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나의 靑春 F5

대강 8년 전의 일 이다.

사용하던 카메라를 도난 당하고, 새로 살 돈도 없었다.
조금씩 돈을 모아 F90X를 구입하고 싶었다. 당시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F4보다도 더 좋은 기능과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F4보다는 가격이 저렴했다. 게다가 F4에 비해서 조금은 작고 가볍다. 특히 당시 F90X에 있어서 \’노출은 칼\’ 이라는 짧은 말이 나에겐 깊히 박혔다. 게다가 카메라로써의 카리스마는 F4에 비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우면서도 단단한 느낌이 드는 F90X에 대한 관심은 매우 깊었다.

어느날엔가 F5의 발매를 알게 되었다.
가지고 있는 돈은 F90X와 50mm f1.4D 렌즈를 구입하는 돈을 겨우 맞추던 때였다. 처음엔 그다지 관심도 없어서, 내가 저런걸 쓸 필요가 있을까 가격은 또 왜저리 눈 튀어나오게 비싼건지.

현실적으로 봤을때 F5는 나완 관계 없는 카메라였다.
당시 카메라 샾의 분위기는 현재에 비해서 오히려 더 좋았던 건 아닌가 라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 샾에선 History of Nikon이라는 초대형 판넬이 할로겐 조명을 받으며 있었고 그 바로 옆에는 Nikon F5의 초대형 포스터 판넬이 붙어 있었다. 그 판넬이 붙어있는 위치는 내키의 두배쯤은 높은곳에 붙어 있어서 샾의 문을 여는 순간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볼 수 밖에 없는. 하지만 손으로는 만질 수 없는 그런 높이에 붙어있었다. 이쁜 할로겐 조명을 받으며.

그 판넬을 볼때마다 심장이 벌렁벌렁 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말 가지고 싶다. 저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싶다. 말도 안되게 매력적인 느낌이다. 저 카메라로 찍으면 도대체 어떤 사진이 나오는 걸까.

F5라고 이름 불리어지는 \’그것\’은 나에게 있어 그런 존재였다.

이미 F90X를 구입할 돈은 모였지만 우습게도 돈을 손에 꼭 쥐고만 있었다. 정신차리고 보니 F5를 구입 할 수 있는 금액을 겨우겨우 맞출 수 있었다. 그 돈이 마련된 순간 바로 샾에 뛰어가서 덜컥 사버렸다.
우습게도 렌즈 살 돈이 없었다. 바디만 구입해버린 것 이다. 렌즈가 없어도 좋으니까 바디만이라도 사고 싶다.

이건 사진을 찍기 위한 도구로써의 카메라 라기 보다는 단순한 열병.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니콘 종이 가방속엔 유치하리만치 찬란한 금빛 종이 박스 표면,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졸렬 하리만큼 강렬한 금빛으로 로고 내부가 채워진 검은색 라인으로 F5로고의 내부를 채워주고 있었다. 침착하지 못했다. 바로 필름 두껑을 열어 셔터박스에 있는 주의문을 떼어내고 배터리를 채우고 셔터를 눌러보았다.

눈물이 날 만큼 좋았다.

렌즈도 없이 반투명의 우유빛 바디캡만 덩그러니 붙어있는 카메라.

그렇게 하루 하루 지나가고, 드디어 50mm 렌즈를 구입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처음 넣은 필름은 Kodak Plus-X 필름. 왠지 그러고 싶었다. Tri-X, T-Max 필름도 있었지만, 왠지 꼭 그래야만 할것 같았다. 렌즈를 구입하기 위한 기간 동안 렌즈없는 바디를 수도 없이 만지고 눌러보고 메뉴얼은 5번은 넘게 정독했었던듯 싶다. 잘때는 배게 곁에 놔두고 잠을 자기도 했었다.

렌즈를 F 마운트에 끼우고 완벽한 정착을 위해 렌즈를 완전히 돌리는 순간, 바디에선 소리도 되지 못할 정도의 작은 소리로 \’틱\’ 하는 소리를 들려주었다. 이미 심장은 터지기 직전이다. AF-S 모드로 맞추고 AF를 가동해보는 순간, 심장이 터지는 것 따위 아무런 상관도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문득 난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F5가 날 주인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구입을 했다. 법적으로는 당연히 내가 주인이다. 하지만 이 녀석은 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아무리 만지작 거려도 감정의 전달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우습게도 조그만 상처를 받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과욕을 부린건지도 모르겠다.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제대로 사진도 못 찍는 놈이,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할 능력도 없는 놈이, 이런 바디를 사서 상처 받은 것이다.

그래. 친해지자. 그리고 익숙해지자. 그러다 보면 몸에 붙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난 너의 주인이다. 하지만, 속절 없는 성냥개비 같은 마음속 메아리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1년 정도의 시간을 보낸듯 싶다.
녀석도 나도 서로에게 조금은 익숙해졌다. 녀석은 처음으로 렌즈를 마운트 하던날과 다름이 없다. 하지만 서로에게 익숙하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조그만 돌맹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표정도 있고 감정도 있다. 심지어 사람이 만든 카메라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녀석은 다른 녀석들과는 다르게 아무 말이 없다. 무뚜뚝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무기질. 바로 그 느낌이었다. 아무런 에고도 느낄 수 없는 카메라 라니…         그리고 언제 부터인가 어디를 가든 항상 녀석은 나와 함깨였다.

어느날, 카메라가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히 손에 들고 있는건 맞는데 카메라가 느껴지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고 있어도 셔터를 누르는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진을 찍고 있어도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나의 몸.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약간의 돈이 생기면 필름, 약품, 인화지값을 제하고 나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악세사리를 붙여주었다. 녀석의 기분(애당초 그런게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악세사리를 붙이는 순간, 그 자체도 무기질로 되어 버렸다.

8년이란 시간동안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생각한 것, 내가 바라본 것, 내가 희망했던 것, 내가 표현하고 싶어 했던 것을 녀석은 아무런 방향성도 감정도 따뜻한 혹은 차가운 말 한마디도 없이 그대로 받아주었다.

난, 사랑을 했었다. 숨쉬는 것의 절밤함을 느꼈다. 증오를 했고 숨쉬는 것에 대한 절박함을 느끼기도 했다. 갈곳 없이 떠돌기도 했고, 분노를 하기도 했다. 방향성과 정체성을 찾지 못한체 나 자신을 괴롭게 만들기도 했다. 애증에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있기도 했으며, 쳐다보기도 싫고 생각하는 것 마저도 싫은 것 들을 찍었다. 고독하고 외로웠다. 칼바람이 에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남포동의 이른 새벽을 묵묵히 계속 걸으며 폐속 깊이 따가운 공기를 들이마시곤 했었다. 조그만 애정 한조각을 동정 받기도 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나날이 계속 되기도 했다. 무관심과 염세주의에 질퍽거리기도 했었다. 때론 어쩌다 따뜻한 온기어린 시선을 가지기도 했다.           내가 \’본 것\’들……을.

녀석은 아무런 여과 없이 필름속에 녹여냈다.

8년 동안 그렇게 녀석과 나는 같이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녀석은 딱 두번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난 전혀 놀라지 않았다. 단지 잠자코 듣고만 있을 뿐이다.

어제 오후, 녀석을 보내기 전에 나의 흔적들을 나의 청춘이 고스란히 베어있는 녀석의 모습을 찍었다. 세월이 제법 흘러서인지 녀석도 예전에 비하면 많이 노긋노긋 해진듯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무기질 이었다. 최후의 최후까지도.

녀석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데엔 조금은 아니 매우 우습게도 – 그리고 눈물이 날 만큼 슬프게도 – F6가 날 도와주었다. 나의 청춘을 그렇게 바라보고 느끼고 찍었다. 하지만 느꼈던 만큼 찍질 못했다. 미처 1롤도 채우지 못한체 촬영을 끝냈다.

그리고 녀석은 마지막 3번째로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하다가 아무말 하지 못하고 – 어쩌면 정말 나에게 간절히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느낌이었다. 하지만 녀석은 아무말 하지 않은체 입을 받아버렸다 – 녀석이 처음나와 대면하던 장소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악세사리는 다 떼어내고 원래 있던 필름 백커버를 녀석에게 돌려주었다. 셔터박스에 있는 주의문을 다시 붙이고 – 난 그것을 버리지 않던 것이다 – 원래 있던 배터리하우징 속에 새 건전지를 채웠다. 침착하지 못했다. 손에서 식은땀이 난다.

그렇게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지고 유치하리만치 찬란한 금빛 종이 박스 표면,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졸렬 하리만큼 강렬한 금빛으로 로고 내부가 채워진 검은색 라인으로 F5로고가 찍혀 있는 종이 박스속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남아있던 보루지 박스에 다시 넣고 택배회사 접착테이프 속에 봉인이 되었다.

택배직원이 차가운 겨울밤의 칼바람을 뚫고 박스를 가져갔다.

아마 지금쯤 어딘가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얼굴 모르는 어떤이의 어께위에 걸쳐질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그 광경이 상상되지 않는다. 똑같은 F5지만 같은게 아니기 때문이다. 똑같은 겉 모양을 하고 있지만 그 느낌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상상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일어 날 수 있는 일이고, 내일 점심께에는 틀림없이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靑春은 끝났다.

그리고 지금 내 옆에는 처음부터 녀석과 함께한   – 적절한 단어가 모두지 생각나지 않는다 – 구형 50mm 렌즈가 붙어있는 F6가 오도카니 나를 보고 있다.

untitled.

1.

몇일전 드디어 코트를 한벌 구입했다.
같이 동행해준 K군과 함께 십여군대 정도의 가게들을 둘러다니며
결국 구입했다.

그 중에서도 굉장히 쏙 마음에 드는 코트가 한벌 있었는데.
왠지 옷이 몸에, 몸이 옷에 착 붙는 정말 잘 짜여진 코트 한벌이 있었다.
속 마음으론 조금 비싸더라도 돈을 좀 빌려서라도 구입 하고 싶다.
마침 K군도 옆에 있으니 조금이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 될 정도로 마음에 쏙 들었다.

\’얼맙니까?\’
\’네. 손님 30% 세일기간을 계산하면… 150만원 입니다.\’
\’아.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코트 구입시 구입 가능 가격은 15만원에서 최대 18만원까지. 이 돈을 손에 쥐기까지 굉장히 힘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해서 겨우 마음에 드는 코트를 찾아냈다. 물론 100% 만족까진 아니지만, 90% 까지 만족이 된다. 가격도 17만9천원. 최~~~대 한도액에서 1000원 남는다.

옷감이 두툼하고 약간한 무겁기 때문에 바람이 불어도 옷이 쉽게 흩날리지 않고 체온을 보호해준다. 색도 주광에선 회색빛이, 형광등 밑에선 검은빛이 도는 색이다. 참 좋다.

게다가 어깨의 제단, 봉제선의 처리가 좋아서 카메라를 들고 팔을 움직여도 전혀 불편하지가 않다. 이건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문제다.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이게 해결 되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 십년은 입어야 하지 않겠어?

: )

2.

내가 메인으로 사용하고 있는 베셀러 확대기의 수평이 맞지 않았다. 원인을 조사하고 따져본 결과 콘덴서 렌즈의 수평이 틀렸다. 확대기를 뜯어서 들어내고 정리해야 한다. 게다가 손으로 맞추는 거니까 다시 한다고 해도 쉽사리 맞을리 따위 없다. 한가지 이상한건 예전엔 분명 테스트를 했을땐 확대기의 수평따위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혹 렌즈보드의 수평을 누군가가 건드려서 그야마로 엄청나게 (속에선 용암이 끓어 오를 정도로) 화를 내며 (누가 그랬는지 알수도 없는) 혼자서 삭이며 렌즈보드의 수평을 몇번 맞춘적이 있다. 그때도 콘덴스 렌즈의 수평따위는 맞았던 것이다.

이젠 이런 일로 짜증내는것도 귀찮아졌다.
느긋하게, 해야지 어쩌겠어. 라고 생각했다. 피일차일 미루다 결국 뜯어서 수평을 맞췄다. 천천히 렌즈를 닦아내고 두장의 대형 콘덴서 렌즈를 들어내고 위치를 바로 잡고 콘덴서 하우징 베럴의 위치도 바로 잡아주었다. 부품 하나가 유실이 되어 고민하던중, 종이로 대강 만들어서 보수해주었다.

테스트를 해보니 그래도 전의 상태보다는 훨씬 좋다.

침침하던 눈이 시원하게 떠지는 느낌이다.

3.

G군에게서 확대기와 토요뷰 대형카메라, 대형 카메라용 트라이포드를 받았다. 당연히 나에게 완전히 주는것은 아니다. 먼지 쌓일바에 작업많이 하는 사람이 써야 좋다. 라면서 나에게 한아름 안겨주었다.

그 동안 작업실에 확대기가 아주 가끔 모자라는 경우가 있어서 상당히 고민하던 차에 나에겐 마른하늘에 단비같은 소리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시기적절하게 무엇인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나로써도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더더욱 놀라운 것은 최근 대형카메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던차에, 슈나이더 아포 (!!!) 짐마 210mm가 달린 대형카메라까지 나에게 안겨주었으니, 이거야 말로 놀랠 노짜 아니겠는가? 이로써 나의 사진세계는 더욱 넓어질 것이라 확신한다. (최근에 대형카메라 관련 서적을 다시 읽고 있다) 또한 이런 일과 관련해서 난 G군에게 일절 언급한마디 없었건만, 그저 너무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일단 렌즈에 끼어있는 곰팡이만 제거하고 홀더와 현상탱크를 구비하면 일단은 준비 끝이다. 트라이포드는 군데군데 삐걱거리는 곳이 있지만 하루 날 잡아서 완전히 분해 한다음 깨끗히 수입하고 기름도 치고 나사도 조여주면 충분하고도 남을듯 싶다.

그러니까 말이지. 혹시나 이 일기를 보고 있는 분 중에, 쓰지도 않고 먼지만 쌓여있는 4×5 필름 홀더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큰소리(은밀히 해도 좋다)로 나에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다.

4.

K양이 이어폰을 구입했다. 비교적 가격대 성능비가 좋고 바람이 쉽게 들지 않는 튼튼하고 음질이 비교적 좋은 (하지만 에이징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모델을 구입했다. H카메라의 K사장님과 나, K양이 동행했다. 살랑 살랑 마실 다녀오는 기분이었는데, 왠지 약간은 푸근한 발걸음을 스스로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찾았던 모델은 있었고, K양은 그 모델을 구입했다. 색깔도 흰색이다. 아이포드와 잘 어울릴듯 싶다. 음질을 비교해봤는데 내가 쓰는 이어폰 따위 비교가 안된다. 다행이다 싶다. 돌아오는 길에 K사장님이 덜컥 저녁먹을꺼리를 구입하신단다. 지금까지도 이리저리 민폐를 많이 끼친터여서 가만히 있기엔 너무나도 염치없는 행동인듯 싶었다. 사람이 아무리 금전적으로 부족한 삶이라곤 하더라도 기본적인 도의 라는 것이 있다. 하다못해 조금이나마 꼭 보태고 싶었다.

\’에이. 괜찮아요\’

결코 받지 않는다. 돌아가는 길에 난 1.5리터 콜라를 한통 샀다.
그것만이라도 꼭 그렇게 하고 싶었다.
가계 사람들과 맛있게 먹었다. 콜라도 같이.

매번 신세만 지는것 같아서 미안스럽다.

추신1 : 밖에 있는 달의 모양이 매우 섹시하다.
추신2 : 가끔은 이런 일기 쓰고 싶을때가 있다.

하하하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마음에 드는 코트는 아직 찾지 못했다.
심지어 이런말 하는게 웃기지만, 그러한 코트를 찾을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참, 웃기지 않니?

그러니까 말이지.

해바라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해바라기만 보면 좋아라 한다.

그런데 해바라기 밭은 어쩐 일 인지 싫다.

1개도(송이라고 부르기 싫다) 좋고 2개도 좋다 3개 까지도 좋다.

하지만 4개는 싫다. 5개, 6개, 7개, 8개, 9개, 10개, 11개, 12개, 13개, 14개, 15개, 16개, 17개, 18개, 19개, 20개, 21개, 22개, 23개, 24개, 25개, 26개, 27개, 28개, 29개 까진 좋다. 나의 상상력은 거기 까지가 한계다. 그 이상은 어떻게 내가 손 쓸 도리가 없다. 능력이 여기 까지 밖에 안되는 것이다.

햇볕 잘 들고 그늘 잘 지는 부드럽고 나른한 오후, 햇볕 잘 들고 그늘 잘 지는 눈에서 눈물이 나올만큼 강렬한 빛의 에너지가 충만한 오후. 속에 스며있고 떨어져 있고 살아있고 죽어있는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특히 도심 한 가운데서, 도심의 한 언저리에서,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것을 본다면 난 아마 그 자리에서 숨이 덜컥 막혀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펑펑 울런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조금 나온다.)

아직 우리나라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혹시나 만약 그런곳을 알고 있다면, 은밀히 제보 부탁 드린다.

솔직히 이것 때문에 일본에 갈까 라고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려 해본 적도 있다. 대강 어디쯤이 그런곳이 있더라 라는 제법 구체적인 장소까지 알아본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덕에, 깨끗히 그 생각을 정리했던 기억이 3년 전이다.

그러니까, 난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쌩뚱맞다.

그래. 썡둥맞지.

그래서 난 스무살 여자가 싫다니까.

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앞에 쓰던 일기를 지우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해보자.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아는 동생에게 커피 한잔 사달라고 했다.

입구가 그리 눈에 띄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못한, 미묘하게 약간 작다 싶은 입구를 가지고 있는 커피점에 갔었다.

평소엔 항상 아메리칸 스타일로 커피를 둘러마셔버리지만, 밖에 나가서 마실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곤 한다.
이리저리 커피전문점을 조금씩 돌아다니며 마셔본 결과 적어도 내 취향엔 스타벅스에서 만드는 에스프레소가 가장 좋았다. 고급스럽다던가 그윽하고 깊은 향은 아니지만 어딘가 사람을 진정시켜주고 푸근하고 안심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어쩐지 드라이 한 맛이 느껴진다. 그래서 좋아한다.

당연히 난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주문했다.
여기의 커피맛은 어떠냐! 어디 한번 만들어 보시지. 라는 감각으로 커피를 기다렸다. 몇분후 커피가 오고 한모금 마셨을때, \’흥. 그렇지 뭐\’ 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

이것은 에스프레소가 아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을 농락하고 있거나, 좋게 생각한다 치더라도 에스프레소가 뭔지 모르는 우매한 사람들을 위한 눅눅한 에스프레소 였다. 분명 나쁜 맛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나의 왼쪽눈썹이 올라갔다.

리필이 된단다.
그래서 부탁했다.

\’저기, 조금 진하겐 안될까요?\’

주문 받는 분은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어디 한번 만들어보시지. 라는 기분으로 커피를 기다렸다. 역시 몇분 후 에스프레소는 도착했고, 나의 입맛에 정확히 맞는건 아니지만, 에스프레소에 아주 가까운 커피가 나왔다. 난 흡족했다. 기분이 좋았다.

얼마후 주문받는 사람이 (주인장이었다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왠 커피를 한잔 더 내어준다. 점도나 색깔, 향을 봤을때 드립핑 커피다.

좀 강한것을 좋아하신다면, 마음에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마셔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주위 일행에게 에스프레소와 맛이 강한 커피에 관해 설명을 해준다. 난 그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남아있는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고 찬물로 입을 헹군후에 그 드리핑 커피를 한잔 마셨다.

어?!

좋은데?!

드리핑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나온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상은 놀랄 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주인장도 은근히 흡족해 하는 눈치다.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 없다.라는 얼굴이지만 자만이라던가 하는건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기뻐하는 것을 자신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취향의 커피를 만들어 내어 줄 수 있다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굉장히 기뻤다.

원두콩을 직접 볶아내고, 갈아서 내어준다. 기계로 볶아내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맛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매우 기뻤고 흡족했다.

오늘 좋았던 일은 이것 밖에 없다.

추신 : 왠만하면 앞으로 여긴 나 혼자 가고 싶다.

쌍소리.

생각해보면 사진찍는 사람이 사진을 전시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 의지로 할 수 있다. 설령 학과에서 주최 전시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하고 싶지 않으면 (여러가지 이유와 연유로 인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 이건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사진학과라는 곳에서 전시회에 참가한다는 사람들 중에 2주간 아무도 사진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몇주 전 사전 공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많은 인원들 중 하다 못해도 단 한사람 만이라도 했다면 문제라고 까진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몇사람 제출 했다는것 따윈 아무 의미가 없지만, 완전 전멸은 좀 아니지 않은가?) 사진학과라는 곳은 사진에 대해 생각과 고민을 하고 실천 하는 곳이 아니던가?

학점에 신경쓰고 과제에 치여서 시간이 나지 않고 힘들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외에 해야 할 것도 많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집안사정이 있다던가 연애에 몰두 하고 있다던가 등등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그러한 각자 자신의 상황속에서 비로써 진짜 무엇인가 나올 수 있는 것 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러한 상황이 나로서는 그냥 봐넘기기엔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화가 난 것이다. 왠만해선 그런 자리에 단상앞에 나서서 이야기 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굉장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화남은 단상위로 날 밀어올렸다.

상당히 듣기 거북스럽고 거친 말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루정도 지나고 생각해보건데 내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 혹은 정당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쓸때없는 참견이고 괜한 소리를 했다 싶다. 기껏해봐야 그들 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뿐이고 학번이 조금 높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런식의 거친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진이라는 것은 그런식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식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사진이 나온다던지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난 굉장히 후회를 하고 있다.
앞으론 그런 종류의 일 때문에 단상위로 올라가는 일은 영영 없을것이다.

먼저 나 자신의 문제점부터 해결해야 할 일이다.
오늘은 나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운 날이다.

욕심.

것 참 바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가 요구 하는 것 만큼의 관심이나 이해 혹은 요구가 필요한것이 아님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려보면 진지하고 깊게 해야 한 다고 종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취미로 하는 분들을 무시한다던가 그런 마음은 추호에도 없다.
그 목적에 맞는 정도 만큼의 것을 주고 그 만큼 받으면 편할텐데, 도대체 나로써는 그게 쉽지가 않다.

너무 욕심이 많아서 일게다.

죽음.

나름대로 쓸만한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쓸만한 작업실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항상 버겁다.

사소한 약간의 문제들과 주인장의 나태함과 게으름, 고집과 아집 그리고 어떻게 다른 방도나 방향을 찾아볼 도리 없는 현실적인 압박 등이 항상 나를 괴롭히고 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이 작업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어딘가 취직을 하여 돈을 벌어서 사는것이 타당할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소원이 한가지 있다.
지금 계속 작업 할 수 있게 하고 앞으로도 작업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있겠지만.

사람은 죽기 얼마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정말 이라면 내가 죽는 그 순간 마지막으로 내가 보고 있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찍고 싶다. 더불어 그 무엇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피할 수 없겠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난 사진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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