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방학 동안 학교 강의가 없으므로 No work, No money의 상태가 풀리는 날인 개강일이 되었다.

강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목엔 나에게 있어 한가지 작은 위로가 있는데 단골 돼지국밥집에서 뜨끈한 돼지국밥 한 그릇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이다. 맛으로 말할것 같으면 약간 엄격하게 기준으로 볼때 전혀 대단한 맛이 아니다. 게다가 소위 정통 (돼지국밥이라는 음식의 유래를 볼때 정통이라는 단어도 웃기지만) 돼지국밥에서 살짝 벗어난 형태로 돼지의 잡내를 잡기 위해 애초 국물 자체에 잡내제거용 된장을 아주 살짝 풀어 놓고 또한 그
위에 다진마늘을 약간 넉넉하게 넣은 꼼수를 부린, 원리주의자 입장에선 조잡하다고 할 만한 구성이다.

정면승부가 아닌 약간 비열한 능청스러움이 느껴지지만, 희안하게도 거슬리거나 기분이 섭섭해지는 느낌이 없는 그런 고만고만한 돼지국밥 집이다. 다대기는 넣지 않고 소금으로만 간을 맞춰서 먹는데 아주 약하게 된장이 풀어진 덕분인지 국물의 맛이 두껍고 감칠맛이 난다. 물론 익숙한 미원의 맛 또한 빠질 수 없다. 하지만 무엇 보다 토렴을 제대로 한, 다시 말해 돼지 국밥으로서 최소한 지켜야 할 기본을 지킨 맛이 난다.

강의가 좀 지칠때가 있더라도 돌아가는 길에 돼지국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일때도 있으니, 이 돼지국밥집을 제법 좋아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때도 있다. 그런 곳이 올해 여름 1학기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역시나 돼지 국밥을 먹으러 갔을때, 8월 중순을 마지막으로 폐업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 대단한 맛이 아니였음에도 무척이나 큰 섭섭함을 느꼈는데, 이 집 특유의 비열한 방식으로 만들어낸 비 정통적인 돼지국밥 만이 가지는 고유의 맛과 동시에 최소한의 당연한 기본이 지켜져있는 것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예의 그 국밥집 자리는 어떻게 되었나 싶어 살펴보니 그 자리엔 다른 돼지 국밥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이럴것 같으면 왜 폐업은 하고 지랄이람… 싶은 마음에 짜증이 확 솟구쳤지만 혹여나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고 사장은 그대로여서 예의 국밥 맛이 그대로라던가 익숙한 얼굴들의 매우 노련한 홀 이모들이라던가는 그대로 있는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홀린듯이 국밥집 앞으로 걸어갔다.

일단 바뀐 이름이며 간판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 특히 이름.
내부를 흘깃 살펴보니 구조와 완전히 바뀌었다. 이모들도 전부 처음 보는 분들. 사장 역시 처음 보는 사람.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확 사라졌지만, 어짜피 매주 봐야 할 것이니 이 참에 확실히 확인을 해두고 신경쓰이지 않도록 치워버리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를 보니 구성도 많이 달라졌고 가격도 더 비싸졌다. 하지만 그것 보다 더 아쉬운건 돼지우동 메뉴가 사라졌다. 아니 이럴수가..

진정하고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과 차려진 형태를 훑어봤다. 예감이 좋지 않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할터, 가장 기본인 돼지 국밥을 주문하고 국밥이 나오는 시간을 살펴봤다. 이전 보다 나오는 시간이 좀 걸리는 걸 보니 제대로 토렴까지 해서 나오는건가? 하는 마음에 느긋하게 기다렸지만 나온 것은 따로 국밥이다. 게다가 쓸때없이 커다래서 찢어 먹어야할 마치 칼국수에 어울릴법한 거대한 김치 세줄기의 모습은 아연실색하게 했다. 국의 향기를 느껴보고 국물에 담겨진 고기를 한점 먹어봤는데 의외로 고기 질은 이전에 비해 조금 더 신경 쓴 흔적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집의 돼지 국밥을 어떻게 먹어야 할지 당황하고 있었다. 그야 토렴까지 제대로 해서 나오는 돼지 국밥 집이 많이 줄어들었고, 때문에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지금과 같은 따로 국밥 형태의 것이 익숙하기도 할터인데  심정적 이유 때문인지 젓가락과 숫가락의 손놀림이 불편하다. 분명 다른 의미로 나쁘지 않은 돼지국밥이지만, 마음이 놓이는 맛이 아니다. 무엇보다 다 먹고 나서 오늘 하루가 잘 마무리 되었다는 심정적 포만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이건 익숙함의 차이 때문이라고 치자. 하지만 돼지국밥에 있어서 정서적으로 따라와야 할 응당의 것 중 하나는 국물까지 싹 비운 다음, 허무하게 텅빈 검은색 뚝배기 그릇을 보면서 하루 종일 흐트러진 몸과 마음이 느릿느릿 자기 자리로 찾아가는 듯한 감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이토록 거친 음식인 돼지 국밥의 미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오늘 먹은 돼지 국밥은 비워진 위를 수술용 메스로 가른 뒤에 국물과 돼지고기와 밥을 넣고 봉합사로 위를 꿰어놓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먹은 뒤에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어딘가 비열한 맛이 나지만 최소한의 지켜야 할 것을 지킨 그저 그런 맛의 국밥집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에 분노까진 아니었지만 무척 섭섭한 기분을 가누기 힘들었다. 그래 이런 건 흔히 있는 일이다. 심지어 내가 사랑했던 그 바다도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다.

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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