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앞으로 어떤 문장이 쓰여질지 전혀 짐작가지 않는다.
아뭏든 뭔가가 끄적거리고 싶어서 일기장을 열었지만,
무엇을 써야하는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 나는 안경을 벗고 잘 보이지 않는 모니터를 눈을 찡그려 가며
보고 있다. 안경을 쓰면 당장에라도 이 불편한 상태가 해소 될 것임은
분명이 알고 있지만, 그냥 있기로 한다.

입에는 88 골드가 물려있다. 앰프는 꺼저있고 컴퓨터의 냉각팬 소리만
위잉 거리며 돌아가고 있다.

언어, 혹은 말 이라는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이과 관련된 주제의 일기는 짧막하게나마 몇차레 주절거린적이 있다.
언어는 사고시스템과 직결된다고 한다. 그 사람 혹은 종족이 가지고 있는 어휘가 작다면, 느낄 수 있는 세계도 작다는 것이다.
언어는 세계를 재단하고 카테고리화 하고 기준을 만든다.
때문에 위의 말은 틀린게 아니게 된다.
예를 들어 이누이트족의 경우 눈(雪)과 관련된 단어만 33가지나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선 기껏해야 약 4~5가지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것 이라고 해서, 느낄 수 없다는 것은
분명 아닐것이다.

이 부분에서 비교적 여러가지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관념적, 추상적인 표현에 있어서 언어의 한계(난 이것을 한계라고 불러도 좋다고 생각한다.)가 느껴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 또한 1차적인 의미에서의 경우고, 이러한 한계 자체를
하나의 표현방식으로써 응용하게 된다면, 또 다른 무엇인가가 표현가능하게 된다고 난 생각한다.

어떤 사람 2명이 있고, 대화를 한다.
명사만을 사용한 대화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 무엇인가 뜻 혹은 감정을 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게 부르는 단어만 전달이 되었을 뿐 그것에 연결되어진 관념은 개인마다 다르게 이어지게 된다.

‘무엇’이 눈 앞에 있고(혹은 느껴지고), 그것을 말 해야 한다면 기호만 같고 뜻은 서로 다른 오해가 생겨지는 경우 또한 많은 듯 하다.

하지만 이런 일반적인 경우와는 별도로

같은 맥락에서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은 둘이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

다른 맥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은 둘이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경우.

둘 중에서 꼭 하나만 선택하라면 난 후자 쪽이다.

어쩌다가 내가 이런걸 끄적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아니 어쩌면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잘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엇인가 답답한 느낌에 쓴것 임에는 분명하다.

갑자기 이런 문장이 생각난다.
커뮤니케이션이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경우엔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글쎄, 따지고 보면 일리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여전히 난 안경을 벗고 있고, 그 덕에 모니터의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난 아까와 마찬가지로 눈쌀을 있는데로 다 찌푸리며 모니터를 보고 있다. 그야 안경을 쓰면 잘 보일것 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기로 한다.

이제 곧 자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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