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tter

하하하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다.

마음에 드는 코트는 아직 찾지 못했다.
심지어 이런말 하는게 웃기지만, 그러한 코트를 찾을 시간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참, 웃기지 않니?

그러니까 말이지.

해바라기를 무척 좋아한다.

그래서 해바라기만 보면 좋아라 한다.

그런데 해바라기 밭은 어쩐 일 인지 싫다.

1개도(송이라고 부르기 싫다) 좋고 2개도 좋다 3개 까지도 좋다.

하지만 4개는 싫다. 5개, 6개, 7개, 8개, 9개, 10개, 11개, 12개, 13개, 14개, 15개, 16개, 17개, 18개, 19개, 20개, 21개, 22개, 23개, 24개, 25개, 26개, 27개, 28개, 29개 까진 좋다. 나의 상상력은 거기 까지가 한계다. 그 이상은 어떻게 내가 손 쓸 도리가 없다. 능력이 여기 까지 밖에 안되는 것이다.

햇볕 잘 들고 그늘 잘 지는 부드럽고 나른한 오후, 햇볕 잘 들고 그늘 잘 지는 눈에서 눈물이 나올만큼 강렬한 빛의 에너지가 충만한 오후. 속에 스며있고 떨어져 있고 살아있고 죽어있는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특히 도심 한 가운데서, 도심의 한 언저리에서,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것을 본다면 난 아마 그 자리에서 숨이 덜컥 막혀서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고 펑펑 울런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조금 나온다.)

아직 우리나라엔 그런 것을 본 적이 없다.

혹시나 만약 그런곳을 알고 있다면, 은밀히 제보 부탁 드린다.

솔직히 이것 때문에 일본에 갈까 라고 매우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려 해본 적도 있다. 대강 어디쯤이 그런곳이 있더라 라는 제법 구체적인 장소까지 알아본 적이 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덕에, 깨끗히 그 생각을 정리했던 기억이 3년 전이다.

그러니까, 난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쌩뚱맞다.

그래. 썡둥맞지.

그래서 난 스무살 여자가 싫다니까.

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주절.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끊임없는 생각의 주절거림.

앞에 쓰던 일기를 지우고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해보자.

오늘 기분도 그렇고 해서, 아는 동생에게 커피 한잔 사달라고 했다.

입구가 그리 눈에 띄이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못한, 미묘하게 약간 작다 싶은 입구를 가지고 있는 커피점에 갔었다.

평소엔 항상 아메리칸 스타일로 커피를 둘러마셔버리지만, 밖에 나가서 마실땐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로 에스프레소를 마시곤 한다.
이리저리 커피전문점을 조금씩 돌아다니며 마셔본 결과 적어도 내 취향엔 스타벅스에서 만드는 에스프레소가 가장 좋았다. 고급스럽다던가 그윽하고 깊은 향은 아니지만 어딘가 사람을 진정시켜주고 푸근하고 안심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어쩐지 드라이 한 맛이 느껴진다. 그래서 좋아한다.

당연히 난 에스프레소 도피오를 주문했다.
여기의 커피맛은 어떠냐! 어디 한번 만들어 보시지. 라는 감각으로 커피를 기다렸다. 몇분후 커피가 오고 한모금 마셨을때, \’흥. 그렇지 뭐\’ 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

이것은 에스프레소가 아니다.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사람을 농락하고 있거나, 좋게 생각한다 치더라도 에스프레소가 뭔지 모르는 우매한 사람들을 위한 눅눅한 에스프레소 였다. 분명 나쁜 맛은 아니지만 미묘하게 나의 왼쪽눈썹이 올라갔다.

리필이 된단다.
그래서 부탁했다.

\’저기, 조금 진하겐 안될까요?\’

주문 받는 분은 기분 좋게 받아주었다. 어디 한번 만들어보시지. 라는 기분으로 커피를 기다렸다. 역시 몇분 후 에스프레소는 도착했고, 나의 입맛에 정확히 맞는건 아니지만, 에스프레소에 아주 가까운 커피가 나왔다. 난 흡족했다. 기분이 좋았다.

얼마후 주문받는 사람이 (주인장이었다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왠 커피를 한잔 더 내어준다. 점도나 색깔, 향을 봤을때 드립핑 커피다.

좀 강한것을 좋아하신다면, 마음에 드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는 말을 하면서 마셔보라고 권한다. 그러면서 주위 일행에게 에스프레소와 맛이 강한 커피에 관해 설명을 해준다. 난 그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남아있는 에스프레소를 다 마시고 찬물로 입을 헹군후에 그 드리핑 커피를 한잔 마셨다.

어?!

좋은데?!

드리핑 커피에서 이런 맛이 나온다는 것이 놀라웠다. 세상은 놀랄 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주인장도 은근히 흡족해 하는 눈치다. 마음에 들지 않을리가 없다.라는 얼굴이지만 자만이라던가 하는건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손님이 기뻐하는 것을 자신도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가지 다양한 취향의 커피를 만들어 내어 줄 수 있다고, 부드럽게 말해주었다.

굉장히 기뻤다.

원두콩을 직접 볶아내고, 갈아서 내어준다. 기계로 볶아내기 때문에 전통적인 방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맛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매우 기뻤고 흡족했다.

오늘 좋았던 일은 이것 밖에 없다.

추신 : 왠만하면 앞으로 여긴 나 혼자 가고 싶다.

쌍소리.

생각해보면 사진찍는 사람이 사진을 전시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그 사람의 자유 의지로 할 수 있다. 설령 학과에서 주최 전시 또한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 사람이 하고 싶지 않으면 (여러가지 이유와 연유로 인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 이건 정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명색이 사진학과라는 곳에서 전시회에 참가한다는 사람들 중에 2주간 아무도 사진을 내지 않았다는 것은 (몇주 전 사전 공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많은 인원들 중 하다 못해도 단 한사람 만이라도 했다면 문제라고 까진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몇사람 제출 했다는것 따윈 아무 의미가 없지만, 완전 전멸은 좀 아니지 않은가?) 사진학과라는 곳은 사진에 대해 생각과 고민을 하고 실천 하는 곳이 아니던가?

학점에 신경쓰고 과제에 치여서 시간이 나지 않고 힘들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외에 해야 할 것도 많다. 아르바이트를 한다거나 집안사정이 있다던가 연애에 몰두 하고 있다던가 등등의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그러한 각자 자신의 상황속에서 비로써 진짜 무엇인가 나올 수 있는 것 이라고 난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러한 상황이 나로서는 그냥 봐넘기기엔 상당한 인내력을 요구했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화가 난 것이다. 왠만해선 그런 자리에 단상앞에 나서서 이야기 하는 것을 체질적으로 굉장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화남은 단상위로 날 밀어올렸다.

상당히 듣기 거북스럽고 거친 말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하루정도 지나고 생각해보건데 내가 그렇게 해야 할 이유 혹은 정당성을 찾기가 어려웠다. 쓸때없는 참견이고 괜한 소리를 했다 싶다. 기껏해봐야 그들 보다 나이가 조금 많을 뿐이고 학번이 조금 높을 뿐이다. 내가 그렇게 이야기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그런식의 거친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진이라는 것은 그런식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설령 그런식으로 말을 한다고 해서 사진이 나온다던지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난 굉장히 후회를 하고 있다.
앞으론 그런 종류의 일 때문에 단상위로 올라가는 일은 영영 없을것이다.

먼저 나 자신의 문제점부터 해결해야 할 일이다.
오늘은 나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운 날이다.

욕심.

것 참 바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사람들이 내가 요구 하는 것 만큼의 관심이나 이해 혹은 요구가 필요한것이 아님 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 차려보면 진지하고 깊게 해야 한 다고 종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취미로 하는 분들을 무시한다던가 그런 마음은 추호에도 없다.
그 목적에 맞는 정도 만큼의 것을 주고 그 만큼 받으면 편할텐데, 도대체 나로써는 그게 쉽지가 않다.

너무 욕심이 많아서 일게다.

죽음.

나름대로 쓸만한 작업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 쓸만한 작업실을 사라지지 않게 한다는 것은 항상 버겁다.

사소한 약간의 문제들과 주인장의 나태함과 게으름, 고집과 아집 그리고 어떻게 다른 방도나 방향을 찾아볼 도리 없는 현실적인 압박 등이 항상 나를 괴롭히고 있다.

현실적으로 본다면 이 작업실을 처리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인지도 모른다.
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실 생활에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하고 어딘가 취직을 하여 돈을 벌어서 사는것이 타당할 인생일지도 모른다.

나에겐 소원이 한가지 있다.
지금 계속 작업 할 수 있게 하고 앞으로도 작업 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있겠지만.

사람은 죽기 얼마전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 수 있다고 한다. 만약 그것이 정말 이라면 내가 죽는 그 순간 마지막으로 내가 보고 있고 바라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찍고 싶다. 더불어 그 무엇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피할 수 없겠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난 사진을 하고 싶다.

조금씩 추워지고 있다.

겨울엔 롱코트 만한것도 그다지 없어서 밑단이 길기 때문에 추위를 잘 타는 나로써는 상당히 요긴한 옷 중 하나다.

약 8~9년 정도 입고 다녔던 롱코트는 그다지 유행을 타지 않는 약간은 촌스럽게 보일지도 모를 정도의 단순하고 심플한, 옷단이 두툼해서 아주 차가운 칼바람이 아니라면 한 겨울은 그 옷 한벌로도 충분히 지낼 수 있는 검은색 옷 이었다.

이미 닳아빠질데로 닳아버린 외피는 보풀이 무시무시 할 정도로 일어나버려서 고색창연한 느낌을 넘어 입고 다니기에 조금은 부끄러울 정도까지 낡아버렸다. 내피도 외피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편이지만 상황이 그리 다르진 않다.

올해 초,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 롱코트를 없앴다.
아마 그 옷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 입게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던것 같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그나마 약간이긴 하지만 수입이 지금처럼 아주 엉망진창인건 아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단순하게 생각해버렸던 것이 나의 실수 였다. (그리고 후회해도 별 수 없지만 그 롱코트를 버리도록 종용했던 사람에게 원망을 하고 싶은 기분이다) 어찌 되었건 롱코트 한벌을 구입해야겠는데, 쉽지가 않다.

요즘 세상에 10년은 입을 수 있을법한, 그다지 유행을 타지 않는 검은색의 롱코트라는 것이 아직도 팔릴 수 있는 세상인지 까진 잘 모르겠지만…

아주 오랫만에…

내가 좋아하는 동생 K군이 차를 처음으로 구입했다.
무척 기분 좋아보였고 녹녹하게 녹아든 입가의 미소가 나에겐 너무나도 좋아보였다. 소유하는것이 늘어날수록 속박이라는 것 또한 늘어나기 마련이라고 하지만 최소한 그런것과는 관계없이 (혹은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소유의 행복이라는 것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게 되는 부분도 분명 존재 할 것이다.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에 시승을 하다가 갑자기 라디오가 듣고 싶어 아직 채널 셋팅도 되지 못한 라디오를 이리저리 돌려 들으며 왔다.

나중에 K군과 자동차 사진을 찍어주기로 했다. 나도 기분이 좋다.

작업실에 돌아와 먼지가 푸욱 쌓인 라디오를 틀었다.
예전 라디오에 관한 짧은 일기를 쓴적이 있다.
그 후에 운 좋게도 성능이 좋은 새 전화기를 공짜로 얻을 기회가 생겼다. 그 뒤론 전화기로
라디오를 때리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몇달동안 아주 아주 조용했던 라디오가 움직인다.

그저, 그저…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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