. 헤어졌다. 만났다. 헤어졌다. 만났다. 헤어졌다. 만났다. 헤어졌다.
모르고 나쁜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그만뒀어.
그만둔 후 협박을 받아 오들오들오들오들오들오들오들오들오들오들 떨었다.
여러 직장을 전전했다.
이십대

만드는 것이 즐거워졌다.
이윽고 결혼했다.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났다.
이혼했다. 아이를 떠맡았다. 아이를 기르다. 아이를 기르다. 아이를 기르다.
많은 것을 만들고 싶다.

.

.

사십여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부터 4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인두겁을 뒤집어쓴 괴물이라고 표현 하기에도 모자란 그의 면면을 보고 있자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잘못 없는 그리고 죄 없는 인간따위 이 세상에 존재할까. 선과 악 그 자체에 대한 정의는 잠시 미뤄두더라도 대부분의 우리들은 선과 악 그 어느 사이에서 상황에 따라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우 선에 보다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는 삶이 좋다고 생각 하는 것이 보편적 생각이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다소 극단적인 방향의 삶을 살아가는 이도 있다. 그래서 시대에 따른 상식 그리고 법이 있다. 자유롭게 살되 사람이 살아갈 그리고 행복을 추구할 권리와 기회에 대한 이해 관계의 상충 속에서, 최소한 이 정도의 테두리는 서로 지켜줘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사회적 약속이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그 사람은, 반세기 이상을 살아왔음에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한 인식은 켜녕 인지 조차 없는 \’악\’ 이라는 부분에 대해 나는 무척 오래된 생각을 정리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악은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인지조차 못하기에 진심으로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하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혹여 옆에서 이야기를 하더라도 모기가 머리 주변에서 윙윙 거리는 소리 취급한다. 그저 그때만 회피하려 하며 모든 문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이다. 그나마 잘못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진심을 쏟은 사죄, 사과 혹은 용서를 구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저 그런 포즈를 취하는 것이 자신에게 더 유리할 정도로 상황이 궁지에 몰려있을때 뿐이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에,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모르며, 때문에 주변을 그리고 그 영역에 연결된 사람을 썩게 만들고 귀신으로 만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겐 일말의 망설임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 망설임이 있다는 것이 의무교육을 통한 기초 구성원의 안정망을 위한 사회 시스템에서 문화적 세뇌에 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설령 그것이 세뇌였다고 할지라도 필요성과 효용을 생각하면 그것이 틀렸다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세뇌라는 단어가 거칠게 느껴진다면, 시민사회에서 더불어 살기 위한 최소한의 양식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때문에 나의 망설임이 싫다거나 하진 않았다. 적어도 감정과 이성을 내 나름 할 수 있는 만큼 분리해서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을 오히려 다행이라 여겼다.

면회 요청이 왔기에 나는 다행스럽게 여겨진 망설임을 품에 안고, 어쩌면 약간의 희망 아닌 희망을 가지고 유치장에 갔다. 그리고 면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나는 그 어느 한점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망설임이 사라졌다.

구치소에 이감되고 나서 두 번이나 면회 요청이 왔지만 가질 않았다. 하지만 세번째 요청이 왔을때 결국 면회를 가기로 했다. 다행스럽게 여겼던 나의 망설임이라던가 기대 혹은 희망 같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내가 느꼈던 것이 정말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가까운 느낌이였다.

두번째 면회를 마치고 나서 나오는 길에 담배를 많이 피웠다.
이젠 화가 나지도 않고 마음이 아프지도 않으며 슬프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을, 그저 무감했을터인데 나는 패병이 걸리진 않을까 싶을 만큼 담배를 피워재꼈다.

나는 진심으로 사십여년 동안 당신이 저지른 죄값을 받았으면 한다.

드디어 첫 재판 날짜가 한달 뒤로 잡혔다.
법에 관해서 나는 아는게 없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사람의 마지막을 끝까지 지켜 볼 것이다.

아파트로 돌아가보니 쌍둥이는 정어리 통조림 같은 모양으로 나란히 침대에 누워 쿡쿡 웃고 있었다.

\”어서 와요.\”
\”어디 갔다 온 거죠?\”

\”역.\”
나는 넥타이를 풀고, 쌍둥이 사이로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몹시 잠이 왔다.

\”어느 역인데요?\”
\”뭐하러 갔다 왔나요?\”

\”먼데 있는 역이야. 개를 보러 갔었지.\”

\”어떤 개?\”
\”개를 좋아해요?\”

\”하얗고 커다란 개였어. 그렇다고 개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야.\”
내가 담배에 불을 붙여 다 피우는 동안, 둘은 잠자코 있었다.

\”슬퍼요?\”
라고 한쭉이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만 자요\”
라고 한쪽이 말했다.
그리고 나는 잠들었다.

슬픈 오후

본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하다.

한 명의 인간은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경험의 경로 중 극히 일부만 경험할 따름이며 이렇게 일생 동안 만들어진 자기 자신이라는 필터로 세상사를 가늠할 따름이다.
동시에 이러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엮임으로, 인류의 지평과 시야는 때론 넓어지기도 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눈꼽을 띠고 살아가야 하는 일상의 경우는 어떠한가.
서로의 다름을 틀렸다고 이야기하던, 혹은 틀린 것을 다르다고 이야기하던 그 어느 쪽이던 기준은 항상 유동적이어서 결국 자신의 일생 간 만들어진 편향의 물살에 스스로 휩쓸릴 따름이다.
익숙한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과 비슷한 편향을 가졌다고 느끼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 때론 즐겁거나 행복한 시간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서로 비슷하지 않았음에도, 다시 말해 비슷하다고 느꼈을 뿐인 사실은 오해였다 할지라도 편향의 주파수가 서로 비슷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느끼는 동안은 그 실체가 오해였던 아니던 별로 중요하지 않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하나의 몸짓에 불과하다.
거기에 어떠한 의미가 가치가 그대로 전달된다는 것은 그저 오래된 바람이자 희망이요 동시에 미신일 뿐이다.
때론 기적적으로 서로가 통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경계해야 한다.
그 기적적 느낌은 그 순간의 것일 뿐이지 그것이 온전히 전달되어 세월의 훼손에도 굳건하게 변형되지 않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몇 가지 필연과 우연으로 잠시 맞았던 것뿐임에 다름이 아니다.
그 자리엔 다시 다른 파도가 일렁일 뿐이다.

게다가 기억은 자신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이 기억이 편집되고 변한다.
결국 만물이 변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불가능에 의해 만들어진 빈자리는 진공과 같아서 여백을 허락치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비슷한 사람을 은연중에 찾게 되고 안심과 행복감을 손에 넣으며 동시에 자신과 다른 편향을 가진 사람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그렇게 계속 찾고, 채워 넣고, 비우고, 합치고, 반목하고, 싸우면서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삶을 마감한다.

그러나 설령 정말 이렇게 된다고 할 지라도 슬퍼하거나 외로워할 근본적인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저마다가 조금씩 이상한 부분이 있고, 망가져 있고, 병들어 있으며, 편향 덕분에 생존했던 때도 있었다.
더불어 편향의 모양과 성질이 그 사람을 구분하게 하고 정의하는 것이기에 우리는 타인을 인식할 수 있고, 미워하기도 하며 때론 사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 자신이라고 하는 유동적 기준이나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편향이라는 것 자체가 생존의 기술이며 동시에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근간 중 하나다.
이러한 근간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존재에게 애초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순진한 물음을 가지는 것을 마침내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은 어떤 특정한 상태에서 우연히 겹쳐진 인연이라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사람에게도, 작품에게도, 그 작품을 보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와 당신의 인연으로, 단 1센치 만큼이라도 단 1초 동안에라도 마음이 움직였다면 이러한 우연과 필연 그리고 당신에게 그저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것이 설령 일순의 오해였다 할지라도 말이다.

40년

오랜 기간 만성이 되어 나름 마음을 다스리는 요령 따위가 있었을 터임에도, 심장에서 검은 피가 퍽 하고 터져나가는 살의의 감정 둔턱까지 이르는 데는 단 몇 분 만이었다. 그토록 익숙함에도 여전히 그리고 대단히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정이기에 나는 생존을 위해 감정을 최대한 없애고 냉정해지는 요령을 성장기에서 부터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터득했다. 그래서 나의 그런 모습에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어떤 이는 나를 감정이 없는 로봇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어떤 이가 나를 로봇같이 보든 아니든 상관 없이, 감정은 그냥 사라지진 않는다. 타조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머리만 처박고 있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인간에 감정에도 에너지 보존의 법칙과 비슷한 공식을 갖는다. 정신의 스트레스가 몸으로 전환되어 퍼진다. 그 몸의 고통이 다시 정신의 고통으로 번진다. 그렇게 몇 순의 사이클을 반복하면서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살미수로 끝난 뒤에 남는 몸의 상처 처럼 가슴에 새겨지고 남는다.

그저 그때그때를 모면하며, 잔에 든 흙탕물을 가만히 두어 흙을 아래로 가라앉히는 것 외엔 수단이 없는 것이다. 생존 본능은 이토록 저열하고 지독하다. 그러나 시간과 공을 들여 겨우 맑은 물을 분리 해놓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잔은 결국 특정 조건에선 또 흔들려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지독한 흙탕물이 된다. 이런 일이 건조하게 예고 없는 반복이 될 때마다 끈적거리는 흙탕물의 썩어가는 농도가 짙어질 뿐 이것이 순수하게 맑은 물로 정화되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이것이 나다.
컵을 바꿔 물만 따라낼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삼류 소설에서처럼 몸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내가 바뀌지 않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 나름의 상처를 가지고 자신만의 지옥을 껴안고 살아간다. 나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하지만 빈번하게 한계선까지 갈려 나가다 보면 노이로제에 걸린다. 정신병이 되는 것이다. 마음의 결단이 강제되고 있음을 느낀다. 정신병자임에도 생존 본능은 이토록 저열하고 지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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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 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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