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말썽이다. 이리저리 마음고생한것 치면 솔직히 짜증이 난다.
몇일전 또 문제가 발생해서 서울로 보냈다. 이번에 세번째다. 분명 문제가 발생하여 보냈지만 서울 센터에서는 아무런 에러메세지를 찾질 못했다고 한다. 환장할 노릇이다. 지난주 금요일 물건을 발송하여 토요일 부산에 도착해야 할 물건이지만 받질 못했다. 전화도 오지 않았다. 월요일 오후 4시즈음 되서야 전화도 없이 불쑥 찾아온 택배직원에게 물건을 수령했는데 전화번호를 확인해보니 한자리가 틀렸다. 용케도 위치를 찾는다.
지금은 아주 말끔히 고쳐진 상태다. 아무런 문제도 없고 거슬리던 그립 러버도 제대로 되어 돌아왔다. 하지만 이미 어딘가 변해버렸다. 퍼팩트하게 작동이 잘 되고 있지만 무엇인가 변해버렸다. 도무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필름 한롤 날릴 각오하고 열번 이상 릴리즈 로테이션을 했다. 분명, 무엇인가 변해버렸다. 무엇인가.
퉁명스럽게 테이블 위에 툭. 하고 던지듯 놓았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저녁에 잠시 나갈일이 생겼다.
어찌 되었건 무척 오랫만에 카메라와의 동행이다.
새 필름을 놈의 밥통에 넣어주고 길을 나섰다. 약속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전화 한통을 했다. 그 목소리는 무엇인가 변해버린듯 했다. 이런 종류의 예감은 항상 언제나 그렇듯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찌 되었건 주섬주섬 작업실로 돌아가는 길에 무엇인가 눈에 박혀 사진을 몇장 찍었다. 여전히 무엇인가 변해버렸다, 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외부도 내부도 모든게 말짱하고 퍼팩트하게 작동된다. 하지만 무엇인가 소실되어버렸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그래도 사진을 찍는다.
파인더를 통한 바깥속에서 나 스스로를 본다. 프레이밍과 초점을 동시에 맞추면서 노출을 결정한다. 이 사진을 프린트할 인화지는 일포드 웜톤 화이버에 2.5호로 프린트가 될 것이고 인화 현상액은 일포드 멀티그레이드 디벨로퍼-IV 일것이다. 또한 현상시간은 1분45초 즈음에서 +,- 15초가 될것이다. 필름 현상액은 D-76 희석비 1:1에 온도는 24도, 아지테이션은 로터리 프로세스를 사용하고 현상은 표준데이터에서 대략 N-0.6이 될 것이다. 확대기는 베셀러 23cII에 확대기 렌즈는 슈나이더 콤포논-S 50mm f2.8렌즈에 조리개는 5.6, 사이즈는 11×14로 확대 할 것임을 이미 몸이 알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러는 동안 카메라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어딘가 지금의 나와 닮은 구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딘가 불완전하다. 예전같으면 어떻게도 정을 붙일수가 없겠지만, 그렇게 사진을 찍은뒤 자꾸만 카메라가 측은하게 보인다. 불쌍한 녀석… 그렇게 카메라를 연민어린 손길로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그래. 팔고 다른걸 산다던가 하는 생각은 접자. 어쩌면 정말 나와 닮은 놈인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시간을 뛰어넘어 그렇게 되어버린건지도 모르니까. 좀더 따뜻하게 대해주자. 라고…
그리고 그날 늦은 밤, 긴 통화후 한 여자와 헤어졌다.
그녀의 무리한 부탁을 난 들어 줄 수 없다.
작업실 중앙에 있는 흰색 테이블 위에 뒷모습만 보이는 카메라 만이 나와 함께 있다.
항상, 언제나 그런 식이다. 마치 저주 같다.
예전 \’그 일\’ 후에 선물 받았던 발렌타인 17년산을 난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두명이서 속닥하게 마시기에 조금 모자랄지도 모르겠다. 라는 느낌 정도로 남아있었다. 그만큼 남아있었다, 라는 것도 난 좋았다.
함께 마시기 위에 아껴두고 아껴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젠 그럴필요가 없으니,
맛있는 위스키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괜찮아 질 것이다. 괜찮아 질 것이다. 괜찮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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